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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미 “부당하다는 느낌, 귀하게 다루셔야 해요”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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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불쾌하기는 한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거예요. 불쾌함이 왜 느껴지는지를 봐야 돼요. 부당함을 느꼈다는 건 어떤 불편함이 있는 거거든요. 특히 자기가 평소에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거나 존경하고 싶었던 대상에게서 뭔지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돼요. (2019. 0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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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찜찜해...’ 하고 계속 되뇌게 되는 관계가 있다.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분. 영 낯선 감각은 아니다.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본인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해 오는 친구, 내가 양보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족,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가 그 순간만 지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처럼 구는 상사...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들고 ‘이대로 괜찮은 거야?’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정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함께해 온 시간이 있고, 그동안 쌓아온 감정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리저리 얽혀있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발목을 잡는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참고 넘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는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관계는 없다”고 단언한다. 관계도 택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변화가 필요한 관계’는 어떤 모습이고, 우리는 무엇을 함으로써 관계를 선택해 나갈 수 있을까.

 

저자인 성유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다양한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내가 늘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 나 또한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왔고 그를 이용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 일말의 여지를 열어놓고 관계의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길” 조언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만나며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결국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성유미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에서 주체성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책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를 집필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연세필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원장으로 진료를 이어가고 있으며, 국제 정신분석가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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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당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을 찾는 분들 대부분이 관계의 문제를 호소한다고요.

 

처음에는 우울이라든지 불면증 같은 증상들을 가지고 오시는데, 더 들어가 보면 사람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오세요. 완전히 사람 관계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없잖아요. 여러 증상들이 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라는 제목에서 배신감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자기 증상의 이유를 모르고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오자마자 배신감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제목처럼 ‘이제껏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 대상이 가족이나 배우자, 연인 등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그런 경우에 느끼는 배신감은 그냥 모르는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것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것 같아요. 믿었던 사람에게서 다른 면을 봤을 때,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내가 너무 좋아하고 신뢰하는 대상이었으니까요. 그게 제일 아픈 부분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을 포기하거나 그 사람과 같이 했던 시간을 포기해야 하니까요. 잃어버릴 게 너무 많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나는 도대체 뭘 믿었었나, 왜 이런 지경까지 왔나, 그런 부분들을 보게 되는 건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관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보게 되거든요. 사실은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거라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서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고 물으셨어요.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어떤 변화가 시작되나요?


현실을 보지 않은 채로 계속 가면, 어떤 식으로든 단절을 할 수는 있을 거예요. ‘나는 피해자이고 너는 가해자이니까, 나는 끝까지 복수하면서 살 거야’ 하고 평생 싸우는 거죠. 그러면 관계의 단절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 미움에 시달릴 텐데, 자기 인생이 망가지는 거죠. 제가 생각할 때는 관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면 일단락이 되거든요.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정리를 하면 매듭을 짓는 게 가능해요. 그러기 위해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고요. 그러지 않고 무조건 미워하다가 지쳐서 끝난다면 답이 나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봐야 하는 거죠.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한 차례 진통을 겪더라도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갈팡질팡 하는 거죠.


상대와 부딪히는 걸 싫어하거나, 그게 제일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반대로, 한 번 부딪히더라도 매듭을 짓는 게 속 시원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완전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일대일 상황에 맞춰서 솔루션을 찾아가야 돼요. 단순히 이 책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책에서 많은 사례를 다룬 것이고, 당사자가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결말은 열어뒀어요.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의 권한이라는 거예요. 그것만 알아도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단절이 되지 않아요.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거든요. 관계를 보류시켜도 되고, 정리해도 되고, 정리했다가 다시 이어가도 돼요. 자신이 자유롭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 입맛대로 관계를 바꾸는 게 이기적인 건 아닐까,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죠.


그런 걸 약간 금기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많이 있었죠.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 걸 느낍니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봐도 ‘이제는 내가 먼저이고 싶다’는 바람이 읽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욕구 충족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자기 주체성에 대한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아요. ‘내 인생, 내 인간관계에서는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가운 일 같아요.

 

그동안은 그렇게 못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렇죠. 이제야 한 명 한 명이 살아 움직이는 시대가 된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떤 면에서 보면, 갈등이 많은 것 자체를 과도기적으로 장려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갈등을 무마시키고 없애는 쪽으로 가면 역사를 거꾸로 가는 거잖아요. 그 동안에는 여러 가지 그럴 듯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개인을 맞추려고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죠. 한 명 한 명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과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각각의 요구 사항을 적절하게 듣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복잡해지고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한데, 그걸 없애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관계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거니까, 훨씬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돼요.

 


부당하다는 느낌, 귀하게 다루세요


관계에서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주고받는 것이 비슷한 수준을 이루는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공정 무역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혹은 상대방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게 표면으로 잘 보이지 않는 문제라면 정당성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부당하다는 것(unfair)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본능적인 불쾌감 중에 하나거든요.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인데, 그걸 당연하다고 하지 못할 때 스스로 위축이 돼요. 사실은 ‘뭔가 불쾌하기는 한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거예요. 불쾌함이 왜 느껴지는지를 봐야 돼요. 부당함을 느꼈다는 건 어떤 불편함이 있는 거거든요. 특히 자기가 평소에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거나 존경하고 싶었던 대상에게서 뭔지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돼요.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사람이 부당함을 못 느끼면 살아있는 게 아닌 거예요. 사람이기 때문에 부당함에 대한 걸 느끼는 거예요.

 

‘공감 착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상대가 나에게 공감 받는 시간이나 횟수가, 내가 그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훨씬 큰 경우 ‘공감 착취’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문제 상황을 인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저 사람이 나보다 힘든 순간이 더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이걸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나쁜 사람인 거 아닐까’ 싶은 거죠.


자기가 편협한 사람처럼 느껴지고요.

 

맞아요(웃음).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요. ‘친구인데 그런 거 하나 못 들어주나’, ‘이러고도 내가 친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데요. 일단은 ‘그 사람이 매번 그랬을까’를 질문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내 컨디션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것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상대가 요구한다면 이상한 거죠. 통곡의 벽이나 다름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통곡의 벽이 아니라 사람이고 내 컨디션이 중요한데,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내게 필요한 말을 해 봐, 빨리 조언 좀 해 봐’ 하는 식이라면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렇죠. 그럴 때는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나’ 싶죠. 이런 감정을 말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헷갈리고요.


정해진 답이 있다기보다는, 결국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내 상태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그럴 수 없고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면 이상한 거잖아요.

 

책에서 예로 드신 것처럼 ‘한 시간 정도는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 하고 알릴 수 있다면 괜찮은 거겠네요.


그렇죠.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몸이 아파서 혹은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 조금 어려울 것 같아’라든지 ‘나도 요새 힘들어서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정도의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건 내가 상대한테 양해를 구하는 거거든요. 그걸 받아주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죠.

 

공정한 관계가 아닌 거죠.


네.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만 해도 많은 부분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개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할 수 있어요. 주변에 보면 ‘내가 생각하는 건 다 옳고,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네가 이상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당연하다고 스스로 도장 찍어주지 못하면, 상대방의 의중에 휩쓸려가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상대에게서 뭔가를 뽑아내려고 하기도 하고, 자기 주장이 확고해서 굉장히 정확하게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 틈에서 일을 할 때는 부당성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부당함을 느낄 때는 반드시 그 감각을 귀하게 다루어야 돼요.

 

‘공감 착취’와 관련해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다면 분명히 알아둬라. 그 사람은 당신을 좋은 친구로, 좋은 가족으로, 좋은 동료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다. 일종의 공격이다”라고 하셨죠.


사실은 공감을 착취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아요. 특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죠. 그런데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건 그 사람이 뭔가에 대해서 부당함을 느꼈거나 화가 나 있는 거잖아요. 화라는 것 자체가 공격적인 에너지이고, 어딘가에 발산을 해야 되거든요. 그럴 때 나한테 말과 정서로 쏟아 부은 거니까 자기는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사람도 일시적인 만족이 있을 뿐이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아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화나는 일은 또 생길 것이고, 그걸 또 나한테 풀어야 될 거고, 그러면 나는 화를 받아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직장에서 상사의 화를 받아내야 할 때도 많죠(웃음).


맞아요. 대개는 누가 봐도 어이없는 경우인데, 제일 어려운 건 상사가 굉장히 세련되게 하는 경우예요. 그리고 이유 있게 화를 내는 경우에 더 혼돈에 빠지죠.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를 했을 때,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수정과 함께 화가 얹혀서 온단 말이에요. 제3자가 팩트만 들었을 때는 ‘그럴 만 했네’라고 반응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당사자는 더 헷갈리죠. 부당한 느낌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어요. 수긍할 수 있는 선이 있을 테고, 그걸 넘어서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붙는다면 부당한 레벨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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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물성을 탐구하세요


책에 실린 사례처럼, 순간 욱했다가도 나중에 잘해주는 상사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그래, 저 사람도 인간이니까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서 말할 수도 있지’ 싶은 생각도 들죠.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더 잘해주나 보다’ 싶기도 하고요.


미화시키는 거죠.

 

그런가요? 피해자 입장에서 왜 미화시키는 걸까요?


나도 그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아마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인정이라는 거대한 오아시스를 포기할 수 없는 거죠. 틀림없이 본인 입장에서 달콤한 부분, 좋은 면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화낼 때만 아니면 좋은 사람이겠죠(웃음).


맞아요, 그것만 빼면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자신이 닮고 싶거나 존경하고 싶은 인물일수록 ‘저 사람도 사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 내가 한 면만 가지고 너무 비난하는 거 아니야?’ 하고 오히려 자신을 탓해요. 아마 주변에서도 ‘그것쯤은 감수해야지, 네가 얻는 게 많잖아’라고 할 거예요. 그런 말까지 들으면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인정 욕구를 버려야겠네요?


버릴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해야죠. 버리고 싶다면 버리면 되지만 ‘굳이 버려야 하는가’도 질문 해봐야죠. 직장 안에서 인정을 바라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순간 욱 했다가도 다시 잘해주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요?


그러면 상대가 다시 다가오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핸들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네요?


그걸 의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자신도 모르게 할 가능성이 많죠. 만약 의식적으로 ‘얘는 이렇게 다루면 돼’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말 그대로 ‘착취형’이에요.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할 가능성이 높아요. 겉으로 볼 때는 실제로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쉽지 않은 거죠. 상대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한테 ‘당신이 다시 친절하게 굴면 내가 또 가까이 다가가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라고 물어보면 어이없어 할 거예요. 아니면 자신이 욱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잘못해서 화냈던 거지, 욱한 거 아닌데?’ 하는 거죠. 잘못했다가는 ‘너 혼자 소설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어요.

 

‘관계를 쉬어가야 할 때’를 알 수 있는 징후 같은 게 있을까요?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나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같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찜찜하다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되고요. 그런 일이 지금 한 번 일어난 건지, 아니면 생각해 보니까 더 있었는지도 생각해 봐야 돼요. 관계를 쉰다는 건 한 번 생각을 해본다는 거고요.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해야 될 필요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관계를 정리할지 말지 고민을 해야겠죠. 나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한 번 더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당장 관계를 끊을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이 관계에서 얻는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고,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겁이 나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면 어떤 불이익이나 손해를 볼까 봐 유지하는 걸 수도 있고요. 관계에서 자신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생각해 봐야 돼요.

 

“결혼에 있어서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속물적인 요소는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라는 말도 하셨어요.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에 있는 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책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나의 이기적인 속성을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는 거죠. 나의 속성을 부정하고 자기를 자꾸 예외로 두면, 거기에서 말썽이 생기거든요.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잖아요. 나라고 해서 이기적인 마음이 전혀 없는 게 아닌데, 그런 사람으로 계속 몰아가면 나의 현실과 한계를 무시하는 거거든요. 사람이 이기적인 속성을 탐구한다고 해서 이기적으로 되는 게 아니듯이, 속물을 탐구한다고 해서 속물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의 속물성에 대해서 마음껏 탐구하라는 거죠. 그래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요.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조건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하다는 거죠. 이상도 중요하고 현실도 중요한데,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을 보면서도 발은 반드시 땅에 붙이고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상과 현실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두 가지가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 것 같으세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경험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관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죠.


맞아요. 성인이라면 내가 만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관계는 바꿀 수밖에 없는 거죠. 직장도 선택하는 거니까, 어렵긴 해도 다시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대상을 바꾸는 것만이 선택은 아니거든요. 관계의 성격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그동안은 내가 일방적으로 맞추는 관계였다면 ‘나는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갈 수 있어요. 내가 관계에서 잃는 게 더 많아지는 지점에서 빨리 손을 떼면 돼요.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으면 계속 지속하면 되고요.

 

‘이 관계에서 내가 얻는 것’을 생각해 보면, 피해자라는 느낌도 줄어들 것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상대방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좋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주장의 폭이 넓어지잖아요. ‘나만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저 사람도 날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인식하게 되는 거죠. 원래부터 나한테 있었던 힘인데 사용을 안 하고 있었던 거거든요. ‘나만 일방적으로 저 사람을 필요로 해’라는 생각에 매몰돼 있었으니까요.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성유미 저 | 인플루엔셜
너무 사소해 보여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너무 오래돼서 익숙해져버린 관계의 상처를 깨닫고, 그리고 인정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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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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