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토니 에드만>,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 영화를 보다 최승자 시집 『내 무덤, 푸르고』를 읽었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영화 <토니 에드만>은 스토리 중심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괴하고 독특한 요소가 있다. 결론에 다다랐을 때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방식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멋졌다. 보지 않고서야, 절대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

movie_image.jpg

영화 <토니 에드만>의 한 장면

 

독일 영화니까 독일 스타일의 유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엉뚱한 일들, 몹시 황당하고 웃기는 작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162분 동안 폭소를 몇 번 터뜨렸다. 그런데 뭐랄까. 유머는 아니었다. 고단한 마음의 그늘이 일렁이는 웃음이랄까, 삶의 무게가 실린 탄식 섞인 웃음이랄까. 나도 모르게 웃고 나선 어이휴, 라고 한숨도 이어 몰아쉬었으니까.

 

일 중독자,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무미하게 시간을 쪼개 쓰는 딸과 원초적인 장난과 농담으로 시간을 풀어 쓰는, 토니 에드만이란 가명도 만들어 쓰는 아버지. 뭔가 조합이 위태롭다. 이 아버지, 분명 귀엽다고 할 수도 있는데...... 최승자 시집 『내 무덤, 푸르고』에 나오는 그 아버지 같은데 말이다.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 최승자 시, 「귀여운 아버지」 전문

 

노년의 음악교사, 아버지는 애완견이 죽자 뭔가 깨달은 듯 휴가를 내고 딸이 근무하는 도시,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를 무작정 찾는다. 유능한 경영 컨설턴트인 딸은 모든 생활이 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람, 그런 딸에게 ‘무섭고 지긋지긋한’ 아버지는 아니지만 ‘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같기도 하지만 문제는 엇박자. 지속적인 엇박자 행보다.

 

이 엇박자 행보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딸과 아버지는 끝내주는 노래를 함께한다. 아버지의 농담 때문에 난데없이 끌려간 작은 파티장에서 원하지 않은, 부르고 싶지 않아 아버지의 피아노 전주가 몇 번 지나고 나서야 시작된 딸의 노래. 휘트니 휴스턴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은 절창이었다. 무엇보다 직업적 독기 품으며 살고 있는 딸의 상황과 노랫말이 기막히게 어우러져 마치 이 영화 <토니 에드만> 주제가처럼 느껴질 정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이에요” 암, 그렇고말고. 피아노 치는 아버지의 표정은 딱 이랬다.

 

딸에게 표현하는 사랑이 부자연스러웠던(아니 더 정확히는 도저히 가닿지 않는 사랑을) 아버지는 말하고 싶어한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 행복과 웃음을. 그리고 표현되지 못한 그것을 위해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연출한다. 이상한 틀니, 가발, 방귀 쿠션 그리고 불가리아 털복숭이 ‘쿠케리’의 탈까지. 아버지의 연출은 결국 딸에게 전해진다. 인생은 금세 지나간다고. 자전거를 가르치던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딸을 기다렸던 그 순간의 행복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것이라고.

 

서걱거리는 관계에서도 차갑던 딸의 가슴이 조금 데워진 것은 확실하다. 회사 팀의 화목을 목적으로 집에서 생일 파티를 준비하던 딸이 꽉 조이는 원피스와 굽 높은 구두를 신다가 불현듯 벗어 던지고 나체 파티로 전환해버릴 때 관객은 알아챘다. 아버지의 뜻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섹스도 자연스럽게 못 하던 딸, 마약을 해야 파티를 즐길 수 있었던 딸이 이런 파격을 부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겉치레를 버리고 나체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털복숭이 탈을 쓴 채 생일 파티에 왔다가 곧바로 돌아가는 아버지를 쫓아가 끌어안는 딸의 외마디가 “아버지, 고마워요”였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이렇게 끝나는 게 정석. 독일 영화는 다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영화 <토니 에드만>은 스토리 중심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괴하고 독특한 요소가 있다. 결론에 다다랐을 때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방식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멋졌다. 보지 않고서야, 절대 설명되지 않는 어떤 것.

 

딸이 부른 노래를 패러디하자면 “영화를 감상하는 법을 잊게 만드는 것, 이것이 가장 위대한 영화랍니다”다. 요약해도 절대 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 <토니 에드만>은, 여배우 산드라 휠러의 연기 때문에 더욱 직접 봐야만 한다. 일 중독자 딸 이네스는 존재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어버렸다. 일만 하지 마요,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내 무덤, 푸르고

<최승자> 저7,200원(10% + 5%)

시인은 이 시집에서 '목숨밖에 줄 게 없는 세상'에 대해 처절하게 노래한다. 그 노래는 그래서 세상에 대한 노래가 아니고 자신에게 던지는 비수가 된다. 자신을 처형함으로써 세상을 처형하는 독약과도 같은 이 시집의 시적 방법은 결국, 한계에 서본 삶이 한계에 서 있는 다른 삶들을 징검다리로 건너가게 하는 치열한 사..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기사와 관련된 영화

  • 새창보기
    토니 에드만
    • 감독: 마렌 아데
    • 장르: 드라마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개봉일: 20170316
    리뷰 50자평 영화정보

오늘의 책

3625명의 공부 습관 관찰기

한 고등학교 교사가 10년 동안 직접 만나고 가르친 학생들 3625명의 공부 습관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특별한 공부법이 담겨 있지 않다. 그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 줄 뿐이다. 일상에서 작은 습관을 만드는 공부 이야기.

흔하지만 분명 별일이었던 그녀들의 이야기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아홉 살 어린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삶 이야기. 지금 여기, 대한민국을 살아내고 있는 ‘그녀’들의 땀과 눈물, 용기와 연대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명작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교열자

아무리 아름다운 글이라도 오타나 비문이 섞이면 작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훌륭한 작품 뒤에는 뛰어난 교열자가 존재한다. 이 책은 저명한 교열자, 메리 노리스의 이야기다. 40년 동안 글과 씨름하며 세운 자신만의 문장론, 유명한 저자와의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수줍은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 치유 그림책

아이들에게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는 그림책. 빨리빨리 괴물, 내꺼내꺼 괴물 등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답답한 상황들을 보여주며, “ 내 마음 표현하기” 라는 쉽지 않은 과제에 도전하도록 도와줍니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