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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이한나 “겸손한 소리가 비올라의 매력”

중저음의 제왕이자 여왕인 비올라를 연주하는 칼라치 현악 4중주단·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의 비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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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악기를 닮고, 악기는 나중에 사람을 닮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높지 않은 소리,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중간 역할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 비하면 이지고잉하는 스타일이에요.

보통 현악기라고 하면 바이올린과 첼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높은 소리를 들려주고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이올린, 낮은 소리는 대개 첼로라고 답한다. 그들에게 비올라 소리를 들려주면 ‘비올라’라고 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바이올린도 아닌 것 같고, 첼로도 아닌 것 같은 이 악기는 뭐죠?’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그 물음은 분명 그 악기에 호감이 가기 때문에 생긴 것일 거다. 그럴 때 이한나가 연주하는 비올라 소리를 듣는다면 호감은 더욱더 상승하리라.


1985년생인 그녀는 예원중학교 졸업 후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했다. 2004년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로베르토 디아스를 사사했고, 2008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세계적인 비올리니스트 킴 카시카시안을 사사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며 실내악에서 튼튼한 경력을 쌓고 있는 그녀는 2016년 고인이 된 동갑내기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함께 칼라치 현악 4중주단과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올리스트 이한나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바쁜 연주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악기의 이름조차 모르는데 바쁘다고? 어불성설이라고? 아니다. 사람들이 그 소리를 한번 듣는다면, 바이올린도 첼로도 아닌 이 소리에 매료되어 찾고 또 찾기 때문이다. 수많은 연주로 “팔이 잘려나가는 줄 알았다”며 인터뷰를 시작한 그녀. 5월과 6월에는 몇 개의 연주가 있었느냐고 묻자, 신중하게 세다가 이내 곧 포기한다.   

 

20170612__비올라 이한나 (5).jpg

 

살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웃음) 


오늘의 인터뷰를 위해서???(웃음)

 

한나 씨가 생각하는 비올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편안한 소리. 바이올린처럼 높지도 않고, 첼로처럼 낮지도 않은 소리를 가졌죠. 그래서 애매한 소리이고 한데요.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놓은 따스한 물. 그래서 더욱더 부드럽고요. 여기까지가 비올라의 기본적인 매력입니다.

 

그럼 기본적인 매력 외에 다른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처럼 겸손한 소리가 비올라의 매력인 건 분명해요. 하지만 저는 바이올린보다 더 화려하거나, 첼로처럼 더 낮고 깊은 소리를 캐내기 위해서 노력해요.

 

누군가가 한나 씨의 비올라에서 첼로 소리가 났다고 하면 그건 비올라 소리가 아니기에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극찬이 아닐까요? 울림통은 작은데, 깊은 소리가 났다는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보통 바이올린을 전공하다가 비올라를 전공하는데요, 어떤 계기로 비올라를 전공하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우연한 기회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오순화 교수님을 뵙게 되었어요. 사람에게 매료되어, 저절로 악기를 잡게 되었죠.

 

어떤 점이 매력으로 느껴졌나요?


악기가 내는 편안한 소리가 교수님과 너무 닮은 거예요. 속으로 ‘나도 저 악기를 하면 저렇게 편안한 성격과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와 악기 소리가 통한다는 말을 딱 믿게 되었죠.

 

이 인터뷰에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연주자가 고심 끝에 추천한 ‘딱 한 곡’입니다. 비올라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한 곡만을 추천하다면?  


막스 브루흐(1838~1920)가 작곡한 비올라를 위한 ‘로망스’라는 곡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느껴지죠?(웃음)  

 

저도 그 곡 좋아해요. 최근에 브루흐의 숨은 명곡들을 재발견하고 있거든요. 보통 브루흐 하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많이들 떠올려요. 그런데 잘 연주되지 않는 2번과 3번을 들어보면 정말 이 사람의 멜로디는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성격이 이 ‘로망스’에도 잘 녹아 있더라고요. 
 

한편의 영화음악 같기도 하죠. ‘로망스’는 정말 좋더라고요. 진짜 로맨틱 그 자체에요.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독주로 넘어가는 부분들에서 비올라의 매력이 풍겨요. 편안하고 경계 없이. 저로서는 비올라와 브루흐, 그리고 저 자신을 재발견하는 기분이었어요.

 


막스 브루흐(1838~1920)가 살았던 19세기와 20세기는 고전적인 음악이 새롭고 혁신적인 현대음악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브루흐는 혁신적인 새로운 음악을 시도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는 낭만주의 전통에 충실한 서정적이고 온화한 그리고 풍부한 선율과 화성이 특징인 작풍으로 작곡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이 제대로 녹아 있는 곡이 비올라를 위한 ‘로망스’이다. 브루흐의 말년인 1911년에 작곡된 곡으로, 비올라 음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윽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관현악과 어우러지는 비올라의 노래는 굳건하며 우아하다. 솔직하면서도 섬세하고, 때로는 관능미도 우러난다.

 

이 곡을 들으면서 독자들이 우리의 인터뷰를 보면 좋겠네요.(웃음) 연주자들 사이에선 ‘비올라 연주자가 성격이 좋은 편이다’는 소문이 있는데, 정말인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은 악기를 닮고, 악기는 나중에 사람을 닮는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높지 않은 소리,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중간 역할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저 역시 다른 악기 연주자들에 비하면 이지고잉하는 스타일이에요.

 

아까는 튀고 싶다면서요? (웃음)


역할이 매번 달라져요.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독주가 나올 땐, 확실하게 받쳐주기도 해야 하죠.

 

20170612__비올라 이한나 (6).jpg

 

클래식 음악에는 종류가 다양한데 편의상 협주곡, 교향곡, 실내악으로 나눕니다. 제가 한나 씨를 자주 봤던 무대는 실내악 공연이 많았어요. 특히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공연이었죠.(스트링 콰르텟은 이한나와 장유진(바이올린), 심준호(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단으로 2012년에 창단 연주회를 했다. 2016년에 고인이 된 권혁주(바이올린)가 리더로 활발히 활동했다)


예원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실내악이 참 좋았어요.

 

보통 꿈 많은 사춘기 시절에는 화려한 독주자를 꿈꾸던데요.


저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다닐 때도 실내악이 좋았어요. 유학했던 미국 커티스 음악원도 실내악과 관현악을 중심에 두고 있었고요.

 

저는 실내악이라 하면 영화 ‘마지막 4중주’가 떠오르곤 해요. 수십 명의 음악가가 종사하는 교향악단에 비해 현악 연주자 4명이 만드는 인생은 작지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희망부터 절망까지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다 녹아 있잖아요. 실내악도 그런 것 같아요. 작은 음악이지만 그 안에는 음악의 드라마가 다 녹아 있어요.


맞아요. 작은 음악이에요. 하지만 좋은 연주자들과 만날 때 그 세계는 굉장히 커져요. 그래서 제가 실내악을 좋아하나 봐요. 비올라는 실내악에서 빛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관객들의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연주하면서도 저 스스로 감동을 할 때가 많아요.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음악을 하는구나!’ 하고요.

 

그럼 실내악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을 꼽는다면?  


브람스가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요.

 

비올라가 주인공인 곡을 꼽을 줄 알았는데요.


비올라에 주어진 멜로디가 많아서도 아니고, 그 선율이 화려해서도 아니에요. 비올라와 클라리넷의 소리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이 곡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만나서 만드는 컬러가 너무 좋습니다. 

 


브람스(1833~1897)가 1891년, 그의 나이 58세 때 작곡한 클라리넷 5중주는 클라리넷과 현악4중주(두 대의 바이올린ㆍ비올라ㆍ첼로)를 위한 곡이다. 모차르트(1756~1791)의 클라리넷 5중주 작품번호 581과 쌍벽을 이룬다. 4개의 악장 중 느린 2악장은 심장보다 늦게 흐르면서도 듣는 이의 심장을 빨리 뛰게 한다(이 영상의 13:46 시작). 만약 듣는 이가 ‘브람스표 고독’이나 ‘브람스표 애수’를 애호하거나 십분 이해한다면, 느리게 흐르는 선율은 지나간 추억의 문을 강하게 두드릴 것이다. 클라리넷의 주변으로는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만이 들린다. 비올라의 분량이 적어서가 아니다. 이한나의 말처럼 클라리넷과 비올라는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두 악기는 하나처럼 노래한다.  

 

이 외에 다른 곡을 꼽는다면 무엇이 또 있을까요?


레거(1873~1916)의 비올라 독주 모음곡 1번부터 3번까지요.

 


독일의 작곡가 막스 레거(1873~1916)의 무반주 비올라 모음곡 1번이다. 모음곡은 보통 ‘suite’라고 한다. 호텔에서 스위트룸(Suite room)은 몇 개의 방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공간을 뜻하는데, 음악에서 ‘suite’도 이처럼 몇 개의 곡이 만든 ‘모음곡’으로 번역된다. 막스 레거는 총 3곡의 무반주 비올라 모음곡을 작곡했다. 레거는 낭만주의 시대에 속하는 작곡가다.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형식은 낭만주의의 전 시대처럼 다분히 고전적이다. 그는 훌륭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오르간을 위한 다수의 곡을 작곡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종종 오르간의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독주 비올라를 위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풍부한 사운드가 느껴진다. 

 

비올라를 관두게 하고 싶게끔 만든 곡은 없었나요?

 

이 질문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없답니다.(웃음) 아! 이런 이야기를 해야 인터뷰가 좀 재밌게 되는데, 저는 정말 없었어요. 슬럼프 자체가 없었어요.

 

인생, 너무 ‘이지고잉’ 하는 것 아닙니까?


악기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한나 씨가 주력했던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혁주의 빈자리가 너무 커요. 보통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가 뭐였냐고 많이 묻잖아요.

 

 

베토벤(1770~1827)의 현악 4중주 작품번호 59-3 ‘라주모프스키’ 4악장. 화면의 왼쪽부터 권혁주와 장유진(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심준호(첼로). 베토벤은 16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들이 오늘날 중요시되는 이유는 양이 질을 압도해서가 아니다. 그 작업 기간이 일생에 걸쳐 있어 전기ㆍ중기ㆍ후기로 나눠 분류되곤 하는데, 각 시기마다 베토벤이 처했던 시간과 생각의 변화가 잘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현악 4중주로 쓴 자서전이라고 할까. ‘라주모프스키’는 중기(1806~1910)의 작품으로 오스트리아 빈에 주재한 러시아 대사 안드레이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이름을 딴 것이다.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하며 현악 4중주를 즐겼던 백작은 베토벤에게 러시아 선율이 녹아든 4중주곡을 의뢰했다. 4악장은 4개의 악장 중 긴박감 넘친다.

 

네. 저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요.


그럼 칼라치의 이름으로 한 모든 공연이라고 답해요.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이라는 이름으로 정말 많은 공연을 하여 잘 기억도 나지 않아요. 작년 6월 23일에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와 야나체크, 러시아 보로딘의 곡을 연주한 게 마지막이 되었죠. 고인이 된 혁주의 자리를 대신하여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의 베토벤 현악 4중주 시리즈를 진행하고 완성할 예정이에요.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베토벤의 음악적 흐름과 발자취를 잘 그려내고 있어 베토벤 음악을 담은 작은 우주에 비유된다.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은 권혁주의 부재를 대신해 오랜 음악적 동료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7월20일) , 조진주(8월31일) , 강수연(12월28일) 과 함께 무대(금호아트홀)에 오른다. 그리고 여름 휴가는 강원도 평창으로 떠나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에 모인 세계 각국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의 향연을 펼친다. 그녀의 비올라  소리는 차분하고 무게 있지만, 그 소리를 다리 삼아 관객과 만나기 위한 그녀의 열정은 바이올린보다 높고, 첼로보다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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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현민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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