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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기 “청소년 소설 『깡깡이』를 쓴 이유“

『플루토 비밀결사대』 시리즈의 동화작가 한정기, 청소년소설 『깡깡이』로 70년대 흘러간 시간과 공간을 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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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아버지의 그 말은 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 (201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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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플루토 비밀결사대』  시리즈로 많은 아이에게 사랑받은 한정기 작가의 신작 『깡깡이』 는 제목부터 무척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오랜만에 쓰신 청소년소설이지요. 작가의 창작 노트에서 읽으니 오랫동안 머리에서 공 굴리고 마음속에서 삭히고 삭혀 쓴 작품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고 다시 쓰기를 세 번이나 하셨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더구나 이 소설의 무대인 부산 영도구 ‘깡깡이 예술마을’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2018년 지역문화브랜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되었다고 하니  『깡깡이』 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증폭됩니다. 깡깡이는 깡깡깡… 망치질 소리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작가님께 듣기로 해요.

 

『깡깡이』 는 1970년대 부산 영도구 대평동이 무대입니다. 아버지 대신 다섯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깡깡이 일을 하는 어머니와 어머니 대신 살림을 살고 동생들을 보살피는 맏딸 정은의 이야기예요. 청소년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까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깡깡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요? 어떻게 제목이 되었는지요?

 

깡깡이는 수리조선소에서 배의 녹을 떨어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고 녹을 떨어낼 때 쇠와 쇠가 맞부딪쳐 내는 소리를 지칭하는 의성어이기도 합니다. 쇠로 만들어진 배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배의 아래쪽 물에 잠기는 부분(이걸 흘수라고 하지요)에 따개비나 조개, 해조류 같은 게 부착되어 자라지요. 이런 것들은 배의 속력을 늦출 뿐 아니라 부식도 심하게 가속시키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되면 수리조선소에 올려 배의 구석구석 슬어 있는 녹과 함께 그런 걸 다 벗겨내고 다시 페인트를 칠해야 하거든요. 70년대 영도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메카였습니다. 지금의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조선공사를 비롯해 대평동과 봉래동 주변에는 배를 수리하는 수리조선소가 즐비했지요. 그 조선소에서 나는 깡깡이 소리는 우리나라의 조선 산업의 부흥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수리조선소가 있는 대평동에서는 쇠와 쇠가 맞부딪쳐 나는 깡깡이 소리에 하루가 시작되었고, 그 소리가 그치면 하루가 마무리 되곤 했지요. 제목은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깡깡이’ 말고 다른 제목은 생각할 수 없었지요.


책에 실린 창작 노트에도 쓰셨지만 독자들을 위해 어떻게  『깡깡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다시 말씀해주세요.

 

3년 전쯤 된 것 같네요. 친한 작가 선생님 두 분과 2박3일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셋이서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음식을 먹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릴 적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지요. 그때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서 살았던 저의 이야기를 들은 두 분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꼭 동화나 소설로 써보라고 적극 추천하셨어요. 제가 쓴 첫 번째 청소년 소설  『나는 브라질로 간다』 가 있긴 했지만 사실, 청소년 소설을 더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 이야기를 쓰는 건 좀 자신이 없었어요. 자기 이야기는 쓰기는 쉬울지 몰라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두 작가 선생님들은 잊어버릴 만하면 전화해서 깡깡이 잘 쓰고 있는지, 그 이야기는 꼭 내가 써야 된다고, 그건 작가의 책임이라며 자꾸 부추기는 거예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깡깡이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간 70년대 대평동의 풍경과 잊혀져간 사람들을 복원해 내는 이야기라야 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 들자 비로소 이야기를 쓸 자신이 생기더군요.


『깡깡이』 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고 전혀 아닌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하셨어요.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선생님의 이야기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요? 소설 속 정은처럼 정말 만화책을 좋아하셨어요?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은 그때 대평동 골목에 살았던 사람들을 그대로 다 등장시켰어요. 하지만 성격이나 행동 등은 모두 새롭게 캐릭터화 시켰습니다. 소설 속에 벌어진 사건들도 실제 비슷한 사건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사건들은 재구성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재창작한 것이고요. 소설 속에 정은이가 만화를 좋아하는데 그건 제 이야기입니다. 제가 만화 일 세대인데 저희 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없어서 찾아보면 동생 업고 만화방에 가 있곤 했다고. 소설 속에 나오는 만화가 이름은 제가 좋아했던 만화가 선생님들입니다.

 

이 소설은 어머니와 정은이의 모습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어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 세대에게 울림을 주는데요, 이 소설에서 선생님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무엇이에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산업개발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입니다. 그 때는 가난하지만 이웃 간의 따뜻함이 살아있던 시절이었죠. 세월이 흐르고 삶의 형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변했지만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랄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 건강한 노동을 통해 자식을 키우고 당당하게 살았던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맏딸이라는 책임감으로 동생들을 돌보며 엄마를 도와야 했던 언니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불편한 환경에서도 서로 돕고 살았던 이웃 간의 따뜻한 정.

 

지금 우리는 말할 수 없이 풍요롭고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삶의 만족지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그렇게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삶을 헤쳐 온 이야기를 담은 『깡깡이』 가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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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부산의 깡깡이 예술마을이 ‘2018년 지역문화브랜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되었어요. 선생님은 부산에서 얼마나 사셨나요? 부산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이 있으신가요?

 

책이 나오자마자 그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9년을 대표하는 화두 중 하나가 ‘복고르네상스’ 라는 말도 있던데요, 7, 80년대 활약했던 락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흥행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라든지, 깡깡이가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련의 일들이 벌어져 저도 이게 무슨 일일까? 놀랐습니다. 70년대 이야기를 다룬 깡깡이도 복고르네상스에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오십 년 넘게 살고 있으며, 부산 지역을 무대로 부산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플루토 비밀결사대』  시리즈를 쓰는 등, 아무도 시키진 않았지만 스스로 부산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책임이랄까요? 아무튼 그런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깡깡이도 그런 연장선에서 쓴 소설이지요. 잊혀져가는 부산의 공간과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 부산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70년대의 2년 정도의 기간을 그린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시 젖먹이였던 막내동생 정우를 여섯 살 때 잃어버렸죠. 그 아픔을 갖고 가족들이 살아가는데요, 이런 설정을 넣은 이유가 있나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사람들의 삶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모두 행복해 보여도 들춰보면 저마다의 아픔을 다 지니고 있지 않나요?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서서 꿋꿋이 살아야 했던 그 시대 우리들의 어머니들. 어머니의 힘든 삶을 좀 더 극대화시키기 위한 소설적 장치로 그런 설정을 넣은 거지요.


엄마와 정은의 모습이 ‘맏딸’을 통해 애틋하게 그려졌어요. 반면 아버지와 장남 동식이의 모습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의도가 있었나요?


보편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지금 이 시대 아버지들은 육아도 함께 하며 주말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정적인 아버지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70년대만 해도 그런 아버지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가부장적인 데다 가정에는 무관심한 아버지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거기다 아들에 대한 개념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요. 아들은 무조건 공부를 시켰지만 딸들은 대충 중고등학교까지만 마치면 남자 만나 시집 잘 가서(결혼이 아닙니다. 시집입니다 시집.) 잘 사는 게 제일 좋은 팔자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깡깡이에서 엄마나 정은이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맏딸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위해 희생해야 되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그 환경을 딛고 발돋움하려는 의지로 가득 찬 인물이 바로 정은이입니다. 어머니도 정은이가 자신과 같은 절차를 밟지 않도록 맏딸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롭게 풀어주는 인물로 그렸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어떤 계기로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나요?


저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작가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른 중반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부딪힌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뭐 하러 이 세상에 왔을까?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오늘은 어제와 똑같고, 내일도 보나마나 오늘과 똑같을 건데. 그렇다면 내가 오늘 죽으나 이삼십 년 더 살다 죽으나 무슨 의미가 다를까?” 이런 질문이 저를 사로잡고 흔들어대던 시간이 왔던 거죠.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그런 바람을 조금씩, 조금씩 잠재워줬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시간. 혼자 식탁에 불 밝히고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환해지곤 했어요. 그때 느꼈던 희열! 남편이 보너스를 받아올 때나 아이들이 백점 시험지를 받아올 때와는 다른 기쁨. 바로 한정기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동화작가라는 이름표가 제 가슴에 붙어 있더라고요.

 

70년대 청소년인 정은의 이야기를 지금의 청소년들을 이렇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있으세요?

 

요즘 청소년들은 정은이가 살던 시절에 견줘 물질적으론 넘치게 풍요롭고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질과 좋은 환경이 전부가 아니죠. 혹독한 경쟁과 성적에 대한 지나친 부담, 디지털 기기가 주는 폐해, 울타리가 없는 탈선 등.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요즘 청소년들이 더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 처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청소년들에게 정은이의 이야기가 힘이 될 수 있기보다 아, 이런 삶을 산 친구도 있었구나. 70년대와 2018년. 시대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안고 있는 힘듦은 다 있는 거구나. 혼자 외롭고 쓸쓸한 것 같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도 다 살아갔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글 잘 쓰는 작가요. 제가 쓴 글을 제가 읽어도 재밌고, 감동적이고, 슬프고, 조마조마 스릴 있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요. 죽는 날까지 자신이 정한, 아니 세상이 정해놓은 관념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글을 쓰며 살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깡깡이한정기 저 | 특별한서재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깡깡이 일을 하며 다섯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던 엄마와 맏딸이라는 이유로 동생들에게 희생한 정은의 모습은 지금의 청소년과 어른 세대를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로 데려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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