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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고픔

노동자를 부리는 전형적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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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을 쥔 고용주에게 밥은 무기다. 밥이 있지만 먹을 시간이 없는 이 교묘한 상태는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휴식시간이 있지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방식과 겹쳐진다.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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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바스카코프Nicolai Baskakov, <젖짜는 여자들Milkmaids Novella>, 1962년, 소비에트 시절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에서는 일종의 정치선전을 위해 노동자의 휴식시간을 행복하게 묘사한다.

 

얼마 전 다른 지방에 갔다가 근처에 괜찮은 술과 식사가 가능한 곳을 찾았다. 가는 곳마다 지역 술과 음식을 몸에 넣고 와야 괜히 할 일을 다 한 듯한 기분이 든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직원이 정말 친절하다’는 평이 유독 많은 바bar가 있었다. 숙소에서 5분 거리길래 큰 고민 없이 바로 향했다. 맥주와 버섯 튀김, 닭가슴살 구이를 시켰고 주문을 하면서 술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나는 에일 맥주를 좋아하지 않고 너무 신맛이 강한 음료도 피하면서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을 이리저리 따져서 내 입에 맞는 음료를 골랐다. 직원은 정말 친절했고 그 친절의 정도가 넘치지 않아서 더 편했다.


주문한 맥주가 도착한 뒤 지상 최고의 맛인 ‘첫 잔의 맥주’를 들이키며 고개를 젖히는 순간 주방 입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주방 입구에 서서 한 손으로 컴퓨터에 주문 내역을 입력하던 직원은 다른 한 손으로 햄버거를 허겁지겁 입속에 쑤셔 넣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황급히 눈을 돌렸다. 혹시라도 그와 내가 눈이 마주칠까 봐. 그제서야 바의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이 거의 없었다. 오후 6시 즈음이었는데 내가 너무 일찍 왔음을 알아챘다. 그곳은 늦은 시간 주로 손님이 몰리는 장소였다.


어쩌다 점심때를 놓쳐서 오후 3시쯤 식당에 가면 밥을 먹다가 난감하게 일어나는 식당 노동자를 본다. 그나마 좀 엉덩이 붙이고 밥이라도 먹을까 하는데 뒤늦게 들어오는 밥 손님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한번은 김치를 담가야 해서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바람에 결국 돌아 나온 적도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식당 노동자들이 식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먹어야 하니까 적당히 이런 사정을 너무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으나 식탁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은 사람들, 하루종일 달콤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만들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빵 한 쪽도 입에 넣기 어려운 제빵사들, 동네 미장원에서 손님 머리 말아놓고 한쪽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미용사처럼 식탁에 앉기 어려운 모든 노동자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끝이 없다.

 

식당 노동자의 다수는 정작 제 가족과 식사를 잘 못 한다. 30%가 일주일에 한 번도 가족과 식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먹을 시간을 주지 않기’는 노동자를 부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19세기 미국의 영향력 있는 연설가이며 노예제 폐지 운동을 했던, 그 자신 노예 출신인 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남긴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에는 노예제도 속에서 주인이 노예를 다루기 위해 배고픔을 이용하는 방식이 등장한다.


“코비씨는 우리에게 먹을 것은 충분히 주었지만, 그것을 먹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종종 5분 이내에 음식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자주 동틀 때부터 마지막 석양 노을이 질 때까지 밭에 있었다. 그리고 꼴 베는 시기에는 짚단을 묶으며 한밤중까지 밭에 있어야 했다.”
-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 137쪽


밥줄을 쥔 고용주에게 밥은 무기다. 밥이 있지만 먹을 시간이 없는 이 교묘한 상태는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휴식시간이 있지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 방식과 겹쳐진다. 누군가를 고용하면서 그의 기본적인 식사와 생리 활동을 위한 시간까지 모두 통제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일을 해도 시간만 사라질 뿐 돈은 모으기 힘들다.


노동시장에서 약자일수록 휴일과 야간 노동을 마다할 수 없다. 주 5일 근무, 하루 8시간 노동, 주 35시간 노동 등으로 점차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투쟁은 노동운동의 주요 의제였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휴식시간을 보장받고 유급 휴가를 얻을 권리 등을 얻기 위해서 꾸준한 투쟁이 필요했다. 실직 이후 재취업이 되기까지 얼마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권리, 야근하지 않을 자유, 야간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등 많은 노동 의제가 실은 시간 쟁취에 해당한다.


집안에서도 가사노동을 누가 더 하는가, 육아 휴직을 누가 사용하는가도 결국은 시간 싸움이다.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이 될 권리를 위한 싸움이다. 고용주가 업무 생산성과 무관하게 야근을 재촉하거나 휴가에 눈치를 주는 이유는 노동자의 시간 독립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짜’ 가족과 가정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가정은 일찌감치 하숙집이 되었다. “도시에서의 시간-임금을 받는 노동 시간-은 모든 가정을 지배했다. 이러한 시간으로부터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에는 상품, 또는 시간 둘 중 하나로 되어 있는 노동의 열매인 잉여라는 것을 절대 포함하고 있지 않다. 가정은 하숙집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149쪽)


빈곤의 실체는 ‘돈이 없다’는 차원이 아니라 ‘나의 시간’도 없다는 뜻이다. ‘타임 푸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다. 빵만 갈구하고 장미를 가질 기회를 박탈한다. 근면 성실에 대한 숭배에는 개인 시간의 희생이 포함된다.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권력자다. 한가하다는 뜻이 아니다. 남의 시간을 제시간으로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을 수 있는 힘, 이것이 권력이다. 파리바게뜨에서 빵을 굽는 노동자는 자신의 밥 먹는 시간까지 희생해서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해야 한다. 노동자의 시간을 착취해서 오직 ‘생존’만 가능한 인간으로 만든다. 너도 나도 시간이 착취당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누리는 사람에게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식탁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는 프랑스라고 한다. 그들의 식사 시간은 내가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일상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 기관이었다.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볼일을 보러 갔다. 은행으로, 우체국으로. 그러나 점심시간에는 문이 닫혀 있었다. 자영업자들도 점심시간에 문을 닫고 밥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적응이 되면서 나도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먹는 생각만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볼 여유를 가지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위해서 시간의 확보가 필수다. 지배층은 민중이 개돼지이기를 바란다. 먹고 살기에만 매몰된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개돼지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정작 개돼지도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고 싶어한다.


한국인은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 적고 노동시간은 길다. 시간당 생산성이 떨어진다. 잘 쉬고 집중해서 일하기보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마지 못해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식탁에서 식사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삶은 각박해진다. 쫓긴다. 시간병 time sickness에 시달리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늘 바쁘고, 정신이 없고, 시간이 없다.


노동자에게는 8시간 이상 노동하면 1시간 이상의 휴식시간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12년 자살한 삼성 서비스 센터 직원은 “배고파 못 살았고”라는 글을 남겼고, 지난해 구의역에서 사고로 사망한 청년은 가방에 컵라면을 남겼다. 숟가락도 함께 있었다. 말아 먹을 밥도 안 보이는데. 플라스틱 숟가락이 아니라 스테인레스 숟가락이었다. 각종 공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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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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