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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의 교훈

명의(名醫)요? 그런 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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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첫째, 환상적인 것을 찾지 마세요. 환상적인 것들이 뭘까요? 예를 들면 자연치유, 해독, 면역강화, 명의(名醫)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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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키’라는 육아 카페가 말썽입니다. ‘안아키’란 ‘약을 안 쓰고 아이를 키운다’는 뜻입니다. 소위 ‘자연주의 육아’를 표방하는 모임입니다. 되도록 약을 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아기를 키우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주장이 황당합니다. 열이 날 때 해열제를 쓰면 면역이 저하된다든지, 피부는 호흡을 하는데 로션을 발라 호흡을 못하게 하면 폐가 나빠진다든지, 아토피는 피부에 열이 쌓여 생기는데 긁어서 큰 상처가 나면 열이 빠지므로 많이 긁게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거를 따지기 전에 말문이 막힐 정도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치료법에 따랐다가 문제가 생긴 사람들의 불만이 줄을 잇자 마침내 고발과 카페 폐쇄를 거쳐 이제 사법적인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놀라운 것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카페 회원이 6만 명을 헤아렸다는 겁니다.

 

저는 1년 전쯤 과학 잡지 <Skeptic 스켑틱>의 요청을 받아 안아키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 안아키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자 <Skeptic 스켑틱>에서는 글을 완전히 공개했습니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바로 알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딴지일보>에도 글을 전재했습니다(//www.ddanzi.com/ddanziNews/185397536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항상 그렇듯 읽기가 괴로울 정도로 오해와 오독, 편견에 가득 찬 글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읽어보았습니다. 제 글을 변호하거나 합리화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글들을 통해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마침내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때까지 지속된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이 사태를 나름대로 진단한 글도 챙겨 읽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과학에 대한 불신입니다.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정부)에 대한 불신, 자본에 대한 불신, 의사에 대한 불신 등도 딱히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한데 엉켜 있는 것 같습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탐욕,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지 못한 정부, 약장사와 별 다를 바 없는 의사도 많다는 등의 예를 들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백 번 동감입니다. 나쁜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데 과학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은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과학기술을 이용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을 옹호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의료에 있어 과학적인 판단을 하자는 말은 ‘검증된 것만 믿자’는 말과 비슷합니다. 인간은 상상력이 풍부하지요. 별 생각을 다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 신장은 강낭콩처럼 생겼으니 콩을 먹으면 신장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기를 합니다. 로켓을 태양계 밖으로 쏘아 보내는 시대에도 이렇게 직관적인 생각은 힘이 셉니다. 우리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믿는 동물이거든요. 그 말을 들은 사람 중에 정말 믿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이제 그 사람들까지 목소리를 합쳐 콩을 먹으면 신장에 좋다고 외칩니다. 그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은 반신반의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이 똑같은 얘기를 하니 믿게 됩니다. 이렇게 누군가의 생각이 그럴듯하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더라도 검증해보자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배가 아픈데 누가 지나가다 약을 준다면 의심 없이 그냥 먹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게 무슨 약인지 정도는 ‘검증’해보고 먹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의할 게 있습니다. 과학은 자신이 없어 하고, 말을 자주 바꿉니다. 우리는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자신의 주장을 초지일관하는 사람을 믿습니다. ‘이럴 가능성도 있지만 저럴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것 같지만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은 어딘지 켕기거나 비겁하게 발을 빼는 것처럼 들립니다. 한때는 폐경 후에 여성호르몬을 써야 한다더니, 몇 년 지나자 여성호르몬을 쓰면 암이 생기니 쓰지 말라고 하고, 또 얼마 후에는 복잡한 조건들을 달면서 이런 경우에는 써도 된다고 합니다. 의사들도 헷갈린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그런데요, 사실은 이게 과학의 힘입니다. 과학은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기존의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꿉니다. 진정한 권위를 위해 권위를 버리는 겁니다. 과학은 권위를 위해 진리를 희생하지 않습니다. 신의 권위를 위해 천체의 운동에 눈을 감지 않습니다.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이는 것이 과학입니다. 물론 조사와 달마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과학도 모르는 게 많지 않느냐구요? 물론입니다. 과학의 멋진 점은 모르면 모른다고 한다는 겁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로션을 바르면 폐가 나빠진다는 둥, 피부에 열이 쌓인다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을 너무 자주 바꾸니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과학이 그렇게 자주 말을 바꾸는 건 아닙니다. 언론이나 매체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아무런 기준 없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겁니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들을 듣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정보들이 쏟아집니다. 이런 정보는 수십 차례 검증된 끝에 마침내 옳다고 인정되면 그때부터 원칙이 됩니다. 우리는 원칙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원칙이 아닌 일차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솔직히 전문가들도 헷갈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이런 정보들을 찾아봅니다. 그냥 찾아보는 게 아니라 어떤 선입견을 갖고 찾아봅니다. 예를 들어, ‘약은 나쁘다’든지, ‘백신은 음모다’, ‘전통적, 자연적인 것이라야 해’ 같은 생각입니다. 객관적으로 봐도(진정 객관적일 수 있는지 하는 논의는 뺍시다) 어려울 텐데 구미에 맞는 정보만 찾는 거죠. 인터넷에는 너무나 정보가 많아 자기의 구미에 맞는 정보를 항상 찾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찾아 올바른 방향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편향을 강화시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요? 세 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첫째, 환상적인 것을 찾지 마세요. 환상적인 것들이 뭘까요? 예를 들면 자연치유, 해독, 면역강화, 명의(名醫) 같은 겁니다. 우리는 너무 자연과 멀어져 있고, 온갖 독성물질에 둘러싸여 있으며, 자꾸 시들시들 아픈 것이 면역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 저런 단어들을 써서 ‘마케팅’하는 겁니다. 저런 말을 쓰면 일단 피하세요. 의사도 마찬가지, 한의사도 마찬가지, 약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장사를 하려는 겁니다. 명의(名醫)요? 그런 거 없습니다. 어른은 잘 모르지만 어린이는 그냥 책에 나온 대로 원칙에 따라 치료하면 다 잘 낫습니다. 잘 안 낫는 병은 원래 그런 겁니다. 명의를 찾아가도 잘 안 낫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우리 편이란 걸 기억하세요. 어린이들의 병은 거의 대부분 자라면서 좋아집니다. 큰 병이 아니란 것만 확인한 뒤에는 기다려도 됩니다. 해열제를 안 먹이고 키워서, 발효식품을 먹여서, 해독을 정기적으로 해줘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집니다.

 

둘째, 너무 완벽하게 키우려고 하지 마세요. 과학이 인간에 대해 밝혀낸 것 중 가장 확실한 것은 ‘모든 인간은 다르다’는 것과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입니다. A를 해준다고 반드시 B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뭐가 좋다고 언론에 보도되면 급히 쫓아갈 필요 없습니다. 언론은 클릭 수에 목을 맬 뿐 그 사실이 옳은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조금 느리게, 조금 고지식하게 키우세요. 음식 골고루 먹고, 많이 뛰어 놀고, 밤에 잘 자면 됩니다.

 

셋째, 옳은 것에 너무 매달리지 마세요. 언제부터인지 우린 옳은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버릇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물론 정의롭게 사는 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옳다는 것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맥락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게 우선되지 않으면 모든 일이 꼬투리잡기나 비난하기로 끝날 수 있습니다. 갈등만 생기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죠. 안아키에 대한 이야기 중 많은 분들이 ‘의사에게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해서 안아키 같은 말에 귀를 기울이기 쉬운 환경’을 지적합니다. 공감합니다. 그런 면이 있지요. 그런데 일단 의사들은 형편 없는 인간들이라고 친다 해도 그게 그렇게 황당한 말을 믿을 이유가 되나요? 그런 말은 마치 의사들이 부도덕하니 징벌 삼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황당함으로 꾹 참고 그 대척점으로 간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찾아보면 안아키보다 훨씬 좋은 자료도 많은데 말입니다. 안아키가 문제가 되니까 이번에는 그 원칙에 따랐던 엄마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 분들이 최대 피해자인데 이제 욕까지 먹고 있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이럴 때는 옳고 그름을 조금 있다가 가리면 어떨까요?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고를 때는 옳은 고양이를 고를 게 아니라, 쥐를 잘 잡는 고양이를 고르면 됩니다. 의료의 문제에 있어서는 누가 옳은지 따지기보다는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치료를 받을 궁리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왜 그 모양일까요? 말이 나온 김에 다음 편에는 의사들에 대해 좀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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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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