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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에게 묻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열쇠는 ‘비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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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을 통해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혼의 양면성과, 특권이 지닌 복잡한 성질, 슬픔이 지닌 어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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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 촬영컷 ⓒGON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읽은 2015년 최고의 책으로 뽑아 화제가 된 로런 그로프의 최신작 『운명과 분노이 국내 출간됐다. 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로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 “산문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로런 그로프. 그는 『운명과 분노의 두 주인공 로토와 마틸드의 20여 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통해 사랑과 예술, 거짓과 진실,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북칼럼니스트 이다혜는 『운명과 분노을 읽고 “하나의 건축물을 축조한 뒤 허물어가는 것과 같이 쓴 쓴 작품”이라 생각했다. “결국 말의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다혜 기자의 말에 작가는 동의했을까. 이다혜 기자가 서면으로 로런 그로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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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 Groff (c) Megan Brown

 

결혼의 양면성과, 특권이 지닌 복잡한 성질, 슬픔이 지닌 어려움


『운명과 분노라는 제목(책 제목이기도 하고 ‘운명’과 ‘분노’는 챕터 제목이기도 하다)은 언제 지었나?

 

제목을 생각해내는 데 장장 몇 년이 걸렸다. 아주 오랫동안 이 작품의 가제는 ‘그의 것과 그녀의 것His and Hers’이었고 소설은 사실상 두 편으로 된 별개의 작품이었다. 나는 보통 책 한 권을 완성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작품과 관계없어 보이는 주제나 분야와 자주 사랑에 빠지곤 한다. 많은 경우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관심사들은 결국 내가 당시에 쓰고 있는 작품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운명과 분노를 쓰는 동안에는 그리스 희곡과 신화, 그리고 셰익스피어에 열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의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는 알지 못했다. 이러한 일은 집필 과정에서 매번 일어난다. 글쓰기의 마법 같고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혹은 당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는? 『운명과 분노를 그리스 고전에 비유하는 미국의 서평들을 읽었는데, 실제로 『일리아드』를 비롯한 고전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나? 영향을 받았다면, 고전적 이야기의 어떤 부분을 현대 소설로 가지고 오고 싶었는지?

 

좋아하는 작가는 너무 많아서 여기에 모두 열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 중 몇 명만 거명하자면, 안톤 체호프, 조지 엘리엇, 로런스 스턴, 버지니아 울프, 앤 카슨, 토니 모리슨, 존 밀턴, 레프 톨스토이, 토마스 만 등이다. 또한 당연히 호머에게 영향을 받았다. 나는 일 년을 그리스 희곡과 신화에 빠져 관련 책들을 최대한 많이 읽으면서 보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저 그 이야기들의 야만성과 장엄함을 사랑했다. 내가 끌렸던 부분은 시간대가 다양하고 다층적인 그리스 고전의 스토리텔링 형식이었던 것 같다. 현대의 내러티브는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들에 집중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여러 시간대가 동시에 펼쳐진다. 신들이 속한 거대한 시간대가 있고, 그들에 비하면 작고 거의 장난감 같은 존재인 유한한 인간의 시간대, 그리고 그 신화를 듣고 읽는 사람의 시간대가 있다. 시간을 다루는 데 있어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고, 나의 작품에도 그것을 반영하고 싶었다.

 

‘운명’ 파트와 ‘분노’ 파트의 속도감과 톤이 다르다. 대비되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긴밀하게 묶어 담아내는 과정을 어떻게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한 편을 다 쓰고 다음으로 넘어갔는지, 두 이야기를 오가면서 작업했는지?


두 이야기는 몇 년에 걸쳐 동시에 쓴 것이다. 여러 수정 원고를 거치면서 나는 늘 현재 쓰고 있는 원고를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이것이 사소한 디테일에 빠져 인물과 구조와 소설의 틀을 잡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후에 마침내 문장의 조화와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고려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색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로토의 세상은 그가 자란 플로리다처럼 금빛, 오렌지빛, 초록빛 세상이고 따라서 그의 문장들 역시 금색, 초록색이며 호흡이 길어야 했다. 마틸드의 세상은 라벤더색이 옅게 깔린 보랏빛 회색이고, 문장 구조 역시 그 색깔이 주는 심상으로부터 풀려나왔다.

 

『운명과 분노는 입체적인 인물을 다룬 다층적 소설이다. 소설 도입부에서 해변의 연인을 묘사하는 장면은 너무나 생생해서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떤 부분은 무대 위에 올려진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처음 구상 단계에서 구성과 내용, 캐릭터 중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필했나?

 

이런. 나는 나의 일이, 그러니까 책을 쓰는 일의 많은 부분이, 매우 의식적으로 이런 분석적인 질문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소설을 통해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혼의 양면성과, 특권이 지닌 복잡한 성질, 슬픔이 지닌 어려움이었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기를 극적이게, 다채로운 색깔과 섹스로 가득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이야기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을 내가 터득할 때까지, 이야기와 캐릭터의 어두운 구석을 더듬으며 나아가야 했다. 결국에는 그저 이야기가 알아서 원하는 방식으로 풀리도록 내버려두었다.

 

결국 말의 무용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나 자신을, 타인과의 관계를 언어로 조직한 서사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환상이며 철저하게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운명과 분노는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가 가진 한계가 역설적으로 언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의사소통의 매개인가를 증명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어가 소통의 도구임과 동시에 소외의 도구라는 역설보다 더 골치 아프고, 더 매혹적인 역설은 세상에 없다. 그것은 아킬레스와 거북의 경주를 다룬 제논의 역설과 비슷하다. 우리가 진실과 소통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할수록 기의(記意)와 기표(記標), 즉 의미와 메시지 사이에는 더 견고한 간극이 버티고 선다. 때때로, 특히 나의 아이들이 무언가 자신들에게 절실한 것을 말하려 노력하다가 실패할 때, 나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해지는 내용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절실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 결혼 같은 말은 보통 두 사람이 삶이든 애정이든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환상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 자기의 사랑을 하고,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해도 상대가 이 관계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완전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이것은 어쩌면 소설가와 독자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쓴 글과 읽는 글은 같지만, 모두가 완전히 같은 세계에서 같은 풍경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즉 우리는 각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재창조한다. 한 가지 일에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지?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버전의 진실이 있어서 그중 몇 가지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현대문학의 내러티브에 깔려 있는 표준적인 생각-모든 인물과 독자가 동의하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나는 결국 마틸드가 동등한 가능성을 지닌 두 가지 상충하는 진실-어린 동생을 계단 아래로 밀었다는 것과 밀지 않았다는 것-을 평생 품고 살아갔다는 사실이 좋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진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그 일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가능성이다. 그녀는 뼛속까지 악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이 그저 사고였다면, 그녀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을까? 그녀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그녀는 내면에 두 가지 상충하는 진실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그녀에게 평생을 품고 살아갈 고통과 분노를 주었다.

 

『운명과 분노는 하나의 건축물을 축조한 뒤 허물어가는 것과 같이 쓰였다. ‘분노’ 파트가 시작되면 그 지점까지 쌓여왔던 것들이 모두 무너지기 시작한다. ‘운명’을 마무리하고 ‘분노’로 넘어가는 시점을 어떻게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마틸드가 로토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원고를 쓸 때부터 로토의 이야기에서 쌓인 것들이 마틸드의 이야기에서 차례로 무너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나는 이 소설이 ‘표준적인’ 남성의 시선이 새로운 여성의 시선으로 붕괴되는 이야기라고 본다. 전통적인 이야기에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자율성을 누리는 인물이 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세계의 ‘운명’을 조직하는 일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해온 것이다. 역사는 남성에 의해 쓰였고, 그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대상화되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 책의 ‘분노’ 파트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당신이 여성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방식 때문이다. 남성들에 의해 ‘말해지는’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특히 분노를 숨김없이 표출하는 ‘살아 있는’ 여자를 그리기 때문이다. 마틸드의 이야기를 쓰면서 떠올렸던 작가나 실존인물이 있는지?

 

마틸드라는 캐릭터는 스테이시 시프가 쓴 베라 나보코프(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아내)의 훌륭한 전기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베라 나보코프는 매우 비상하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남편의 빛 뒤에 자신의 빛을 숨겼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또한 문학사에 흔치 않은 여성 캐릭터, 강하고 분노에 차 있으면서도 끝내 자멸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문학사를 보면, 엠마 보바리는 독약을 마시고 안나 카레니나는 기차에 뛰어들고 메데이아는 자기 아이들을 죽이고 줄리엣과 오필리아와 맥베스 부인은 자살한다. 물론 나는 이 위대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여성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내지 못한 남성 작가들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운명과 분노를 수정하면서 가장 많이 손을 본 부분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구조와 문장, 캐릭터 중 어느 쪽이 마지막까지 당신을 괴롭혔는가?

 

정말이지 나의 퇴고 과정은 비정상적일 만큼 비효율적이다. 전체 원고를 (언제나 손으로) 끝까지 쓴 다음, 그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 『『운명과 분노의 경우에는 세부적인 문장을 들여다봐도 될 만큼 구조와 캐릭터가 만족스러워질 때까지 이 과정을 대략 열두 번 반복했다. 당연히 시간이 가장 오랜 걸린 것은 구조다. 아주 오래, 몇 년이 걸렸다! 처음에 나는 순서에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별개 소설 두 편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집필 과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계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 오로지 언어만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낼 때다.

 

사랑이라는 신화를 당신은 믿는가?

 

나는 사랑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다. 그러나 사랑을 둘러싼 신화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 위에 덧붙여진 그 모든 소용돌이와 소음과 색깔 때문에 그 속을 뚫고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오롯이 보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당연시하지 않도록 사랑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시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구상 중이거나 집필 중인 작품이 있는가? 어떤 내용인지 살짝 소개해줄 수 있는지.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너무 어리고 연약한 단계라 현시점에서 이야기를 하면 시들어버릴 것 같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난 12월에 12년 동안 붙잡고 있던 원고 하나를 마침내 완성했고, 즉각 불속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그 책을 쓰는 것은 정말로 행복했지만, 세상에 존재할 필요는 없는 책이었다.

 

한국 독자들은 『운명과 분노를 통해 당신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데,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 새로운 독자를 갖게 되어 정말로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독자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책은 절반만 완성된 것이다. 내 책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적이고 열정적인 독자들을 통해 온전히 완성되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정말 굉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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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roff_cleared for international use_credit to Lucy Schaeffer

 

로런 그로프:

1978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났다. 애머스트 칼리지에서 불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 캠퍼스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첫 장편소설 『템플턴의 괴물들The Monsters of Templeton』을 발표했다. 이 작품이 아마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오렌지 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9년 소설집 『섬세한 식용 새들Delicate Edible Birds』을 출간했다. 2012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 『아르카디아Arcadia』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미국 문학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 작품은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살롱닷컴의 설문에서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 세 번째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를 발표했다. 아마존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1위’에 오른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상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운명과 분노로런 그로프 저/정연희 역 | 문학동네
폭발적인 서사,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술로 “동시대 가장 뛰어난 미국 작가 중 한 명” “산문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그러나 아직 국내 독자에게는 그 이름이 낯선 로런 그로프가 자신의 최신작이자 대표작인 『운명과 분노』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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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다혜(북칼럼니스트, 씨네21 기자)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저/<정연희> 역14,8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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