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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쪽팔리게 살 이유가 없죠”

첫 번째 에세이 『나를 도발한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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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살 날이 많이 남았을 때도 제 생각대로 안 한 게 없거든요. 그런데 살 날이 훨씬 줄어든 지금 그렇게 안 살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제 와서 쪽팔리게 살 이유가 없잖아요.

가수 김장훈이 첫 번째 에세이 『나를 도발한다』를 출간했다. 책장을 펼치기 전 생소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26년 동안 대중의 관심을 받아온 그가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의아했고, ‘김장훈은 어떤 사람이지?’ 질문해 봐도 또렷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놀라웠다.

 

뮤지션으로서 무대 위에서만큼이나 무대 밖에서 많은 목소리를 내온 탓에 여러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 그였다. 대중들은 ‘독도지킴이’ 김장훈의 애국심은 높게 평가했지만, 광화문에서 세월호 단식 투쟁을 하는 김장훈에게는 정치적 입장을 확인 받고 싶어 했다. 누군가에게 그는 ‘기부천사’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정만 앞선 오지라퍼’였다. TV 예능프로그램 속의 김장훈은 유쾌하고 입담 좋은 연예인이었지만, 신문의 사회면에서 만난 그는 세상을 향해 날 선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난 돌’이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미리 질문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김장훈은 책의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려면 적당히 눈감고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진즉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는 세상과 타협을 거부했고, 타협할 수도 없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아서 차라리 나의 유전자로 대변함이 가장 쉬울 듯하다. 나의 유전자는 무기력함보다는 차라리 불편함을 감내하고 언제나 떨쳐 일어섬을 택했다. 그 뒤에 무엇이 오든…. (『나를 도발한다』 8쪽)

 

300페이지에 달하는 긴 고백을 읽고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친 지금, 김장훈의 ‘유전자’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뜨거움이라 답하겠다. 가슴의 열기가 공연장 너머의 세상으로 흘러 들었고, 그것이 때로는 선행으로 때로는 분노로 표출되었을 뿐이다. 김장훈이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란 그런 것이다. “나눔의 궁극은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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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말고는 음악 할 힘이 없어요


“제 인생 자체가 정리가 안 되는 인생이거든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삶의 고비도 많이 넘겼고, 예전 일을 생각하다 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책을 쓰니까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은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정리가 안 된 채로 하루만 살다가 간다는 마음으로 살거든요. 저한테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를 죽는 거예요.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거죠. 그 극단적 허무주의가 저를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해요. 내일, 모레, 글피를 꿈꾸기에는 오늘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오늘을 잘 사는 것 말고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없어졌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나름대로 정돈이 되기는 했는데,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나를 도발한다』에서 김장훈은 유년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자신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고독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늘 바빴던 어머니,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 3년간의 투병 생활, 외로움을 친구 삼아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소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을 뿐”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하루를 버티는 목적이자 수단”으로 ‘소리 지르기’가 시작됐고, 당시의 절규는 그를 가수의 길로 이끌었다.

 

“쓸쓸하지 않은 사람 없잖아요. 저도 고독하죠. 그런데 고독한 거 되게 좋아해요. 이제는 그거 말고는 음악 할 힘이 없어요.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발레리나 강수진 씨가 ‘예술가에게 고독은 친구’라고 하는 걸 봤는데, 그때 진짜 많이 울었어요. 전적으로 동감하거든요. 저는 노래하기 위해서 제 자신을 학대하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지금은 그렇게는 못해요. 저는 상관없는데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피해를 보잖아요. 제 노래는 진짜 벼랑 끝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인데, 그러려면 벼랑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결혼을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면서 무대에 올라갈 때는 외로워진다는 게 잘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노래를 위해서 절대 고독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고독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다가 공황장애도 온 거예요.”

 

2003년, 승승가도를 달리던 김장훈은 돌연 미국으로 향했다. 더 이상 노래가 설레지도, 무대가 간절하지도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에도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그였다. 돌아온 것은 극한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공황장애였다.

 

“저는 한국을 하루만 떠나도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미국에 가서 1년을 있었으니 돌아이가 안 되겠어요? 저한테 외국을 가는 건 유배예요. 바닥을 치러 가는 거예요. 여기에서 더 이상 음악이 설레지 않기 때문에 가는 거죠. 그때 미국을 갔던 것도 저를 도발했던 거예요. 그렇게라도 도발을 해서 무언가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간 거죠. 결국 공황장애는 축복이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황당했지만 ‘하나님이 나한테 제대로 주셨네’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바닥을 쳤으니까 한국에 돌아가면 필(Feel)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좋아지기는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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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각자의 이유


왜 그렇게 어려운 길로만 돌아서 가는 거냐고, 이제 좀 쉬운 길로 가도 되지 않느냐고, 물을 법도 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벼랑 끝에 걸쳐진 외줄 위”로 올라서고야 마는 것은 타고난 ‘유전자’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고, 제가 좋으니까 하는 거예요. ‘행복은 각자의 이유’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행복의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해당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어요. 아직도 여자는 몇 살이 되면 시집을 가야하고, 남자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가야 된다고 하잖아요. 행복이 그것밖에 없어요? 한 사람에게도 행복은 수백 수천 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몇 백만 명의 행복을 몇 가지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누구도 함부로 ‘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생은 비루하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저도 직접 가서 보니까 다 가치가 있는 삶이고 동정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김장훈은 중국과 케냐, 남수단을 오가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 내륙의 사막화 방지를 위해 나무를 심은 곳에는 ‘김장훈숲’이 조성됐고, 케냐에서는 유소년 희망 축구단을 함께 만들었다. 스포츠를 통해 희망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활동은 남수단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의 ‘공개된 선행’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지난 1월에 벌어진 ‘거짓 기부 논란’처럼 좋은 일을 하고도 상처 받는 일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나눔을 하면서) 어떤 것들에 대한 틀이나 경계가 더 허물어진 건 확실해요. 비난과 칭찬, 나눔과 나누지 않음, 음악과 세상, 무대와 무대 밖 같은 것들이요. 누가 칭찬한다고 해서 으쓱하지도 않고 비난한다고 해서 크게 흔들리지도 않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게 조금 신기했는데, 내 양심은 내가 아는 거잖아요. 나 자신과 이야기했을 때 ‘나는 부끄러운 짓 한 거 없어, 양심적으로 걸리는 거 없어’라고 결론이 나면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고, 몰라도 그만이야’ 하고 생각해요. (그런 일에 대한) 저의 결론은 그냥 ‘감사’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보는 거죠. ‘너무 고맙다, 더 잘해야지’ 생각하고요.”

 

‘기부천사’라는 별명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있을 터였다. 그가 기부한 금액의 액수가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본인 소유의 집도 없으면서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자신을 지켜보는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법도 했다.

 

“저는 소박한 사람도 아니고 검소한 사람도 아니거든요. 다만 집을 가져야 된다거나 그런 욕심은 없어요. 아내와 아이가 있으면 또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혼자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 굳이 집을 살 필요 없잖아요. 강변에서 2년 살다가 산에서도 2년 살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펜트하우스에 살기도 하고 또 논길에서도 살고, 좋잖아요. ‘집을 살 돈으로 그냥 맛있는 거 먹지’ 하는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에요. 얼마 전에는 제가 사무실에 살면서까지 기부를 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언론이 집도 못 사게 만들어 놓고 이제는 사무실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웃음). 그런 건 아니거든요. 사무실 럭셔리한 데예요(웃음). 연습을 하려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해야 하는데 연습실이 따로 있으면 그게 잘 안 되고, 그렇다고 연습실에서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사무실이랑 공간을 합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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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당연히 짐작했었죠


『나를 도발한다』는 세상이 김장훈을 향해 묻는 거의 모든 질문들에 답한다. 문제적 현장을 찾아 다니며 목소리를 내는 이유에 대해 물으면 “공인이라서 싸우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제법 유명하다는 내게 이 정도면 힘없고 소외된 일반인들에게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갑질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가수면 노래나 하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울고 있는데 노래만 하는 건 모순”이라고 일갈한다. “나는 지금 이 시대를 노래해야 할 이 시대의 가수이므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눈감은 채 노래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아직도 촛불집회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중국에서 예정됐던 공연까지 취소하며 귀국한 그는 그 해 여름을 광화문 광장에서 보냈고,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현재는 전국의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세월호 이후에 ‘다음 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생각해 봤어요. 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오늘 사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세월호 때 광화문에서 처음으로 ‘내가 일개 가수 나부랭이지만, 정말 이런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단식 농성에 돌입했던 그는 자신의 행위를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는 시선들과 마주해야 했고, 이후 방송출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외압’을 견뎌야 했다.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김장훈은 더 일찍 감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전 정권부터, 블랙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건 있었죠. 국립극장 대관을 안 해줘서 갈등이 있어가지고 뉴스에도 나오고 했었잖아요. 그때는 리스트까지 있는 건 아니었겠으나, 알아서 눈치를 보도록 만들려고 불이익을 주는 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광우병 사태 때도 제가 본의 아니게 주동자처럼 됐잖아요. 그때 청계천 집회에 갔었는데, 이전까지 시민들이 몇 천 명 정도 참여하다가 그 날은 십만 명 정도가 왔어요. 그게 네이버 같은 데에 기사가 너무 세게 나오고 다 (뉴스) 메인에 걸리고 그랬죠.”

 

그에게 쏟아졌던 따가운 시선들의 뒤에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공개된 故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투쟁 당시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지도”를 하라는 지시가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김장훈은 소식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원래 그런 사람들인 줄 알았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배후에서 조작하는 세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제가 최순실, 차은택과 관련돼 있다는 찌라시만 해도 그래요. 원래 찌라시라는 건 돌고 도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건 이틀 만에 카톡으로 전국에 다 퍼졌어요. 하나는 아예 보수 언론에서 디자인까지 해서 퍼트리더라고요. 그게 무슨 찌라시예요? 제가 그걸 보고 ‘이걸 이렇게 빨리 퍼뜨리고, 이 사람들 홍보 진짜 잘하네. 홍보팀으로 써야겠는데?’ 했다니까요. 정말 고마웠던 건, 기자들이 처음에는 기사로 안 썼어요. 카톡으로 받고 확인 차 저한테 전화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문화융성위에 확인해 보라고, 이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뻘쭘하다고 했죠. 결국 문화융성위에 전화해 보니까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고요.”

 

그는 세월호 이후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부당함 앞에서도 “난 그걸 외압이라고 인정하지 않아. 시련이라고 생각 안 해. 외압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담지 않아. 내가 인정 안 하면 그뿐이야”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김장훈이 불의를 견디고 저항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에게 물었다.

 

“대중들을 대할 때는 비난을 해도 ‘그럴 수도 있어, 그럴 만한 (오해의) 소지를 내가 제공을 했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해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냥 안 할래’라고 결론을 내리는 거죠.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변명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느니 정면 돌파하는 게 낫다’고요. 그게 제 스타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아요. 변명하는 건 구차하고 치사한 것 같아서 하기 싫어요. 그런데 정부나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대항하죠. 당시에도 바로 기자간담회를 열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이야기했어요. 이 정부가 자신의 아버지 때에 하던 일들을 지금 21세기 민주사회에서 하고 있다고요. 기사에는 ‘김장훈, 박근혜 이렇게 무능할 줄 몰랐다’라는 식으로 나왔는데 실제로는 더 세게 이야기했죠. 당시만 해도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서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고독한 어린이’가 맞는 것 같아요


인터뷰 도중 김장훈이 자주 언급한 단어 중에는 ‘가족’과 ‘팬’이 있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동의어일지도 모르는 말들이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팬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어졌고, 그건 가족에 대한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팬들을 사랑하는 것도 매년 진화해요. ‘뭘 해서 더 행복하게 해줄까’ 생각하면서 공연비도 더 낮추려고 하고,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해하겠지’ 하면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이벤트를 생각하죠. 팬들이 좋아하는 건 음악과 함께 뒤안길을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연습실을 오픈하기로 했어요. 연습실에 놀러 오라고 해서 제가 어떻게 연습하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요. 그때가 설 연휴니까 각자 싸온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저는 어느 날부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비난하는 이야기들까지 신경 쓸 새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는 팬들과 만날 생각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2월에 예정된 『나를 도발한다』의 북콘서트 (가제)‘김장훈의 책 읽어주는 남자’ 공연장을 섭외하러 갈 계획이라며 미리 귀띔해주기도 했다. 이번 북콘서트에서는 동료 가수들을 초대해 책 속 내용에 어울릴만한 노래를 청해 듣고, 이후 시간은 밴드와 함께 공연을 선보일 생각이라고.

 

동시에 앨범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3월부터 25주년 전국 투어를 시작한다. 평소 “관객 입장에서는 가수가 잘 보이는 소극장 공연, 즉 공연장이 작을수록 큰 공연”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는 이번에도 최대한 많은 곳에서 팬들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화 소외 지역 없이 다 찾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거니까, 의미로 보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공연일 수도 있어요. 제가 처음 공연(전국투어) 장소는 울릉도로 정했었는데 가는 길에 파도 때문에 회항했었거든요. 두 번째는 영월에서 했었어요. 다 찾아가겠다는 거죠. 인터넷상에서만 문화를 누리고 오프라인에서 아무것도 못 누리는 지금의 상황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지자체와 협조를 해서 지원을 조금 받고, 저는 티켓값을 낮추려고 해요. 그 대신 양질의 공연으로 김장훈의 퀄리티를 가지고 가고요. 저는 이게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좋은 나눔은 공연에서 하는 거고요. 촛불도 나눔이에요. 왜냐하면 나눔의 궁극은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거잖아요.”

 

천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를 바라보면서, 인터뷰를 준비하며 떠올렸던 질문을 상기했다. ‘김장훈은 어떤 사람일까’ 자연스레 책에 실린 타인들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가수 바다와 이소라, 작사가 박주연, 디자이너 지춘희가 바라본 김장훈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다가 저를 두고 ‘고독한 어린이’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되게 와 닿았어요. ‘어린이’와 ‘고독’은 잘 안 어울리는 단어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제가 정말 나이만 먹었지 약간 철이 없는 것 같고요. 어린이인데 고독하니까 뭔가 해줘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드는 게, 제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작사가 박주연 씨는 저를 ‘화전민’이라고 했는데 ‘역시 작사가라서 이렇게 기가 막힌 표현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예전에는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항상 안테나가 가족을 향해 있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성향이 있겠으나 그렇게 살지는 못하죠. 불을 지르는 것까지는 맞는데 그곳을 떠나지는 않고 불을 질러서 토양을 좋게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서 가족들을 돌보고요. 사람이 어려워져 보면 옥석이 가려진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남는 자와 떠나는 자가 가려지죠. 지금 저는 제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안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용의도 있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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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리게 살 이유가 없죠


김장훈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 『나를 도발한다』에서 유일하게 발견할 수 없는 주제가 있다면 ‘사랑’이다. 극한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유전자’ 때문에 사랑까지도 밀어낸 것인가 싶었지만, 성급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출판되고 나서 보니까 여자 이야기를 하나도 안 썼더라고요. 이제 저한테 여자는 없나 봐요(웃음). 얼마 전에 누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해서 농담으로 ‘좋지’라고 했는데, 그러다가 ‘그냥, 귀찮아’라고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괜찮은 사람을 만나도 연애할 생각을 하면 ‘됐어, 그냥 연습이나 하고 바둑이나 두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결혼은 못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치열함이 있는 한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현식이 형(故 김현식)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전설이면서도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또 형수의 모습도 보니까, 제가 결혼을 하고도 계속 치열하고 외롭고 방황을 하면 조금 아내에게 미안할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지금은 다 이해해줄 것 같지만, 이해해 주길 바라지도 않고 이해를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자유인이라고 해도 결혼한 후에 ‘나는 그런 놈이니까’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놈이라고 해도 (배우자를) 만나면 묵계적으로 집에도 꼭 들어가야 되고 안정도 추구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기부하는 것도 조금 조절해야 되고 정치인을 욕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되겠죠. 저는 결혼하면 여자한테 죄 짓는 거예요.”

 

처음으로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책 속에 담은 그에게 물었다. 대중이 김장훈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없는지. 그는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답하면서도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김장훈의 감춰진 모습’을 묻는 질문에는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책을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게, 굳이 글로 써서 보여주고 싶지가 않아서였어요.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튀고 누구보다 우뚝 서고 싶어요.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냥 평범하게 사람들하고 섞여서 어울리고 싶어요. 그렇다고 해도 평범해지지는 않겠으나, 그런 바람이 있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김장훈은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예인(藝人)으로서 그가 몸을 사리지 않고 극한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이유도, 모난 돌이라고 눈총 받아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이유도, 모두 알 것 같은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살 날이 많이 남았을 때도 제 생각대로 안 한 게 없거든요. 그런데 살 날이 훨씬 줄어든 지금 그렇게 안 살 이유가 없다는 거죠. 책에서 ‘공인이라서 싸운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이가 먹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거예요. 보통은 나이가 들면 둥글어져야 된다고 하는데, 왜 그래야 되냐는 거죠. 지금 제가 삶의 2/3를 살았다면, 저는 1/3만 더 살고 가고 싶어요. 줄기세포 같은 거 싫고, 100년은 지겨워서 못 살아요. 그렇게 따지면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쪽팔리게 살 이유가 없죠.” 


 

 

나를 도발한다김장훈 저 | 쌤앤파커스
이 책은 꾸미지 않고, 과장하지 않고, 조금 부끄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말하는 김장훈의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소외되며 방황했던 성장기, 가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 사연, 음악관과 공연 철학, 그리고 나눔과 참여에 대한 단상 등을 진솔하게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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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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