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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희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에세이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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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후의 반응들을 보면 저를 걱정하거나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용기 있게 했지? 너무 대단하다’라는 것들인데, 응원해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저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섹슈얼리티든 자살이든 가정사든. 그런 것들이 더 아무렇지 않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특별하게 보는 시선들이 슬픈 느낌이에요. (2018.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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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는 홍승희의 이야기다. 306쪽에 달하는 더없이 솔직한 기록. 그러나 다 읽은 후에도 ‘홍승희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그녀와 연관된 몇 가지 단어들을 나열할 수는 있겠다. 효녀연합, 권력 풍자 그라피티, 거리 예술가, 영페미니스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누군가를 설명하는 말들의 총합이 곧 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홍승희도 그렇다.

 

책 속에서 그녀는 말했다. “내가 나의 서사를 쓰지 않으면 읽히고 납작해지고 분류되어버린다는 걸 안다.” 또 이렇게 썼다.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내가 무엇을, 누군가를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권태와 오만, 혐오”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홍승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섣부르게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아닌, 그녀의 서사를 말하는 일이어야 한다.

 

2008년 중증장애인 이동권 지원 예산이 삭감됐다. 그때 처음으로 홍승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후에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세월호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어버이연합 시위대 앞에서 ‘대한민국효녀연합’ 퍼포먼스를 했고,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를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기록한 책 『붉은 선』 을 썼고,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치마 속 페미니즘’을 연재했다.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는 지난 2년간 홍승희가 쓰고 그린 이야기다. 스스로는 “전생의 책 같은 느낌”이라고 하니, 이 또한 홍승희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미 지나갔거나 여전히 흐르고 있는, 홍승희 안의 작은 이야기가 아닐까. 또렷하게 손에 잡히는 ‘뭔가’는 없을지라도,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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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로만 이야기될 수 있어요


대중과 미디어가 작가님에게 여러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를 덧씌워왔어요. 누군가는 ‘개념 있고 정의로운 청년’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종북 세력’이라고 하고, ‘영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꼴페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지켜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제가 원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여러 이름들이 붙었는데, 처음에는 그런 이름들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가가 다르잖아요. 그 사람의 서사가 보이지 않을 때 이미지로 드러나면 이름 붙여지기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자초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저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특히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관심 종자거나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으로 해석돼 왔잖아요. 제가 진짜 이상해서라기보다는 사회가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붉은 선』 에 대한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록이다 보니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다 썼는데, 괜찮을까’라는. 어떤 분은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다 알고도 만나주는 남자하고는 결혼해야 된다고. 여성이 자신의 성이나 가정사처럼 사적으로 치부되는 이야기를 공적으로 하면 걱정을 받는 거죠. 오히려 저를 잘 아는 분들은 걱정을 안 하는데, 애매하게 아는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은 폭력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예전에 예술행동을 같이 했던 선배는 ‘네가 이렇게 총대를 멜 필요는 없지 않느냐, 왜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굳이 썼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희생을 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 자신이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이야기들이거든요.

 

이번 책에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어린 시절에 가정 안에서 경험한 일이라든지, 자살을 시도했던 일에 대해서도 쓰셨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음으로써 스스로가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세요?


사실 전과 후가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걸 쓰지 않았을 때도 제가 병리적으로 해석되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판단하는 일들은 있어 왔거든요. 『붉은 선』에도 썼지만, 누구나 여성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비껴가면 더러운 여자라거나 문란한 여자라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어차피 써도 욕을 먹고 안 써도 욕을 먹는 거니까 이왕이면 자유롭게, 욕을 해도 상관없다는 느낌으로 쓰니까 오히려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영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불편하기도 하세요?


불편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요.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는 페미니스트가 당연해져야하는 단어라서 굳이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 말이 너무 특별해지는 분위기가 답답하기도 해요. 그래서 굳이 그런 수식어를 저에게 붙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요. 누구나 그렇듯이 저라는 존재도 페미니스트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거고. 그런 점에서 모든 이름들이 그런 경계에 있는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인터뷰 전에 질문지를 보내드리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홍승희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엇인지’ 여쭤봤어요. 지금까지 미디어와 대중이 일방적으로 이름표를 붙여주기만 했지, 작가님에게 발언권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거든요. 


키워드는 생각이 안 되더라고요. 어떤 서사로만 말해질 수 있을 뿐인 것 같아요. 어떤 단어가 되어버리면...

 

그 안에 또 갇혀버리는 건가요?


네. 제가 요즘 사주명리를 공부하고 있는데, 제 사주팔자 안에 가장 많은 기운이 나무, 불, 물이에요. 키워드라면 그 세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정된 키워드가 있다기보다는 물처럼 우울해지고 혼자 있고 싶고 감수성이 폭발할 때가 있는가 하면, 불처럼 타오르고 싶고 사람들과 만나고 싶고 굉장히 명랑하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그런 바이오리듬이 있다고 할까요.

 

‘홍승희라는 사람은 조금 독특한 것 같아’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나요? 그런 걸 느끼실 때도 있어요?


책을 쓴 후의 반응들을 보면 저를 걱정하거나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용기 있게 했지? 너무 대단하다’라는 것들인데, 응원해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저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섹슈얼리티든 자살이든 가정사든. 그런 것들이 더 아무렇지 않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특별하게 보는 시선들이 슬픈 느낌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그렇지 않았잖아요. 인터넷에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고 신상이 공개되기도 했다면서요? 어떻게 견디셨어요?


되게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그때 제가 스물한 살이었는데, 합성된 사진을 봤을 때 너무 충격이었어요. 반값등록금 집회에 나갔을 때였는데요. 그때는 페미니즘도 몰랐고, 늘 그래왔듯이 사소한 일이라고만 느꼈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자리에서 겪었던 아픔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효녀연합 퍼포먼스 이후에는 ‘종북’으로 몰리기도 했잖아요.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진짜 무서웠어요. 그래서 ‘어떡하지, 내가 종북이 아니라는 걸 해명해야 되나’ 하는 고민들도 했는데요. 그때 제가 ‘~녀’로 자꾸 이름붙이는 것에 대해서 ‘이건 아닌 것 같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꼴통페미니스트다’, ‘휴머니즘을 위하던 사람이 갑자기 페미니즘으로 빠졌다’, ‘대의를 위해 달라’는 식의 요청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걸 말할 뿐인데, 거기에 계속 이름을 붙이는 일은 끝나지 않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요.

 

효녀연합 퍼포먼스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 페미니스트임을 밝힌 후에 지지를 철회한 경우도 있었나요? ‘네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든지.


네, 되게 많았어요. 그때 같이 예술행동을 했던 선배나 동료들도 입지가 좁아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휴머니즘은 더 대중적인 것이고, 마치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이 따로인 것처럼. ‘사람들이 등을 돌릴 거다, 너는 큰일을 해야지, 왜 여성만을 대변하려고 하느냐’라는 식으로요.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이 다르지 않은 건데.

 


전생에 쓴 책 같아요


채식주의자이고, 폴리아모리스트이기도 하시죠. 우리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불쾌한 순간들은 없었나요?


불편함이 있기는 한데요.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도 주류의 것이고, 그 자체가 그냥 이름붙이기 놀이인 것 같아요. 채식을 한다는 것도 특별한 게 아니고, 폴리아모리도 마찬가지거든요. 그 이름을 알기 전에 우리가 이성 독점 연애만 주입받아 왔던 거지, 오히려 다양한 관계의 형태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이름 붙일 필요도 없는 당연한 상태일 수 있는 거죠. 저도 폴리아모리를 알기 전부터 ‘왜 독점을 해야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만 영양소가 보충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외식하지 않고 집에서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지금보다는 고기를 덜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류에 딱 속해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주류와 비주류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구분 자체가 사람들이 교육 받은 대로, 혹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기존 질서에서 정상이라고 명제되어 있는 것들의 때가 묻은 것일 뿐이죠.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양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맞아요. 주류/비주류와 마찬가지로 ‘평범’, ‘보통’이라는 말도 폭력적이죠. 대체할 단어가 마땅치 않아서 쓰기는 하지만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도 결국은 그 언어로 쓰게 되잖아요.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글쓰기가 자신을 배신하는 일이 되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건 진짜 끝이 없는 것 같고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날것을 쓰지 않으면 쉽게 나를 배신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쓸 때 되게 조심스러워져요.

 

‘예술행동가’라고 불리실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스스로는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하신다면서요?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예술가나 운동가, 활동가로 구분지어 버리면 별개인 것 같잖아요. 그런 구분이 필요한 맥락도 있지만요. 예술을 하는 것이 뭔가 사회와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요. 운동의 경우에도 기존에는 확신의 언어로 다수가 모이고 전략적으로 무언가를 달성하는 방식이었는데, 제가 생각하는 운동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저한테는 운동과 예술과 활동이 하나예요.

 

“일상과 예술, 관념과 물질, 몸과 감각을 분할하는 경계를 없애고 싶어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쓰신 문장이 떠오르네요.


확실히 예전과 달라진 것은 있어요. 예전에는 혼자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답답하고, 뭔가 비겁하게 느껴졌거든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나 혼자 이렇게 그리는 게 무슨 소용이지?’라는 느낌으로 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거였어요.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존재들을 애도하는 작업을 꼭 기존의 정치 언어 속에서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여의도 정치라고 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가 있잖아요. 그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운동이고 정치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림도 마찬가지이고요.

 

예술가라는 말을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가요?


모든 게 그렇지만 예술이라는 게 우리 사회에서 명패가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작가도 그렇고요. 예술가라고 하면 예술의 의미를 내가 독점하는 느낌이 들어서 조심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또 써야 되는 맥락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요. 또 ‘예술이 뭘까’라는 고민은 계속 하게 돼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그렇고, 그 전에도 계속 느낀 건데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흔히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남성, 혹은 감수성이 풍부한 남성이 그림을 그리면 예술이 되잖아요. 영적인 감수성을 이야기하면 종교인이 되고요.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예술도 종교도 정치도 다 제도화되어왔는데, 그런 점에서 여성인 제가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행위를 하는 것인 그 제도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많아요. 정말 예술이 무엇이고, 정치가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계속 있고요. 아직은 저를 어떤 직업이나 이름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이런 저런 단어들을 다 지워내고 나면 ‘홍승희’라는 단어밖에 안 남겠죠?


맞아요. 그래서 갈등이 계속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기존의 언어들은 대부분 소위 주류의, 남성 중심적인, 제도화되어 왔던 권력의 언어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이 사회에서 상호작용하고 살아가려면 그 언어를 차용해서 소통해야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그 언어를 차용하되 다른 언어를 계속 쓰고 싶은 거죠.

 

이번 책은 홍승희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참...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저도 몰라서요(웃음). 책에 실린 건 2년 동안 쓴 글들이 대부분인데, 그 시간 동안의 저와는 완전히 달라진 부분도 있거든요. 물론 맥락은 같지만요.

 

책을 보고 ‘이때는 이렇게 생각했구나, 지금은 달라졌는데’ 생각하기도 하셨어요?


그런 지점들이 꽤 있었어요. 책이 나오면 전생에 쓴 책 같은 느낌이 들어요. 또 다른 이름의 나의 흔적 같은. 물론 이 흐름 안에 저도 있지만요. 그래서 잘 안 보게 돼요(웃음). 뭔가, 이 안에 제가 갇힐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누구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독자들의 반응은 보셨나요?


조금 봤는데, 굉장히 위로가 됐다는 글들이 있더라고요. 아픈 몸이나 감추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은 이 사회에서 밀쳐지고 탈락되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책을 보고 ‘이렇게 해도 살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했을 때 감동적이었어요.


 

‘이상한’ 나와 세상


첫 장에서 “그런데 아파도 돼. 아픈 건 이상한 게 아니야. … 이상한 건 네가 아니야. 너를 의심하는 세상을 믿지 마.”라고 쓰셨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면 좋겠다고요. 스스로에게 해주실 때도 있나요?

그래서 계속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하기는 되게 어려운 거예요. 누군가한테 이런 말을 계속 듣고 확인 받고 싶어 했더라고요, 제가.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사람들한테 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자신이 아픈 걸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걸 잘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힘들어요. 제가 그런 말을 듣지 않고서도 힘이 생길 때는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할 때인 것 같아요. 나를 믿을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고통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공감 받지 못하고 살라고 압박받을 때 사람은 시들어간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흔히 부정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감정들도 사람들과 편하게 나누시나요?


편한 건 아니에요. 나누려고 하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그걸 나누고 같이 느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 나눠야지, 안 그러면 서로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웬만한 건 혼자서 글이나 그림으로 승화하기도 하고, 정말 견디기 힘들 때는 책에서 이야기한 가피라는 친구랑 제 짝꿍과 나눠요.

 

반값등록금 운동도 하셨고, 정권 비판 퍼포먼스도 하셨잖아요.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확고한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 그런 생각 자체가 없으시다고요.


예전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세상이 변화하려면 경제적 구조, 정치적 구조와 일상적 상호작용이 바뀌어야 하고 그래서 조직화된 시민의 필요한 거고, 정당 활동을 하면서 그 정당이 집권을 해서 정책을 실현하면 좋은 세상이 빨리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언어 자체가 남성 중심의 반쪽짜리 언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거기에서 탈락된 것들이 너무 많죠. 그래서 기존의 정치 질서에서 행동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라는 고민이 되고요. 이 세상이 나아진다는 것은 환상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너무 오래전부터 탈락시켜오기만 했잖아요. 동물도, 장애인도, 아픈 몸들도, 결핍들도 다 탈락시키려고만 하잖아요. 하나의 어떤 정상성을 향해서 가는 동안 그런 사람들은 병들고 일찍 죽고.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 희망이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은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요. 인간이 타인과 세상을 인식할 때 언어로 묶어버리고 덩어리 짓거나, 나 아니면 세상으로 이분화 해버리는 순간 타자도 다 대상화되는 거잖아요. 그런 인식과 사고방식이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미래 사회에도 비슷할 것 같고. 그런 점에서 진짜 혐오가 사라질 수 있을까, 싶은 거죠. 이 사회에서 생산할 수 없는 쓸모없는 몸이라도, 말 못하는 동물 같은 존재라도, 존중 받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제가 원하는 사회인데요. 그런 게 가능하려면 지금처럼 생산 중심의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변해야 하잖아요. 그게 가능할까 싶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 놀라울 정도로 둔감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와는 반대로 작가님은 ‘아픔’에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힘들기도 할까요?


건강한 사람들이 부럽기는 해요. 체력도 안 지치고, 피곤도 잘 안 느끼고, 뭘 해도 에너지가 넘치는 게 부러워요. 그런데 결핍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봐요. 다 아픈 데가 있는 거죠. 제가 예민한 것도 아프기 때문에 그런 걸 수 있어요. 자주 접촉을 하니까 더 아픔을 보게 되는 걸 수도 있죠. 그리고 제 언어가 생기면서부터 일부러 더 예민하게 아픈 것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이인증이나 조울증처럼 부정적이라고 느껴지는 정신적인 작동들이나 몸의 아픔들 같은 것들이요. 『붉은 선』에도 썼는데 ‘비체’라는 개념이 있거든요.

 

어떤 건가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탈락시켜온 결핍들이에요. 우울, 아프고 고장 난 몸, 말 못하는 존재들처럼 밝은 세상에서 언어화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내 안에 분명히 우물도 있는데 이 우물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배출할 수 있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우물과 결핍들을 ‘이건 내가 아니야’ 하고 밀쳐내는 순간, 그걸 지니고 있는 타자들도 혐오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그냥 수용하고 아픈 것에 대해서 써야겠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번 책에서도 결국 이야기하는 게 ‘나는 이상한 게 맞고, 그런데 세상도 이상하고, 사실 누구나 이상하다’는 거예요. ‘다 이상하니까 이상한 걸 받아들이자’는 느낌인 거죠. 누구나 다 취약한데 그걸 자꾸 밀어내려고 하니까 다른 취약한 존재들도 밀어내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가장 많이 고민하시는 건 뭐예요?


계속 하고 있는 고민인데요. 죽음이나 결핍, 낡고 썩어가는 것들, 그런 것들을 완전히 수용해 버리고 그 상태로 계속 있으면 죽게 되잖아요. 어쨌든 살아가려면 그런 것들을 밀쳐내야 하고, 저도 그런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해요. 요즘 사주명리를 공부하면서 상담도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팔자라는 게 있다면 그게 뭘까, 라는 생각도 하고요. 얼마 전에도 이사를 했는데, 저는 한 곳에 머무는 게 힘든가 봐요. 사주팔자에도 역마가 있다고 하는데요. 핑계일 수도 있지만(웃음), 되게 산만해요. 이런 특성을 그냥 받아들이고 다시 인도로 가서 더 떠돌고 집중하면서 생활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극복하고 안주하는 생활을 해나가는 게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계획하고 있는 일들이 있나요?


요즘에는 쉬면서 인도에 다시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이러다가 또 안 갈 수도 있지만(웃음), 가게 되면 온라인 통해서 사주명리 상담도 계속 하고 싶어요. 진짜 힘든데 정신과에 가기도 힘들고 위로를 받고 싶은 분들이 상담하러 오시거든요. 온라인이라는 안전한 플랫폼 안에서 상담도 해드리고 그걸로 돈도 벌고. 글 쓰는 것도 계속 하려고요. 어떤 작업을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림도 그리고요. 요즘에는 꼬불거리는 움직임들을 부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떤 순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요?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입체적인 느낌들 있잖아요. 도저히 언어로 설명하기 힘들 때, 그것에서 툭 던져지는 날것의 느낌들을 표현하고 싶을 때 그려지는 것 같아요. 화날 때도 그리게 되고, 우울할 때도 그리게 되고요.

 

책에 열두 점의 그림이 실려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그림은 뭔가요?


다 의미가 있는데. ‘흐물흐물’이랑 ‘삐뚤빼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진심으로 잘 표현된 것 같거든요. 그릴 때도 재밌었고요. 뭔가 경계가 흐트러지는 느낌이잖아요. 나와 세상, 나와 타인의 경계가. ‘삐뚤빼뚤’은 손을 그린 건데, 나무 같기도 하죠.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해 보이지만 그만큼 어디로 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의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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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멀쩡히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글을 쓰는 이유와 관련해서 “내 서사의 편집권”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하도록 놔두는 게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쥐고 능동적으로 말하는 느낌이 들어요.


내 서사의 편집권이 있는 건 좋은데, 제 서사를 쓰고 나면 이상한 소외감이 들더라고요. 이 책도 제가 썼지만 ‘이게 나를 배반하는 글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있어요. 내가 나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제 삶도 타인아 다 엮여있는 건데, 제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면 저한테 폭력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게 좋기는 해요.

 

글과 그림이 서로 보완이 되겠죠?


맞아요.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 입맛대로 해석되곤 하거든요. 이미지라는 게 그렇고, 퍼포먼스를 할 때도 그랬어요. 맥락을 이탈해서 누구나 자기 입맛대로 이름붙이는 게 되게 답답하더라고요. 그런데 글은 맥락을 구체적으로 건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그림으로 다 전하지 못한 시공간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게 정말 속 시원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쓰고 그리는 작업은 계속 하실 거죠?


네. 제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 작은 틀 안에서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효녀연합 퍼포먼스를 하실 때, 외모가 부각되면서 ‘개념 있는데 얼굴도 예쁘네’라는 말들이 나왔잖아요. 그때 인터뷰를 하시면서 사진 없이 기사를 내달라고 요청하셨었어요. 메시지가 왜곡되는 문제 때문에 ‘이제 개인적인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신 적도 있고요. 이제는 생각이 달라지셨어요?

 

네.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예전이랑 달라지기도 했고요. 물론 아직도 ‘우리의 애국 소녀’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걱정해주고요. 또 제가 어떤 활동을 하든 계속 이름붙이고 해석되는 일은 끝나지 않을 거니까요. 그냥 세상은 그런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글을 써서 그런 납작한 이미지들과 편견에 균열을 내고 싶어요. 이상해 보이고, 불행하게 살 것 같고, 그런 낙인이 찍힌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목격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편견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를 그렸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으셨잖아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고, 개인적으로 노역도 하셨어요. 벌금 마련을 위한 모금도 이뤄졌고요. 이제 그 사건은 다 끝난 건가요?


사실 아직 벌금이 남았어요. 제가 사회봉사를 하다가 그만뒀거든요.

 

모금이 100% 달성이 안 됐나요?


모금이 됐었는데요. 사회봉사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하다가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서 70만 원 정도 남았는데, 그건 노역장에 가거나... 노역장도 한 번 가보니까 나쁘지 않더라고요(웃음).

 

책을 읽으면서 ‘무의미’, ‘허무’라는 단어가 자주 보였어요.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에 취해 있지 않은가. 왜 어떤 것에는 취해 있으면 안 되는 걸까.”라는 문장도 인상 깊었고요. 작가님은 어떤 것에 취해서 무의미와 허무를 견디고 계세요?


대부분은 취해있지 않겠다는 의지에 취해 있는 상태인데요. 요즘 삶의 낙은 사주명리예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치 바코드처럼 인생의 흐름이 찍혀있다면 그건 왜 있는 걸까’에 대해서 공부할 때 재밌어요. 굉장히 무의미하고 그냥 툭 던져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허무의 늪이 견딜만해지는 것 같아요. 운명학이라는 게 의미가 딱 정해져 있지는 않거든요. 그냥 별의 흔적처럼 박혀있는 기호가 있을 뿐인데, 그런 점이 좋더라고요. 조금 냉랭하지만 거짓말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사주명리를 공부할 때 진실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편안해요. 거기에서 삶의 낙을 찾고 있고요. 누구나 취해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취해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취한 줄 모르고 이것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취해있는 것에 무감각해지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잖아요. 다 견디기 위해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취해 있는 것이고, 그걸 판단하지 않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순간에는 분별이 필요하겠지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붉은 선』 을 쓴 뒤에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런 글을 쓰고도, 이렇게 힘들고 아파보이는 사람도 멀쩡하게 살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계속 글로 쓰면서 소통하고 싶고요. 동시에 실종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웃음). 소통하고 싶은 마음과 실종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충돌하는 건데...

 

내 안에 모순적인 생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통제하려고 하는 데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거 아닐까요?


맞아요. 모순투성이인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허무하고 절망스럽고 혐오스럽고, 혹은 자기에게 도취되는 것 사이에서 정신 차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홍승희 저 | 김영사
세상이 정해주는 역할극을 거부하며 고민을 멈추지 않는 저자의 일상과 내면, 권력 풍자 그라피티와 퍼포먼스 이후 겪은 일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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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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