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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산책

더울 때는 누워서 산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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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아래 누워서 겨울에 매일 지나던 골목을 떠올린다. 그 시간을 생각하는 일을 산책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18. 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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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다. 외로운 겨울이었다. 혼자 남겨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움직이지 않고 천장을 봤다. 얼마간 그렇게 있다가 시계를 보면 자꾸 시간이 지나는데 그게 그렇게 밉고 무서웠다. 벌떡 일어나 대충 씻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그런 일도 일상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몇 번 반복하니 얼추 일상 같은 게 되었다. 집을 나서도 딱히 갈 곳은 없었고 매일 작업실에 갔다. 양말을 두 겹씩 신어야 할 정도로 추웠지만, 굳이 걸어서 갔다. 걸어야 했다.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에는 천막으로 만들어진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주름이 많고 얼굴형이 네모난 할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여러 번 지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가게에 대해 아는 것들이 생겨났다. 천장은 초록색 천막이고 벽은 주황색 천막이다. 양 옆에는 자크가 달려 있기에 손님은 나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점심 즈음 문을 열고 초저녁에 문을 닫는다. 단골은 주로 혼자 오는 사람들이다. 떡볶이와 어묵을 팔고 한쪽에는 자그마한 티브이가 있다. 소주도 파는데 맥주나 사이다도 파는지는 모르겠다.

 

쫓기듯 집을 나오는 일처럼 걸으며 포장마차를 확인하는 일도 일상 비슷한 게 되었다. 눈이 내리던 날, 포장마차가 가까워지자 ‘오늘은 닫았겠지.’ 하며 골목을 돌았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한파가 온 날이나 폭설이 내린 날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추운 날에는 나도 모르게 ‘오늘은 닫혀 있어라.’ 주문을 외우며 걸었다. 포장마차는 매일 열었다. 속이 상했다. 왜 매일 여는 걸까. 잠시 걷는 것도 억울할 날씨에 왜 천막 안에서 떡볶이와 어묵, 소주를 파는 거지.

 

 

박선아-8월호-(4).jpg

 

 

어느 날에도 포장마차가 닫길 바라며 그쪽으로 걷다가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포장마차 할머니가 아니라 주름이 많고 얼굴형이 네모난 나의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사는 시골에서는 매달 오일장이 열렸고 그녀는 자신이 키운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 가기에 엄마는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그 일을 다그쳤다. “어머니는 고집도 참.” 어린 나는 옆에서 “엄마, 고집이 뭐야?”라고 물었고 엄마는 내 입술에 검지 를 가져다 대며 통화를 계속했다. 그때는 고집이란 말이 궁금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지금도 고개를 흔들곤 한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 기억 속 할머니는 혼자 미소를 짓거나 말이 아닌 것 같은 말을 자주 했다. 수건돌리기의 술래가 등 뒤에 수건을 놓는 것처럼. 겨울에 밥통에서 우유가 든 컵을 꺼내 줄 때도 그랬고, 자신의 버선 뒤에 숨겨둔 돈을 꺼내 쥐여줄 때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의견 같은 것을 말할 줄은 모르고 그저 “몰러~”라고 얼버무리기는 물렁물렁한 사람. ‘고집’이란 말이 오래 남아 커가는 내내 할머니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또 포장마차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포장마차 할머니는 그날도 거기 있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할머니와 포장마차 할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때로 지나치게 용기가 없다.

 

봄이 올 무렵에는 포장마차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공중전화 박스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포장마차 말고 다른 것이 길목에 있다는 걸 알기까지 한 계절이 걸렸다. 그 봄에는 작업실을 뺐다. 이제는 포장마차가 있는 그 골목길을 걸을 일이 거의 없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는 계절이 와서 그런지 요즘은 잘 걷지도 않는다. 대신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을 쐬며 침대에 넓게 눕는다. 배를 긁적이며 그 겨울의 골목을 생각하면 오랜 산책을 한 사람처럼 까무룩 잠이 들곤 한든다.

 

그 길을 말수 없는 그 소년과 걷다 보니 문득 끝없는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그럭저럭 잘 견뎌낸 한 사람의 표정이 보였다. 좋은 계절에 있지만 머물지 않는 사람들 의 산책 속에서, 머물고 있지만 가장 먼 곳까지도 갈 수 있는 그의 외로움이 멋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33쪽) / 김종관  『골목 바이 골목』  중에서

 

 


 

 

골목 바이 골목김종관 저 | 그책
그에게 골목은 단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곳이 아니다. 어딘가로 향하는 도중, 그는 느리게 걸으며 주변에 펼쳐진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이야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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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아트 디렉터)

산문집 『20킬로그램의 삶』과 서간집 『어떤 이름에게』를 만들었다. 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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