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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의 반전은 다음 곡부터 시작된다

보아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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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전체의 완성도에 대한 노력이 지금 시대에 얼마만큼 무의미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지금, 조금 슬프다. (2018.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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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과 같은 실시간 순위 시대에서는 실패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덧붙여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수치적 실패’라는 것이 앨범의 퀄리티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Girls on top」의 이란성 쌍둥이 같은 「Woman」은 타이틀로서는 확실히 심심하다. 왜곡된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확장해 가는 신스 사운드가 중후한 멋을 내뿜지만, 밋밋한 구성과 메시지를 이겨내지 못하는 선율은 「Only one」이 그리운 이들에게 「Kiss my lips」과 같은 실망감을 가져다 줄 뿐이다. 반전은, 다음 곡부터 시작된다.

 

캐치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특유의 가창법이 반복되는 훅과 함께 깊은 풍미를 자아내는 「Like it!」, 코러스 워크의 입체감이 인상적인 「홧김에(Irreversible)」까지만 들어도 다소 약하다 생각했던 타이틀곡에 대한 보상을 단숨에 탈환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따라올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물론 프로모션 트랙이라는 것은 한 작품의 간판이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1/수록곡 수의 부분만 차지하고 있을 뿐. 초반 수록곡들의 완성도가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도 남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정규작의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지.

 

음악적인 부분에 침착했던 <Kiss My Lips>(2015)에서 나아가 퍼포머로서의 자아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私このままでいいのかな>(2018)의 기조는 이번에도 이어지고 있다. 적당한 비중으로 작사/곡에 참여함과 동시에 다양한 갈래의 댄스넘버를 수록, 적정한 균형감을 찾아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신의 최전선에 있는 진보와 수민이 참여해 일렉트로니카 신의 트렌드를 최대한 반영한 「너와 나(U&I)」 「노래」에 방점을 둔 슬로우 넘버임에도 어느덧 그에 맞는 퍼포먼스를 상상하게 만드는 「If」, 트로피컬 하우스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No limit」까지. 방향은 다를지언정 무대를 염두에 두지 않는 곡은 없다. 달리 보면 어느 장르에도 멋진 무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수라는 말과 일맥상통.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좋다고 느껴지는 곡의 크레딧엔 보아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Little more」의 이야기를 안할 수 없는데, 리얼세션에 최적화 된 구성 및 본인과 듀엣을 하는 듯한 코러스 운영이 고도의 흡인력을 뿜어낸다. 앞서 이야기한 「홧김에(Irreversible)」나 「If」는 말할 것도 없다. 팜므파탈을 연기하는 「Encounter」는 자신이 가사를 썼기에 나올 수 있는 표현력. 반면에 기존 프로덕션 체제하에 나온 노래들은 약간 시원찮은 느낌이다. 타이틀 「Woman」부터가 그렇고, 「Good love」는 발랄, 경쾌한 곡조를 보여주나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R이 아티스트의 니즈를 받쳐주지 못하면서 일어난 균열이 패착의 요인으로 작용한 인상이다. 95%를 잘 만들어놓고 마지막 5%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할까.

 

관습에 가까운 프로덕션에 자신을 얽맴으로써 생겨난 결함이 결국 독이 되어버린 결과물이다. 그것이 수록곡을 경시하는 지금의 세태와 맞물려 예상 이상의 오해를 사고 있는 실정. <Kiss my lips>가 보여준 독특한 매력이 ‘아티스트 본인이 주도한 덕분’이라는 사실이 신보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고, 이전과 동일한 A&R의 작업방식이 적합한가에 대한 물음 또한 던지게 한다. 비단 보아 뿐만이 아니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의 이르는 미스에 가까운 타이틀 선정을 지속적으로 목격해 온 2018년 아니었던가.

 

이에 덧붙여,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성적이란 것이 앨범의 가치평가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현 세태 속에서 낮은 순위는 곧 낮은 완성도, 시대에 뒤쳐진 결과물로 여겨질 뿐. 이처럼 아티스트의 성장에 대한 고려 없이 동일한 과정을 답습하는 SM과 차트의 위치와 완성도를 직결시키느라 앨범 전체에는 관심이 없는 대중들. 이 두 요인으로 인해 여태껏 선보였던 어떤 작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준수한 작품은 이렇게 소리 소문없이 묻히고 있다.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 대한 노력이 지금 시대에 얼마만큼 무의미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지금,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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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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