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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 속에 나는

꿈꾸고 난 다음 날
이유의 첫 번째 소설집 『커트』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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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오늘은 꼭 악몽을 꿀 것만 같아서, 피곤이 나를 짓누르지만 잠들기 싫은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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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_pixabay

 

구태여 꿈을 꾸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지금 이 시간들이 내겐 ‘버틴다’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그런 날, 꿈에서까지 버티고 있는 나를 보게 될까 지레 겁을 먹는 게다. 그 날의 기분이나 감정들이 꿈에서 잘 나타나는 편인 나는, 꿈이 현실과 뒤섞이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꽤나 자주 마주한다.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라는 것은, 대개 무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거나, 누구에 대한 생각을 꽤 오래 했거나,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날엔 꼭 꿈을 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쯤에서 잘라내야 했던 어떤 것이 남아있다면, 꿈에서 그 찝찝함이 계속해서 맴돌면서 나를 현실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찝찝함이 맴도는 꿈이란 이런 것이다. 가령, 사소한 다툼으로 인해 보지 않게 된 친구와 자주 걸었던 길을 혼자 걷다가, 그 친구와는 왜 멀어졌을까 골똘히 생각하다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인 적이 있었다. 물론 망설이기만 하고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연락을 했더라면 찝찝하지 않았을 텐데, 무려 1년이 가까워진 그 친구와의 마지막 연락을 뚫어져라 보던 나는 그 날 꿈에서 기어이 친구를 만나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다툰 그 날로 돌아간 채로. 그 꿈은 며칠 동안 계속 나타났고, 나는 결국 친구에게 먼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와 반복해서 싸우는 꿈을 멈추고 싶었으므로.

 

이유의 소설집 『커트』 중 5번째 수록작 「꿈꾸지 않겠습니다」에는 꿈을 꾸면 현실에서 그 꿈이 실현된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여진은 어느 날 N사에서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물론 꿈에서. 그러나 이 꿈은 현실이 되어, 여진은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현실에서도 N사의 합격 통보를 받는다. 소설 속에는 여진과 같이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나 등장한다. 옥상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 소년은 골절상으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뱀이 떨어지는 길몽을 꾼 노인은 구급대에게 구조를 받아야 했다.


소설대로 꿈 꾼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틀림 없이 단명했을 것이다.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본 날은 꼭 그와 비슷한 꿈을 꾸게 되었으므로, 나는 꿈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쫓기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누군가를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꿈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행복한 꿈은 쉽게 잊히고, 흔히 ‘악몽’이라 말하는 것들은 내 기억 속에 남아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 쓰는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행복한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데, 꿈에서는 왜 불안하고 어두침침한 순간만이 내 기억 속에 남는 것인지.

 

꿈을 꾸지 않는 건 제게 꿈이 없기 때문인가요?
꿈이 없는 사람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ㅋ
필이 가입한 드림닷컴의 관리자 굿맨은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었다.
누구나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서너 개의 꿈을 꾸게 됩니다. 고통에 대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예외란 없습니다ㅋ
꿈이 기억나지 않는 건가요?
기억할 만한 꿈을 꾸지 않는다는 의미겠죠ㅋ 아니면 꿈꿀 배짱이 없든지ㅋㅋㅋ
굿맨이 문장 끝마다 마침표 대신 사용하는 ㅋ을 여진은 못마땅해 했다.
장난해? 비웃는 것도 아니고.
ㅋ이 남발될수록 필은 슬픈 느낌이 들었지만 별 대꾸는 하지 않았다.
-『커트』 118-119쪽 「꿈꾸지 않겠습니다」 중에서

 

꿈이 없어 꿈을 꾸지 못하고 묻는 필에게 굿맨은 ‘기억할 만한 꿈’을 꾸지 않아서거나, ‘꿈꿀 배짱’이 없어서일 거라고 답변한다. 그렇다면 나는 악몽만이 기억할 만한 꿈이 되어버린 것이고, 꿈꿀 배짱은 넘쳐 흘러서 이리도 꿈을 잘 꾸는 것일까. 평소 배짱 하나는 두둑하다는 말을 들어는 보았지만, 스스로는 굉장한 ‘쫄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내 배짱은 작디 작은 내 진짜 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기도 하니까, 나는 본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서인지, 꿈 속의 나는 현실에서 내가 상상하던 일을 다 해낼 때도 있다. 가끔 그런 꿈 속에서의 내 모습이 무서워질 때가 있을 만큼.


최근에는 꿈 속 모두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있던 꿈을 꾼 적이 있다. 사실 현실에서의 나는 요리를 할 때에도 칼에 손을 베일까 봐 무딘 칼을 쓰는 사람인데, 손가락을 잘라내는 무시무시한 꿈을 꾸다니. 분명 손가락은 잘리고 있는데 피는 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도 무던했다.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어찌나 꿈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던지, 실제로는 본 적도 없던 손가락 뼈 마디의 모습까지 다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꿈 속의 나는 현실에서 못 다 해낸 잔인하거나 공포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 해 보니 저 꿈은 영화 <해빙>을 본 이후에 꾸었던 꿈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혹시나 토막이 난 시체를 보게 될 까봐 조금만 수상한 음악이 들려도 눈을 가리곤 했는데, 내 내면에는 그런 잔인함을 몰래 엿보고 싶었다거나 한 번쯤 상상을 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내 속엔 어떤 욕망이 있는지 모르는 것이 다반사니까.


『커트』의 표제작 「커트」에는 자신의 머리가 아닌 ‘머리통’을 자르는 미용사가 주인공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이 아닐 것이다. 머리통이 잘린 채로 살아간다는 건 과학적으로는 불가한 일이니까. 「커트」의 미용사처럼, 내가 꾸는 악몽이란 한 번쯤 내가 상상하거나 꿈꾸어 보기도 한 세계일 지도 모른다.


꿈에서조차 어마무시한 현실로 나를 연결시켜버리는 꿈일지라도, 그 꿈이 얼마나 무섭건 간에 이제부터는 악몽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려 한다. 그 꿈이 잔인하거나 무서울지라도, 그건 내가 꾸는 꿈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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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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