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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의 탄생- 머릿속 전쟁에 대하여

한때는 양파를 써는 게 잘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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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날 하루는 공친 것이냐, 그렇지 않다. 끙끙대며 보내는 시간 역시 하루 스케줄의 일부다. 프리랜서에게 규칙적인 생활이란 매우 중요하다. (2017.06.27)

신예희의 프리랜서 생존기_2회 사진_20170626.jpg

 

그분이 오신다, 느낌이 온다, 오오.... 왔다 왔어, 오셨어어어어!!!

 

아이디어가 이런 식으로 뭔가 내려오듯 확 와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와준대도 좀 무서울 것 같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일이든, 원고지 몇 장 분량의 글을 써야 하는 일이든, 가만히 손 딱 놓고 때를 기다리는 것보단 곰질곰질 뭐라도 하는 게 낫다.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한때는 양파를 써는 게 잘 먹혔다. 빨간 망자루에 든 양파를 박박 씻어 겉껍질을 벗긴 다음 도마 위에 올려놓고 몇 킬로그램씩 내리 썰어댔다. 눈이 따갑고 시려 눈물이 줄줄 나고 양파 속껍질은 미끄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기분만큼은 묘하게 개운해진다. 칼질에 일정한 리듬이 붙을 때쯤엔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채 썬 양파는 비닐봉지 몇 개에 나누어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한두 주먹씩 꺼내어 썼다. 한번 얼었다 녹은 양파는 불에 올려 가열하면 금세 후들후들 흐물흐물 야들야들해진다.

 

이 시기엔 양파 수프를 참 자주 만들어 먹었다. 냉동실에 양파 봉지가 너무 많이 쌓였다 싶을 땐 슬슬 대파로 옮겨간다. 챠가쟈가쟉쟉 탁탁탁 소리를 내며 대파를 몇 단이고 하염없이 썰다 보면 여기가 순댓국집 주방인지 설렁탕집 뒷마당인지 헷갈린다. 작업을 마친 후엔 양손으로 가지런히 파 조각들을 그러모아 역시 냉동실로 직행.

 

구슬 꿰기에 몰두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근사한 비즈공예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낚싯줄에다 작은 구슬을 하염없이 꿰어 넣는 것이다. 한 봉지를 다 꿰고 나면 줄을 가위로 석둑 잘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손가락을 조물조물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생각이 오간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일을 시작한다. 이 시기엔 잊을 만하면 집안 어딘가에서 구슬이 굴러 나오곤 했다. 맨발로 다니다 무심코 밟으면 상당히 거슬린다. 레고 블록만큼은 아니지만.

 

시간제한이 없는 단순한 게임도 좋다. 멍하니 마우스를 클릭해 블록을 하나씩 쏘아 떨어트린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최고 점수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저 기계적인 클릭클릭 행위가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 와중에 최고점을 갱신하면... 물론 아주 기쁘다.

 

모르긴 해도 아마 옆에서 봤을 땐 한심해 보일 것이다. 얘가 지금 노는구나, 한가하구나 생각하기 딱 좋지. 하지만 머릿속에선 전쟁이 한창이다. 무슨 양파를 그렇게 썰고 있냐, 그럴 거면 같이 백화점이나 가자고 핀잔을 주시는 어머니. 구슬이나 꿰고 앉아 있느니 나가서 카페라도 가자는 친구. 마음은 감사하지만 곤란합니다. 지금 저를 건드리시면 안 된답니다. 간만에 요 근처에 왔다며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지인에게도 쉽게 그러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손님이 찾아오든 내가 나가든 맥이 제대로 끊긴다. 한번 끊긴 맥은 어지간해선 다시 달라붙지 않는다... 라고 쓰다 보니 꽤나 외롭고 고독한 창작자 같군요. 실제론 그저 이게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방식일 뿐이다.

 

어쨌든 일터에서 너무 멀어지는 건 곤란하다. 산들거리는 바깥바람을 쐬니 기분 전환이 된다 싶다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퇴근 모드로 바뀐다. 얘 오늘 일 접었나 봐, 할 거 다했나 봐 라며 자동으로 세팅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일을 해야 한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곳에 들러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날 하루는 공친 것이냐, 그렇지 않다. 끙끙대며 보내는 시간 역시 하루 스케줄의 일부다. 프리랜서에게 규칙적인 생활이란 매우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몸을 씻고 아침 식사를 하고, 허리에 뒷짐을 지고 배를 쑥 내민 채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만든다.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전원을 켠다. 출근이다.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 될 수 있으면 퇴근은 오후 7시를 넘기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양파든 대파든 뭐든 써는 건 모두 근무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엄연한 일과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건 곤란하다. 만만해 보이는 구몬 학습지도 하루 이틀 밀리기 시작하면 어느새 숨이 턱턱 막히게 쌓인다. 돈 받고 하는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야근은 거의 하지 않는데, 분기별로 서너 번을 넘지 않도록 신경 쓴다. 그러니 철야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짝 일하고 말 거라면 나를 활활 불태워도 될지 모르지만 가늘고 길게, 오랫동안 돈을 벌어야 하니 몸을 아끼고 사린다. 아주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일상을 감당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에 난 베개 자국이 오후까지 그대로인, 하루만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 버리면 그 여파가 일주일쯤 가는 나이인 것이다. 저기 잠깐만요, 눈물 좀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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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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