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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마이 시크릿 닥터』 (릿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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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먼저 묻거나 ‘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몸 왼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상처도, 성폭력의 경험에 대해서도. 그는 그저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2018.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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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먼저 묻거나 ‘더’ 묻지 않는 사람

 

병원이라는 장소는 ‘어쩔 수 없음’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은 웬만해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 여느 병원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기 꺼려지는 병원은 산부인과였다. 지금이야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다니지만 그렇다고 심리적 문턱까지 낮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건 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채 앉아야 하는 산부인과의 진료 의자다. 오죽하면 ‘굴욕 의자’라고도 불리는 이 진찰대가 주는 불쾌는 비혼과 기혼의 여부를 구분하지 않았다.

 

여성 질환보다는 ‘출산’으로 대표되는 산부인과라는 장소성에 대한 편견을 나 역시 무의식 중에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걸 극복하고도 한동안 산부인과 가기를, (여성과 검진이 필수로 들어가 있는) 건강검진을 망설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이란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서른 넘어서도 성경험이 없는 여자라고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라는 거였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수록 성경험 여부를 묻는 칸을 ‘없음’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없음 칸에 체크할 때마다 내 인생의 결여에 대해 생각하며 속을 끓였다. 성폭행 경험이 있다는 걸 성경험 ‘있음’으로 여길 수는 없었다. 그 경험이 가져온 트라우마는 긴 세월 동안 애인들에게 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래도록 나를, 내 몸을 부정하면서 살았다. 그냥, 여자가 되고 싶었다. 평범한 여자. 나는 안다. 평범이나 평균은 허구라는 걸. 평범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모두들 평범을 바라는 거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랐다.

 

짝꿍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 살이었다. 나를 지나간 몇 명의 다른 애인들처럼 그가 섹스를 청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전 애인들에게는 못 했던 이야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그와 함께 ‘있음’의 세계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번쯤 마음속으로 연습했던 말인데도 입 밖으로 잘 꺼내지지 않았다. 나는 성폭력 생존자이고, 그동안 애인들과 침대 위에서 실패를 반복했고, 당신도 그런 애인들 중 하나일 수 있다고. 그게 하나의 이유가 되어 종내 헤어진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노라고. 주저하며 꺼낸 말에 그는 그저 나를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키가 비슷한데, 고만고만하고 나보다 여리여리한 남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전지적 시점으로 상상하자 갑자기 웃겼던 바람에,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그는 먼저 묻거나 ‘더’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몸 왼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상처도, 성폭력의 경험에 대해서도. 그는 그저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조금 전까지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비웃듯, 금세 가뭄처럼 말라버리고 마는 몸을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함께 견뎠다. 과거를 나눈 덕분에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했다. 우리는 삽입 섹스만이 섹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눈 뒤 잠들곤 했다. 가까스로 삽입에 성공했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던 어느 밤이 지난 후 평화는 깨졌다. 생리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피가 비쳤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찾아 들어간 내 인생 최초의 산부인과는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있었다. 긴장한 중에도 문진표에 ‘미혼’과 ‘있음’을 체크하고 있는 내가 뿌듯했다. 그 기분이 불쾌로 바뀌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속옷을 벗고 굴욕 의자 위에 올라앉은 내 허벅지를 남자 의사는 자꾸만 툭툭 건드렸다. “몇 번이나 해봤어요?” “남자친구랑 할 때도 이렇게 뻣뻣해요? 힘들어서 진료하겠나.” 대거리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진료를 마치고 소견을 듣는 자리에서 겨우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환자를 불쾌하게 하는 데 재능이 있으시네요.” 의사는 내 진찰 기록을 쓱 보더니 “같은 성씨끼리 왜 이래.”라며 능글맞게 웃었다. 증상은 별것 아니었다. 자궁 경부에 찰과상이 생겨서 나는 피였다. 산부인과를 빠져나와 한창 근무 중인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라고 마구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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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괜찮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그 며칠 후 우연히 마이 시크릿 닥터』  (릿지, 2014)를 만났다. 주간지 문화팀으로 매주 들어오는 신간 더미 속에서였다. 지면에 소개될 기회를 박탈당한 책 무덤가를 서성이다가 부제가 눈에 띄어 집어 들었다.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꼭 묻고 싶은 여자 몸 이야기.’ 책은 산부인과, 아니 산부인과가 다루는 여성의 몸에 관한 거의 모든 질문을 다루고 있었다. 산부인과에서는 물을 수도, 물을 시간도 없는 ‘이상한’ 질문들이 무려 250여 개나 됐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이다. 음순의 보편적인 크기는? 왜 남자는 여자의 질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할까? 섹스를 하면 아픈데 사람들은 왜 좋다고 할까? 투명하고 진득한, 해파리 모양의 분비물은 뭔가? 브래지어 안 하면 가슴이 처지나? 하다하다 안전한 음모 면도법까지 알려준다.

 

산부인과 의사인 저자는 솔직하게, 정확하게, 친절하게 이 모든 질문에 답한다. “산부인과 의사들도 환자 입장에서 진찰대에 누우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산부인과 의사 앞에서 벗는 것은 남프랑스 해변에 알몸으로 누워 햇볕을 쬐는 것과는 다르다.” 따위 고백 앞에서 나는 안도해버렸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는 ‘말 걸기’는 뻔뻔해서 웃기고 다정해서 눈물 났다.

 

책을 덮고도 저자가 든 사례 중 하나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질을 마치 핸드백처럼 쓰는 환자 이야기였다. 그녀는 질 속에서 비닐봉지, 지폐, 립스틱, 펜 따위를 꺼내곤 했다. 저자는 직감했다. 그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환자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만다. 여덟 살 때 성폭행을 당했던 그녀는 자신에게 보지가 있어서 좋았던 일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래서 이를 좋게 쓸 궁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됐노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저자는 사랑을 주로, 의학을 부로 놓는 방식으로 자신과 환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랑과 산부인과는 모든 면에서 관계가 있으며, “산부인과 의사의 본질은 여성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포용하는 것(25쪽)”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은 후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결심했다. 나도 이런 ‘언니’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나의 길고 긴 산부인과 투어가 시작됐다. 내게 ‘아찔한 산부인과의 첫 경험’을 선물한 이상한 의사 같은 사람을 피하고자 선택한 곳은 대형 여성병원이었다. 이곳은 각종 특진비를 내밀거나 무한정 늘어지는 대기 시간으로 내 금쪽같은 시간을 앗아갔다. 어렵게 잡은 예약조차 소용없는 경우가 많았으나, 진료 시간은 3분께로 비슷했다. 환자를 컵라면처럼 대하는 기능인에게 질려버렸다. 대형병원 진료 예약을 그만뒀다. 그러나 ‘인생 산부인과 찾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있음의 세계’에 진입한 순간, 내 자궁은 정기적으로 보살핌을 받아 마땅한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포털 검색과 광고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체인형 산부인과였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간호사가 낮은 목소리로 소곤댔다. “진료 기록 남기고 싶지 않으면 비보험 항목에 체크하시면 돼요. 병원비는 좀 더 나오고요.” “왜요?” “…네?” “그러니까 왜 돈을 더 주고 그런 일을 하냐고요.” “아, 미혼인 분들은 부담스러워하시니까 안내해드린 건데…” 산부인과 진료 기록을 감추어야 할 무엇으로 여기는 곳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은 가히 과잉 진료의 숲이었다. 간호사는 질 안에 넣는 진료 도구를 설명하며 ‘3만원 추가로’ 일회용 기구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소독하지만 여러 명이 쓰는 진료 기구와 일회용 진료 기구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환자가 앞의 것을 선택하기란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 기망과 상술임을 알면서도 나는 3만원을 추가 결제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 곳곳을 채우고 있는 광고 또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광고판은 ‘이쁜이 수술’ 같은 글자 따위가 적힌 채 떡하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질을 ‘성형’해야 할 무엇으로 만드는 병원이라니.


병원은 병을 개발하고, 환자는 몸을 계발해야 하는 기이한 공간 속에 놓여 있는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저자가 운영하는 여성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이 홈페이지로 유입된 사람들이 검색한 단어 1위는 ‘예쁜 보지(pretty pussy)’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저자는 “여러분의 음부를 인간적으로 대해 주세요.“라는 공지를 썼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자신이 정상적으로 보이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산물이다.(49쪽)” 한국의 산부인과는 그 질문을 산업과 훌륭하게 연결시켰다.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쁜 보지가 유입 검색어 1위인 나라라면, 이 책의 저자가 예외의 사례일 테니까. 산부인과 탐험이 계속되는 와중에 내 보지를 처음 살펴본 것도 마이 시크릿 닥터』  덕분이었다.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할 것 없다. 당신 몸이다. 뭐가 뭔지 알 권리가 있다. (…) 부정적인 생각을 좋은 쪽으로 돌리자. ‘고마워, 많은 즐거움을 줘서’라는 식으로.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알고 사랑하자.(79쪽)” 저자의 안내에 따라 내 몸에 존재하는 세 개의 구멍을 살펴보는 일은 나를 긍정하는 데 도움을 줬다.

 

산부인과 의사임에도 오랫동안 섹스를 즐겁게 여기지 못했던 저자의 경험도 위로를 줬다. 젊은시절, 그녀는 섹스를 하면 누군가 속 안에 산을 쏟아 부으면서 칼로 쿡쿡 쑤시는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려야 했다고 고백한다. 여성의 몸은 심리적 요인에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신체적 신호로 반응한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두루 맞는 섹스 방식은 없으며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는 사실은 그동안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도 마침내 긴 시간(과 돈을 들인) 끝에 나를 ‘돕는’ 산부인과 의사를 만났다. 사소한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았고, 그 전에 내 몸에 대해 먼저 꼼꼼히 묻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검사를 하는 중에도 이 검사는 왜 하는지, 어떤 걸 확인할 수 있고 없는지 등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긴장 풀라고 해도 긴장되죠? 당연해요” “조금 아플 건데, 이 검사를 하려면 조직을 긁어내야 해서 그래요. 칫솔질 하는 거 같달까요.” 병원 안에는 요란한 미용이나 성형 광고도 없었다. 나는 이 산부인과에 반해버렸고 내 맘대로 주치의 삼아 버렸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현실의 의사에게 묻지 못할 질문들이 남아 있고, 마이 시크릿 닥터』  는 그런 질문들이 떠오를 때마다 펼쳐 보는 책이 될 것이다. 음부, 질, 섹스, 자위, 오르가슴, 임신, 출산, 폐경, 유방, 소변에 이르기까지 몸의 일상을 망라하고 있으니까.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질문은 바뀌거나 달라질 테고, 그때마다 이 책은 꽤 괜찮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이러니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도리 없이 믿어버리게 된다.


 

 


 

 

마이 시크릿 닥터리사 랭킨 저 / 전미영 역 | 릿지
특유의 솔직함과 유쾌함으로 환자의 상처를 보듬는 그녀의 탁월한 공감 능력은 배꼽을 잡는 웃음으로, 때로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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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일호(시사IN 기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자주 ‘이상한 수치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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