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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트 드라이버에 대하여

충고와 참견 사이 제인 오스틴의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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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옆자리, 뒷자리에 누가 있더라도 운전대를 쥔 사람은 나다. 나는 여러 백시트 드라이버들의 충고, 훈수, 참견을 들으면서 결국 이 사실을 깨달았다. (2018. 11. 09)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얼마 전 나는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꺼리지 않는 기질이고, 약간의 잘난 척도 받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토록 겸허한 내가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의 기술이 익숙해질수록 나의 겸손과 인내심은 브레이크 패드만큼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운전을 가르쳐주는 건 좋다. 하지만 내가 핸들을 한 번 돌릴 때마다, 브레이크를 한 번 밟을 때마다 지시를 한다면 그건 배움의 영역을 넘어선 게 아닐까?

 

초보운전자들은 모두 안다.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뜬금없이 나의 운전을 평가했을 때의 당혹감을. “생각보다는 코너링을 거칠게 하네”라든가, “내리막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지” 따위. 몇 번 다녀서 이제는 나름 익숙하다고 자신하는 길에서도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타박하면 참아주기 힘들다. 아니, 나도 다른 지름길이 있는 건 안다고. 하지만 초보라는 건 다른 사람보다 선택지가 적다는 뜻 아냐? 차선을 덜 바꿔도 되거나, 차가 별로 많지 않거나, 고가나 터널을 피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선호하는 초보만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뒷자리에 앉은 선배 운전자들은 가차 없다. “왜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거지?” “이 길로 가면 더 늦는 거 몰라?” 그리고 그 잔소리는 내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길로 들어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뒷좌석 운전자, 백시트 드라이버(backseat driver)는 이렇게 옆에 앉아서 남의 갈 길과 할 일을 지시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고난은 있다. 바로 초보가 운전해야 하는 차를 타야 하는 고난. 초보가 걸어가야 하는 그 길을 이미 겪어 본 그들에게 초보의 운전 기술은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굼뜨고, 실수가 잦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처음부터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초보의 차에 승차한 것을 보면 어쩌면 그들은 선량한 낙관주의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훈수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기에 더해 자기도 무사히 하차하고 싶다는) 선량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지시는 대체로 운전자에게 가닿지 못하고 좌절되고 만다.

 

2000년 초에 방영된 시트콤 〈세 친구〉에는 백시트 드라이버의 좌절에 관한 슬프고 웃긴 에피소드가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정웅인은 함께 일하는 간호사 안문숙이 운전면허를 따자 도로 연수를 해주기로 하고 같이 차에 올라탄다.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나, 문숙은 웅인의 친절한 설명에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오로지 직진만 할 뿐이다. 웅인은 점점 인내심을 잃고, 터질 것 같은 방광을 붙들고 어떻게든 돌파해보려 하지만, 문숙은 결국 강남을 지나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간신히 톨게이트 앞에 세우지만, 문숙이 안전벨트를 빼지 못해 두 사람은 자리를 못 바꾼다. 결국 차는 하염없이, 끝없이 달린다.

 

운전자와 뒷좌석 운전자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뒷좌석 운전자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고 타인을 돕기 위해서 계속해서 지시하고, 운전자는 애초부터 능력이 없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면 왜 남의 지시를 듣겠는가. 뒷좌석 운전자는 결정은 대신 내리지만, 운전까지 해줄 수는 없다. 그리고 차가 가는 길을 책임지지도 못한다. 

 

타인의 충고를 따른 결과에 대한 고전적인 이야기가 바로 제인 오스틴의  『설득』 이다. 이 작품은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설득을 당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한 여자가 그 결과를 바로잡아가는 내용이다. 서머싯셔 주 켈린지 홀의 차녀 앤 엘리엇은 사치스럽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 월터 엘리엇 경과 그런 아버지를 빼닮은 장녀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제 스물일곱 살인 그녀는 당시로써는 과년한 나이로, 묘사에 따르면 한창때의 어여쁜 모습도 잃었다. 그녀는 열아홉 살에 해군 장교 프레더릭 웬트워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나, 앤이 어머니처럼 따르던 레이디 러셀의 충고에 따라 웬트워스에게 이별을 고한 과거가 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이제 아버지와 언니의 사치 때문에 저택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된 앤은 동생 메리를 돌보러 갔다가 그곳에서 웬트워스 대령과 재회한다.

 

『설득』  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완결 작품으로, 다른 소설에 비해서 길이가 짧고 덜 알려진 편이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신랄하고 지적인 엘리자베스와 발랄하고 정다운 에마에 비해서는 앤 엘리엇의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요새 관점으로 다시 보면 앤은 꽤 흥미로운 인물이다. 자신의 지위와 미모에 도취한 속물적인 아버지와 언니에 비하면 변화하는 세계를 냉철하게 바라볼 줄 알고, 불평 많은 여동생에 비하면 여러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 또한 자신의 처지에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강단이 있는 동시에,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융통성도 있다.

 

그녀의 단점은 믿고 따르던 레이디 러셀의 말을 듣고 진정한 사랑을 떠나보낸 것뿐이다. 하지만 레이디 러셀의 잘못된 판단도, 앤의 우유부단한 행동도 결국 결과론적인 것이다. 웬트워스 대령이 전쟁에서 수훈을 세워 재산을 모으지 않았더라면 잘못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결정이었다. 더 나은 남편감을 만나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더라면 칭송받을 충고였다. 다시 만난 웬트워스는 자기를 버린 앤이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느라 자기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쉬 용서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약함과 소심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앤은 설득에 굴복했던 과거의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앤의 포기는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의무감은 본인의 기질과 이성에 따른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앤은 자신의 행동을 점검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때 약혼을 했더라면 더 괴로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 감정은 인지상정이며, 강한 의무감은 여성의 덕목으로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꽤 강한 자기합리화다. 앤은 설득됨으로써 낭비된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 것이고 그로 인해 성숙할 수 있었다고 믿어버림으로써 레이디 러셀과 웬트워스 대령을 화해시키고, 무엇보다 우유부단했던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

 

살면서 앞길을 조언해주는 사람을 간혹 만난다. 우리 인생의 옆자리, 뒷자리 운전자들. 그 사람의 충고를 따를까, 말까? 우리는 갈등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 조언자가 신뢰할 만한 성격과 현명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내 이로움을 추구할 만큼 호의가 있는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건은 조언자가 레이디 러셀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가 아니다. 어차피 그 누구도 완전히 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으니까.

 

충고에서 제일 중요한 해답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내게 충고를 해준 타인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즉, 내가 앤 엘리엇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충고는 타인의 판단이지만 그 판단을 따를지 말지는 나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옆자리, 뒷자리에 누가 있더라도 운전대를 쥔 사람은 나다. 나는 여러 백시트 드라이버들의 충고, 훈수, 참견을 들으면서 결국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의무감을 덕성으로 삼는 앤 엘리엇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무엇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을 원망하지 않는 인내와 현명함이 없다. 나는 남의 탓을 할 수 있다면 진심으로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르침은 일단 받되 결정은 내가 내린다고 믿어버리는 방식으로 마음의 평화를 조금이나마 찾았다. 차선을 바꾸지 못하고, 출구를 찾지 못해서 부산까지 가더라도, 그것은 나의 판단 미숙, 혹은 나의 결정이다. 우리의 인생은 백시트 드라이버 없이 혼자 갈 수 없고, 그들은 때론 큰 도움을 주지만, 운전대는 하나밖에 없다.


 

 

설득제인 오스틴 저 | 시공사
엇갈리고 뒤바뀐 두 사람의 모습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함께 당대의 결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오스틴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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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현주(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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