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산 이야기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프롤로그
이 글은 병원에서의 조산 출산 체험에 대한 일화를 통해 내가 겪은 의료화 출산 경험 속으로 독자들을 부르는 일종의 초대이다. (2017.09.08)
이른둥이 아이들
나는 현재 16세 된 딸과 7세 된 아들, 두 명의 아이를 모두 병원에서 이른 출산으로 맞이했다. 첫째 딸아이는 36주 만에, 둘째 아들은 32주 만의 조산이었다. 산과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재태 기간(gestational age,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의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자궁 내 발달 기간) 37~41주 사이의 출생을 만삭의 범주로 보는데, 우리 집 아이 둘 모두 이 만삭의 기간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이른바 ‘이른둥이’다.
첫째 딸아이는 2003년 2월, 서울의 한 여성 전문 병원에서 2.3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36주 만에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오전에 입원해서 당일 저녁에 수술했다. 아이 머리가 위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전 진단에 따라 수술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르게 나왔다. 아기는 출생 당시에는 호흡기 집중 치료를 받지 않았으나 이틀 만에 장내 출혈로 인한 패혈증 진단을 받았다.
첫아이는 집중 치료 3일 만에 출혈이 멈추었는데, 출혈의 원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패혈증 치료를 끝낸 후에도 아이는 약 3주 가까이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완전 모유 수유를 고집했던 나는 매일 하루 네 번씩 유축을 해서 아침과 저녁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에 모유를 전달했다. 아이는 약 2.8킬로그램이 되어서야 병원에서 퇴원했다. 첫째 아이의 경우 임신 진단, 산전 검사와 출산, 아기의 치료까지 모두 같은 병원에서 이뤄졌다.
이 글에 담긴 조산 체험은 둘째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2011년 2월, 서울 시내에 위치한 B대학 병원에서, 32주 만에 1.8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첫째와 마찬가지로 양수가 일찍 터졌는데, 병원으로 옮겨져 기다리는 동안 양수가 다 빠져나갔다는 판단으로 입원 다음 날 수술하게 되었다. 대개의 조산아가 그렇듯, 둘째 역시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아이는 첫 일주일 동안 호흡기 치료를 포함한 집중 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3주가량 더 인큐베이터에서 지냈고, 2.3킬로그램이 되어서야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첫째는 산전 검사부터 출산까지 출산의 전 과정을 같은 병원에서 겪은 반면, 둘째를 출산하기까지는 네 군데의 병원을 거쳤다. 산전 초기 진단은 내 심장 이상에 대한 우려로 종합 병원인 Y대학 병원에서 받았다가 심장에 대한 위험이 크지 않음을 확인하고 지역의 한 산부인과로 옮겨 다른 산전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산전 검사를 하던 병원은 임신 후반부에 이르자 나의 첫째 출산 이력(조산)을 문제 삼아 해당 병원에서의 분만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나에게 은근히 병원을 바꿀 것을 종용했다. 나는 다시 첫째를 출산했던 여성 전문 병원(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거리가 상당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으로 옮겨 그곳에서 출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거리는 멀었지만 첫째 아이를 받았던 의사가 나를 반겨 주었기에 마음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의사와 출산 예정일 3주 전에 수술을 하기로 상의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지 일주일 후, 32주 만에 양수가 터져 119 구급차를 타게 되면서 결국 급히 후송된 B대학 병원에서 출산하게 되었다. 그곳은 출산 전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병원이었다. 둘째 아이의 경우 초기 진단, 산전 검사, 출산이 모두 다른 병원에서 이뤄진 셈이다.
경험을 어떻게 글로 불러올 것인가?
6년 전의 출산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한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에서 차지하는 출산의 의미를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란 바람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체험적 의미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는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기 때문에 특정 개념의 언어로 표현된 순간 이미 그 독특성은 증발한다. 여성의 몸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출산과 같은 체험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 여성의 살아 있는 체험을 글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인가?
교육학 분야에서 현상학적 질적 연구를 수행해 온 반 매넌van Manen(1990, 2014)은 삶을 글에서 되살리는 방법으로서 ‘현상학적 글쓰기’를 소개하고 있다.1 그는 《Phenomenology of Practice》에서 ‘현상학적 글쓰기’를 저자 혹은 참여자의 경험이 글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으로,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살아나는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현상학적 글쓰기의 한 형태로 현상의 독특성singularity of phenomenon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화anecdote’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보이텐디크Buytendijk(1988)의 기술을 빌어 “현상학은 예시의 학문”이라고 했다. 예시는 현상학적 접근의 방법론적 독특함인데 ‘일화’야말로 현상을 기술하는 가장 강력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일화는 단순한 문학적 장식이 아니라 삶의 특정한 부분에 대한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실제적인 이론의 예가 된다.
일화적 내러티브는 삶의 경험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성찰하게 함으로써 그 경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돕는다. 때로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 원리도 하나의 작은 일화를 통해 보여 줄 수 있다. 따라서 일화 서술이야말로 현상의 독특성에 다가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삶에서 의료화 출산 경험이 지닌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면, 출산 과정과 그 순간에 대한 일화야말로 가장 강력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특정한 출산에 대한 일화는 출산 현상을 체험하지 않았던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경험에 초대되어 그 아픔과 기쁨, 고통과 감동 등을 공명하게 한다.
이 책에서는 의료화된 조산 출산이라는 독특한 삶의 체험을 글 속에서 되살려 내기 위해 ‘일화 쓰기’를 시도했다. 글에 기술된 각각의 일화들은 의료화 출산 상황의 각 과정에 대한 예시이며, 이 일화들은 다시 모여서 의료화 출산 시스템에서의 조산 체험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예가 된다. 이 일화들은 내가 겪은 지극히 개별적인2 사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고유한 이야기를 통해 의료화 출산에서 조산 체험이라는 현상의 독특성을 드러내며 그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개별적인 사태인 나의 체험 속에는 현대 한국 사회의 출산의 많은 단면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병원에서의 조산 출산 체험에 대한 일화를 통해 내가 겪은 의료화 출산 경험 속으로 독자들을 부르는 일종의 초대이다.
현상학적 글쓰기를 위한 재료들
병원에서의 조산 출산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글쓰기를 위해 나는 몇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가장 주된 자료는 일화 구성을 돕는 내 출산 과정의 기록들이다. 나는 출산 전후의 임신ㆍ출산 일기와 병원에서의 메모, 나의 조산 체험 경험을 수필 형태로 기고한 출판물 등을 참조했다. 그러나 조산 체험에 대한 일화 구성을 도울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자료는 출산에 대한 나의 기억, 그것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나의 몸 그 자체다. 나는 내 몸에 새겨져 있는 체험의 흔적과 오롯한 기억을 떠올리며 출산의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이 기록은 앞서 열거한 자료들과 함께 일화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매스 미디어에서 다룬 출산 의료화 사례들을 참고하면서, 다른 출산 경험을 지닌 여성들과의 대화도 담았다. 이는 보다 풍부한 탐구를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체험 속에 몰아沒我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책의 바탕이 된 기존 논문3을 집필할 당시에는 지인 중 33주 만에 출산한 현진(가명)과 면담했다. 현진은 출판업 종사자로 2012년 12월, 재태 기간 33주 만에 2.5킬로그램의 아이를 종합 병원에서 출산했다.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3일, 이후 2주일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의 일반 바구니에서 지냈다. 현진은 나와 달리 출산 의료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은 편이었다. 스스로를 “서양 의료의 혜택을 흠씬 받은 사례”라 표현하기도 했다. 현진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조산 체험에 대한 내러티브를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고, 의료화 출산에 대해 나와 대비되는 입장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책 집필을 위해 다른 출산 경험을 지닌 세 명의 여성들과 함께 집단 면담을 가졌다. 면담에 참석한 대부분은 서로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매우 솔직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관점을 표현했다. 각기 다른 출산 경험을 갖고 있는 이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개별적인 사례들에 담긴 보편성 덕분이 아니었을까? 현진과의 대화는 1~3장에 부분적으로, 집단 면담에서 만난 세 명의 이야기는 4장에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TV나 잡지 등 매스 미디어에 등장한 의료화 출산 사례들이다. TV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조산 사례와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잡지 등에 실린 의료화 출산 사례들을 모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례들을 살핌으로써 현상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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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병원 출산율은 1980년대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0년대부터는 전체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출산 굴욕 3종 세트(회음 절개, 제모, 관장)’ 개념은 이미 산모들 사이에 보편화됐다. 모두 위생적인 출산, 태아의 안전을 위해 병원이 권장하는 방식이다. 출산 의료화 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