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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 음악가를 빛나게 해주는 무대 뒤 존재

공연기획사 MOC Production 대표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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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음악가에게 반하는 순간이 필요해요.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말이죠. 매니저와 아티스트가 서로 미워하는 관계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음악가에게 홀딱 반해있지 않으면,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둘의 관계는 약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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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은 공연기획자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하루에 전화, 카톡, 문자, 메일을 몇 통 정도 받나요?”라는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그녀의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선거일의 휴식은 어떻게 보냈나요?


투표는 일하러 간 곳에 우연히 사전 투표장이 있길래 그곳에서 사전투표로 했어요. 선거일 당일에는 리허설 하나, 공연 두 개, 인터뷰 한 개가 있었어요. 그러고서 밤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내가 이대로 자도 되는가’라는 뭔지 모를 자책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바쁜 것이 곧 연주자들이 잘되고 있다는 것이죠. 개인으로서의 삶은 거의 없어요. (웃음)

 

이샘은 정말 바쁜 공연 기획자다. 그녀가 2007년에 설립한 공연기획사 MOC Production(목프로덕션 http://mocproduction.com)에는 22명의 음악가가 소속되어 있다. 현악 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과 피아노 3중주단 제이드 트리오, 서울시향 부지휘자 최수열, 한국인 최초로 방돔 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유럽의 교향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르니스트 김홍박, 플루티스트 김유빈,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 등. 이른바 멋진 청년들로 이뤄진 스타 군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프로덕션의 간판 스타 노부스 콰르텟의 공연 영상(김재영ㆍ김영욱(바이올린), 이승원(비올라), 문웅휘(첼로)) 

 

이샘은 부지런히 이들이 설 무대를 만든다. 뒤에서 조용히. 그래서 그녀가 이번에 출간한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이라는 책의 제목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넌지시 이해가 갔다. 이 책에는 이샘의 10년과 목프로덕션의 10년, 그리고 22명의 음악가가 발전시켜온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10년이 담겨 있다.


책을 출간한 뒤 여러 인터뷰 섭외를 받으셨다고요.


이런 관심을 통하여 저보단 목프로덕션의 연주자들에게 관심이 간다면 저야 정말 좋은 거죠. 원래 제작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인데...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게 과연 우리 연주자들에게 득일까, 라는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Masters of the Classics’의 약자로 만든 ‘MOC’ 프로덕션이 올해 10년을 맞았습니다. 이름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렇게 질문받을 만큼 심사숙고하여 지은 게 아니에요.(웃음) 말 그대로 ‘프로덕션’이라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저는 ‘대표’라는 직책보다 ‘프로듀서’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오려고 했어요. 그래서 PD라는 직함을 멋있게 얻기 위해 프로덕션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이에요.


피디? 그게 왜 멋있었나요?


단돈 만 원을 걸었더라도, 승패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건 제작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공연 영상(최수열 지휘, 서울시향)

 

공연 기획은 연애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환승’과 ‘환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승무원에서 기획자로의 변신. 그것은 ‘환승’이었다. 그리고 음악이 있는 새로운 인생. 그것은 환생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다가 승무원에서 기획자로 ‘환승’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MOC 프로덕션 창립 10주년,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의 출간에 관한 최근 쏟아진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 의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책 제목대로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이 잘 소통되지 않았을 때의 힘겨움을 듣고 싶었다.

 

좋은 연주자를 영입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헤드헌터’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요? 이렇게 비유해서 죄송합니다만, 일종의 ‘사냥’이 되지 않을 땐 속상하기도 하죠?


헤드헌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가 더 중요해요.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보다 그들이 목프로덕션에 머무르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딱 한번 제안을 거절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면 저는 모든 일에 더 조심스러워져요. 저는 심약한 민간인인가 봐요.(웃음)


섭외를 어떻게 합니까?


저만의 방식이 있어요. 좀 특이한 수순이랄까요? 먼저, 음악가에게 반하는 순간이 필요해요. 음악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말이죠. 매니저와 아티스트가 서로 미워하는 관계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음악가에게 홀딱 반해있지 않으면,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러한 순간이 왔을 때 둘의 관계는 약해지거든요. 저는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할 때,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생각뿐이에요. ‘아! 이 사람이 아니면 죽겠다!’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닙니까? 너무 뜨거운데요. 하하.


그래서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눈이 돌아간다는 표현도 맞죠. 오랫동안 만나보고, 지켜보고, 기획자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설레는 마음을 지닌 팬으로 시작합니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그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해주고요. 이 과정이 확신을 만들어주고, 확신이 서면 용기를 냅니다.


연주자들의 조언이 감언이설이거나 혹은 혹평일 텐데요.


그래서 더 중요하죠. 저는 무대에 있는 그의 단편적인 모습밖에 보지 못해요. 하지만 음악가들은 수학 과정에서 같은 학교에 다녔거나, 함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받은 인상과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느낌이 미처 제가 생각지 못하거나 보지 못했던 것을 채워주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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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원하는 연주자들 모두와 함께할 수는 없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때로는 제 마음이 커질까 봐 참을 때도 있어요.


혹시 연애에 비유해도 되겠습니까?


연애랑 똑같죠. 저의 우주가 그 연주자를 중심으로 돌아가거든요. 그래서 중간에 서로 어긋나면 업무적 ‘계약 해지’ 정도가 아닌 ‘이혼’의 상실감과 고통에 가까운 아픔을 겪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 바닥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만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혼 경력’을 지닌 이들이었죠. 엄청 가슴이 아프다는 거예요.


후유증도 엄청나겠네요.


“아티스트와 헤어지면??? 함께 만들어 온 경력과 시간은 온전히 음악가 자신의 커리어가 됩니다. 하지만 기획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요. 그들은 자신의 경력을 말할 때, ‘어떤 공연을 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어느 기획사가 주최한 무슨 무슨 공연을 했습니다’라곤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함께했지만, 그 시간이 통째로 사라지는, 정말 놀라운 경험을 겪게 됩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통째로 사라지는 정말 ‘특별한 고통’이라고나 할까요?  


때로 음악가들과 인터뷰할 때, 위대한 음악가는 만들어지는지, 아니면 태어나는지를 묻곤 해요. 그래서 물어볼게요. 공연 기획자는 태어나나요? 만들어지나요?


육성된다기보다는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품과 자세와 관련이 있거든요. 타인의 힘겨움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타인을 항상 배려하는 성품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준비된 자세와 그것을 유지하려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필요해요.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도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잖아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An Die Musik(음악에)’ 공연 영상(연주 제이드 트리오. 이효주(피아노), 박지윤(바이올린), 이정란(첼로))


나의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승무원 생활을 하다가 공연기획사에 들어갔습니다.


서른 넘어 입사한 저는 회사가 요구하는 자격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한마디로 결격 사유의 집합체였어요. 입사 후 주위를 둘러보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이 분야에 대한 경력과 배경은 제일 없었죠.


좋습니다. 원하던 답변이었어요. 주위에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자신만의 공연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맞아요. 관심 있는 청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럼 그들에게 ‘용기’를 한번 주시죠.


공연기획자는 정말 멋진 일입니다. 대신 일에 대한 보상과 만족도의 기준이 수입에 있다든지, 자신이 돋보이고 싶어 한다면 이 일 절대 못 해요. 제 책에 이런 이야기를 썼어요. ‘우리는 무대의 주연도, 조연도, 그렇다고 카메오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이상적이다.’ 공연의 영광은 아티스트한테 돌아가야 하고, 그 지분을 주장할 수는 없는 직업이거든요. 그러면서도 측은지심으로 일해야 해요. 뭐가 더 부족한 건 없나? 늘 안쓰러워 보여서 더 챙겨주고 도와주어야 하거든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내 인생과 지구가 돌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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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공연기획자가 쓴 현장 업무 매뉴얼 같은 책은 틈틈이 출간되었는데, 이런 에세이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많은 연주자에겐 어떤 부끄러움을 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왜냐하면 ‘당신의 무대는 당신이 잘 나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렇게 뒤에서 수고하는 사람이 있어서 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편, 이 직업에 대한 로망에 부푼 후배 기획자들에게는 일종의 경고장 같다는 생각이??? 왜냐하면 ‘이 길 이렇게 험난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 책의 독자가 누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집필했나요?


회사에 막내 직원이 입사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뭐가 제일 기대되니?’라고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제 음악가를 갖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굉장히 궁금해요’라고 답하더군요. 저와 같은 부류의 아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죠. 뭔가 제가 살아온 시간을 이 친구한테 이입시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가 커질 때였고, 직원과 아티스트들 모두가 정신없이 바빠질 때였어요. 결국 그 직원을 앉혀놓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시간조차도 없는 거였어요. 다만 아티스트와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좌절, 공연 기획자로서 느끼는 외로움, 감정의 다양한 변주들... 제가 겪은 이런 일들로부터 그 후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그러한 시간 속에서 이 친구가 다만 덜 외로웠으면 하는 바램뿐이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한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칼럼을 연재했어요. 업무 매뉴얼이 아니라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힘들었던 감정을 담았어요. 그러면서 그 글들이 어느 정도 쌓였고 자연스레 책으로 묶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 책이 이 길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혹은 이 분야에 첫발을 디딘 이들에게, 혹은 사회에서 자신만의 지분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그리고 굳은살이 덜 박인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렇게 들어보니, 이 책을 읽어본 음악가들이 뜨끔할 것이라는 질문은 빼야겠네요.


부디 음악가들이 제 책을 읽으시면서 불편한 느낌을 느끼지 않길 바래요. 제가 좌절감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것은 그들의 인격이 덜 형성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가와 기획자가 각각 바라보는 지점이 다른 것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저는 음악가들이 제 책을 읽고 본인들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티스트는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정말 놀라운 존재가 되기도 해요. 제 생각은 이래요. 신과 사람, 그 사이의 존재가 예술가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 공연 영상(선우예권(피아노))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은 총 26개의 글로 되어 있습니다. ‘나의 연락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행복을 선택해줘서 고마워’ ‘달팽이를 그리는 시간’ ‘안녕, 무대 뒤의 유령’ 등의 독특한 제목으로 되어 있네요. 여러 내용 중 애착이 가는 글이 있을 텐데요.


책의 첫 부분은 좀 우울하고요. (웃음) 뒤로 갈수록 소소한 에피소드들이에요. 저는 ‘넘순이의 추억’이 좋아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담았거든요. 피아니스트 공연이었는데, 제가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줘야 하는 ‘넘순이’로 무대에 오른 거였어요.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다는 경험. 무엇보다 연주자의 힘을 받은 악기가 바로 제 앞에서 울리는 순간은 마치 음악을 얼굴에 끼얹는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였죠.


여러 제목 중에 ‘내 인생의 마지막 연애’가 눈에 띄는데요, 정말 연애 얘기인가요?


제가 한 연주자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극성을 부린 얘기에요. (웃음) 그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체크하며 붙어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건 미친 상태였어요.(웃음) 이 일은 애정과 관심의 균형 분배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오죽했으면 그와 약속된 모든 연주가 다 끝났을 때, 저는 ‘계엄령 해지’라는 말을 썼어요. 그런데 그때, ‘아??? 나는 이 순간이 그리울 것이겠구나. 숨도 못 쉴 만큼 내가 이 친구를 사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헤어지는 얘기에요. ‘세상의 전부’라는 표현은 그럴 때 쓰는 거더군요.

 

목프로덕션은 5월 13일에 선보인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지금까지 함께 해온 여러 음악가와 주위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보답했다. 공연 제목도 ‘생큐(Thank You)’였다. 그리고 7월, 8월, 10월, 12월에도 한국의 클래식음악계를 수놓을 굵은 공연들이 이어진다. 홈페이지(http://mocproduction.com)에 들어가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 도중에 그녀가 “신과 사람, 그사이의 존재가 예술가”라고 했을 때,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야말로 신과 사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이를 만들어내는 이가 아닌가! 정말 멋있는 표현이면서도, 뭐랄까? 이 말은 다만 멋으로만 끝낼 수 없는, 그녀만의 경영철학이자 예술관이며, 인생의 목표이자 자신만의 이념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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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현민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너의 뒤에서 건네는 말

<이샘> 저13,300원(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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