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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희 “이야기처럼 읽히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의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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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의 길이’가 길면 더 빨리 달려도 오랫동안 꾸준히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굉장히 숨이 짧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길이를 억지로 늘일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는 자기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게 맞죠. (2019.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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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제목은 「맥시팬티의 신세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일러둔다. “경고 : 이 글에는 ‘팬티’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합니다.” 이쯤 되면 풉, 터지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아, 시작부터 웃기잖아!’

 

이야기는 이러하다. “팬티라도 편한 걸로 입자”는 생각으로 집어든 맥시팬티가 몸에 딱 맞고, 너무 편하고, 심지어 맵시까지 대단했다는 것. (게다가 일곱 장에 9900원이라니! 가성비도 뛰어나다.) 작가는 “나의 가장 못나고 누추한 부분들마저 지지받는 느낌”을 안겨준 팬티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맥시팬티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것.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를 읽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수희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고, 어마무시하게 재밌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깔깔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훅,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와 마주친다. 어떤 문장, 생각, 마음 같은 것들. 이를테면, ‘동네 생활 달리기’를 즐기며 작가는 생각한다.

 

나는 늘 더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도 될 것 같을 때 멈춘다. 어떤 이는 더 뛸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바퀴를 더 뛰어야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려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53쪽)

 

에세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는 산책을 닮았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고 별다른 곳에 다다르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설렁설렁 걷는다. 평범한 나에게 벌어진 평범한 일들을 곱씹는다. 때로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고, 어떤 생각들은 찬찬히 되짚어 가지런히 개켜둔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고, 남은 시간을 새로 열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꼭 그러하다.

 

한수희 작가는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온전히 나답게』,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을 썼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일했으며, 매거진 <AROUND>에 책과 영화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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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편집한다는 것,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작가님 특유의 유머 덕분에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괄호 안에 담긴 말들이 너무 재밌어요(웃음).


그렇게 봐주시면 다행이에요. 제가 조금 어수선한 편이라서 그런지(웃음), 글도 그런 같아서 걱정이 됐거든요. 글 쓸 때 약간 자기검열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상한 쪽으로 가도 다 쓰는 편이에요. 그렇게 버릇이 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괄호나 어수선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걸 잘 받아들이시는 분도 계시고 아닌 분들도 계시고... 취향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이런 경쾌한 리듬, 분위기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저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너무 재밌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글이 나올 때도 됐는데’ 싶기도 했고요. 원래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빌 브라이슨이라든지, 헬렌 필딩이라든지.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작가들은 어떤 주제의 글을 써도 유머를 살리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잖아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되는 일도 없는 세상 책 읽으면서라도 웃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저는 유머가 있는 책이 좋아요. 김영민 교수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재밌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요. 저도 유머러스한 글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도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맥시팬티의 신세계」는 정말, 읽다가 빵 터졌어요(웃음).


그 글은 거의 마지막에 들어갔어요. 작년 초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2주에 두 편씩 편집자한테 보내드렸는데, 반응이 좋으면 ‘더 해볼까? 더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맥시팬티 이야기까지 나온 거죠(웃음). 저도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처음 보는 편집자였다면 이런 글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는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낸 거였어요. 사실 저는 그런 이야기로 책 한 권을 다 채울 수도 있는데, 초반에 눈치를 많이 봤던 거예요(웃음). 사실은 독자 분들이 맥시팬티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해주실 줄은 상상을 못했는데,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자존감까지 높여주는 팬티라니, 되게 궁금해지던데요(웃음)?


완전 추천해요, 진짜. 다시 태어난 기분, 안 입은 기분이에요(웃음).

 

이전 책들에서도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잖아요. 아무래도 에세이는 작가 개인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고, 자기 검열의 욕구도 생길 텐데요. 어떻게 항상 솔직하실 수 있어요?


자기 검열이 더 어렵지 않나요(웃음). 내가 이런 인간인 걸 나도 알고, 우리 가족도 알고, 내 친구도 아는데, 그걸 꾸민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예를 들어서 공식적인 행사장에 갔을 때, 사실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은데, 스테이크 썰면서 고상한 척하면 너무 힘들잖아요(웃음). 그런 걸 책 쓰는 기간 동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갑갑할 것 같아요. 제 성격이 본래 그런가 봐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를 잘 이해 못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꾸밈일 수 있겠죠. 신경을 안 쓴다고 하면서도, 내 모습이 남에게 드러날 걸 다 알고서 행동하는 거잖아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봐도 구질구질하고 싫은 나의 모습까지 남한테 보여주지는 않는 거죠.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제 안에 있는 모습 중에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만한 것들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마치 영화에서의 ‘편집’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사실 저도 영화 작업 중에 제일 재밌었던 게 편집이었거든요. 그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리듬감인데, 어떤 규칙이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는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건 여기에서 끊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정리해가는 부분들이 짜릿했어요. 그게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쓸 때도 편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데요. 쓸데없는 말을 두 번 반복한다거나, 횡설수설하다가 갑자기 원래 이야기로 돌아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은 교정을 볼 때 그 부분에 대해서 편집자가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말하듯이 쓰는 스타일이라서 거기에 다 리듬이 있는 거거든요. 그게 편집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도 유사하잖아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감출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거죠.


그렇죠.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너무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내 모든 걸 다른 사람이 받아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편집’ 같은 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작가님만의 리듬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점, 점 얘기로 돌아가자”라든지 “김치는… 김치는 버려야 한다”고 쓰시는 거죠. 그런 부분을 천편일률적인 편집으로 깎아냈다면, 고유의 맛이 없어졌을 거예요.


그래서 편집자와의 궁합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런 것 같고, 에세이의 경우에도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랑 성향이 굉장히 다른 분이랑 일을 했을 때 결과가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랬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있고, 반대로 저랑 비슷한 분이랑 같이 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또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재밌는 지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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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거죠


얼마 전에 문화사회학자 엄기호가 쓴 『공부 공부』라는 책을 읽다가 나는 ‘숨의 길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 제주의 해녀들이 물질을 나갈 때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것은 자기 숨의 길이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알아야,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 거친 바다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76~77쪽)

 

“쓸데없이 애쓰지 않는다. 내 한계를 받아들인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잖아요. 왠지 힘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더 많이 해야 될 수도 있고, 더 달려야 될 수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되더라고요. ‘숨의 길이’가 길면 더 빨리 달려도 오랫동안 꾸준히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굉장히 숨이 짧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길이를 억지로 늘일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는 자기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게 맞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숨의 길이’를 알게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예전에는 몰랐으니까요. 같은 일도 여러 번 경험을 하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지치고 어떤 부분에서 모자른지, 조금씩 알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나이가 50, 60이 돼도 알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마흔이 넘은 사람이면 굉장히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진짜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냥 똑같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간 건데, 대신 경험치가 늘어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새로운 일이 닥쳤을 때 예전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뿐이고요. 40대가 되었다고 사고의 폭이나 깊이가 굉장히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똑같이 철없는데 나이만 계속 먹어가는 것 같아요(웃음).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렇죠. 더 나이 들어서도 모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한 말을 나중에 다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요(웃음). 사실 지금 『온전히 나답게』 개정판을 만들면서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진짜 불태우고 싶었어요(웃음). 힘들게 고치고 있어요(웃음). 불과 2~3년 전에 나온 책인데도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죠.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이 다르고 속도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내가 너무 천천히 적게 하고 있나? 더 빨리 많이 해야 하나?’ 불안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만난 분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으셨던 것 같아요. ‘나는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제 멈추라고 해’라고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내가 느린 것 아닐까,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게 어디에서 만들어진 기준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시간을 더 쪼개서 더 열심히 일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할 수 없더라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살았을 때 망가지기 시작하는 걸 봤어요. 생활도 엉망이 되고, 가족에게 화를 내뿜고, 일도 엉망진창이 되고,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과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더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천천히 가야지 빠르게 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튜 끓이는 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죠. 제목 그대로 스튜를 끓이는 방법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끝에서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건 확실하다”는 말로 매듭을 짓습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스타일, 메시지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제가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냥 구구절절, 시시콜콜하게 청소하고 요리하는 이야기 같은 거요.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별로 없잖아요. 지금 내 몸에서 종양이 자라나고 있을지,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올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별로 없는데 그 사실을 점점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스튜를 끓이는 것처럼 사소한 것들은 내 손 안에서 움직이는 세계잖아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거죠. 거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동시에, 그게 너무 퇴행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퇴행이요?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리고 나의 운명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시시콜콜한 데에 집착하면서 내 삶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믿는 게 거짓말 같은 일 아닌가 싶은 거죠.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서문에서 “거대한 것과 시시콜콜한 것을 동시에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쓴 것도 그래서예요. 하루하루의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개인이 혼자서만 잘한다고 해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요. 그런 퇴행은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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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처럼 읽히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어요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나는 원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예요. 공교롭게도 마지막 문장이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이야기들이다”인데요(웃음).


그러네요. 완벽한 대구를 이루네요(웃음).

 

한편으로는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괜찮을까?’ 싶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 하셨나요?


당연히 생각하죠. ‘종이 낭비다, 자연 파괴범이다’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셨어요.


처음에는 그 불안감이 굉장히 컸어요. 누가 읽겠어,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책이 나올 때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내가 영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냥 믿는 것 같아요. 저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밑줄 그을 문장으로 가득 찬 진지한 책들을 읽을 때도 있지만, 시시콜콜하고 가벼우면서도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읽을 때 더 위안을 받거나 힘이 생기는 경험을 했거든요. 그런 걸 믿고 그냥 가는 거죠.

 

실제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1인이 여기 있습니다(웃음).


다른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들이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살다 보면 굉장히 경직돼서 살게 되니까요.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가도 시시콜콜하고 가볍고, 때로는 다른 사람이 망가지는 이야기를 봤을 때 환기가 되는 측면이 있잖아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데, 나는 왜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았을까’ 싶은 거죠. 이 책이 그런 책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고,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맞아요. 책에 담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힘을 얻은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은 거죠.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만 이런가?’ 하고 생각하는 게 그냥 하는 말 같지만, 굉장히 구렁텅이에 빠질 방아쇠 같은 말일 수도 있거든요.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에필로그에 “이번 책에서는 좀 헐거워지고 싶었다”고 쓰셨어요. 바람대로 된 것 같으세요?


네. 예전 책에 비해서는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사실은 걱정도 됐고 강박도 있었어요. 몇 개의 문단을 읽었다면 그 안에는 꼭 밑줄 그을 만한 문장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책을 쓸 때 ‘결말이 꼭 있어야 된다, 허망하게 끝내지 마라’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던 게 굉장히 오래 가더라고요.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깨달은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실 헐겁게 쓰는 게 저한테는 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다가 독자들이 ‘뭐야, 볼 것도 없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면서도, 독자들에게 막 무언가를 주려고 하지 않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알아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다행히 좋은 분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저도 용기를 많이 얻어서 ‘이렇게 써도 되겠다, 오히려 이렇게 썼을 때 읽는 분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싶었고요.

 

‘예전 책들보다 더 헐거워지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나요?


그 책들은 굉장히 빡빡했어요.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독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많은 생각들이나 주장들을 집어넣은 거죠. 지금 보면 ‘자기가 뭐라고 남을 가르치고 난리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웃음). 그게 저 자신한테도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책은, 에세이이지만, 각각의 글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야기의 힘이 되게 크잖아요. 굳이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잘 되어 있으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래서 이야기처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건 내 이야기이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렇기 위해서는 너무 빡빡하지 않게 쓰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한수희 저/서평화 그림 | 휴머니스트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는 것,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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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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