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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지식혁명이었다

중국에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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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지식이라도 문서만으로 전달하는 상황과, 문서와 더불어 실제 만나 이야기하면서 전달하는 상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8.08.10)

 

니덤의 질문 - 중국에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에 속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력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전했다. 일정 영역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앞서 있었다. 유럽이 중국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이기 여념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서유럽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뛰어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은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수준의 약탈지로 전락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과 유럽 주도의 세계질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Maddison, A., 1926~2010)은 일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의 비교를 통해 서유럽 국가들의 느닷없는 경제성장을 그래프 [1-1], [1-2]처럼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그래프 [1-1]과 [1-2]의 출처는 Wikipedia의 Angus Maddison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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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1-1] ‘대분기(Great Divergence)’ 시기의 주요 국가별 ‘일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의 변화. 18세기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동서양의 차이는 20세기 초반에 이르면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그림1-2.jpg

그래프 [1-2] 기원후 2003년까지의 주요 국가별 국내총생산(GDP)의 변화.

 

 

동서양 격차가 벌어지는 이 결정적 시기를 가리켜 시카고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케네스 포메란츠(Kenneth Pomeranz, 1958~)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라고 명명했다. 포메란츠는 대분기의 시점을 1750년경으로 잡는다(케네스 포메란츠 저, 김규태ㆍ이남희ㆍ심은경 역,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 에코리브르). ‘유럽의 기적(European miracle)’이라고도 불리는 대분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시 말해 영국에서 시작해서 서유럽 전체로 퍼져갔던 ‘산업혁명’이 왜 동양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사실 이 같은 질문은 중국의 경제적인 급성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중국이 개방, 개혁정책을 취하기 전까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유럽과 미국을 위협하는 대국이 되기 전까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함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역사의 발전을 ‘단선론적(uni-linear)’으로 파악했던 서구중심적 세계관에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여겼다. 구태여 서유럽의 발전과 중국의 발전을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적 급성장으로 인해 이 같은 서구 중심적 역사관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한국의 경제적 성장은 미국의 지원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수정할 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질적으로 달랐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인해 서구사회는 ‘유럽의 탁월함(?)’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서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 논란을 통해 단선론적 역사발전이란 역사의 수많은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다. 아무튼 ‘서구의 우월함’이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역사의 어느 한 시기부터 시작된 것이며, 그 기간 또한 지난 200여 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을 대중적 아젠다로 처음 제기한 이는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역사학자 조지프 니덤 (Joseph Needham, 1900~1995)이다. 그 이전까지 중국에는 ‘과학’이란 없었다고 다들 생각했다. 과학이란 오로지 서유럽인의 창조물이었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다. 이 같은 상식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니덤이었다. 1940년대 초, 우연한 기회에 중국을 방문하여 수년간 체류했던 니덤은 중국인들의 과학적 지식이 자신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국에는 과학이 없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상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설, 즉 ‘중국의 과학은 서구의 과학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니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결혼한 니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중국 여인 루궤이전(魯桂珍, 1904~1991)과의 ‘공개된 사랑’도 한 몫 했다(니덤과 루궤이전의 사랑은 니덤의 부인, 도로시 니덤(Dorothy Needham)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책 『중국을 사랑한 사람』이란 책에 두 사람의 사랑이 잘 소개되어 있다. Simon Winchester,『The Man Who Loved China, Harper Collins』, 2008). 니덤과 마찬가지로 생화학자이자 역사가였던 그녀는 평생 니덤의 훌륭한 조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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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궤이전, 조지프 니덤, 그리고 그의 부인 도로시 니덤.

루궤이전은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프로젝트에 평생 동참한다. 둘의 사랑은 부인 도로시 니덤도 용인했다.

 

니덤은 귀국해서 이 같은 의문을 해결하려는 프로젝트를 캠브리지 출판사에 제안한다. 이른바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이란 제목의 책이다. 한 권으로 쓰려 했던 책은 일곱 권으로 늘어났다. 중국 과학에 관한 개론 및 역사로 시작한 책은 수학과 천문학, 지리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포괄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 되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관한 니덤의 프로젝트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니덤은 중국의 전통과학이 적어도 15세기까지는 서구의 과학에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특히 수학이나 천문학 같은 영역에서는 동시대 서양의 과학지식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세까지 그렇게 앞서 있던 중국의 과학이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서구의 근대과학에 훨씬 뒤처지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왜 중국 과학은 중세에 머물렀을까?’ 바로 이 부분이 ‘니덤의 퍼즐(The Needham Puzzle)’ 혹은 ‘니덤의 질문(The Needham Question)’이라 일컬어지는 의문이다. ‘니덤의 질문’은 계속된다.

 

‘왜 중국에서는 과학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왜 중국 과학은 근대과학으로 발전하지 못했는가, 어떤 요인이 중국의 과학이 근대과학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했을까, 만약 그런 요인이 있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 과학은 15세기까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어떤 것이 근대과학이 시작된 유럽만의 고유한 요인이었을까.’(이문규 저, 『동아시아 전통 과학의 발견과 그 영향』, 2017, 인간ㆍ환경ㆍ미래, 제19호, 83~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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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덤의 질문(The Needham Puzzle). ‘15세기까지 최고의 과학기술을 자랑했던 중국에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니덤의 질문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산업혁명이라는 극히 서유럽적인 사건이 왜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니덤은 자신의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을 시도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중국의 ‘관료사회’를 든다. 봉건적 관료사회의 상업과 자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중국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울러 수학이나 천문학, 화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이 장인들의 ‘실용적 지식’과 결합하지 않았던 부분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산업계몽주의가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

 

‘니덤의 질문’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지극히 유럽적 사건이 ‘왜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묻는 질문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왜 내 아들처럼 뛰어난 녀석이 옆집에서는 안 태어났느냐’고 묻는 질문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내 아들’이 어떻게 그토록 뛰어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면 될 것을, 옆집 아들이 왜 내 아들처럼 훌륭하지 못한가를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매우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 니덤의 유난한 ‘중국 사랑’에도 불구하고 유럽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분기』를 저술한 포메란츠는 전혀 다르게 대답한다. 수많은 자료를 근거로 단언하듯 그는 주장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전적으로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우연이란 바로 ‘석탄’이다. 그것도 지표면에서 낮은 곳에 위치한 ‘노천 탄광’의 존재가 영국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원자재를 싸게 공급할 수 있었던 영국 식민지의 존재 또한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 이 같은 포메란츠의 주장은 동양인의 입장에서는 통쾌하기는 하지만 그리 큰 영양가 있는 이론은 아니다. 세상만사는 당연히 우연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우연의 연쇄고리에서 끊임없이 인과론적 혹은 관계론적 해석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야 ‘행위가능성(Handlungsmoglichkeit)’이 커지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엘 모키르의 책 『성장의 문화』는 상당히 의미 있는 주장을 담고 있다.

 

모키르는 이제까지의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영국만의 현상이 아니고, 서유럽 전역에 걸쳐서 일어난 현상이며, 그 원인은 방직기계, 증기기관의 발명이 아니라 ‘지식의 편집’에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키르는 ‘편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울러 모키르 또한 자신의 산업혁명 해석을 근거로 ‘니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원인이 ‘지식의 혁신’에 있다는 그의 주장과 ‘지식의 혁신’이란 관점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해석하는 그의 설명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에디톨로지적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키르는 산업혁명이 서유럽에서 일어났던 이유를 ‘실용적 지식(useful knowledge)’에 대한 서유럽 지식인들의 극적인 태도 변화에서 찾는다. 이른바 ‘산업계몽주의’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유럽의 계몽주의는 이성과 진보의 정치적 신념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계몽주의는 ‘실증주의’에 기초한 전방위적인 인식혁명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인식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영국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과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의 ‘과학혁명(Scientific Revoultion)’에서부터 준비되었던 일이다. 모키르는 베이컨과 같은 이를 ‘문화적 사업가(cultural entrepreneurs)’로 규정한다. 문화적 사업가란 기존의 문화를 그저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바꾸려 하는 이를 말한다. 소수의 혁신적 사업가들이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듯 문화적 사업가들이 문화의 틀을 바꾼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연역법에 기초한 서양철학의 주류였던 관념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귀납적 사고를 강조한다. 그러나 베이컨의 위대함은 귀납적 사고라는 과학방법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중요함’을 강조했다는 점에 있다고 모키르는 주장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라는 말로 요약되는 베이컨의 핵심 주장은 지식이란 ‘생산활동에 유용하게 쓰여야 하고, 과학은 산업현장에 적용해야 하며 사람들은 자신의 물질적 조건을 개선할 신성한 의무가 있다는 사상’(조엘 모키르 저, 김민주ㆍ이엽 역, 『성장의 문화』, 에코리브르, 2018, 117쪽)이라고 모키르는 요약한다.

 

베이컨의 유명한 ‘거미-개미-꿀벌의 비유’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스스로 만든 재료만을 이용해 집을 짓는 거미는 연역적 사고에 기초해 형이상적 주장만을 반복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그저 자신의 식량을 모으고 소비할 뿐인 개미는 관찰과 실험의 데이터를 축적하기만 할 뿐 실생활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비유한다. 꿀벌은 다르다. 꽃들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모아 스스로 소화시켜 꿀을 생산한다. 실험과 관찰에 근거해 얻어지는 과학적 지식은 ‘형식적 지식(formal knowledge)’일 뿐이다. 이 형식적 지식이 실제 생활에 적용되어 물질적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으로 변환되어야만 ‘꿀벌’이 된다는 이야기다.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자면 ‘지식을 보유한 사람(savans)’과 ‘물건을 만드는 사람(fabricants)’들 사이의 긴밀한 협력이 ‘진보’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베이컨의 사상이 이후 유럽사회의 산업계몽주의의 이념적 토대가 되고, 이 산업계몽주의가 서유럽의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모키르 주장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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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의 ‘거미-개미-꿀벌의 비유’. 베이컨은 지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식량을 모으고 소비만 하는 개미(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과학), 스스로 만든 재료만으로 집을 짓는 거미(형이상학), 그리고 사방에서 재료를 모아 꿀이라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꿀벌과 같은 지식.

 

모키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명제적 지식(propositional knowledge)’과 ‘처방적 지식(prescriptive knowledge)’을 나눈다. 쉽게 말하자면 ‘명제적 지식’이란 ‘문서화된 지식’을 뜻한다. 문서화되었기에 지식 전달이 용이하다. 반면 ‘처방적 지식’은 장인들의 지식처럼 쉽게 문서화할 수 없는, 경험에 근거한 지식을 뜻한다. 명제적 지식은 과학자, 지식인들 사이의 지식이라 할 수 있는 ‘과학’이다. 반면 처방적 지식은 일상생활에 유용한 지식인 ‘기술’이다. 베이컨이 진정한 지식으로 여긴 ‘꿀벌’은 학자의 명제적 지식과 장인이나 기술자의 처방적 지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적 유용성이 극대화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모키르의 명제적 지식과 처방적 지식의 구분은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1976)의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과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의 구분의 반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있다. 두 지식의 결합을 강조한 모키르와는 달리 폴라니는 암묵적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창조적 능력이란 비언어적인 암묵적 지식과 더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폴라니의 주장이다. 똑같은 지식이라도 문서만으로 전달하는 상황과, 문서와 더불어 실제 만나 이야기하면서 전달하는 상황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암묵적 지식에 관한 주장은 한때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노나카 이쿠지로(1935~)의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에서 중요하게 인용되었다. 지식경영이란 기업에서 창조적 지식의 창출과 공유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관계되어 있다. 기업에서 정말 필요한 지식은 문서나 공식 회의석상에서 공유되기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공유된다는 것이 노나카의 주장이다. 자판기 앞, 화장실, 디저트를 먹는 시간 등에 정말 중요하고 창조적인 지식이 공유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문서화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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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회의 장면. 지식경영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작 중요한 지식, 즉 ‘암묵적 지식’은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잘 공유되지 않는다고 한다.

 

암묵적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폴라니나 노나카의 주장과는 달리 모키르는 명제적 지식이 관계하지 않는다면 처방적 지식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주변적인 기술의 개선은 가능하지만 사회의 혁명적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명제적 지식, 즉 ‘과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기술’과의 결합이 일어날 수 있는 문화가 혁신의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모키르는 ‘산업계몽주의’라고 명명한다. 바로 이 산업계몽주의야말로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진짜 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산업계몽주의를 가능케 했던 ‘편지공화국’과, 즉각적 효과를 볼 수 없는 과학을 추구할 수 있었던 서유럽 사회의 동기부여 시스템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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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문화심리학자이자 '나름 화가'.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에디톨로지> <남자의 물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다. 현재 전남 여수에서 저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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