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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의 입문

『침묵의 예술』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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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감정이 지속된다는 징조였다. 금세라도 꺼질 듯한 병자의 생명,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 무덤의 존재는 오늘날에는 그저 앙금에 지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침묵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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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단순히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간 우리는 침묵을 거의 잊고 살았다. 소리로 들리는 단서는 서서히 속성이 변질되고 약해지며 신성함이 사라진다. 하지만 침묵이 자아내는 두려움과 공포는 한층 강렬해진다.


옛사람들은 침묵의 그윽함과 흥취를 음미할 줄 알았다. 그들은 침묵을 묵상이나 몽상에 잠기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색하거나 기도하고,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조건이라 여겼다. 무엇보다도 말이 소리로 나오기 전에 명료하게 모습을 갖추는 내면의 장소라 여겼다. 옛사람들은 침묵의 사회적 전략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를테면 그림은 침묵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장소의 내밀함, 집은 물론이고 방과 방 안 사물들의 아늑함은 침묵으로 짜여 있다. 18세기 들어 감수성이 예민해지면서 숭고미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사막의 헤아릴 수 없는 침묵을 감상했고 산과 바다, 들판의 침묵에 귀 기울였다. 침묵은 연인의 뜨거운 만남을 증명하며 결합의 조건으로 여겨졌다. 침묵은 감정이 지속된다는 징조였다. 금세라도 꺼질 듯한 병자의 생명,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 무덤의 존재는 오늘날에는 그저 앙금에 지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침묵을 불러왔다.


진정한 미학적 탐색을 떠났던 작가들의 글에 빠져드는 일보다 침묵을 느끼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것을 읽노라면 저마다 자신의 감수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야기는 나서서 설명할 때가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감정의 세계에 접근할 때면 이야기 또한 무엇보다도 강렬한 감정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더구나 정신세계가 사라졌을 때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의미심장한 문장이 꼭 필요하다. 글만이 옛사람들이 침묵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요즘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위로해주는 내면의 말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는 뭔가를 침묵하게 하기가 좀체 쉽지 않다. 사회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소음에 순응하여 전체의 일부가 되라고 명령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체질조차 바뀌게 된다. 물론 몇몇 고독한 여행자, 예술가와 작가, 명상가, 수도원으로 떠난 사람, 묘지를 찾은 여인, 특히 서로 그윽이 바라보는 연인은 침묵을 추구하기에 침묵의 밀도에 예민하다. 그러나 그들은 흡사 버려진 어느 섬의 황량한 기슭에 좌초된 나그네 같다. 정작 중요한 사실은 흔히 생각하듯 도시 공간에 떠다니는 강렬한 소음을 강조하는 일이 아니다. 물론 소음의 데시벨을 분석하는 활동가, 입법자, 위생학자, 기술자들 덕분에 도시의 소음은 19세기만큼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혁신의 본질은 하이퍼미디어, 끊이지 않는 접속으로 개개인을 현혹해 침묵을 두렵게 하는 끝없는 말의 흐름에 있다.


이 책에서 과거의 침묵을 환기하는 이유는 침묵의 탐색, 밀도, 준수, 전략, 풍요로움과 더불어 말의 힘에 있는 양상이 침묵하는 방법, 즉 나 자신이 되는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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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알랭 코르뱅

침묵의 예술

<알랭 코르뱅> 저/<문신원> 역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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