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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2화 : 주안댁에 관한 놀라운 전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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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에서 저녁까지 옹기막에서는 수박에 참외에다 돼지를 잡아 옹기가마에 구워서 포식을 했고, 이 이야기는 수년 동안이나 전설처럼 부풀려져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2019.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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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사흘 동안 줄기차게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 흙탕물이 되어 한강 연안의 저지대를 모두 휩쓸어버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폭우는 차츰 걷히는가 싶었는데 거품을 머금은 흙탕물이 옹기말 언덕을 둘러싸고 거칠게 흘러 내려갔다. 무너진 집이며 나무와 허섭스레기와 장롱과 농짝이 물에 반쯤 잠겨서 우쭐거리며 떠내려 왔다. 피난 온 사람들은 언덕 가에서 그러한 광경을 불안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주안댁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옹기막으로 올라가 이리저리 둘러보고 다녔다. 그러다가 주인 옹쟁이에게 말했다.


 “머 밧줄 같은 거 없수?”


 “그건 뭣하시게?” 


 주안댁은 푸시시 웃으며 말했다.


 “보물단지들이 떠내려 오는데 건져 볼라구여,” 


 “에이 큰탈 날라구 그래. 어찌 개헤엄이라두 하슈?”


 다시 주안댁이 웃으며 대꾸한다.


 “지가 원래 제물포 갯것이라 물속이 앞마당이라오.”


옹기막 주인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새끼줄을 가져다 세 줄을 덧붙여 능숙한 솜씨로 밧줄을 꼬았다. 튼실한 밧줄 두 가닥이 완성되자 주안댁이 언덕가로 내려가는데 주인이 다시 쫓아오더니 뭔가 꾸러미를 내민다. 


 “이거 우리가 천렵 갈 때 쓰던 투망인데 한번 써 보슈.”


 주안댁은 그물 뭉치를 쓱 한번 보더니 반색을 한다. 


 “그거 참 맞춤한 물건이우.”


주인과 인부 두엇이 주안댁의 뒤를 따랐고 그녀는 밧줄을 허리에 감고 끝은 인부들에게 내주었다. 


 “내가 말하면 끌어올려 주소.”


주안댁이 언덕 가녘에서 살피다가 서슴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밧줄이 풀려나갔다. 그녀는 무리지어 떠내려 오는 수박덩이를 목표로 헤엄쳐 가더니 몇 덩이를 그러모아 투망에 뒤집어씌우고 외친다. 그녀는 물가로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서 참외며 오이 등속을 그러모아 나왔고 이제는 물질에 이골이 나서 닥치는 대로 걷어 들인다. 판자나 서까래 등속이며 누군가의 집에서 떠내려 온 나뭇짐도 묶여있는 그대로 걷어왔다. 그때에 돼지 두 마리가 사지를 버둥거리며 떠내려 왔다. 하나는 거의 주안댁만이나 하고 다른 한 마리는 그것의 절반 정도 크기였다. 주안댁은 헤엄쳐 다가가서 큰놈의 머리에 올가미를 씌우고 다른 한 마리는 목을 그러안고 외쳤다. 인부들이 도움을 요청하여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이 남녀 모두 달려들어 밧줄을 잡고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큰 돼지는 그 방향이 살길이라 저도 사지를 버둥거리며 줄에 딸려 나오고 작은 돼지를 그러안은 주안댁도 한손과 발장구로 헤엄쳐서 줄 끝에 매달려 나왔다. 그날 오후에서 저녁까지 옹기막에서는 수박에 참외에다 돼지를 잡아 옹기가마에 구워서 포식을 했고, 이 이야기는 수년 동안이나 전설처럼 부풀려져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주안댁이라는 여자가 어찌나 헤엄을 잘 치고 힘이 천하장사인지 돼지 수십 마리를 물속에서 건져냈다고.


그런 이야기만 전해진 게 아니었다. 주안댁이 원당산까지 남편 이백만을 구하러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건 막음이 고모할머니가 이일철에게 얘기하고 손자 이지산을 통하여 증손자 이진오에게까지 전해진 사연이었다. 워낙 막음이 고모가 어릴 적부터 입담이 세어서 수많은 얘기가 부풀려졌지만 주안댁과 관련해서는 모두 근거가 있던 얘기라는 것이다. 오년 동안 거듭 일어났던 물난리 중에 마지막이던 을축년 홍수가 제일 컸는데, 그때에는 이미 주안댁이 세상을 떠나고 막음이 고모가 방직공장에 취직하러 왔다가 혼자된 둘째오빠를 위하여 아이들을 돌보고 살던 때였다. 그런데 그 물난리 가운데 주안댁이 다시 나타났다고 그랬다. 어쨌든 그건 처음 홍수 때로부터 다섯 해 뒤의 일이다. 


이백만은 홍수 첫날 공작창에 출근했었다. 일본인 간부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기사 몇 사람과 계장직과 고원들 그리고 용인 역부들 대부분은 출근했다. 선반부 기사였던 요시다 상은 아무래도 발전 설비와 선반기계들이 물에 잠길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중장비들이라 함부로 옮길 수도 없었다. 그들은 출근하자마자 공장 건물 입구에 모래주머니로 임시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사람 키 높이까지 쌓았다. 평지에 비하여 비교적 고지대인 공작창이 그 정도 높이까지 물에 찬다면 전 시가지가 물바다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급히 쌓은 모래 제방의 삼분의 이 높이까지 차오르자 직원들은 대피를 시작했다. 그들은 영등포역으로 철수하려고 했는데 그곳이 고추말고개의 초입으로 낮은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정거장 부지는 기관차의 출발과 정지를 지형을 이용하여 도움 받기 위해서 평지 보다는 높은 지대에 정하던 것이다. 공작창에서 역까지 지선 철도가 있어서 기관차에 객차 세 량을 달아 이동하기로 하였다. 몇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공장을 지키기로 했으며 이백만도 고원들과 함께 남아 있었다. 기차가 직원들을 싣고 조심스레 출발했고 철로는 물에 덮여 이미 자취가 사라졌다. 그래도 객차가 높아서 물이 찰랑찰랑 승강구 계단에 닿을 정도였다.


공장에 남은 사람은 십여 명쯤이었다. 물이 더 차오르면 지붕 위로 대피할망정 공장을 떠나지 않을 각오였는데 임시 제방의 모래주머니가 한쪽이 무너지면서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백만은 동료들과 함께 비상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목구조에 슬레트를 올린 지붕이어서 한곳에 몰려 서있으면 무너질 지경이라 각자 흩어져서 처마 근처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느새 비에 젖어 온몸이 흠뻑 젖었고 아무리 여름철이라지만 밤에는 한기 때문에 견디지 못할 것이었다. 부근을 잘 아는 이가 원당산 언덕으로 피하자고 제안했다. 보통 날은 싸온 벤또를 가지고 나무그늘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는 하던 곳이니 지척에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물의 깊이가 얼마쯤 되는지 모르니 함부로 건너갈 수도 없고 이미 밤이 되었다. 모두들 거기서 비를 맞으며 밤을 새웠다. 잠들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서로의 귀싸대기를 때리기도 했다. 이튿날 허기지고 지친 채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버티는데 다행이 비는 그쳤지만 물은 차츰 더 불어났다. 정오쯤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는데 부연 안개 속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주안댁이 돼지를 끌어올리는 활약을 보여주고 나서, 건져 올린 잡동사니들 중에 부서진 집들의 부산물인 판자며 서까래 등속을 모아서 새끼줄로 묶어 뗏목을 만들었다. 그녀는 뗏목을 물에 띄워 긴 장대로 삿대를 삼아 남편의 공장 방향으로 저어 갔다고 한다. 고여 있는 물도 아니고 홍수가 져서 흐르는 물에 뛰어 들었으니 누구라도 말려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주안댁이 밧줄을 찾으러 다닐 때부터 돼지를 끌어 올릴 때까지 말도 없이 해치운 것을 목격하였으니 아무도 그녀의 결정을 말릴 계제가 아니었다. 주안댁의 뗏목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당산리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고 한다. 삿대질이 어찌나 빠르고 거세었던지 물속을 팍팍 찍는 동작이 춤추는 것 같았다고. 공작창의 지붕만 남아 있었는데 주안댁은 정확하게 사람들이 모인 곳에 뗏목을 대었고 그들을 실어다 원당산 언덕 기슭에 부렸다. 남은 사람들이 십여 명이었으니 두어 명 태우기도 힘들었을 텐데 다 옮기려면 열 차례는 오락가락했을 거라고 그랬다. 원당산에는 당집이 있고 집도 몇 채 있는데다 인근 사람들이 피신해 있어서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주안댁이 여러 명을 살린 셈이었다. 하루 더 지나서 물이 거의 빠진 뒤에 주안댁은 이백만과 함께 걸어서 옹기막으로 갔고 맡겼던 아이들을 만나 온 가족이 무사하게 버드낭구집으로 돌아갔다. 주안댁에 관한 놀라운 전설에 대하여 이백만은 대개는 침묵하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더니, 그래도 손자 이지산에게는 너그러워서 한마디로 간단하게 대답하던 것이었다. 


 “너희 고모할머니가 원체 허풍이 심하니라.”


이백만이 누이동생 이막음의 재담으로 돌렸지만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대답이 못내 서운하더라고 이지산은 늘 얘기했다. 돼지 건진 건 사실이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주안댁이 뗏목을 만들고 홍수를 헤쳐 나가 수십 명을 구했다는 건 거짓말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아야만 을축년 홍수 때에 이미 세상을 떠났던 주안댁이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겠는가. 


이막음의 체험에 의하면 을축년 홍수 때까지 다섯 해의 일들이 정리가 된다. 한번 물난리를 겪은 사람들은 아직 장마가 오기 전인 양력 유월 초가 되면 벌써부터 준비를 해두기 시작했다. 유지를 구해다가 가족 전원을 위한 도롱이를 만들고 비를 피하고 물을 피할만한 구조물을 집안에 만들어 두었다. 어떤 이는 기역자나 디귿자로 이어진 지붕 위에 서까래를 가설하고 판자를 잇대어 올라가 앉는 임시 대피처를 만들거나 마당이 넓은 집은 원두막 같은 모양과 구조의 정자를 따로 짓기도 하였다. 이백만의 집에서는 가장의 솜씨가 워낙 좋았던지라 동네에서 제일 그럴듯해 보였다. “버드낭구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집 모퉁이의 버드나무 위 적당한 높이에 튼튼한 대들보를 올리고 그것을 주안댁이 나중에 지어올린 문간방의 지붕에 걸쳤다. 그리고 판자를 깔고 밑에는 기둥 두 개를 받쳤다. 작은 누마루가 생겨난 셈이었고 두 어른과 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을만했다. 한쇠와 두쇠 형제는 세월이 오랜 뒤에도 그 나무 위장소를 기억했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본부였다고 말하곤 했다. 해마다 물이 들었지만 이듬해에는 마루 아래에 닿는 것으로 그쳤다. 물론 시장 일대는 모두 침수가 되었다. 그 다음 해부터 용산과 영등포일대의 제방 공사가 시작되어 주안댁이 세상을 떠나던 그 해에 완공 되었다.


막음이 고모가 이백만의 집에 온 것은 주안댁이 죽기 전이었는지 그 뒤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주안댁이 고구마를 수십 개 삶아 먹고 죽은 걸 얘기하는 걸 보면 막음이 고모가 주안댁이 죽기 전에 온 것이 확실하지만, 이백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도 허풍이라는 것이다. 주안댁은 고구마를 먹고 체해서 죽은 게 아니라 셋째를 임신 중에 잘못되어 앓다가 태아와 더불어 사망했다는 것이며 아이들 때문에 백만이 며칠 동안 결근을 했다고 그랬다. 따라서 막음이 고모는 주안댁이 죽고 나서 영등포에 왔다는 얘기가 된다. 고모가 을축년 홍수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그해 여름 무렵에는 분명히 주안댁 없는 집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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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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