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유병재의 억울한 눈빛 : 어느 내향인의 폭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그 어색함을 견뎌내는 눈망울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포식자가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고라니 같은 눈빛의 유병재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리도 흥미롭다. (2018. 01. 22)

 

1.jpg

 

 

19일 첫 방송된 JTBC <착하게 살자>에 대한 평은, 점잖게 말해 미지근하다. 방송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평이라고는 “조금 더 지켜보자”가 전부인 상황에서, 유의미하게 호평을 받은 구석은 제작발표회에서 유병재가 던졌던 농담이 유일하다. “‘YG에서 연예인들을 감옥에 보내는 건데 왜 나랑 진우가 가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 말고도 YG에 갈 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내가 가야 하는 거지?” 모두가 입이 간질거렸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유병재는 억울하다는 듯한 눈빛을 곁들여 기어코 입 밖으로 꺼내고 만다. 포식자 앞에 놓인 고라니 같은 눈빛을 무기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그 어색함을 견뎌내는 유병재의 코미디는 독보적이다.
 
한국 코미디에서 유병재와 닮은 스타일의 코미디를 구사하는 선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적극적으로 제 끼와 재능을 밖으로 발산해 상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승부를 거는 외향형 인간들이 가득한 한국 코미디계에서, 유병재는 안으로 수그러드는 목소리와 갈 곳을 잃은 눈빛의 내향형 인간을 자처하는 것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tvN <SNL KOREA> ‘극한직업 매니저편’ 시리즈를 떠올려 보자. 녹차 한 잔 가져오라는 심부름에 녹차 산지인 전남 보성까지 내려갔다 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싫은 기색을 보일 수 없는 상황의 부조리함. 유병재의 코미디는 대체로 서열의 하층부에서 한껏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폭로하고, 그 순간의 어색함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하게 만드는 방식의 코미디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스티브 카렐이나 윌 페럴과 같은 영미권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무기였던 ‘내향인의 어색함’을, 유병재는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고발하는 도구로 쓴다. YG와 계약한 직후 SNS에 올린 새 집 사진에서 유병재는 거대한 양현석 사진을 어디에 걸어두면 좋을지 고민한다. 대표이사의 사진을 집에다 걸어두는 것으로 충성을 과시해야 하는 사회생활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의 농담은, 일일 MC로 나갔다가 김구라의 기세에 질려 제대로 분량을 확보하지 못한 채 끝났던 MBC <라디오스타>에서도 빛을 발했다. “‘내가 (앞으로 고정MC를) 하고 싶은데 안 불러주시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인 게 불러주실 것 같지도 않고 저도 앞으로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다신 오고 싶지 않습니다. 11번도 지울 거예요. TV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유병재의 억울한 눈빛은 코미디가 갈등을 웃음으로 무마하는 데에만 유용한 게 아니라 웃음 뒤에 갈등의 실체를 슬쩍 숨겨 폭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했다. <착하게 살자>는 흥미롭지 않아도, 포식자가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고라니 같은 눈빛의 유병재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이리도 흥미롭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오늘의 책

무라카미 하루키 6년 만의 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가 새 소설로 돌아왔다.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과, 작가가 꾸준히 응원해온 야구팀 등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다채로운 요소들을 한데 만나볼 수 있는 단편집.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 소설들과, 이야기를 아우르는 강렬한 표제작까지, 그만의 작품 세계가 다시 열린다.

변화의 핵심, 새로운 주도주는 무엇?!

올 한해 주식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벤저민 그레이엄 역시 변덕스러운 사람에 빗대었을 정도로 예측이 어려운 시장, 미스터 마켓.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까? '삼프로TV'로 입증된 전문가들이 양질의 분석과 통찰을 통해 2021년 변화의 핵심에 투자하는 방법을 공개한다!

김소연 시인의 첫 여행산문집

『마음사전』으로 시인의 언어를 담은 산문집을 선보였던 김소연 시인이 지난날에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첫 여행산문집을 출간했다. 시인이 소환해낸 자유롭고 따뜻했던 시간들은 기억 속 행복했던 여행을 떠오르게 한다.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하는 답답한 일상에 더 없이 큰 위안을 주는 책.

차라투스트라, 니체 철학의 정수

니체를 다른 철학자와 구분짓는 두 가지는 혁명적인 사상과 이를 담은 문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두 가지가 극대화된 작품으로, 니체 산문의 정수다. 니체 전문가 이진우 교수와 함께 차라투스트라를 만나자. 나다움을 지킬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