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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 인공위성, 키워드는 ‘자생’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후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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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획한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합창단에 들어가 동아리 아카펠라 팀을 일궈내 그 자생성 그리고 순수성, 우리들의 결속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2019. 04. 12)

'인공위성 발사대에 인공위성 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소리'에 도전했던 인공위성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당시 신문 헤드라인이다. 음악대 중은 서울대학생과 생소한 아카펠라 장르에 먼저 끌렸으나, 이윽고 그 속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생력과 맑은소리에 반했다. 1993년 한 해 40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의 성공으로 인공위성은 가요계에 청량한 추억을 남겼다. 2016년 새 싱글 '아빠의 싱글' 발표를 제외하면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멤버들이 데뷔 25주년을 맞아 이즘 인터뷰 차 함께 자리했다. 데뷔 앨범 멤버 중 테너 고봉준과 카운터테너 박형규는 아쉽게 자리하지 못했지만, 바리톤 양지훈과 카운터테너 이상준, 베이스 조창익과 리더 김형철(바리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인공위성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었다. 여기에는 당시 인공위성의 음반 기획자이자 이즘을 만든 음악평론가 임진모도 참여했다. 3월 23일 홍대 한 펍 레스토랑에서의 오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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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김형철(바리톤), 이상준(카운터테너), 양지훈(바리톤), 조창익(베이스)

 

 

인공위성의 첫 앨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가 1993년 발매되어 이듬해까지 활동했으니까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황을 들려 달라. 

 

양지훈(이하 지훈) : 인터뷰 공간인 이 펍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동시에 음악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악 마케터로 10년 넘게 일했는데 40세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했죠. 팝송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음반 제작자 한 분과 이야기하다 내린 결정이었어요. 미국에서 음반도 만들고 활동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상준(이하 상준) : 인공위성 앨범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2개월 만에 그룹을 나갔죠. 인생의 꿈을 쫒아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음악은 놓지를 않고 가스펠 앨범 두 장을 냈습니다. 작곡가 이승환과 함께 했는데 1집은 성공했고 2집은 망했어요.^^ 이후 음악은 내 삶이 아닌가 보다 싶어 학원을 운영하다 너무 힘들어 지난해 문을 닫았죠. 

 

조창익(이하 창익) : 인공위성 활동을 마감하고 몇 년 후인 1998년 유학을 떠났습니다. 공부를 마친 건 2003년이고 2002년부터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4년 정도 했어요. 2006년부터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로 14년째 재직 중입니다. 

 

김형철(이하 형철) : 삼성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IT 계열 벤처 그룹들을 많이 돌고 돌았어요. 직장 생활을 16년 하고 나서 사업을 시작했죠. 유무선 광고 마케팅 파트에서 일하기도 했고 기술 쪽에서도 일했습니다. 마케팅과 솔루션 중심이었고 유통 분야도 다뤘지요. 하지만 음악과는 직간접적으로 연을 유지했어요. 

 

1기 멤버 고봉준의 근황은.

 

지훈 : 지금 뉴저지에 살고 있어요. 창익 : 200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 IBM 왓슨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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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준(카운터 테너)

 

 

인공위성 활동 기간에 멤버 교체가 있어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지훈 : 1, 2집 그리고 중간의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함께 한 멤버는 기존 멤버 6명에 추가 멤버 3명 이현우 곽영빈 권오준으로 총 9명이죠. 이후 3집은 내가 중심에 섰고 후배 멤버들에 백인기, 손창우, 김현기, 김래훈이 합류, 5인조로 활동했습니다. 4집 활동에 참여한 멤버 최협이 가장 막내인 97학번이고 당시 내가 군대에 가야 해서 곽영빈이 새로 들어왔죠. 제작은 형철이 형이 맡았어요. 아, 1997년 유재하 사후 10주년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에서 'Minuet'을 노래한 이력도 있군요. 

 

4집 <We Call It A Capella>를 제작한 이유가 있다면.

 

형철 : 재밌어서도 있고, 그 당시 노래를 다 잘해서 분위기가 좋았어요. 나는 노래엔 전혀 참여하지 않았죠. 당시 활동은 거의 못 했고 홍보는 음반사에서 했습니다. 

 

상훈은 지난 1월 한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 <보컬플레이>에 출연하면서 인공위성 멤버들과 거의 25년 만에 재회했는데 기분은 어땠나.

 

지훈 : 내가 (상준형에게) 연락을 했어요. 

 

상준 : 그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자리가 마련된 것에 흥분해 '주전자라도 들고 다닐게'라고 말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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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훈(바리톤)

 

 

인공위성의 원초적인 출발점을 듣고 싶다.

 

지훈 : '베거스'라는 서울대 합창단 동아리의 별도 소모임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처음 아카펠라를 해보자고 얘기를 꺼낸 건 상준 형이었죠. 

 

상준 : 90학번 동기 모임에서 고봉준과 함께 처음 아카펠라 이야기가 나왔던 거로 기억해요. 지훈이와는 1980년대 팝 이야기를 자주 하며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고요. 인공위성의 시작은 나, 양지훈, 고봉준 셋이라고 해야겠네요. 

 

당시 아카펠라 유행을 퍼뜨렸다고 할 보이즈 투 멘도 있지만 인공위성은 영국 출신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 킹스 싱어즈(The King?s Singers)를 롤 모델로 삼지 않았나.

 

지훈 :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가 결정적 영향이 아니라 그전에 킹스 싱어즈 맞아요. 1991년도에 상준 형 집에 놀러 가면 항상 <The Beatles Connection> 앨범을 같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인공위성이 공연할 때 곡 했던 곡이 'Obladi oblada'였지요. 

 

창익은 활동 당시 '프레디 머큐리'를 닮았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다. 

 

지훈 :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녹화를 하는데, 노영심 씨가 창익이 형 옆에 와서 '창익 씨 정말 프레디 머큐리 닮았다!'고 말했더랬죠. 

 

창익 : 정확히는 노영심 씨가 '혹시 누구 닮았다는 얘기 안 들어보셨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형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제 모토는 건전한 생활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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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익(베이스)

 

 

창익은 인공위성을 어떻게 기억하나.

 

창익 : 음반 준비는 93년 여름부터 했고 캐롤 음반까지 한 게 94년 겨울까지었습니다. 공식 활동은 94-95년 1년 6개월로 끝난 거죠. 인공위성의 기억이라... 나는 상준, 지훈, 봉준이 아카펠라를 위해 뭉치고 나서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었어요. 학번은 형철과 같지만 나이도 제일 많았고.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면 가끔 아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도 연예인 좀 봤으면 좋겠다' 할 때가 있는데 속으로 '내가 연예인이잖아' 하며 '칫', 합니다. (웃음) 

 

인공위성 활동하며 자신의 소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창익 : 음반으로 들었을 때 블렌딩(섞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카운터테너, 지훈의 파트가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소리가 두드러진다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특히 내가 리드보컬을 맡은 1집 솔로 곡 '축가'(원곡 송창식)가 아쉬워요. 막상 녹음실에 들어갔을 때가 이상하게 연습할 때와 달라서 제가 표현하려는 느낌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여섯 시간 동안 한 곡을 붙잡고 노래했던 기억이 있죠. 

 

상준 : (창익을 보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부를 때 녹음실 기사님이 '도레미 몰라?' 하면서 나를 다그쳤던 기억이 난다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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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 김형철(바리톤)

 

 

리더 김형철이 없었다면 인공위성은 데뷔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철은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나. 

 

형철 : 어디든 잘 묻어난다고 할까요. 나는 조금씩은 쓸 만해요. (웃음) 각자 멤버들의 보컬 색을 보면 사실 섞이기 힘든 조합인데 다행히 인공위성은 그 단점을 최소화했다고 봐요. 1월 <보컬플레이> 방송 출연했을 때도 각자 목소리를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인공위성 음원을 만들면서 각각 음악적 성취도를 대표하는 곡을 하나씩 뽑아본다면.

 

지훈 : 2집의 '울릉도 트위스트'입니다. 인공위성 1집 프로듀싱을 맡은 권오준이 2집 활동 때 두 카운터테너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었죠. 창익 : '나뭇잎 사이로'의 카운터테너도 권오준이죠. 나는 1집에서 형철이가 편곡한 '제주도 푸른 밤'을 꼽겠습니다. 

 

상준 : 내가 하려고 했는데 (웃음). 저도 '제주도 푸른 밤'이에요. 형철: 전 1993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급히 제작한 캐럴 앨범을 좋아하는데 수록곡 가운데에서는 'Jingle bell rock'과 'Blue christmas'가 맘에 들어요. 실장님 선곡이죠. 

 

서울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그룹이라는 신상명세가 압도해 성공했지 사실 노래는 약했다는 의견이 있다.

 

지훈 : 노래만 잘해서 뜬 그룹은 아니죠. 장르도 특이했고 학벌도 작용했고 잘생긴 멤버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가 상업적으로 작용한 건 맞습니다. 당시 <별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 하던 이문세 씨가 '아카펠라가 노래만 잘해선 절대 안 된다!'라 말해주기도 했던 게 기억나요. 하지만 우리의 핵심은 자생(自生)입니다. 누가 기획한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합창단에 들어가 동아리 아카펠라 팀을 일궈내 그 자생성 그리고 순수성, 우리들의 결속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만들어진 순수성이 아니었지요. 

 

인공위성의 등장으로 가요계에 아카펠라 붐이 야기되어 여러 그룹의 출현이 이어졌다. 인공위성의 위상을 매긴다면.

 

상준 : 인공위성을 그만둔 후 군대를 다녀와서 아카펠라 가스펠 팀에서 활동했어요. 그 기간 동안 항상 동료들에게 존중을 받았습니다. 인공위성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죠. 서울대생이라는 배경 때문에 아마추어라는 프레임을 씌워진 것이지 사실 실력이 있었다는 증명 아닌가요.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죠. 


인공위성을 좋아한 주된 팬들은 그 시기 대학생이었던 93, 94, 95학번 세대들이다. 지금도 팬들이 존재하나.

 

형철 : 팬들의 실제 느낌은 잘 모르지요.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들을 보면 긴 시간 동안 지지하고 사랑을 보내주며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만약 우리들이 오랜만에 모여 25주년이든 30주년이든 무대를 갖게 된다면 팬들이 많이 도와주리라 봅니다. 자기만의 오랜 보물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보컬 플레이>를 통해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인공위성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훈 : 단체 메신저 방에서 공연 이야기를 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 있으나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습니다. 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기억해주는 사람이 꽤 있고 그 당시 우리를 사랑해준 팬분들을 만나서 과거의 풋풋한 시절을 돌려드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항상 그 생각을 합니다.

 

창익 : 인공위성 활동 시기 내가 연예인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때 팬들이 '저 사람도 인공위성 멤버였어'라고 말해줄 때가 있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형철 : 인공위성은 내 인생을 사진으로 쭉 늘어놓고 그중에 세 장 정도 뽑아보라고 하면 그중 한 장으로 꼽을 수 있는 기억이지요. 리더로 책임감뿐 아니라 학창 시절 시간도 꽤 투자했고 이후 제 삶의 행보에서 음악이 많이 관계하게끔 됐으니까요. 그 정도로 삶에서 소중한 궤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훈과 창익의 경우 음악의 세계로 이끈 가수나 앨범을 소개해달라.

 

지훈 : 저는 시카고, 필 콜린스 등의 팝 음악이 충격이었어요. 지금 보니 필 콜린스는 화성이 굉장히 특이한 아티스트였죠. 너무 좋아했어요. 실장님한테는 <Another Day In Paradise>를 많이 얘기했지만 진짜로 제가 좋아하는 필 콜린스의 베스트는 <No Jacket Required> 앨범이에요. 

 

창익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했어요. 중학교 때 변성기가 오려고 하니 선생님이 8~9명을 모아 중창단을 만들어주시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도 꾸준히 합창을 했습니다. 당연히 음반으로 합창 음악을 많이 접했죠. 로저 와그너 합창단, 킹스 칼리지 합창단을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외국으로 유학 간 뒤에는 음악 듣는 게 너무 많이 줄었어요.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사진 : 임동엽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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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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