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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하여

혼자 가는 길의 외로움과 자유로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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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타인과의 연결로서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위의 말을 좋아한다. (2018.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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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운전하지 않던 시절, 역시 운전하지 않는 친구와 운전의 장단점을 이야기한 적 있다. 그때의 우리는 그다지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친구는 이럴 때는 운전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확 들어올 때 있잖아. 그때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타지 않고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오해 말기를, 이건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쓸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이 뇌리에 한참 남았던 건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운전의 효용성에 접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그 말을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혼자 심야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문득 떠올랐다. 늦은 밤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는 별개로, 빨리 그 자리를 떠서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또 다른 편안함이 있었다.

 

친구는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의 어려움을 “영화가 끝나고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는 모두가 집중할 뿐, 옆자리의 존재를 인식할 필요도 없다. 스크린과 관객이라는 구분 아래, 스크린을 응시하는 모두가 동일한 감각을 공유하는 공통된 존재이다. 한 공간의 모두가 한 대상에 몰입하는 원시적 마법의 시간. 그러나 불이 들어오는 찰나 이런 합일의 감정은 깨어지고 만다. 감정을 안고 의자에 덩그러니 남겨지거나, 여운을 동행과 나눈다. 혼자인 나는 갑작스레 외로움을 자각한다.

 

차를 몰고 그 자각의 지점을 떠나는 것이 어찌하여 고독을 더는 일이 되는가? 알 것 같았지만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차 안에서도 혼자가 아닌 것은 아니며, 집으로 가는 길도 동일하다. 운전으로 덜 수 있다면, 대체 그 외로움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는 인간을 괴롭히는 고독과 그 고독 속에서 탄생해 우리를 구원하는 예술에 대한 심도 깊은 에세이이다. 범인들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고독을 묘사했던 에드워드 호퍼, 분절된 말로 고통받았으나 기계를 통해 언어적 ? 비언어적 소통을 시도했던 앤디 워홀, 적대적 사회에서 상흔을 얻었으나 사회에서 어긋난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추구했던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결핍과 상실이 빚어낸 고통 속에서 선과 악을 융합한 작품을 만들어낸 헨리 다거 등이 이 책에서 소개된다.

 

책의 초반, 랭은 고독을 배고픔에 빗대어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묘사가 등장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잔칫상에 앉아 있는데 자기만 굶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배고픔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지만, 다른 사람은 배불리 먹는다는 인식으로 더욱 심각해진다. 연결되지 않은 점처럼 동떨어진 느낌이 들 때, 고독이 발생한다. 이 책에는 또 이런 표현도 있다. 혼자라는 것 자체가 고독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 소통에의 욕구가 좌절될 때 고독이 발생한다고. 이게 바로 극장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에 드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돌아가는데 나 혼자 돌아가야 할 때, 함께 경험한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저자인 올리비아 랭은 30대 중반,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영국을 떠나 뉴욕에 정착할 계획을 세웠지만, 남자가 마음을 바꿔 혼자 뉴욕으로 가게 된다. 이 낯선 도시에서 그녀는 외로웠고, 반복되는 일상에 삶의 결핍을 느꼈다. 지금의 삶은 나의 결점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결과로 여겨졌다. 그리고 고독을 생각하고, 고독을 느끼고, 고독 속에서 살았다. 이 책은 그 고독한 생활의 산물이다. 여기서 랭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고독이란 사람들이 그 속에 머무는 장소임을… 그 시절 내가 쌓아올렸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내 경험과 타인들의 경험으로 짜맞춰진 고독의 지도다.”

 

처음 나는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고독의 장소성’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었다. 고독은 일종의 가상 공간이다. 다시 극장 이야기로 돌아가면, 극장에서 줄곧 나는 혼자였지만, 그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곳은 하나의 고독의 장소로 변모해버린다. 그건 고독한 사람들의 매일의 경험 아닐까? 집에 혼자 있다고 해서 더 고독하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타인으로 둘러싸인 거리에서 더 고독하다. 우리는 그곳을 서둘러 떠난다. 어쩌면 차는 내가 고독으로부터 성급히 벗어나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안락한지도 모른다. 이곳은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이 안에 들어서면, 더이상 연결은 필요 없고 목적지를 생각할 뿐이다.

 

이런 감정은 고독한 나를 사람들의 눈에 띄이고 싶지 않다는 은폐의 욕구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고독은 누구나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독한 자를 불편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긴다. 고독은 사회적 질병이고, 이를 치유해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고독의 대연구가인 존 카치오포의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에서는 외로움이 치러야 할 대가를 길게 나열한다. 사소한 실수에 연약해지고, 스트레스에 무너지며, 평범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반응하기 쉽다. 고독한 사람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고독의 치유에 대해서 존 카치오포나 셰리 터클 같은 사람들이 사회적 유대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과는 다르게 올리비아 랭은 고독의 이면을 보았다. 책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고독이 반드시 누구를 만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의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스티그마와 배제라는 더 큰 힘이 낳은 결과임을, 그래서 저항할 수 있고 저항해야 하는 대상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독은 타인과의 연결로서 덜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위의 말을 좋아한다. 실제로 이는 한 사람의 삶을 더 낫게 이끌어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고독이 좀 더 기질에 가깝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회적으로 더 배제된 환경에 놓여 있기도 하다. 우리가 외부와의 연결을 통해서 덜 고독해지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사회에서 우리를 고립시키는 요인들에 저항해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영혼에 가까운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다시 운전이 내게 주는 안도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는 단순히 나 자신을 재빨리 타인과 분리시켜, 그 누구도 필요 없는 공간 속에 가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누군가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고독함으로써 결핍되는 게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것이 위험한 길이라도.

 

2017년 4월, 나는 혼자 제주도로 떠났다. 첫 소설의 초고를 끝내고 조금씩 고치고 있던 때였는데, 책에 실릴 마지막 단편이 제주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때까지 이런저런 글을 써왔지만 소설은 처음이었고, 나의 첫 시도가 주변 사람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제주에 간 건 책 속에 나온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저 끝맺음을 위한 의식이기도 했다.

 

거기서 운전 인생 처음으로 내 차가 아닌 다른 차를 운전해보았다. 운전이 기계가 아니라 기술에 관한 것임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기회였다. 제주의 벚꽃은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국제적 긴장 관계로 관람객이 뜸해 길이 한적했다. 제주에 오면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했었는데, 이제 나는 대형 버스가 드문 길을 타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사람 없는 수영장이 딸린 산속 호텔에 갈 수 있었고, 가로등 없는 산길을 지나 우동을 먹으러 갈 수도, 사람을 가릴 만큼 우거진 차밭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비가 내리니 걱정은 되었지만 서귀포였기에 어찌 되었든 제주 공항으로 가야만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유채와 벚꽃이 함께 피어있다는 길을 지나기로 했다.

 

높은 산길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거세졌다. 위험했지만, 중간에 멈춰서 경로를 바꾼다는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앞으로 계속 달려야 했다. 운전대를 꽉 잡고, 눈을 크게 뜨고, 머릿속의 모든 뉴런을 동원해 이 비를 뚫고 무사히 나아가는 데만 집중했다. 이런 길에 혼자 있다는 것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달리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거센 비는 마치 한 곳에 고여 있었던 것처럼 그 지점을 지나자 약해졌다. 두려움도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고난에 보답하듯, 비의 끝과 동시에 유채와 벚꽃이 함께 있는 길이 펼쳐졌다. 날씨 때문인지 다른 차는 없었다. 나는 그 길의 끄트머리쯤에 차를 잠깐 세웠다.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 우산도 없이 서서, 푸르고 노란 융단처럼 깔린 유채꽃과 자기 계절의 끝을 맞아 나무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흔들리는 벚꽃들, 그 위를 드리운 회색 구름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어선 걸까 계속 나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만큼 위험한 길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이끄는 나 자신의 집중력과 기술을 믿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비바람 속의 꽃들은 한없이 연약했지만, 그 순간에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이 고독했으나, 이 아름다움을 혼자서도 누릴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웠다.


 

 

외로운 도시올리비아 랭 저 / 김병화 역 | 어크로스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로부터 시작한 이 내밀하고도 대담한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외로움들의 조용하지만 눈부신 연대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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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현주(번역가)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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