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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진 곰 이야기’

그림책 『빨간 열매』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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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곰의 존재가 열리면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뭔가가 되었어요.그러니까 큰 곰의 의미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정하는 거예요. (2018.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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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작가님은 어느 날 이야기가 툭 하고 떨어졌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요?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 어제의 것들로부터 오늘의 것이 나왔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균형을 맞추며 걸어온 모든 시간들. 마음속 빨간 열매를 향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떻게 작업해 왔는지 『빨간 열매』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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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곰, 곰, 곰,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어디에 사는 어느 곰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꽤 오랫동안 도시 한가운데서 어슬렁거리며 살다가 짝 곰을 만나 숲으로 둘러싸인 작고 조용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에 귀여운 곰 그림책을 내셨어요. 평소에 곰을 좋아하나요?

 

원래 동물을 좋아하긴 했어요. 특히 개를 키우다 보니 동물이나 자연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긴 했는데 특정 동물에 푹 빠지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말로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곰이 제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답니다.

 

최근에 또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있었다고요?

 

매일매일 곰, 곰, 곰,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요. 곰을 사고 싶기까지 하더라고요. 안 되는 거 알지만 산다면 어느 정도인지, 한국에서 키울 수 있는지도 알아봤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제주도에서 구조된 개가 있는데 임시보호자를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아픈 아이여서 서울에서 치료를 도와줘야 한다고. 저도 개를 키우고 있던 터라 마음이 쓰여서 임시보호자를 신청했어요. 제주도에서 멍뭉이 한 마리가 집으로 날아왔지요. 근데 세상에, 생김새가 딱 곰이더라고요. 색만 흰색이었고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곰이 생겼지 뭐예요. 야호!

 

지금은 제가 입양해서 키우고 있어요. 이름은 ‘쿵’이라고 하는데 정말 ‘쿵’이 ‘쿵’하고 저에게 떨어졌어요.  『빨간 열매』 를 작업하는 내내 ‘쿵’을 보며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빨간 열매』 는 일찍 일어난 아기곰 이야긴데요. 세 가지 색으로만 꾸려져 있어요. 좀 더 많은 색을 넣고 싶지는 않으셨나요? 특히 열매를 빨간색으로 정한 이유는?

 

『종이아빠』 와  『할머니 엄마』 를 거쳐 오면서 ‘작업의 목소리가 크고 설명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을 좀 덜어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이라 곰 이야기가 튀어 나왔을 때 ‘무의식’님이 검은색과 빨간색만 쥐어주었던 거 같아요. ‘자 이번이 좋은 기회 같구먼. 잘 해 보게.’라며.

 

클라이맥스 장면인 태양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도 색을 제한하는 게 좋을 거 같았지요. 사실 연출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했다기보다 이유 같은 걸 찾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뿜어져 나왔지요. 스토리가 떠오르자마자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뽑혀져 나왔어요.  또 작업하는 과정에서 색에 대한 고민을 권유했더라면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을 텐데, 특별한 이견이 없었지요. 책이 출간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의 운명이지 않을까 싶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그래도 대부분의 독자가 유아인데 ‘검은 곰이 아이들에게 무섭게 보이면 어쩌지.’라는 좁쌀 같은 고민이 살짝 들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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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열매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꼭 갖고 싶은 빨간 열매는 무엇일까요?

 

작업자로서 저의 빨간 열매는 인세 부자입니다. ‘인세 부자’라니…, 글로만 써도 기쁘군요. 하지만 인세 부자의 길은 쉽지 않을 듯하네요. 아마 저도 아기곰처럼 ‘의미 있는 여정이었어.’라고 생각하며 뭔가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겠지요. 물론 지금 상태도 좋다고 생각해요. 생계형 작업이 긴장감을 유지시켜 주고, 끊임없이 시도하게 만들거든요.

 

아기곰이 빨간 열매인가 하고 보면, 애벌레이기도 하고 다람쥐이기도 하고 벌집이기도 하지요. 곰은 호기심도 많고 다정한 것 같아요. 작가님은 낯선 것들에 호기심이 많은가요? 인사를 먼저 건네는 편인가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호기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호기심은 지루할 만큼 무엇인가가 반복될 때 생겨요. 반복된 시간이 쌓이면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그리고 ‘이게 뭐지?’라는 물음표가 나타나지요. 쌓이고 쌓여야 보이는 일상의 호기심을 좋아해요. 그래서 여행을 아주 좋아할 수가 없어요. 매력적이지만 낯선 공간과 짧은 시간 안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호기심이 일어나기까지 대체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까 대체로 호기심이 없는 상태로 살게 됩니다. 호기심이 없다는 얘기를 너무 길게 했네요.

 

곰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몸을 던지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이 장면은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빨간 열매』  이야기는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떠오른 거라 어떻게 떠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어릴 때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가 날 수 있다든지 힘이 세다든지 하는 착각의 시기를 지나잖아요. 그런 아이들의 한때의 착각과 연관 지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아기곰도 뛰어올라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저 큰 빨간 열매까지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엉뚱한 질문인데요, 아기곰처럼 진짜 엉뚱한 것을 보면서 입맛을 다신 적은 없나요? 평상시에 식탐이 궁금합니다.

 

대여섯 살 때인가 사진첩에서 어떤 어린아이의 연노랑 구두를 보고 상상의 맛이 떠올랐어요. 그 이후로 연노랑 구두 맛을 느끼는 게 좋아서 그 사진을 종종 찾아봤어요. 먹어본 적도 떠올릴 수도 없는 그런 맛이었는데 그게 혀의 뭔가를 자극하더라고요. 제가 먹어본 음식 중에 비슷한 게 있을까요? 음…, 딱히 떠오르진 않네요. 연노랑 구두 맛, 언젠가 꼭 찾고 싶어요.

 

이 그림책의 마지막에는 큰 곰이 등장해요. 어떤 존재인가요?

 

최초의 썸네일엔 ‘엄마!’라는 텍스트가 있었는데, 최종 원고에서 편집자님이 빼 주었어요. 편집자님이 ‘엄마’를 빼는 게 어떻겠냐고 묻기 전까지 저도 좀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아래에서 든든하게 있어 줄 누군가가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떤 제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면의 힘 같은 것일 수도 있지요. 빼고 났더니 큰 곰의 존재가 열리면서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뭔가가 되었어요.그러니까 큰 곰의 의미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정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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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쿵이랑 산책하는 시간이 좋아요

 

화제를 돌려서, 재료는 어떤 재료를 선호하시나요?

 

재료에 대한 지식이 얕고 또 안다고 해도 깊이 파질 못하는 성격이라 최강 효율성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 페인팅을 선호해요.  『빨간 열매』 는 질감 표현은 수작업으로 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디지털 작업으로 마무리를 했어요. 예전 같으면 창작 그림책은 무조건 수작업을 고집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아요.

 

수작업의 기쁨은 유화 작업을 통해 느끼고 있어요. 동물을 크게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 작업을 할 땐 유화를 써요. 정통 유화 작업은 아니에요. 제소를 바르고 말리는 작업 캔버스를 짜는 게 귀찮아서 적당하게 싼 종이에 기름을 대충 풀어서 그려요. 오일이 산화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작업이 변색된다고 하는데 저는 오래되어 변질된 종이를 좋아해서 신경 쓰지 않고 작업하고 있어요. 예전엔 낡아서 바스라지기 직전의 벽지를 뜯어 모으기도 했거든요. 인위적으로 낼 수 없는 변색이 참 매력적이죠.

 

작업은 보통 하루의 어떤 시간에, 어디에서 하나요?

 

아침 8시에 기상해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개들 산책을 마치면 11시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11시 30분쯤부터 일을 시작해요. 집에 작업실 방이 있어서 그곳에서 작업을 해요. 대체로 오후 7시에 작업을 마감하고 남편과 놀다가 12시에서 1시 사이에 취침해요. 거의 365일 변함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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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작업하는 것 말고 시간 내어 하는 취미라면?

 

‘난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숲에서 쿵이랑 산책하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 걸 보면 요것이 중요한 취미이자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 바쁜 일정 때문에 산책 시간이 줄면 쿵이 힘든 것과 별개로 제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숲에서 쿵이랑 걷는 게 취미입니다.

 

책 이외에도 패브릭이라든가, 작은 공방들과의 콜라보도 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예전에 아주아주 작은 인형 브랜드를 만든 적이 있어요. 한 일 년 운영하다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자진 폐업 했는데 그 이후에 제품 콜라보 제안을 종종 받았어요. 롯데백화점이나 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콜라보 작업을 했어요. 평면 작업이 입체물이나 실용품이 되는 변화 과정을 경험하는 걸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 잡고 있나요?

 

모드 체인지 기술을 써요. 기술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 중 어떤 작업을 해야 하나에 따라 활성 영역을 바꿔 줘요. 먼저 기술자 작업은 재빨리 창작영혼 영역을 꺼버리고 돈으로 얻게 되는 해피머니 영상을 반복 재생시키죠. 창작영혼은 자율 신경이라 자동 활성화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20% 정도만 활성화 되도록 수동 조절해야 해요. 고객이 원하는 이상을 제공하려는 의욕과다 영역도 꺼버립니다.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발전 영역도 꺼두는 게 좋아요. 물물교환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거죠. 대신 내 물건을 산 사람이 ‘손해 보지 않았어. 잘 샀다.’라는 마음이 들게 유지하려고 해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 영역은 교집합 부분이 많아요. 일단 기술자 영역 때 꺼두었던 것들을 활성화 시켜요. 이때 창작영혼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할 때 50%, 창작 그림책 작업할 때 80% 정도 켜두고 작업에 들어가요. 그렇다고 기술자 영역을 꺼두면 안 돼요. 그럼 창작영혼이 100% 활성화 되고 ‘혼자 예술하고 자빠졌네.’ 싶은 코마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주 3회 대상 파악과 작업 시간을 조절하는 실무 영역을 체크하고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책 작가의 결과물은 그 완성도가 작업자에게 크게 영향을 끼쳐서 좌절, 비관 모드가 쉽게 활성화 되는데 이를 경계해야 해요. 이런 식으로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을 객관화하는 것이 저에게는 도움이 되었답니다.


 

 

빨간 열매이지은 글그림 | 사계절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무작정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조금은 어설프고 미련해 보이는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더욱 귀여운 우리의 주인공, 이미 두 눈은 아기곰의 작은 모험을 졸졸 쫓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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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지연 (어린이책 편집자)

어린이책 편집자입니다. 작가와 연애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만듭니다. 연애에는 소질 없는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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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글그림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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