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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정신의 중요성

집중하는 사람과 산만한 사람,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행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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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은 자신이 신뢰하는 양육자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관심으로 지켜보는 와중에 자신의 놀이나 탐험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다.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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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_ imagetoday

 

“내가 겨우 기저귀를 뗀 아이 둘을 데리고 있을 때, 내 태도는 자연히 분산된 의식의 상태로 바뀌면서 아이들로 향하게 됨을 알았다. 내가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 내 마음은 거의 항상 아이들에게 향해 있으며, 수용적인 자세를 갖추면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런 태도를 바꾸고 아이들이 아닌 다른 일에 의도적으로 집중하려고 할 때는 아이들이 반드시 나를 방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진 시노다 볼린, 또하나의 문화, 구판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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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를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중 하나는, ‘돌봄’이 인간의 성장, 자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껏 나만 모르고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존재할,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돌봄’의 어려움, 특히 그것이 성역할로 강제되는 상황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우리 사회는 더 활짝 귀를 열고, 더 쫑긋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거나 왜곡된 정보로 ‘돌봄’을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당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돌봄 인문학’ 연재가 맛있는 당근이 되기를 꿈꾼다.

 

‘돌봄’이 섬세한 관찰력과 기민한 대응능력, 유연하고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라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지만, ‘돌봄’이 지적인 활동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사실은 아이를 돌볼 때의 정신적 활동은 우리가 학교나 직장에서 독려 받는 정신적 활동과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바로 이 중요하지만 간과되어온 지점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것은 양육과 일, 공부를 양립시키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중요한 주제다. 직장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출근하면 아이는 하루종일 기다린 엄마, 아빠를 만끽하고자 한다. 저녁식사도 미루어두고 아이와 어느 정도 부비부비를 하고 수다를 떨고 나서야(주로 아이의 수다를 들어주는 쪽이겠지만) 아이의 부모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는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아이가 제안하는 놀이에 참여해야 하겠지만, 운이 좋은 어떤 날에는 아이가 부모와의 짧은 상봉 의례 후 스스로의 놀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면 밀린 가사 일도 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TV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조금 욕심을 내면 책을 읽거나 심지어 밀린 업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꿀 같은 시간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때 부모가 너무 성급하게 야심을 품으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부모를 방해한다. 갑자기 달려와서 자기 학생이 되어 수업을 들으라거나, 자기가 한 요리를 먹어보라거나, 자기가 팔고 있는 물건을 사가라며, 부모를 놀이로 끌어들인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혼자 노는 동안 부모가 침대나 소파에 늘어져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용납하지만, 정좌를 하고 앉아서 어려운(!) 책을 읽거나 명상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는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의 저자 진 시노다 볼린 할머니가 말씀하시듯, 이런 면에서 아이들의 ‘촉’은 매우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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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에서 분산으로, 분산에서 다시 집중으로. 이런 정신적인 모드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로운 모드 전환의 압박이야말로 현대의 양육에서 가장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부분이다. 나는 이 모드 전환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 3년 이상이 걸렸다. (그사이의 삶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었을지, 내가 잠시 눈물을 닦고 오는 동안 상상해보시길 부탁드린다) 일과 양육을 양립시킨다는 것은 바로 이런 두 종류의 이질적인 정신 활동에 익숙해진다는 것, 전혀 다른 구조의 두 언어에 바이링구얼이 되어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환경은 자신이 신뢰하는 양육자가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관심으로 지켜보는 와중에 자신의 놀이나 탐험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것은 아이가 엄마의 자궁에서 느끼는 안정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분산된 의식의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자신의 관심에 주의를 집중하려고 하는 존재다. 내가 보기에 집중된 의식은 분산된 의식의 보호 하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누군가 잘 집중하고 있다면, 그 근처를 돌아보라.

 

나는 이것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보다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공부가 잘되는 현상과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는 가설도 세워보았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신경 쓰는 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환경에서 집중력이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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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아빠들은 아이와 있을 때에도 비교적 책을 읽거나 일과 관련된 생각에 잘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이런 현상은 아빠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양육자로서의 주도성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엄마보다 양육을 더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아빠들의 경우 집중력은 엄마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남편들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한탄하는 것을 수백 번은 들었다. “남자들은 참 아이와 분리가 잘돼.” “남자들은 참 멀티가 안 돼.” 전혀 다른 내용을 담은 말처럼 들리지만 핵심은 같다. 이는 육아를 담당하는 시간이나 노동량의 차이보다도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것은 또 엄마들의 단기 기억력이 육아기에 현저하게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현상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하루종일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다!’고 한탄하는 엄마들의 미스테리를 푸는 데에도 ‘분산된 정신의 원칙’이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이런 종류의 산만하지만 유연하고 총체적인 정신 활동이 더 유용하기 때문에, 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엄마들의 정신은 주변의 생명체에 민감한 상태로 외부로 활짝 열리게 되며 그만큼 취약한 상태가 된다.

 

여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더 잘 파악한다고 기대되며, 그렇게 길러진다. ‘돌봄’ 그 자체를 교육받아본 적이 없는 나조차 아주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기분과 상태를 살피는 훈련을 받아왔다. 또 이런 능력이 과도한 감정노동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의식적으로 그런 정신적인 능력을 퇴보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다시 ‘당근’으로 돌아와서, 관계지향적인 의식은 고도의 정신 활동이고 나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당연히 도움이 된다. 집중력을 발휘해 열심히 공부하면 ‘세상을 이해하기’라는 과목의 기말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진짜로 세상을 이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너무 뻔해서 민망할 정도인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집중력’을 통한 통찰이나 학습에 비해 ‘분산된 정신’이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집중하는 정신’이 양육에서 종종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관계를 배제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어떤 공부나 일에서도 ‘분산된 정신’이 유용하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집중력과 분산력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고 장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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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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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시노다 볼린> 저/<조주현>,<조명덕> 공역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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