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제목부터가 말도 못하게 슬픈,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야, 오죽하면 걔네 엄마가 그런 말을 했겠나. 너는 소설가라는 게 그 마음도 이해를 못하나?” 하지만 나는 그때 펄쩍펄쩍 뛰며 분노했다. (2017.09.29)

 

 

김서령의 우주 서재.jpg

      ?Roman Drist on Barnimages

 

일곱 살인가 여덟 살인가 동네 남자아이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있다. 둘 다 앞니가 빠졌고 나는 빨간 단추가 달린 초록색 원피스를 입었지만 꼭 머슴애처럼 보여, 영 좋아하지 않는 사진이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여자아이란 극도로 새침한 시기이니 내가 그 남자아이와 노는 시간이 재미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엄마들끼리 몹시 친했고 아빠들끼리는 더 친해서 우리는 하나도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내내 같이 놀아야 했다. “요 녀석들 언제 커서 둘이 결혼을 시키나?” 하는 실없는 농담도 백 번은 들으며 자랐다.

 

어렸을 때야 대충 엉켜 놀았지만 자라면서 나는 점점 극심한 새침데기가 되었고 녀석은 지루한 공부벌레가 되어서 어쩌다 마주쳐도 뚱하니 말도 건네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는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떠나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음, 모범생다운 결말이군. 애써 부러운 티를 감추는 엄마 앞에서 나는 살짝 두려워졌다. 이러다 한국의 어느 대학인가에 녀석이 자리를 잡는 순간 엄마는 더 감추려고 할 것도 없이 나에게 온갖 잔소리와 원망과 욕설을 퍼부어댈 것이 빤했기 때문이었다. 세상 쓸데없이 소설은 무슨! 남의 집 애들은 유학도 가고 박사도 받고 교수도 되는데! 내가 너한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나이를 이만큼 처먹고도 소설이네 뭐네 하면서 뒹굴거리기나 하고! 나는 아직 듣지도 않은 엄마의 잔소리에 미리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모범생에게도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녀석은 학교에 자리를 잡지 못해 애를 먹었다. 녀석의 아내가 피아노 레슨으로 겨우 생계를 꾸렸고 녀석의 엄마는 가끔 우리 집에 찾아와 사이다를 섞은 막걸리를 마셨다. 아들의 청춘이 점점 시드는 것이 가엾다는 하소연이었다. 우리 엄마는 막걸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감자전을 부쳐주거나 접시에 열무김치를 덜어 내어줄 뿐이었다.

 

그런 날이 몇 해 흐르는가 싶더니 아들의 청춘이 시드는 것 따위는 별 일도 아니었다. 녀석의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고 세 살 딸이 하나 있었다. 엄마 친구는 우리 집에 와서 한참을 통곡했다. 나는 막걸리 잔에 사이다를 조심조심 섞어주었지만 엄마 친구는 손도 대지 않았다. 불쌍해서 어쩌니, 불쌍해서 어떡해. 엄마 친구의 통곡을 지켜보며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녀석의 아내가 가여워 가슴이 먹먹했다. 겨우 얼굴을 든 엄마 친구가 말했다.

 

“갈 거면, 너무 오래 끌지 말고 빨리 가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나중에 내게 소리쳤다. “야, 오죽하면 걔네 엄마가 그런 말을 했겠나. 너는 소설가라는 게 그 마음도 이해를 못하나?” 하지만 나는 그때 펄쩍펄쩍 뛰며 분노했다. “다시는 그 아줌마 안 봐! 어떻게 사람이 그래?”

 

시간이 흘렀고 녀석의 아내는 완치됐다. 세 살 딸은 자라서 학교도 들어갔다. 녀석도 대학에 가지는 못했지만 대기업에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다. 그 가족은 아무와도 작별하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다. 아직 작별법을 배우지도 못했는데 헤어질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제목부터가 말도 못하게 슬픈,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작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 그의 손자가 사랑을 놓아가는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나 역시 여태 작별에는 서툴러 이 쓸쓸하고 달콤한 책을 아주 천천히 읽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서령(소설가)

1974년생.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와 장편소설 『티타티타』, 그리고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를 출간했으며 번역한 책으로 『빨강 머리 앤』이 있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저/<이은선> 역12,150원(10% + 5%)

“우리는 히아신스 향기를 맡으며 아무 두려움 없이 작별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현재가 녹아내리며,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천천히 헤어짐을 배워가는 가족의 한 편의 동화처럼 소중히 간직될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할아버지와 노아는 날마..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어디엔가 분명히 있었던 마음에 관한 이야기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첫 장편.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고,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다는 문장이 마음을 울린다.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유머로 우리가 견뎌온 아픈 시간을 보듬고, 앞으로의 삶을 좀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맞을 수 있게 하는 이야기.

2018 칼데콧 대상작. 영화 같은 우정

눈보라 속 길을 잃은 어린 소녀와 무리에서 뒤처져 길 잃은 새끼 늑대의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를 머금은 채, 글 없이 오롯이 그림만으로 둘 사이의 우정을 아름답게 담아냅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인간을 도와주려는 늑대의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을 만나보세요.

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어?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어린 왕자 이야기와 등장 인물을 우리의 삶에 맞게 재해석해 꿈, 사랑, 어른,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마치 어린 왕자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과 감동을 선사하는 책.

조선을 넘어 이제 세계인과 ‘톡’한다!

<조선왕조실톡>을 잇는 새 역사 웹툰 <세계사톡>을 책으로 만난다. 작가는 역사의 주요한 장면을 당시 인물들간의 대화로 재구성하고 만화로 그려내 세계사 속으로 떠나는 독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한편, 더 자세한 역사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