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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커버 스토리] 편혜영 “내가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소설은 뭘까”

『재와 빨강』, 폴란드 ‘올해의 책’ 선정
번역서는 작가에게 기념품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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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이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 ‘여기는 이미 카뮈의 『페스트』가 있는 작품인데 『재와 빨강』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편적인 소재는 시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죠.

지난 2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폴란드의 대표적 문학 온라인 커뮤니티 ‘그라니차(Granice.pl)’가 주관하는 ‘올해의 책’으로 편혜영의 『재와 빨강』이 선정된 것. 프랑스, 베트남, 폴란드에 이어 곧 영미판이 출간되는 『재와 빨강』은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필시 낯선 상황으로 전개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쥐가 끓는 곳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주인공.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시에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꿈꾼다. 가상의 공간으로 초대된 독자는 주인공의 선택이 아이러니하다. 가깝고 또 멀어지는 거리감을 흠씬 경험하다 쓰고 매운 공기를 마신다.

 

작가는 소설의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쓰는 편이다. 끊임없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버릇 때문이다. 편혜영 소설의 호흡이 가쁘지 않은 이유다. 그의 소설을 맛본 독자라면 한 편으로 만족하기 어렵다. 후속작을 기다리거나 전작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책을 쓰는 존재이기 전에, 읽는 존재이기도 한 편혜영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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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는 작가에게 기념품 같은 존재


『재와 빨강』은 2010년 작품이에요. 발표한 지 7년이 지난 소설이 먼 나라, 폴란드에서 사랑받은 소감이 궁금해요.

 

제 책이긴 하지만, 제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낯설고 실감이 나지 않아요. 독자들의 피드백이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궁금할 따름이죠.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듣고, ‘어디에나 독자는 있구나’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폴란드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예요. 그런 곳에서 내 이야기가 희미하게 떠돈다고 생각하니 더 재밌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번역 도서는 작가에게만 기념품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요. 기분 좋은 선물이죠.

 

많은 작품 중 왜 하필 『재와 빨강』이었을까, 생각은 안 하셨는지요?


독자들마다 선호하는 책이 다르겠지만, 『재와 빨강』은 작품의 호오를 떠나 작가인 저에게는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처음으로 쓴 장편이었으니까요. 이전에 쓴 단편들의 세계를 정리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 모든 걸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서 반응에 상관없이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시기적으로도 다음에 쓸 작품과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역병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시차나 지역적인 차이 등에 크게 구속받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재와 빨강』이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 ‘여기는 이미 카뮈의 『페스트』가 있는 작품인데『재와 빨강』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편적인 소재는 시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죠.


초고를 쓸 때, 가제가 ‘생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였다고요.


일본 가수의 노래 가사에서 인용한 제목이었어요. 『재와 빨강』은 편집부에서 추천해준 제목인데, 듣자마자 좋았어요. 모호하고 이미지가 압도적인 제목이어서 좋다고 생각했죠.

 

에세이집 『소설의 첫 문장』을 보면서 편혜영 작가님의 작품이 한 편 들어가 있겠다 싶었어요. 역시나 『재와 빨강』에 나온 첫 문장이 실렸더라고요.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실제로 닥쳐오는 위험보다 많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는 어떤 경고도 없는 법이었다.”


저도 그 책 봤어요. 첫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재밌게 읽었어요. 『재와 빨강』의 첫 문장은 되게 많이 고친 문장이에요.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으로 쓰고 싶어서,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 만들어진 문장이에요. 교정을 보면서까지 여러 번 고쳐서 편집부 분들을 많이 괴롭혔죠. (웃음)

 

첫 장편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셨나요?


첫 시도였으니까 가능하면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단편을 쓸 때, 첫 문장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끝까지 고치는 편이거든요. 연속선상에서 장편의 첫 문장도 계속 들여다봤는데, 지금은 오히려 장편의 경우에는 첫 문장에 너무 많은 걸 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첫 문장이 지나치게 흘러가는 문장이면 안 되겠지만, 지금은 이야기 분량이 기니까 그렇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고친 만큼, 마음에 드는 문장인가요?


딱히 그렇진 않아요. 문장을 쓸 때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고치는 편인데요. 이 문장은 좀 길어요. 읽는 호흡이 좋지 않고 지나치게 경구 같은 느낌도 있어요.

 

오래전 인터뷰에서 “문장에 관한 생각은 항상 바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작정하고 이렇게 써야지, 하는 건 없어요. 작품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확실히 이미지나 모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문장을 많이 썼어요. 지금은 사건을 진행시키는 문장이나 인과를 설명하는 문장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내가 쓰는 이야기가 달려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뀐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인물 자체에 거리를 두고 쓰는 태도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재와 빨강』은 결국 ‘위험에 대한 경고 때문에 위험에 빠져드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소설을 읽는 독자는 필연적으로 ‘나라면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까?’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작가님은 위험을 민감하게 예측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좀 무감각하신 편인가요?


전염병이 돈다는 뉴스가 나오면, 재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도시를 떠나거나 먹을거리를 많이 사놓는다거나. 저는 오히려 크나큰 불행에 대해서는 무던한 편이에요. 크게 실감하지 못해요. 오히려 사사로운 일들에 더 민감해요. 큰 일에는 오히려 태평해지는 구석이 있어요.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전처의 유력한 살해용의자로 지목되고, 위기를 맞을까 봐 위기에 뛰어들죠. 굉장히 큰 사건에 휘말리지만 사실 주인공은 꽤 평이한 인물이기도 해요.


소심하고 평범한 인물이죠. 소설을 쓸 때도 뚜렷하게 몽타주도 기억 안 나는 이미지를 갖고 썼어요. 아마 우리 주위를 봐도 비슷한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소극적이고, 감탄사나 비명을 크게 자주 지르는 편이 아니죠. 주인공은 어떤 위기 앞에서, 이를테면 누군가 칼을 들이댔을 때도 비명을 숨기는 사람이에요. 겁에 질려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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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이야기를 만드는 큰 추동력


최근작은 『홀The Hole』이에요. 출간된 지 1년이 채 안 됐는데 리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저는 독자 리뷰를 찾아 읽어요. 독자들이 의아해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작품을 쓰다 보면 표면화되지 않은 인물들이 있어요. 『홀』에서는 주인공 ‘오기’의 아내가 그런 경우였는데, 아내라는 인물을 궁금해하는 리뷰들이 있었어요.

 

저자로서 반가웠겠어요.


감사했죠. 『홀』은 ‘오기’라는 인물에 의해 통제된 소설이에요. 때문에 아내에 관한 서사는 후면으로 감출 수밖에 없었죠. 완전히 말하지 않았지만, 더 말할 게 있는 것처럼, 감춰진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 반가웠어요.

 

『홀』은 2014년에 발표한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 40대 대학교수 ‘오기’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오기’는 어떻게 인생은 한순간에 달라질까,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한순간에 달라지는 건 아니죠. 오랫동안 삶에서 희미하게 번져가던 균열을 미처 못 봐온 거죠. 봤다고 하더라도 그걸 쉽게 무시해 왔거나. 그런 사람은 인생이 자신에게 느닷없이 인색해졌다고 생각하겠죠. 그런 인물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모든 소설의 시작은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제 소설의 이야기는 아이러니에 많이 의지해요. 『재와 빨강』도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실패하는 이야기, 그래서 더 좌절감이 큰 이야기예요. 노력을 했는데 그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 노력을 배반하는 상황들을 볼 때 아이러니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홀』에서도 오기는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잘해보려고 아내와 여행을 떠나는 데 그게 파국의 계기가 되죠. 그런데 이게 또 완전한 파국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요. 이런 아이러니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추동력이 돼요.

 

편혜영 작품을 말할 때, 항상 ‘카프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요. 폴란드 ‘올해의 책’ 선정에서도 “알베르 카뮈와 프란츠 카프카의 문체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는 언급이 있었고요.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은 없으신가요?


카프카는 자장이 넓은 작가잖아요.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이고, 아직까지도 유효한 작품의 작가예요. 제 작품에서 카프카의 일부가 느껴진다는 것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요. 카프카 작품의 기본 골조도 아이러니잖아요. 제 작품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과거에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재미를 못 느낀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지요?


오래전부터 장편으로 쓰고 싶어서 제목까지 정해놓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인데,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쓰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했어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이 소설 속에서 구체화되어 나오는 장면을 써야 하는데, 쓰는 게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저는 현실 그대로 재현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조금 비틀리고 확대되어 재현되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넓게 생각하면 소설은 모두 현실의 반영이자 재현이니까 ‘재현’ 자체에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좁은 의미로서의 재현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뜻이에요.

 

그래도 언젠가 볼 수 있을까요?


에피소드는 많이 써놓았는데요. 장편이 아닌,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 제목으로 쓸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공간이고요. 고향이 서울이어서 그런지, 특정한 공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옛날식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있어요. 도시 인이 느낀 아파트라는 공간성은 투기나 부동산의 개념이 아니라, 주거지로서의 느낌이 더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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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의 지점은 독자마다 다르다


2000년에 등단하셨으니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20주년이 됩니다. 갓 등단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떠세요? 그립거나 아쉬운 면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나름대로 다 좋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이 편해진 면도 있어요. 모든 장면을 다 무겁고 꽉 차게 쓰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하게 됐고요. 예전에 소설을 지나치게 꽉 차고 정확하게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은 소설도 현실처럼 조금 흐트러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걸 알아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홀』에서 오기는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78쪽)라고 말해요. 허연의 시 「슬픈 빙하 시대 2」를 읽은 단상인데, 사실 그 시 속에는 사십대라는 표현이 없죠. 오기가 다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읽힌 거예요. 작가님도 지금 사십대이시니까 비슷한 심리로 그 시를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맞아요. 허연 선배의 시를 읽다가 느낀 것을 소설에 그대로 썼어요. 애당초 사십대라는 어구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재밌었어요. 오기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사십대는 삶의 형태를 달리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치도 필요하고 또 깊은 사고도 필요할 텐데요. 작가님은 경험보다는 생각에 더 많이 집중하는 편이신 것 같아요.


경험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경험에만 의지해서 쓸 수 없어요. 경험이 언제나 좋은 해석이나 결과를 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해도 이야기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경험이 반영되기 마련인데요. 사건을 만들 때도 그렇지만 인물의 성격을 형성할 때, 배경을 만들 때도 영향을 주죠. 내가 본 텍스트, 영상 이미지, 사진 이미지 등 전방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죠.

 

자료조사를 할 때, 적극적으로 취재하는 작가도 있고 책을 많이 보는 작가도 있어요.


저는 후자예요. 일단 누군가를 만났을 때, 보편적이냐 특수하냐부터 문제가 돼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는다고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직업적 특수성이 있을 수 있어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요. 객관적인 정보를 위해 책을 더 많이 살펴보는 편이에요.

 

작가는 독자에게 불친철할수록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친절할 필요도 없지만요. 어쨌거나 이야기는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이야기로써 흥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흥미의 지점은 독자마다 다르죠. 어떤 독자는 친절한 책을 좋아하거든요. 또 어떤 독자는 이야기는 불친절하지만 언어로서 의미가 풍부한 소설을 좋아하고요. 누군가를 겨냥한다고 하기보다는 자기 기질대로 쓸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보통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우선 “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작가님은 “읽으라”는 말씀을 더 많이 하신다고요.


좋은 독자가 되어야 좋은 작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많이 읽어봐야 자기가 뭘 쓰고 싶은지도 알 수 있고요. 무작정 쓰려는 충동이 꼭 좋지만은 않아요. 그런 친구들의 경우, 일단 쓰기만 하려고 드는데, 소설은 일기가 아니니,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힐까에 관한 고민도 당연히 해야죠. 그러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 해요.

 

창작자로서의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집요한 그 어떤 면이 없으신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성격이신 것 같은데요. 소설가로서 지니는 생존 본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작가로서 편혜영이 뭘 쓰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하죠. 내가 계속 쓸 수 있는 소설은 뭔가’에 대한 고민은 작품을 쓰는 동안 계속할 것 같아요. 내가 쓰면서 재밌어하는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써온 이야기와 완전히 다르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달라지는 이야기.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매번 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언젠가 문학평론가 신형철로부터 “내장을 만지는 글쓰기”라는 평을 들으셨어요. 소설가로서 받을 수 있는 평가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되게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아주 내밀한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서슴지 않고 만진다는 의미잖아요. 제 작품이 여전히 이 해석에 유효한 작품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모든 작품이 다 자식 같고 애틋하겠지만요. 조금 더 만져주지 못해, 주목받지 못해 아쉬웠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책으로 묶다 보면 교정 단계에서 좀 지쳐요. 작가인 나는 이미 다 아는 서사잖아요. 그 이야기를 계속 입으로 소리 내서 교정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 정도까지 고치면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작품이죠. 항상 이런 과정을 거쳐 책으로 묶는 데도 출간된 책을 보면 꼭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고 부족한 부분이 보여요. 여기서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쉽죠. 『서쪽 숲에 갔다』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지도 않았고 문학적 평가를 좋게 받지도 않았는데, 제가 쓰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자기 자신에 대해 궁리하지만 끝내 알 수 없다고 고백하는 인물, 열심히 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를 경험하는 인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세계같이 제가 좋아하는 모티프를 많이 가진 소설이에요.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써보고 싶기도 해요. 궁리가 많이 되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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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시공간을 함께 나누는 물건


작가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갖는 사적인 소망이 있나요?


계속 소설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여전히 읽고 계속 쓰겠다는 것이요.

 

평소에 소설 외의 어떤 장르의 책을 즐겨 보시나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은데 과학책을 많이 읽어요. 객관적으로 서술된 문장을 좋아해요. 인간 본성에 대해 해석해놓은 문장도 좋고요. 어떤 통찰을 주는 문장을 읽을 때 좋아요.

 

지금까지 에세이집은 한 번도 발표하지 않으셨어요. 칼럼, 에세이를 많이 안 쓰는 편에 속 하시는데요.


잘 못써서 안 써요. (웃음)

 

이것도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인가요?


글쎄요. 예전에 청탁이 오면 쓰긴 했는데요. 칼럼 같은 경우는 시의성이 강하잖아요. 저는 대개 한발 늦어요. 재빠르게 현실을 포착하는 능력 같은 게 발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에세이 같은 경우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활동적인 분들이 소재를 많이 가지고 계세요. 저는 일과가 단조롭고 단순하다 보니, 비정기적으로 에세이를 몇 편 쓰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쓰긴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이런저런 매체에 쓴 짧은 글들을 모두 묶으면 에세이집이 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에세이집은 어떤 주제를 갖고 쓰는 책이에요. 나중에 에세이집을 낸다면 더 공부하고 기획해서 내고 싶긴 해요.

 

최근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가 있나요?


『참담한 빛』을 쓴 백수린 작가를 좋아해요. 믿음직하게 써나가는 친구라서 작품을 여러 곳에 자주 추천해요. 기준영 작가의 최근작 『이상한 정열』의 톤과 인물들도 좋아하고요.

 

사람들이 계속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읽을 시간이 좀처럼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책은 여백과 글자를 함께 읽게 하는 독특한 물건이에요. 그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반드시 여백이 있다는 것. 작가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 작가가 감춘 걸 다 찾아 읽게 되죠.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읽을 때의 공간과 시간이 고스란히 남겨지기도 하고요. 책이라는 물건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존재예요.

 

후속작, 궁금한데요.


경장편이 될 지, 중편이 될지 모르겠는데 올해 발표하려고 쓰고 있어요. 단행본으로는 아마 내년 초쯤 펴내지 않을까 싶고요. 소읍에 사는 두 남자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인데요. 소외나 냉담함, 전체주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고민을 담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재와 빨강편혜영 저 | 창비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편혜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제약회사의 직원으로 쥐를 잡는 능력을 인정받아 파견근무를 가게 된 C국에서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기다, 쥐를 잡는 임시방역원으로 일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에 밀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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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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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mji01@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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