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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화 : 날 더운데 학교 갔다 오느라고 고생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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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내 울진 않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래 집에 잘 왔다, 잘 왔어, 너 올줄 알구 있었다. 느이 아부지가 데려다 준다구 왔더구나, 그렇게 말했지. (2019.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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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애고 내 새끼 날 더운데 학교 갔다 오느라고 고생했다.”


진오는 자신의 아래 위를 훑어보고 초등학생의 체격으로 돌아간 것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그의 책가방을 받아주고 셔츠와 런닝을 벗겨 목물을 하라고 그런다. 진오는 웃통을 벗고 함지 위에 엎드렸고 할머니가 바가지로 차거운 수돗물을 떠서 사정없이 끼얹었다. 아이구나! 진오가 소스라치며 두 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엄살을 떨자 할머니가 그의 등을 철썩 때리고는 다시 엎드리라고 했다. 목물이 끝나고 나서 할머니가 개다리소반에 밥과 맹물 한 그릇과 굴비살 찢은 것과 열무김치 한 보시기를 얹어서 마루 끝에 올려주었다. 그때에는 아직 서해바다에서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이었다. 경성 인근지방 사람들은 초봄이 지나면 인천 주안서 온 조기를 짝으로 들여다가 소금에 절여 집집마다 채반에 넣어 장독대에 두거나 새끼줄에 매달아 담장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렸다. 초겨울에 김장을 하듯이 봄에 조기를 절이고 말리는 일은 집안의 제철 행사였다.    


“허기졌지? 어서 시언허게 물 말아서 먹어라.” 


할머니는 고름 없는 여름용 모시저고리에 일본식 몸뻬 차림이고 머리는 쪽을 짓지 않고 그냥 동그랗게 자른 짧은 생머리였고 센머리가 한오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예전 야학 선생님 같다고 신여성이라고들 그랬겠지. 신금이는 김포 태생이고 시골에서는 드물게 소학교를 나와 방직공장에서 중학강의도 받았다. 남편 이일철을 만난 것은 그의 아우 이철이 덕분이었다. 큰할아버지 이백만이 아들을 낳자 기차를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 한쇠였고 그 다음 태어난 아들도 형의 이름을 따라서 두쇠로 지었다가 나중에 민적에 올리면서 일철이 이철이가 되었다. 신금이는 방직공장 다닐 적에 선교사의 권유로 예수교를 믿기 시작했다. 성경 읽기에 재미 들려서 특히 구약은 옛날 얘기책 삼아 몇 번이고 읽어서 나중에 독서하는 능력을 터득하게 되었다. 신앙도 돈독했던지 기도하다 방언이 터져서 몇 개 나라 말을 중얼거릴 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사람을 바라보면 그 주위에 귀신이 어려 있는 것도 보고 가끔은 소리내어 쫓는 시늉도 했다. 시동생 이철이가 총각 적에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요망한 년 둘이 뒷전에 보인다고 중얼거렸다가 남편 일철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신금이가 자기 아들 이지산에게 일러준 바에 의하면 생김새도 나중에 분란을 일으킨 년들과 꼭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얼른 가지 못해? 하고 소리를 냅다 질렀더니 이철이는 민망해서 밥도 못 얻어먹고 나가버렸고 요망한 여자 귀신 둘은 ‘아니 이 여자가 왜이래? 우리가 뭐 어쨌다구’ 하고 쫑알거리면서도 쫓겨 갔다는 것이다. 신금이 할머니는 차츰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당에도 발길을 끊게 되었지만 헛것을 보는 능력은 끝내 잃지 않고 살아갔다. 큰할아버지 이백만은 그런 며느리에게 쓰다달다 말이 없었고 새해가 되면 넌지시 올해 가내가 두루 평안하겠느냐고 묻기만 했다.


 진오가 수저를 뜨면 할머니가 다른 젓가락으로 열무김치 가닥을 물만 밥숟갈 위에 사려주고 다시 굴비 살 한 점을 얹어주었다. 그런 식으로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건넌방 사이의 마루에 가서 누우면 저절로 낮잠이 소르르 몰려왔다. 


그게 어느 해였던가. 할머니가 그날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이진오에게 해주어서 그는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다. 


내가 그날 고뿔 끼가 있어서 몸이 여엉 신통치 않았단다. 시장에 옷장사도 나가지 못하고 느이 큰할아부지 조반 겨우 채려드리고 방에 누워서 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있었구나. 깜박 잠이 들었는데 예전 관사 집에 가서 있는 거야. 느이 할아부지가 만주서 달려와 교대하구 돌아오려면 새벽이나 되어야겠는데 벌건 대낮인데두 퇴근해서 들어오는 거 아니겠냐. 난 무슨 사고가 났거나 해고라두 당한 게 아닌가 꿈속인데두 걱정했지. 그랬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당신 아들 지산이를 데려다주러 왔다구 그래. 나는 하도 반가워서 어디 어디메 내 아들 지산이가 있냐구 그랬지. 그랬더니 아직 몸이 성칠 않아서 보여주기 어려우니 나중에 직접 보구 놀라지 말라구 살아 돌아온 게 어디냐구 그러더니 까뭇 사라지데. 그때 잠이 깼는데 나는 비츨 거리며 일어나 마루로 나갔지. 근데 저 바로 대문 앞에 시꺼먼 그림자가 응달에 섰는데 목소리만 들려. 어머니 저 왔습니다. 열여섯 살에 느이 할아부지 개성까지 바래다준다고 따라 나갔다가 소식이 끊기고, 전쟁이 얼마나 끔찍했니. 한 백여 년 지난 것 같지. 근데 시커멓고 삐쩍 마르고 아이구나, 다리 한쪽이 없어. 그 더운 날 헌털뱅이 군복을 입었는데 한쪽 바짓가랑이가 절반으로 접혀져 있구,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섰더구나. 중학생이 홀연 사라졌다간 중늙은이 같은 몰골에 다리 한쪽까지 잃고 돌아왔으니 내 심사가 어떠하겠느냐. 그렇지만 내 울진 않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래 집에 잘 왔다, 잘 왔어, 너 올줄 알구 있었다. 느이 아부지가 데려다 준다구 왔더구나, 그렇게 말했지.


이지산은 그때 스물 한 살이었다. 이진오가 태어난 건 아버지가 스물일곱 살 때였으니 그가 태어나기 육년 전이었다. 이지산은 석방증을 받아 가지고 부산에서 기차에 올랐고 목적지 정차 역에 가서 신고하고 민증은 거주지 동회를 거쳐 구청에 가서 받으라는 주의 지시를 받았다. 영등포역에 내렸을 때 폭격에 맞아 타다 남은 기둥만 서있는 역사의 폐허가 보였고 폼의 시멘트가 군데군데 패이고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출찰구에 순경과 헌병이 나란히 서서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이지산이 헌병에게 다가가 석방증을 내밀고 말했다.

 

“저어… 포로석방으로 귀향하는 데요.”


헌병은 그가 내민 종잇조각을 훑어보고 순경을 향하여 눈짓을 하더니 석방증을 쥔 손을 흔들면서 앞장섰다. 


“따라 오슈.” 


그들은 역전 광장 모퉁이에 세워진 군용천막으로 들어갔다. 몇몇 사내와 아낙네가 먼저 들어와 조사를 받고 있었고, 헌병과 순경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헌병이 책상 앞 오리의자를 턱짓했다.


“거기 앉으슈.”


하고 나서 헌병이 물었다. 


“의용군이오?”


“아닙니다. 기관수였습니다.”

 

“기차를 몰았소?”


이지산은 늘 하던대로 대답했다. 


“예, 동원되었습니다.”


“체포 장소는?”


“황간 부근입니다.”


“황간? 그게 어디요?”


“추풍령 넘어가기 전에요.”


아아, 헌병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낙동강 전선에 물자 날랐군.” 


그는 포로명단에서 이지산의 이름을 확인하고 순경은 나이 든 사복에게 넘겼다. 다른 이들을 조사하던 사복은 날카로운 눈으로 지산의 아래 위를 살피더니 주소지를 물었고 그는 절대로 잊을 수 없던 샛말의 집 주소를 말했다. 사복은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어 이리저리 들쳐보며 이지산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펜을 책상에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 이일철이 아들이잖아. 그놈 전평활동하다 사팔년도에 월북한 걸로 되어 있는데. 이지산이두 같이 행불되었다고 나와 있어. 이거 순 진짜 빨갱인데.” 


사복은 이어서 고개를 흔들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사면해주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예전 같으면 체포 즉시 총살감인데.”


헌병이 말했다.


“대통령 특별명령입니다.” 


“당신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사복이 그의 접혀진 바지자락을 내려다보다 슬쩍 추켜올렸다. 


“폭격 맞았습니다. 치료 받고 수용소로 후송되었습니다.”


“당신 반공포로 맞는 거지? 하여튼 귀가 즉시 사흘 안에 본서 사찰계로 출두하라구.”


 돌아서서 천막을 나오려는 이지산의 뒤통수에 사복형사의 말소리가 날아왔다.


“꼭 출두해, 괜히 연행 당해서 곤욕 치르지 말고.”   


이지산은 아직도 온전하게 남아있는 역전 중심가를 걸어 내려왔다. 가죽나무는 푸르렀고 보도블록도 군데군데 벗겨지거나 움푹 팬 곳도 있었지만 일정 때부터의 중심가답게 상가와 행인들이 활기로워 보였다. 학교 갔다 오다 한참이나 서서 구경하던 화과자 집의 둥근 유리창도 그대로였지만 안에 진열되어 있던 일본식 생과자는 사라지고 센베이 막과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는 시장 로터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관과 치과의 옛날 간판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다니던 감리교회 부근은 작은 상점들이 늘어나 늘어놓은 좌판이 길의 반쯤을 점령하고 있을 정도였다. 교회 계단 위쪽에 늘어져 있던 버드나무는 온통 가지가 잘려져 있었다. 


그가 철도변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꺾어지고 다시 왼편 샛말 방향으로 돌아가자 멀지않은 곳에 동네의 어구가 보였다. 방울나무 지나서 정미소 앞으로 가니 폐허가 되었고 이곳저곳에 긴 말뚝과 장대가 걸쳐져 있고 물들인 군복이며 헌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이지산이 쌀집 골목으로 돌아 들어갔을 때 그는 맞은편에서 젖은 옷가지를 수북이 담은 대나무 광주리를 머리에 인 젊은 여자가 다가오고 있는 걸 보았다. 머릿수건을 쓰고 무명저고리에 몽당치마를 입었는데 배가 불룩했다. 두 사람은 한 열 걸음쯤 떨어져 있을 때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이지산은 목발을 세우고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가까이 지나칠 때에야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여자도 지나치면서 그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서너걸음이나 갔을까 여자가 걸음을 멈춘 것과 이지산이 돌아본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복례 아닌가?” 


“오모나!”


그녀가 기우뚱 하더니 머리 위의 대광주리가 기울며 옷가지가 떨어졌고 넘어질뻔 하는 것을 이지산이 목발 짚고 달려들어 부축했다. 여자는 땅바닥에 비스듬히 주저앉았고 얼른 자세를 수습하고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광주리에 담았다. 둘은 아무런 말을 나눌 수가 없었다. 이지산은 목발을 짚은 채 고개를 숙여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돌아섰다.


그것이 이진오의 아버지와 엄마가 재회하던 순간이었다. 그들은 소학교를 같이 다녔다. 엄마 윤복례의 오빠는 이지산의 친구였다. 윤복례 오빠 윤장구는 해방 뒤 청년단에 가입하면서 진오네 집안과 척을 지게 되어 멀어지고 말았다. 짱구라고 부르던 윤장구는 국회의원 선거판을 따라다니다 트럭 세 대를 가진 운수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일철 이지산 부자가 동네에서 사라지고 할머니 신금이 혼자 남아 큰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적에는 윤장구가 은근히 뒤를 봐주었다. 그는 명절 때가 되면 쌀가마를 들여 주고 시국이 뒤숭숭할 때마다 경찰서 사찰계에 불려가던 신금이를 빼내주곤 하였다. 공비토벌에 공을 세웠다는 황해도 출신 박총경의 아우가 다른 이북 피난민들처럼 영등포에 흘러들어왔고 그를 따르던 윤장구가 샛말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박총경 아우 박씨는 미군부대와 기독교 구호단체에서 흘러나온 군복과 헌옷들을 염색하고 손질해서 시장에 내어 큰돈을 벌었다. 광목 외에는 변변히 입을 옷감이 없던 시절에 군복이며 구제품 옷가지들은 요긴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이지산이 집에 돌아와 관할경찰서에 신고도 무사히 끝내고 며칠 지나서 어머니에게 가만히 말했다.


“집에 오던 날 복례 봤는데……”


신금이는 숯을 담은 다리미로 큰할아버지의 저고리를 다리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응 이제 몸 풀 날이 가차웠을 게다.”


그러다가 아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시집이야 잘 갔지. 나이 차이는 좀 있어도 이런 난리에 먹고살만하다니 얼마나 다행이냐.”


신금이는 그녀도 그 집 물건을 받아다 이익을 많이 보았다며 복례 오빠 윤장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그렇게 수완이 좋다느니 인정도 많다느니 하다가는, 


“세월이 못됐지. 느이들 다 동무들 아니었냐?”


그러고는 말을 끊었다. 두 모자는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진오는 마루에 누워서 할머니의 기척을 다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도란도란 얘기하던 옛날의 집안 얘기도 함께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배고 있던 아기는 그가 태어나기 육년 전에 태어났고 정자 누나가 되었다. 호적에 자신은 이진오, 누나는 박정자로 기록되었다. 염색소 박씨는 엄마보다 열다섯 살이나 연상이었는데 지병으로 시난고난하다가 정자가 태어난지 삼년 뒤에 결핵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염색소는 박총경네 막내동생이 이어받았고 윤복례는 시장에 나가 신금이 가게 옆에 옷장사 좌판을 벌였다. 그러고는 첫사랑이던 이지산에게 돌아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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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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