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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체어샷, 일보 후퇴는 있어도 현실 타협은 없다

정규 2집 『IGNITE』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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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많이 했던 말이 '제대로 된 록 음반을 만들고 싶다'였다. 우리가 록이 베이스인 음악을 하지만 이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건 다양하다. (2018. 06. 27)

아시안 체어샷은 꾸준히 강력하다. 2011년 첫 EP <Chairshot>부터 이번 정규 2집 <IGNITE>까지 한국적인 색과 록을 결합하여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과시해온 그들에게 일보 후퇴가 있을지언정 현실 타협은 없었다. 기존 멤버의 탈퇴와 교체로 인해 3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돌아온 그들이 들려주는 록 사운드는 그래서 더 거칠고 그래서 더 매끈하다.

 

6월의 어느 날 그들을 만났다. 평창의 폐교에서 녹음을 진행하게 된 계기부터 자체 프로듀싱을 결정한 이유까지 밴드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매듭짓지 않았다. 멋스러운 사운드가 나오지 않더라도 원하는 뉘앙스를 포기할 수 없어 직접 발로 뛰며 소리를 잡아냈다는 그들의 말에는 음악을 향한 열정과 자부심이 번뜩였다. 이들은 생각보다 유쾌했고, 생각 이상으로 진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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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용진(드럼), 황영원(보컬/베이스), 손희남(기타)

 


앨범 발매를 전후해 발매 기념 콘서트, 록 페스티벌에 이어 전국투어 중이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은가?


황영원 : 힘들기는 한데 즐겁다. 지방공연은 종종 해왔는데 이렇게 전국투어는 처음이다. 우리가 밴드를 좋아하면서 커온 세대라서 전국투어에 로망 같은 게 있다. 그걸 직접 기획해서 해본다는 게 신기하다.

 

이용진 : 대구 부산 쪽 공연을 했을 때 직접 공연장을 찾아와 주신 분들도 계셨고, 분위기도 좋았다. 힘든 것보다 재밌는 게 더 크다.

 

직접 기획한다면 현재 소속사가 없는 것인가?


황영원 : 그렇다. 장소 섭외부터 기획까지 직접 한다. 이번 투어 장소 중 강릉은 놀러 갔다가 게릴라식으로 공연을 하기도 해서 잘 알고 있었고, 양양 같은 경우에는 지인 서핑샵에서 진행한다.

 

손희남 : 특히 강릉 공연장 러쉬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뿌리 깊은 곳이다. 일단 현지 팬들을 만나볼 수 있고 또 불특정 다수가 모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공연이다.

 

정규 1집 <Horizon> 이후 5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만족스러운가?


황영: 만족스럽다. 음악은 당연하고 실제로 제작해놨을 때 전체적인 앨범 실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잘 나왔다. 그 밖에 아트워크나 이미지들도 우리가 상상한 100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디어 회의를 많이 했던 만큼 잘 표현됐다.

 

9개의 수록곡 중 절반에 뮤직비디오가 있다. 아트워크를 이야기했는데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뒤섞어 놓은 커버도 인상적이다. 직접 제작한 것이 있는가?


황영원 : 회사 없이 가는 팀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결과물을 낼 수 없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떻게든 제작해보려 했고 커버 등은 지인이나 지인의 지인들을 통해 만들었다. 예산 문제 때문에 전부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손희남 : '산, 새 그리고 나'의 뮤직비디오는 우리가 직접 찍었다. 내가 카메라를 잡으면 멤버들이 연주 했고 멤버 중 한 명이 카메라를 잡으면 나머지가 연주하는 식으로 말이다.

 

기존 멤버의 탈퇴 등으로 밴드 내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IGNITE>는 지난 음반에 비해 더 강렬한 감정이 느껴진다. 2분 30초짜리 '각성'이 현실에 대한 포효처럼 들리기도 하고.


손희남 : 그런 심정들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그래서 프로듀싱이 중요한 건데 아무도 안 물어본다. (웃음) 이번 음반의 프로듀싱을 내가 했는데 정말 거의 처박혀있다시피 하며 만들었다. 작은 뉘앙스 하나부터 사소한 것까지... 진짜 갇혀있었다. 1집 프로듀서가 아시는 것처럼 제프 슈뢰더(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형님이셨다. 그때는 형님이 손대는 이펙트 하나하나 다 연습장에 적어놓으며 공부했다. 배우는 것이 많았고 머리 쓸 일이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이번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우리가 했으니까, 힘들기도 힘들었다.

 

황영원 : 그래서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다. 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해봐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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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희남

 


그런 점에서 희남에게 묻고 싶다. 음악을 듣다 보니 때로는 보컬보다 기타가 더 세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의도한 것인가? 덧붙여 자체적으로 프로듀싱하게 된 이유도 알고 싶다.


손희남 : 기타가 잘 들린 건 멤버들의 의견을 항상 들으면서 프로듀싱 했기 때문에 의도한 건 아니다. 우리가 직접 프로듀싱을 한 이유는 남이 해주는 대로 계속하는 건 싫었다. 좋은 결과물이든 안 좋은 결과물이든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앞으로 음악 생활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멤버들이 믿어주기도 했고.

 

황영원 : 다른 프로듀서랑 다른 녹음실에서 녹음하기도 했는데 완성본이 잘 나오긴 해도 우리가 원하는 뉘앙스는 항상 아니었다. 어렵더라도 우리가 직접 해봐야겠구나 싶더라. 사운드 퀄리티가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뉘앙스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중간에 없어진 곡도 있고 두, 세 번 판을 엎고 다시 시작하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을 들여 녹음했다.

 

평창에서 생활하며 음반을 만든 거로 안다. 어쩌다 평창으로 가게 된 것인가?


황영원 : 2012년도인가 2013년도인가. 평창에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복합 문화 공간에서 공연을 했었다. 그 이후, 그러니까 이 앨범 작업 전에 미국에서 녹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녹음할 곡이 없었다. 그래서 그 폐교에서 두 달 가까이 합숙하면서 음악을 만들었고, 그때 거기 운영하시는 분들이랑 많이 친해졌다. 이번에도 자유롭게 녹음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었는데 그곳만한 곳이 없었다. 한 달 정도 합숙하고 필요할 때마다 가서 작업했다.

 

그럼 학교였다는 건데 사운드를 잡거나 하는데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손희남 : 우리가 좋은 스튜디오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 그냥 해보고 싶었다. 직접, 해보고 싶었다.

 

이용진 : 밴드 오래 하다 보면 그런 게 있다. 좋은 스튜디오 가서 작업하면 좋은 사운드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금액을 지급해야 하는 거니까 시간적인 한계가 있다. 늘 이것도 해봤으면 좋았을 것 같고 하는 식의 아쉬운 점이 남는 거다. 이번에는 그냥 아예 과감하게 '시간제한 받지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그랬다. 원하는 사운드 나올 때까지 부딪치자 그런 거다.

 

황영원 : 좋은 녹음실이면 그 공간의 세팅을 크게 바꾸지 못하지 않나. 마이크를 여기다 두면 어떻게 되고 왜 이런 사운드가 나오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다 하기 싫으면 쉬고. 아무 생각 없이 먼 산만 바라보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번 음반의 만족도는 1-10까지 중에 몇 점인가?


이용진 : 저는 9.

 

황영원 : 이렇게 되면 9.1을 해야 하나 8.9를 해야 하나... (웃음) 표지 마감이 아쉬워서 8.9다. 원래는 왼쪽 옆면 마감을 동화책 묶는 것처럼 두꺼운 종이로 하고 싶었는데 해주는 데가 없더라. 어떻게든 우겨서 했어야 했는데...

 

손희남 : 이게 근데 내 속마음이 있고 내세우고 싶은 점수가 있다. 내세우고 싶은 점수는 9.5. 속마음은... 얘기 안 하겠다! (일동 웃음) 왜 그러냐 하면 나는 계속 뭐가 보인다. 들을 때마다 뭔가가 귀에 걸리고 눈에 치이고 하니까 이제는 듣기도 싫다.

 

황영원 : 대부분 수록곡이 작업도 작업이지만 이미 2년 전에 완성됐던 노래인데 그걸 발매 안 하고 계속 붙잡고만 있었으니까. 중국집에서 2년 동안 요리만 한 느낌이다.

 

손희남 : 올드보이 영화처럼 군만두만 먹은 거다. 평창에서 군만두만 계속 먹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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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

 


새로 합류한 이용진에 대해 안 물어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것인가?


이용진 : 박계완 형이 개인적인 이유로 나가시고... 그때 저는 밴드는 쉬고 있었고,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때마침 밴드를 쉬었고 이 팀은 드러머가 필요했으니까. 이 사람들이 어떤지 알고 있었고, 멤버들도 제 성향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제의가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이전에 활동했던 그룹 온달은 팝 록, 모던록 스타일의 밴드였다. 아시안 체어샷에 적응하는데 어려움 혹은 더 좋았다 하는 지점이 있나?


이용진 : 근데 그 이전에 했던 팀들은 오히려 더 사이키델릭하고 록킹한 밴드였다. 온달과 솔로 음반이 팝 감성을 극대화해 나타냈던 것뿐이다. 말하자면 과거의 그런 딥함이 그룹과 잘 맞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원래 록 음악 기반의 드러머였고 월드 뮤직에도 관심 많았는데, 그룹이 한국적인 음악을 하고 있으니까. 한국 장단이나 월드 뮤직 리듬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재밌게 활동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에게 묻고 싶다. 이용진의 합류가 가져다준 변화는 무엇일까?


황영원 :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앨범을 새로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설계해야 하는데 이 분이 일을 열심히 한다. 성실하다! (웃음) 그래서 우리끼리 합을 맞추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합이라는 게 단기간에 안 나오는 부분이지만 그거는 누가 와도 그래야만 하는 거고. 용진이가 록 드러머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하드한 드러머 원하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잘 맞았다.

 

손희남 : 난 다 좋았다. 가명만 빼고...(이용진의 가명은 '시야'다) 농담이고, 원래 밴드에서는 누가 중요한 위치, 누가 중요하지 않은 위치 이런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드러머들이 뒤에 있으니까 별로 영향력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절대 아니다. 멤버 한 명이 바뀌면 엄청나게 밴드 색이 변한다. 아마 이번 2집도 용진이랑 어울리면서 좋은 방향으로 용진이만의 느낌이 많이 담기지 않았을까.

 

많이 받았을 질문이겠지만 아시안 체어샷은 '한국적이다'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밴드다. 그렇다면 음악에 한국적인 것을 녹여내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 썼다던가, 레퍼런스로 삼은 것이 있을까?


이용진 : 나 같은 경우에는 밴드가 한국성을 내세운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그것들을 더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장구를 배워볼까 장단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오히려 더 벽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비트메이커니까 한국적인 어떤 게 몸에 있다고 생각한다. 젓가락을 친다든지 어깨를 덩실덩실하는 춤을 춘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걸 만들어 보자 했다. 처음에는 어떤 게 한국적인 국악 패턴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걸 안 하다 보니 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그게 먹혀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런 한국적인 것이 록 음악과 결합되었을 때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황영원 : 록과 결합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콜라보다. 새로운 거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한국 음악이 아니니까. 동양음악도 아니고. 서양의 감정이나 그들의 생활에서 출발한 장르가 아닌가. 용진이 말에 동의하는 게 한국적인 것은 공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다. 우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을,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장르와 결합하는 것. 시너지가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첫 EP <Chairshot>(2011)은 한국성보다는 펑크 성향이 강했다.


황영원 : 당시는 그런 고민까지 못하던 시기였다. 음반 발매는 해야겠고... 팀을 결성하기는 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정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럼 한국성을 소재 삼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황영원 : 이전의 앨범들은 나를 나타내기보다는 멋있게 생각되는 음악들을 표현하려고 했었다. 요즘 가장 멋있는 게 힙합이라 치면, 그걸 어떻게 하면 똑같이 따라 할까 하는 고민을 했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결국에는 어떤 문화, 예술이건 간에 내 자신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고민을 하고 표현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는 진짜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있다고 생각되는 목소리가 아니라 내 진짜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그런 변화들이 자연스레 한국성으로 이어지게 된 거다.

 

손희남 :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인도에는 시타르라는 악기가 록 음악에 많이 이용돼 왔고, 그런 게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게 또 한국적이라는 게 자칫하면 촌스러울 수가 있다. 그것과 세련됨의 접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고 처음에는 거기에 매몰되는 것 같아 부담되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가 자리를 좀 잡지 않았나 싶다.

 

황영원 : 나도 공감하는 게, 한국적인 것이 잘못 인식하면 속된 말로 구릴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우리는 그런 뜻이 아니라 본질적인 한국성을 표현한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나는 이런 수식어에 대한 부담이 아닌 거부감이 있었다. 한국적이라는 생각 자체가 당장에 사람들이 영어를 해야 한다는 시대에 사는데... 우리 음악을 들어보지도 않고 느껴보지도 않는 분들이 우리 팀에 선입견을 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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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영원

 


동감한다. 특히나 이번 음반은 한국 특유의 리듬감과 에너지가 강하게 담겨서 러닝 타임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렬하고 세련되게 완성됐다.


황영원 : 희남이 형이 프로듀싱을 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걸 요구했다. 그중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제대로 된 록 음반을 만들고 싶다'였다. 우리가 록이 베이스인 음악을 하지만 이를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건 다양하다. 이번에 중점을 둔 건 느낀 그대로 질러내는 록의 생동감이다. 그런 음반을 만들자 얘기했다. 기타를 세 번 인가 다시 녹음했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고.

 

이용진 : '산, 새 그리고 나'라는 곡에서 굿판 느낌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이게 되게 쉬운 거더라. 우리가 풍물놀이를 많이 듣고 자라지 않았나. 그런 걸 연상했다. 또 시위를 나가서 거기 울려 퍼지는 여러 가지 비트들을 들어보니까 '저렇게 하면 되는 건데, 저렇게 연주하면 되는 건데' 싶더라. 패턴을 짜지 않고 본능적으로 풀어낸 부분이 많았다.

 

'빙글뱅글'이 타이틀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황영원 : 처음에는 '각성'을 타이틀로 밀었다. 그런데 방송 심의에 하나도 통과하지 못했다. '때려' '먹어' 이런 가사였는데 3사 방송국 전부 통과가 안 됐다.

 

이용진 : 멤버별로 주장하는 타이틀이 다르기도 했다. 나는 '빙글뱅글', 영원이는 '무감각', 희남이 형은 '친구여'를 선택했다. 결국 사전 투표를 했는데 '빙글뱅글'이 제일 높았다.

 

개인적으로는 혁명가 같은 '친구여'를 가장 좋게 들었다.


손희남 : 사실은 한창 광화문 시위 당시에 만들었던 곡이다. 촛불시위 할 때, 국민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대중가수나 아이돌은 안 나오지 않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들은 안 나오고, 록밴드들을 무대로 부르긴 부르는데 대중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뭔가 '다 같이 모여서 힘을 내자' 이런 곡을 만들어 보자 싶었고 멤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나오게 된 게 '깃발을 들어라 거친 바람 불어도'라는 가사였고, 후반부에 남, 여 성악과 영원이 보컬을 합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황영원 : 가사 같은 경우도 특히 검수를 많이 받았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곡 시작부터 센 기타 리프를 썼고 강렬한 분위기로 가자고 결정했다. 이런 얘기를 하다가 가사도 처음부터 딱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나 고민하면서 몇 번씩 바꿔 보고 했었다.

 

손희남 : 그런데 지금 평화의 시대가 오고 있어서...

 

황영원 : 그래서 바꿨다. 통일을 얘기하고 있는 거다. (일동 웃음) 우리는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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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셨듯이 '친구여'는 성악을 가미했고, 과거 '완전한 사육'은 타령과 랩이, 'Butterfly'는 트립합이었다. 또 시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가?


황영원 : 장르라고 하면 거의 반주로 나누지 않나. 우리는 그것을 중심으로 가는 밴드는 아니다. 느낌을 중심으로 가면 모든 장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앨범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록이라고 인식하지만 파고 보면 모든 장르가 다 들어있다. 우리의 기반만 있다면 모든 장르를 다 할 수 있다. '나'를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록이 강성하던 시대가 무색하게 요즘은 그 관심이 줄고 있는 것 같다. 무대에서도 그런 변화가 느껴지는가?


이용진 : 우리도 음악가이기 이전에 음악 마니아다. 코첼라 페스티벌만 해도 록스타가 많이 없다. 요즘 20대 초반 친구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연을 해보면 음악 듣는 배경이 다른 것 같다. 2-3년 전만 해도 록 밴드 좋아하고, 록 문화를 아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요새는 록, 밴드 문화 자체가 아주 생소한 접해보지 못한 거다. 우리가 악기를 배우러 갈 때 그 친구들은 디제잉 턴테이블을 배우는 시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래서 오히려 그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면 처음 듣는 거니까 더 열광하는 느낌도 든다. 희망적인 부분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록 음악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멤버들에게 록이란?


이용진 :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에게 록은 뿌리다. 셋 다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다. 재즈, 일렉트로닉도 좋아하고. 그렇게 많이 듣지만 가장 처음 심취했던 게 록이니까 어쩔 수 없다. 록은 말 그대로 뿌리다.

 

황영원 : 오히려 요즘은 록 음반이 잘 안 나오니까 다른 장르 음악을 많이 듣는데 막상 하다 보면 결국 그게 다 록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한국적인 걸 갖고 있듯이 록은 내가 그냥 갖고 있는 거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록은 나의 한 부분이다.

 

손희남 : 인스타 라이브를 하다가 '록의 시대가 다시 도래할까요' 물어보니 사람들이 전부 '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라고 대답하더라. 그런데 딱 한 명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예요' 그랬다. 록은 나에게 삶의 전부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번 <IGNITE>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멤버별로 한마디씩 부탁한다.


손희남 : 발화. 점화. 진화. 이그나이트 뜻 그대로다. 사람들에게 음반의 이미지를 잘 전달하려고 선택한 단어지만 나를 대변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황영원 : 20만 원이다. (웃음) 정규 1집이 중고나라에서 10만 원에 팔린다더라. 얘는 2집이니까 20만 원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싶다.

 

이용진 : <IGNITE>는 인생이다. 내가 록을 좋아하는데 한동안 록 음악을 잊고 지냈다. 밴드에 들어오면서 다시 내 안의 어떤 본질 그러니까 록 감성을 다시 일깨우게 됐다. 이 음반은 내 삶의 라이브다.

 

 

 

인터뷰 : 박수진 정연경 정효범 강민정
사진 : 정효범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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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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