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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외국어 울렁증이 생기는 이유는…”

『나의 외국어 학습기』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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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울렁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옛날에 체계도 없이 외국어를 공부하던 때를 지나왔을 거예요. 그때는 학원도 안 다녔고, 성문 기본 영어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외국어는 어렵다는 선입관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 (2018.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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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6개 국어를 공부한 동양학자다. 한문,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를 활용해 대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인문 지식까지 섭렵한다. 언어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능력을 타고난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경상도 산골에서 나고 자랐고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법이 전무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독일어 교사가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던 때였다. 지금의 4, 50대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일 터. 그 안에서 저자도 자연스레 영어와 담을 쌓았다.

 

‘외국어 문외한’이었던 그는 어떻게 6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나의 외국어 학습기』  안에 있다. 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경험으로 터득한 학습법, 각 언어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태완 저자는 다수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번역가로서 느끼는 언어별 미묘한 차이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고민도 엿볼 수 있다. 동양학자로서 한중일의 말과 글을 넘어 영어, 유럽어까지 공부하게 된 이유도 흥미롭다.

 

율곡 이이의 책문을 통한 실리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태완 저자는  『율곡문답』 , 『경연, 왕의 공부』 ,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  『책문, 조선의 인문 토론』  등을 집필했다. 외국어로 된 중국학 연구서와 인문 교양서의 번역도 활발히 이어가면서, 이이의  『성학집요』 , 마르셀 그라네의 『고대 중국 축제와 가요』 , 이나미 리쓰코의 『고전이 된 삶』, 앙리 마스페로의 『도교와 중국 종교』(공역)를 우리말로 옮겼다. 수징난의 『주자평전』 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광주의 대안학교 지혜학교철학교육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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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자가 프랑스어를 공부한 이유


6개 언어를 사용하시는데요. 최근 공부하신 또 다른 언어가 있나요?

 

관심이 있어서 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를 조금 공부했어요. 사실 라틴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라틴어는 공부하기 어렵다던데요. 어떠세요?


처음에 한 언어를 공부할 때는 되게 어려운데요.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으면 그 언어와 유사성이 있거나 언어 계보학적으로 친연성이 있는 언어를 공부할 때 시간이 단축돼요. 제가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문법이나 특징을 이해하는 데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이탈리아어는 6개월 정도 공부하니까 문법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스페인어를 봤더니 이탈리아어와 단어나 문법이 굉장히 가까웠어요. 그러니까 유럽에서 몇 개 국어를 한다는 건,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 몇 개 국어를 하는 것보다는 쉬운 거지요. 유럽 언어는 문법이나 어휘 체계, 철자법에 있어서 친연성이 강하니까요.

 

영어를 배우시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더라고요. 선생님 복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웃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웃음), 그때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명문대에도 가고 했으니까요. 선생님 복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고(웃음), 약간 상스러운 말로 하자면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했지요. 

 

외우는 식이었나요?


외워도 안 되더라고요. 시험공부를 해야 되는데 언제 단어를 외우고 있겠어요. 그때는 대학 전공 수업도 다 영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었는데, 일일이 단어를 외우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왕 늦었으니까’ 하고 생각하고, 먼저 문장을 축자적으로 번역했어요. 그런 다음에 보니까 우리말과 영어의 앞뒤 연결이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말이 되게 다듬고 우리 문장으로 정돈하고, 그렇게 반복해서 보니까 영어 구조가 조금 이해가 됐어요.

 

영어 공부를 시작하신 뒤에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하셨어요?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할 무렵에 제대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영어를 잘 못 했거든요. 과제물이 주어지면 억지로 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 지도 교수가 영어로 된 명저를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걸 하면서 영어 공부가 체계적으로 됐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영어를 배운 게 아니고 습득한 거지요(웃음).

 

문법부터 공부하신 거예요?


문법도 안 했어요. 학창시절에 아무리 공부를 겉핥기로 해도 어느 정도 문법 체계를 듣기는 하잖아요.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은 학원에 가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문법을 먼저 공부하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일단 원문을 놓고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에서 찾아가지고 끼워 맞추기 식으로 했지요.

 

그러면서 형식도 알게 되셨군요.


그렇지요.

 

동양학자는 우리말과 한문 정도만 알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도 한학을 전승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고, 굉장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서 과학적 또는 근대적 교육 체계 속에서 공부를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동양학 하는 사람은 한문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또 당시의 사회 풍조가 공부 잘하는 사람은 철학 중에서도 서양 철학을 하는 게 당연했어요. 심지어 철학과 교수들도 ‘동양에는 철학이 없다’거나 ‘동양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을 공공연하게 하실 정도로요. 그러니까 저처럼 영어도 못하고, 시골에서 와서 견문도 짧고, 공부도 못하는 사람은 동양학을 공부했지요(웃음). 시골에서 자라서 한문, 한자는 낯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서당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운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뭔가 공부는 하고 싶었고,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언어가 기본이 된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 느꼈어요. 선배들한테 한문, 중국어, 일본어는 꼭 공부해야 된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문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민족문화추진회 시험을 봤어요. 한문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바뀌었죠, 그런데 시험에서 떨어졌어요(웃음).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다른 곳도 한 번 더 시험을 봤는데 또 떨어졌고요. 영어 때문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저자님도 그런 과거가 있으실 줄 몰랐는데요(웃음).


자존심도 상하고 ‘한문 책만 주야장창 볼 필요 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리고 김용옥 씨나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언어에서 동양학을 바라보는 것도 우리를 계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니까 시야를 더 넓히라고 하고요. 또 김용옥 씨가 강조했던 책 중에 시경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해석한 게 있었어요. 그 책이 나오기 전과 후로 시경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을 정도로 중요한 책이라는 거예요. 프랑스 학자가 쓴 책인데,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자극을 줬어요. 유럽이나 영미 쪽에서 이루어지는 동양학 연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깊다는 말을 들어서,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프랑스어도 공부하게 됐고요.

 

책에도 김용옥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당시에 동양학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요즘 말로 하자면 아이콘 내지는 롤모델 같은 분이었지요. 그때 우리한테 깊은 영향을 준 분이 두 분 계세요.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눈을 틔워 준 게 김용옥 씨라면, 동양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알려준 분은 송영배 교수예요. 송영배 교수가 쓴 책이 있는데, 중국 대륙이 사회주의로 발전해가는 과정 속에서 유교와 마르크수주의 사이의 연관 관계를 연구한 책이에요. 그게 굉장히 큰 도움을 줬어요. 말하자면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지고 온 거지요.


 

외국어 공부할 때는 낯이 두꺼워야 돼요


“동서양 철학을 회통會通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갖고 계셨다고요(웃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나요?

 

그렇지요. 제가 프랑스어를 배울 때 알리앙스를 갔었는데,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어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서양이 더 선진이라는 의식이 체화돼 있어서, 공부를 깊이 있게 하려면 무조건 유학을 가야 된다는 의식이 있었지요. 저는 그게 조금 기분 나쁘더라고요(웃음). 왜 가서 배워온다고만 생각할까, 가르치러 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싶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약간의 과신이었을 수도 있지만, 알리앙스에서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한 게 그거였어요. 배우러 간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가르치러 간다는 자세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해서 가르치는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우리가 불어만 잘하면, 또는 영어만 자유롭게 하면 얼마든지 가서 가르칠 수 있는 거지요. 우리는 외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기 어렵고, 외국 사람들은 한국학이나 동양학에 대한 이해의 결이 조금 달랐던 거예요. 그걸 적당히 잘 중재만 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외국어로 적으실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외국어로 쓰여진 자료를 읽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원어민만큼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지는 않으니까요. 미묘한 차이를 살리지는 못할 거예요. 그런데 시험 삼아서 중국어로 글을 써보니까, 우리말과 어떻게 다른지 명료하게 드러나더라고요. 번역을 할 때는 잘 몰랐는데요. 써보니까 진짜 달라요. 먼저 우리말로 논문을 써놓고 그걸 중국어로 번역해서 실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 우리 언어의 맥락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쓰고 이해함직한 것도 중국어 문법 체계 속에 집어넣고 보니까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 우리말을 외국어로 써보는 훈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번역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 과정이 필요할까요?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외국의 문화나 언어를 우리말로 받아오는 거잖아요. 그 지역에 가서 사는 게 아닌 한 외국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데요. 직접 번역을 해보는 게 왜 좋으냐면, 우리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 이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몸이 체득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지나가 버리는 거지요.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시간 낭비 아닌가 싶겠지만, 몸을 쓰는 순간 체화가 되는 거예요. 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일수록 조바심이 나서 자꾸 속성으로 하려고 하고 끝을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느리게 가는 게 오히려 빨리 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

 

언어를 공부할 때, 실력이 느는 걸 방해하는 습관이나 태도가 있을까요?


건방져지는 거지요.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싶어서 건방져질 때가 있잖아요. 어떤 단계가 되면 금방 그렇게 돼요. 언어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예를 들면, 중국어를 조금 공부한 다음에 ‘판관 포청천’ 같은 드라마를 보면 들리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내가 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책에 홍대용에 대한 이야기 나오는데,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홍대용이 처음에는 자기가 중국어를 엄청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국경을 통과하니까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낯선 환경이니까 긴장도 되고 겁도 나서 그랬겠지요.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시건방인 것 같아요(웃음).

 

틀릴까 봐 무서워서 아예 입을 떼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건 100% 잘못된 거예요. 틀려도 해야 돼요. 아이들이 처음 말을 할 때 틀리지 않을 수 없잖아요. 우리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이 나이에 그렇게 말하면 창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한 어어를 처음 배울 때는 그 언어의 어린아이잖아요. 어린아이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수천 번씩 말한다고도 하는데, 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틀리는 건 당연한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 중에 ‘중각만 가자’는 게 있어요. 나서지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중간에 묻혀있으면 덜 얻어맞는다는 건데요.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중간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모른다고 생각하면 알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외국어는 진짜 낯이 두꺼워야 돼요.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더듬더듬 한국어를 말할 때, 우리가 ‘한국에 여행 오면서 말도 잘 못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마찬가지인 거지요.

 

실용 회화를 목표로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굳이 문법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늘 영어 쓰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영어를 듣고 말할 수 있다면 굳이 문법이나 텍스트를 공부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나이가 든 뒤에, 한 언어의 체계가 갖춰진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법 하나를 일일이 공부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라는 것은 보편적인 체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언어의 체계와 외국어의 다른 점을 변별할 줄 아는 눈이 생기면 훨씬 공부하기 쉬워져요. 초급, 중급 수준을 넘어서 고급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실용 회화를 하더라도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수준이 높아지는 거예요.

 

한문의 경우에는 문법 공부부터 시작했을 때, 그 난관을 넘지 못하면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외국어 교과서를 보면 처음에는 이야기가 있는 문장이 나오고 문법은 부가적으로 설명되어 있잖아요. 한문은 그게 더 심한 것 같아요, 다른 언어보다. 한문 문법은 정돈도 잘 안 되어 있고, 심지어 학자들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도 해요. 그리고 근대적 한문 문법의 상당 부분은 영문 문화권에서 만든 문법 체계를 참조한 게 많아요. 그래서 차라리 진짜 좋은 시나 문장을 외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옛날 사람들은 『고문진보』  같은 책을 200~300번씩 읽었잖아요. 그렇게 하면 사이사이의 단어만 바꿔 끼워 넣어서 의사소통하는 게 가능해요. 지금 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시간이나 여력이 안 되지만, 한문 공부를 할 때 너무 문법에 사로잡히지 말고 텍스트를 직접 접해보면 좋겠어요. 언어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는 거예요.

 

매일 매일, 최소한 2년은 공부하라고 하셨죠?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인가요?


그렇지요. 1~2년 공부해서 중간급 정도가 되면 본인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엄청 실력이 는 것처럼 보여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제 경험을 돌아보면 조금 어려운 언어 같은 경우에 한 2년 공부해 보니까 조금 감이 잡히더라고요. 그 뒤에 다른 언어를 공부할 때는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축됐어요. 절반 이상, 1/3까지 단축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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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하세요


번역자로서 일하실 때도 한문 텍스트는 다루기 힘드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한문은 수천 년을 써온 것이기 때문에, 용어 하나가 가지고 있는 맥락이나 의미의 폭과 깊이가 굉장히 넓어요. 용례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한문을 잘하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중국의 수천 년 역사의 섬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그 맥락을 짚을 수 있지요. 또 한문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고사성어나 유명한 사람들의 일화를 몇 글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걸 모르면 엉뚱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감을 못 잡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한문 공부는 필연적으로 박학을 요구해요. 독서 폭이 넓은 사람이 유리하지요. 중국의 역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오류가 적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설국』 에 자극 받으셔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그건 아니고요. 일본어를 중급 쯤 공부할 때 강사가 『설국』 의 제일 앞부분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줬어요. 번역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번역하면서 소리 내서 읽어봤는데 작가의 표현 기법 같은 독특한 맛, 또 일본어가 주는 언어적인 울림 같은 게 굉장히 감성적이었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소설이 도움이 많이 돼요. 소설을 읽다가 어려운 어휘가 나왔을 때 그걸 일일이 사전에서 찾아가면서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알든 모르든 그냥 끝까지 읽어 나가거든요. 어휘라는 게 사전적인 의미도 있지만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게 있듯이, 소설은 우리가 나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익숙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소설로 외국어를 공부하기가 좋은 거지요. 그 언어 현실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거거든요. 언어라는 건 항상 맥락성이 중요해요.

 

원서를 읽으면, 번역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쾌감이 있나요?


그렇지요. 우리가 접하는 언어는 다 쓰여진 글이잖아요. 듣거나 말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해만 하는 거지요. 책에서  『죄와 벌』 을 러시아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러시아어의 경우에는 어휘의 철자가 굉장히 길어요. 『죄와 벌』 은 러시아 말로 ‘Prestuplenie i nakazanie’라고 발음해요. 우리가 ‘죄와 벌’이라고 써놓은 것과 ‘Prestuplenie i nakazanie’라는 말이 러시아 문화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다른 거지요. 원어에 익숙해지고 원어의 문화를 이해하면 그런 것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일본의 하이쿠든 한시든 아니면 다른 문학 작품이든,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유기적 발음 구조와 음성 구조가 들어 있잖아요. 특히 시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지요. 흔히 드는 예 중에 하나가 조지훈의 「승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고 했을 때 ‘하이얀’과 ‘나빌레라’가 맥락상 번역은 돼요. 그런데 울림이 주는 맛을 번역을 통해서 접하기는 어렵지요.

 

“번역이든 해석이든 나의 선-이해가 전제되므로 숙명적으로 오해를 동반한다”고 쓰셨어요. 번역자로서 고민하시는 부분일 것 같아요. ‘내가 이해한 바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될 것이냐’라는.


번역과 관련된 책에서 늘 나오는 말인데요. ‘먼저 가지도 말고 쳐지지도 말고 반걸음 뒤따라가라’는 격언이에요. 내 경험이나 선-이해를 가지고 글 쓴 사람의 의도를 미리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욕망이 자꾸 생기고, 정확하게 잘 번역해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있으니까 성급하게 판단하는 거예요. 또는 약간 익숙해지면 성급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런 걸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썼을까,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될까’를 찾아내야 하겠지요. 어쨌든 시건방을 떨면 안 된다는 거예요(웃음). 또 멋지게 하려고 해도 안 돼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해야지요.

 

번역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뭔가요?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웃음). ‘조금 더 보면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은 있어요. 재검토를 많이 할수록 좋다는 거지요. 현실적으로는 실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대한 검토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누구에게든 묻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사전은 늘 가지고 다니면서 봐야 하는 거고요.

 

사전과 관련해서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일본어를 먼저 공부하신 뒤에 중국어를 공부하셨는데, 그때 중국어-일본어 사전을 보셨다면서요?


그건 쉽지요.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 일-중 사전을 보면, 중국어 어휘를 일본어로 설명해 놓은 걸 볼 수 있잖아요. 자연히 도움이 되지요.

 

두 언어를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었나요?


엄청 효율적이지요. 그리고 같은 일본어 어휘라고 해도, 우리나라 사전이 설명한 방식과 중국어 사전이 설명한 방식이 다를 수 있어요. 나중에는 그게 보여요. 예문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예를 들면, 우리가 부사로 처리하는 말을 중국어에서는 부사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형용사로 처리한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아, 이 사람들은 부사로 처리하는 것보다 형용사로 처리하는 걸 더 선호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거지요. 그런 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다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방식이에요. 다른 언어를 배울 때 국어사전은 당연히 참조해야겠지만, 내가 자신 있는 언어로 된 사전을 보는 것이 아주 도움이 많이 됩니다.

 

‘좋은 번역서, 제대로 된 번역서’를 알아보는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그건 없는 것 같은데요(웃음). ‘어떤 책이 좋은 번역서인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우리말의 어법이나 뉘앙스의 전달에 무리가 없는 것이 잘 된 번역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는데요.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원전에 충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 건가요?


네. 어차피 번역이라는 건 우리말이 아닌 것을 들여오는 거잖아요. 물론 소설이나 동화 같이 약간의 번안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괜찮을 수 있지요. 하지만 학술서처럼 정확성을 요하는 책에서는, 우리말 읽기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감을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이제 막 언어 공부를 시작한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다가 막혀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한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주위에서 이 책이 정말 자신한테 필요한 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요. 그 분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아니면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멈췄거나. 요즘 ‘영어 울렁증’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지레 부담을 갖는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언어는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어떤 언어라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어려운 언어라도 사람이 쓴 이상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게 반드시 있어요. 그걸 찾아서 하나하나 넓혀 가면 얼마든지 미로를 헤쳐 나갈 수 있어요. 내가 어느 수준까지는 도달하겠다든지, 2년 동안은 공부를 하겠다든지, 그런 각오만 있으면 어떤 언어라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언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겁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언어를 모르니까 그렇지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두렵거나 겁이 나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지요. 지금 울렁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옛날에 체계도 없이 외국어를 공부하던 때를 지나왔을 거예요. 그때는 학원도 안 다녔고, 성문 기본 영어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외국어는 어렵다는 선입관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 굴절어를 예로 들면, 우리가 특히 어려워하는 게 굴절어인데, 몇 격으로 굴절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언어는 굴절한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갖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거예요. 모르면 문법책에서 찾아보면 되지요. 학습서를 보고 대입해 보기도 하고요. 정확하게 어휘를 굴절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물론 시험을 볼 거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공부할 때는 굳이 그런 강박관념을 갖지 말라는 거지요. 차츰 익숙해져요.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경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과도하게 굴절한 것 같아도 공통적으로 굴절한 게 많아요. 언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굴절한다는 특성만 이해하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공부하면 돼요(웃음). 절대 겁먹을 필요 없어요.

 

외국어 공부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일단 시작하라는 거지요. 마음이 생겼으면 그때 시작하라는 거예요. 오늘 시작하면 그만큼 빠를 테니까 내일이나 먼 훗날로 미루지 말라는 거고요. 예를 들면, 오늘 알파벳 전부를 다 외우려고 하지 말고 시간이 허락되는 안에서 abc만이라도 쓰고 외우는 거예요. 내일 또 덧붙여서 쓰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1년 뒤의 오늘에는 분명히 엄청 멀리 가 있을 거예요. 시작도 안 하면 영원히 문 밖이고, 문을 열면 그 순간에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나의 외국어 학습기김태완 저 | 메멘토
외국어 문외한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는 각 외국어의 구조를 깨치는 순간부터 심화 학습 과정과 보편적인 공부법을 상세히 기술하는 등 외국어 학습자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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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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