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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쓰고 싶었다”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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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순간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통하는 순간, 서로에게 빛이 되는 그 순간이요. 사실 그 순간이 지나면 더 불행해질 수 있어요. 더 쓸쓸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 순간이 나머지의 쓸쓸한 침묵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아요.

“소설집이 출간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삶 자체는 실패가 정해져 있는 게임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 게임의 끝을 향해서 가는 건 ‘빛의 호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조해진의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에서 인물들은 각자 다른 현실의 무게를 이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빛이 되어준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선물한 카메라는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고(「빛의 호위」), 세상을 떠난 언니는 동생을 살아가게 한다(「잘 가, 언니」). 철학과 강사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추락한 인물은 중국인 제자를 통해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 해야 함을 되새긴다(「산책자의 행복」). 누군가 무심코 혹은 온 생애를 다해 쏘아올린 작은 빛줄기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이를 지켜주고 ‘살아 있음’을 감각하며 삶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물들이 품어야 하는 상처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한 소녀의 고백하지 못한 마음은 수상한 시절을 만나 죄책감으로 남아버렸고(「사물과의 작별」), 역사의 과오 앞에 기약 없이 헤어져야 했던 연인도 있었다(「동쪽 伯의 숲」). 역사적인 폭력이 개인에게 남기는 상흔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소설가 조해진은 인물들의 입을 빌려 “나의 신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이라 말한다.

 

현실은 냉엄하고, 시대의 흐름은 거대한 물결 같이 덮쳐오고, 그 앞에서 한 개인은 별 수 없이 앓아야 한다. 그럼에도 생을 견뎌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으로 하여금 살아낼 수 있는지, 우리는 묻고 싶다. 소설가의 조해진의 답은 간결하다. ‘작은 선의와 증여가 우리를 다시 살게 하고, 그 힘이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되비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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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시대를 외면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실은 늘 이번 소설집을 기다렸다”고 하셨어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소통과 유대, 열려 있는 세계에 대해서 썼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예전 소설에서도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방인도 등장했지만 조금 더 닫혀 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소설집의 인물들은 서로 계속 소통하려고 하고, 의도치 않은 작은 선의로 인해서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빛의 호위』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하신 작품들 중에서 뽑으신 건데요. 이 작품들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이유가 있을까요?


발표 시기로 보면 「동쪽 伯의 숲」을 가장 먼저 썼는데요. 그 작품을 쓸 때부터 기억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조감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우리가 외면했던 역사적 사건 같은 것도 다루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요. 「동쪽 伯의 숲」을 쓰면서 제 세계가 조금 확장되고 있다는 걸 느꼈었고,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떤 고민이었나요?


예전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12년 넘게 쓰다 보니까, 결국 소설이 이 시대나 역사를 외면할 수 없더라고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독자였을 때를 생각해 봐도 사회 문제나 역사적 사건, 시대적인 아픔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봤을 때 좋았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관심이 가게 되더라고요. ‘동백림 사건’(「동쪽 伯의 숲」)이나 ‘일본 유학생 간첩단 사건’(「사물과의 작별」), 「빛의 호위」에서의 ‘홀로코스트’ 같은 것도 그렇고요. 「작은 사람들의 노래」를 쓸 때는 세월호 직후였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무심함,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 시대의 아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쓰게 되더라고요.

 

「동쪽 伯의 숲」은 ‘동백림 사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집필을 시작하셨다고요.


그런 사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는 몰랐어요.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에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터뷰한 걸 보고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죠. 그 과정에서 작곡가 윤이상에 관련된 글을 읽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윤이상뿐만 아니라 당시의 똑똑했던 유학생들이,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서 이후의 삶이 많이 망가진 거잖아요. 물론 원상복귀 한 사람도 있지만요.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쫓기보다 그 가운데 있었던 사람, 그에게 남겨진 상처에 주목하신 것 같아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알려진 사건이기도 하고요. 소설이라는 것, 문학이라는 것이 교훈을 주기 위해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에서의 역사는 작가의 어떤 태도로 재구성돼야 하고, 결국 한 사람에게 초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윤이상 작곡가를 모델로 했지만 안수 리나 한나는 모두 가상의 인물인데, 그런 인물들을 통해서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쓰고 싶었어요.

 

「사물과의 작별」, 「동쪽 伯의 숲」은 ‘세계가 개인에게 지우는 무게’에 대해 말하는 작품 같아요. “나의 신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 이것이다”(「동쪽 伯의 숲」)라는 말이 핵심이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의 사회 현상을 보면 세계가 개인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맞아요. 사람들은 힘들어도 나름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똑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사실 우리를 지배하던 이 나라는 법도 없고 상식도 없는 나라였다는 걸 더 뼈저리게 느끼죠. 세월호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아무리 세계가 흉포하고 우리를 억압하더라도 개인에게는 시대에 맞섰던 신념이라든지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죠. 그러니까 ‘시대가 아무리 우리를 압도하더라도 개인의 이야기가 있는 한 그것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으로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동쪽 伯의 숲」이나 「사물과의 작별」은 제가 상상으로 채운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그 시대, 그 공간에 가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상상이 있는 한 역사와 이 시대는 우리를 통제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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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쓰고 싶었다


「사물과의 작별」에 ‘유실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실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실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을 증언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 같고요.


제가 「동쪽 伯의 숲」을 쓸 때부터 소설의 외연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소설이 할 수 있는 증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냥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고, 소설에서의 증언이라든가 (소설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소설의 책무나 임무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제 자신이 자격이 없는 것 같았고, 소설가는 그냥 글만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동쪽 伯의 숲」에서 희수가 고백하는 말 속에 당시 저의 고민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자격을 되물으면서, 좋게 말하면 겸손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조금 소극적인 태도인, 그런 것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 같아요.

 

생각을 바꾸게 되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부조리한 사건들을 겪고, 뭔가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동시대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그래도 뭔가를 계속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름 하나라도 기억하게 하는 것, 나 스스로도 기억하기 위해서 애 쓰는 것,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독자나 세계를 향해서 망각하지 말자고 강요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이렇게 비유하면 될지 모르겠는데, 바다 위의 부표처럼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빛 같은 것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동쪽 伯의 숲」에서 희수는 “내가 살아온 과정이 대단할 것도 없고 떳떳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이의 고통을 대변하며 잿빛 거리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스스로 자격을 되묻죠. “작가가 작품 이외의 다른 채널로 말을 거는 게 합당한 건지” 자문하기도 하고요.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작품을 쓸 무렵에 용산(참사)도 있었고 ‘두리반’이라고 해서 강제 철거되어 쫓겨나게 된 식당도 있었어요. 그런 곳에서 동료 작가들과 어떤 활동을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나갈 때는 분연히 나갔는데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거나 낭독회를 할 때는 ‘내가 해도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수처럼 똑같이요. 나는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소설가가) 글만 쓰면 되지 이렇게 해야 되나, 이것도 일종의 우월감 같은 건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괴로웠어요. 그래서 집에 오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도 또 참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면 가게 되는 거예요. 그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말을 해야 된다, 그래도 증언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정해진 거죠.

 

「빛의 호위」에는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영상 속에서 알마 마이어라는 인물은 말하죠.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천진한 기만 같아 보인다고요.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건데요. 따끔한 일침처럼 들렸어요.


그 작품을 쓸 때는 이런 사건은 없었지만, 홀로코스트 같은 야만의 사건들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다른 얼굴로 펼쳐지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알마 마이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프리모 레비가 있는데,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잖아요. 프리모 레비도 인터뷰에서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실은 기차가 어딘가로 가서 그들을 살해한다는 걸 몰랐을까’ 하고 질문했었어요. 그게 우리 시대에도 절묘하게 맞더라고요. 「빛의 호위」를 쓰고 난 후에 세월호도 있었는데, 똑같은 것 같아요. (진실을) 알려고 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슬픔을 감수해야 되는데, 그것이 괴로우니까 미디어에서 하는 말이나 세상의 소문을 그냥 받아들이고 믿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일들은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 같고요.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것도 같은데요. 어떠세요?


매 순간 인간을 믿고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않죠. 저는 순간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통하는 순간, 서로에게 빛이 되는 그 순간이요. 사실 그 순간이 지나면 더 불행해질 수 있어요. 더 쓸쓸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 순간이 나머지의 쓸쓸한 침묵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산책자의 행복」의 홍미영은 유독 안타까웠던 인물이에요. 철학과 강사였다가 기초수급자가 되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잖아요. 손님으로 온 옛 제자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더라고요. 이 작품을 쓰시면서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늘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홍미영이라는 인물을. 제가 시간 강사를 오래 하면서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 저도 그랬지만, 강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불안한 것 같아요. 언제 우리가 홍미영처럼 개인 파산을 겪을지 알 수 없고, 개인 파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사실 그런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죠. 저 자신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소설가라는 것도 어떤 정체성에 가깝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많이 어색하죠. 소설을 쓰는 일로 생계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저도 그런 불안감을 늘 느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등단한 후에도 계속 일을 하셨다고요. 지금은 전업작가이신가요?


등단하고 나서 언어교육원 같은 곳에서 한국어 가르쳤었고요. 지금은 대학이나 시민 단체 같은 곳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어요. 글만 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한두 달 자투리 시간이 남아서 쓴 적은 있지만, 일 년 내내 글만 쓰고 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강사로 일하기도 하셨어요. 그때 “신분 없는 삶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바 있고요. 작가님 작품에는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이방인’이 많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영향을 미친 건가요?


그럼요. 『로기완을 만났다』도 그때 썼고요. 첫 번째 소설집이 『천사들의 도시』에도 몇 편에 걸쳐서 외국인이 나와요. 이방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입양인, 이런 인물들이 꾸준히 나왔는데요. 아마 직업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어 강사를 하면서 외국인을 계속 만났고, 봉사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차원에서 무보수로 언어 교환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결혼 이민자 여성들을 만나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암암리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폴란드에 갔을 때 조금 더 체감하게 된 것 같고요. 그곳에서는 내가 봐왔던 이방인이 된 거니까, 신분이 불안정한 삶에 대해서 더 체감했던 거죠. 이번 소설집을 쓸 때는 그렇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들의 연대까지 담으면서, 제 나름으로는 조금씩 나아간 것 같아요. 

 

이방인의 감정이 낯설지만은 않아요. 문득 ‘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찾아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입양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같은 건 소재일 뿐이고 사실 우리의 모습이 다 투영되어 있죠. 우리도 넓은 의미에서는 다 이방인인 거죠. 서로에게 다 이방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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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타인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집필이 끝나고 소설 속 인물을 떠나 보낼 때, 힘들지는 않으세요?


소설을 쓰고 나서도 늘 그 인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죠. 제가 쓴 소설이니까 모든 소설의 인물들에 대해서 기억해요. 그들이 했던 말이나 표정, 생각, 성향, 저 혼자만 생각하고 소설에 쓰지 않았던 그들의 이력이나 말투, 다 알고 있고 기억해요. 그렇지만 소설을 쓰고 나서 특별히 어떤 인물을 생각하면서 아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은 나죠. 기억할 수 있고요. 그런데 「사물과의 작별」을 쓸 때는 조금 슬펐어요. 고모의 삶을 떠올릴 때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랑 받지도 못한 대상에게 계속 죄책감을 느끼면서 평생 살아왔다면, 나는 어땠을까’ 싶은 거죠.

 

「사물과의 작별」에서 고모가 갖고 있는 죄책감은 상상하기도 두려워요. 내가 타인의 삶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려고 하면 알았을 텐데, 고모는 스스로가 그걸 안 놓은 거죠.

 

이유가 뭘까요?


고모의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잖아요. 그 사랑의 감정을 혼자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계속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슬픈 거죠.

 

아홉 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유독 안부가 궁금해지는 인물이 있나요?


다 궁금하기는 한데요. 유독 궁금해지는 인물이라면 「동쪽 伯의 숲」의 희수인 것 같아요. 희수는 어떤 시를 썼을까, 사회 문제가 있을 때 계속 행동을 이어갔을까, 발터와 안수 리와는 계속 연락을 했을까, 궁금하고요. 「빛의 호위」에서 권은 다리가 나았을까, 그런 것도 궁금하죠(웃음). 이런 건 독자도 같이 상상해주면 참 감사할 것 같아요.

 

「번역의 시작」에서 안젤라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재해석한 언어로 이야기를 해요. 영수씨는 그림이라는 비언어적 소통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요. 두 사람을 보면 ‘언어라고 하는 것이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작가로서 같은 질문을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많이 하죠. 저는 언어는 불완전하다고 늘 생각해요. 한 번도 언어가 완벽한 도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천사들의 도시』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은데요. 제가 문장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리고 나름 좋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을 하지만, 제 문장이 소설의 모든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히 여백이 있을 것이고 담지 못한 공백이 있고 침묵이 있을 거예요. 그건 읽는 자가 상상을 통해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을 읽고 촘촘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촘촘한 면도 있고 그래서 답답한 면이 있을 때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여백을 많이 두는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어요. 언어에 다 담지 못한 여백을 누군가 채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작가님께서는 작품 속에서도, 그리고 말씀을 하실 때도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고르시는 것 같아요. 문장을 만들고 다듬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시죠?


문장이 소설가의 거의 유일한 무기잖아요. 색깔로 표현할 수도 없고, 다른 걸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잖아요. 문장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실 등단 초기에는 수식도 많고 미사여구도 많은 문장을 썼어요. 그런데 글을 계속 쓰면서 ‘소설에 어울리는 비유를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비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담고자 했던 분위기나 메시지와 어울리는 비유를 쓰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산책자의 행복」에서는 낮달을 보고 닻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주인공이 계속 물속을 걷는 기분이라고 하고, 외로움이나 추위를 느끼잖아요. 그런 것과 어울리는 비유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식상한 비유 대신에 소설에 어울리는 비유를 쓰려고 해요.

 

‘작가의 말’ 마지막에서 “이제야 나는, 진짜 타인에 대해 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타인에 대해 쓰는 일’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그 일을 할 때 소설가는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까요?


결국 소설은 타인의 이야기잖아요. 내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죠. 저도 등단할 때부터 계속 소외된 사람,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버려진 인물들을 많이 썼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타인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내 생각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개인의 상처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요. 나의 어떤 서정, 나의 개인적인 상처 같은 걸 계속 상기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빛의 호위』를 쓰면서는 작가로서의 나는 한 발 물러서고 인물들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거든요. 인물들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러면서 소통을 찾아가고, 소통이 끝나면 다시 또 쓸쓸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인물들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야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고 한 거죠.

 

<채널예스>의 ‘명사의 서재’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내가 왜 쓰고 있고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단어”로 ‘위로’를 찾았다고요. 『빛의 호위』은 독자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게 될까요?


그건 독자마다 다르게 느끼겠죠. 제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 선물, 증여를 건네지 않았다면 그냥 고립된 채로 끝났을 거예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들의 작은 선의와 작은 증여가 결국 이 인물들을 살게 하고, 다시 그 힘이 처음의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 돌아가서 ‘뭐가 진짜일까, 삶은 왜 살아야 되는 걸까’를 되비춰요. 공통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썼어요.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죠. 그런데 사실 소설은 강요할 수 없는 장르이고, 그걸 제가 강요할 수는 없고요. 바람이죠.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찾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빛의 호위조해진 저 | 창비
작가 조해진의 세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가 출간되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소외와 불안의 문제를 개인의 삶을 통해 포착”하며, “이 시대에 호응할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환기한 작품”(심사평)이라는 호평을 받은 「산책자의 행복」을 비롯한 9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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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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