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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진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펴낸 선재스님 자연과 인간, 불교에서 전하는 음식에 대한 지혜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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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맑고 건강 하려면 좋은 땅, 좋은 물, 좋은 공기, 좋은 햇빛이 있어야 하잖아요. 좋은 땅, 좋은 물은 나에게 좋은 음식 재료를 주는 거니까 자연의 생명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음식 속에서 느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배려하고 먹어야 된다는 거고요.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선재 스님이 물었다. 오래 전, 부처님께서 남기신 물음 그대로다. 시대는 달라도 두 수행자가 설파하려는 진리는 똑같다. “음식은 곧 삶의 문제”이며 “음식은 우리의 삶과 사상, 몸과 마음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오늘 하루, 그리고 지나간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되돌아보자. 시간에 쫓겨 대충 한 끼를 때우거나 강렬하게 혀끝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는 않았나. 그러는 동안 ‘내 몸을 살리는 음식’에 대한 고민은 뒤로 밀려났을 것이고, 감사한 마음과 충만한 감정을 느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잘’ 먹으면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40여 년간 선재 스님이 만들고 알려온 사찰음식에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기별로 몸이 필요로 하는 식재료들, 그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 음식을 통해 깨닫게 되는 세상살이의 이치가 맛있게 버무려져 있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헤아리다 보면 자타불이(自他不二),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가 있으므로 네가 있다’는 연기(緣起)의 법칙과도 닿아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밥상을 마주하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밥을 먹고 ‘나’라는 생명이 다른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어떤 음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느냐에 따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아픈 이들이 건강해지고 삶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라는 마음으로 사찰음식을 알려온 선재 스님은 지난 2016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불교조계종단으로부터 최초로 ‘사찰음식 명장’을 수여 받았다. 이미 1994년에 사찰음식에 대한 최초의 논문(「사찰음식문화연구」)을 발표했던 스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큰 병(간경화)을 이겨내는 데에도 사찰음식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음식 수행자’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학교, 종교기관, 기업 등에서 4천여 회의 강연을 이어오면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를 비롯해 세계를 무대로 한국의 사찰음식을 알리고 있으며, 어린이 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 제작에 참여하는 등 아이들의 음식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앞서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을 집필했고, 새롭게 출간된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는 지나온 삶과 사찰음식을 전하며 겪은 소소한 이야기들, 불교에서 전하는 음식에 대한 지혜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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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몸에 필요한 건 ‘해초, 무’

  

스님, 건강은 괜찮으세요?


보시다시피요(웃음).

 

다행입니다(웃음). 간경화는 완치 판정을 받으신 건가요?


그렇죠.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건 아니고요. 유지하고 살아요.

 

스님께 사찰음식을 배우러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아프신 경우도 있을 텐데요.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나을 수 있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뭘 먹으면 좋으냐고 물어보시죠. 그런데 한 마디로 ‘무얼 먹으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그걸 먹는다고 해서 낫는 것도 아니거든요. 병이라는 건 오랜 세월의 잘못된 식생활과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그 두 가지를 같이 다스려야 해요. 서서히 음식을 바꿔줌으로써 내 몸의 에너지를 바꿔줘야 되죠. 그러려면 몸에 좋은 걸 먹어야 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버리는 거예요. 제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은 먹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잘 안 먹어요’라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저는 ‘아예 드시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해요.

 

인터뷰 전에 스님께서 수업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오늘은 어떤 음식을 만드셨나요?


계절의 변화에 의해서 우리 몸도 변화가 됩니다. 겨울이 되면 동물도 잠을 자고 나무들도 나뭇잎을 떨구고 자기 안에 에너지를 만들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움직이죠. 이럴 때는 움직이는 에너지의 음식이 필요해요. 바다에 있는 해초와 계절을 머금어서 말려놨던 것들을 꺼내서 먹어줘야 할 시기죠. 그래서 무말랭이, 고춧잎, 무를 가지고 요리를 했어요. ‘겨울 무는 산삼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무는 다른 음식을 해독해주고 몸에 잘 흡수되게 만들어 주거든요. 그리고 겨울에 먹어야 될 나물 중에는 바다 나물도 있지만 집에서 물을 주고 키울 수 있는 것들, 숙주나 콩나물 같은 것들도 있어요. 오늘은 이런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했습니다.

 

파래 무침도 만드신 것 같더라고요.


파래와 숙주로 전을 부쳤고요. 생미역 무침, 몰(모자반) 무침, 무 조림을 만들었어요. 콩나물과 가을 야채를 다져서 유부 속에 넣기도 하고요. 오후에는 호두를 넣어서 만두를 만들 거예요. 스님들은 육식을 안 하시니까 만두소에 고기 대신 호두를 넣는 건데요. 우리 뇌에 필요한 영양이 당과 산소인데, 겨울에는 햇빛도 많이 못 보고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서 산소도 많이 공급이 안 돼요. 그래서 건뇌식(建腦食, 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식품)인 호두를 넣어서 뇌에 필요한 영양을 흡수하게 도와주는 거예요. 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강으로 엿을 만들 건데요. 생강차보다 가지고 다니기도 쉽고, 조금씩 먹으면 몸이 따뜻해져요.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서도 각각의 계절에 먹으면 좋은 사찰음식을 소개해 주셨어요. 겨울 메뉴 중에서 추천해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무 조림, 무말랭이 같은 것도 좋고요. 배추된장찜도 맛있어요. (지금) 배추가 굉장히 맛있어서 된장 하나만 넣어도 되거든요. 배추를 씻어서 아무것도 넣지 않고 은근하게 익혀요. 그리고 배추가 다 익으면 뚜껑을 열고, 마지막에 된장만 넣고 한 번 볶아서 내놓는 거예요. 찢어서 먹으면 굉장히 달고 맛있어요. 배추는 수분이 많고 섬유질이 풍부해서 대장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잖아요. 된장은 발효음식이니까 장을 편안하게 해주고요.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장 운동을 도와주는 거예요. 그리고 열을 식혀주거든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도 있지만 위로 솟는 열도 있는데, 그 열을 내려줌으로써 몸의 순환을 시켜주는 역할을 해요. 특히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한테 굉장히 좋음 음식이죠. 비타민도 많고요. 음식은 맛으로도 먹고 영양으로도 먹지만 ‘이 계절에 이 음식을 먹으면서 어떤 에너지를 받을 것인지, 몸 안의 독소를 어떻게 빼줄 것인지’도 살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해요.

 

스님께서 만드시는 음식은 많은 재료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하지 않아요. ‘이렇게 만드는 것만으로 스님과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의아하기도 해요.


수업에 오시는 분들 중에서도 절에 다니시는 분들은 고기나 생선, 파, 마늘이 음식에 안 들어간다는 걸 아세요. 그런데 다른 종교의 분들은 이 재료들로 무슨 맛을 낼 수 있을까 의아해 하시죠. 그리고는 맛을 보고 깜짝 놀라세요. 저는 무말랭이를 만들 때도 물에 담가놓지 않아요. 그러면 맛과 비타민 D 같은 것들이 빠져나가거든요. 그냥 물에 씻어서 잠시 놔뒀다가 만들어요. 그래도 달고 맛있어요. 본래 가지고 있는 맛과 에너지를 살려서 먹는 거죠.

 

많은 재료를 넣어야 맛있어지는 건 아니네요. 


무언가를 많이 넣고 손이 많이 가야만 요리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요리도 있어요. 그렇지만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우엉, 연근, 고춧잎, 무말랭이는 물에 담가놓지 않고도 먹을 수 있어요. 시금치도 데친 후에 씻지 않고 찬 데 내어놨다가 무쳐먹으면 굉장히 달고 맛있어요. 별 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재료 자체의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맛도 영양도 함유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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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마음이 달라져요


‘가르쳐주신 대로 만들었는데, 스님이 만들어주신 그 맛이 안 나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안 계세요?


있죠. 간장, 된장, 고추장이 달라서 그래요.

 

역시 ‘제대로 만든 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음식의 전통은 발효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한국 사람이면서도 한국 음식을 안 먹고 살아요. 저는 요리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요. 장과 김치를 담글 줄 아냐고요. ‘그 두 가지를 하지 못하면 요리사라고 말하지 마라, 한국 사람이라면 어느 나라 요리를 하든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은 지켜야 된다, 그 간장과 된장을 가지고 서양 음식을 만들어 봐라’라고 말하죠. 우리 음식은 발효된 장을 가지고 채소가 가지고 있는 독도 해독하고, 맛도 중화시키고, 우리 몸에서 거부반응 없이 잘 흡수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음식이라는 것은 남의 생명이잖아요. 남의 생명을 나의 생명과 합할 때 중화시켜주는 역할이 바로 발효된 장과 김치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장과 김치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죠. 제 수업에서는 직접 담근 장으로 음식을 만들어요.

 

음식이 몸뿐만 아니라 정신과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건 선뜻 믿기 힘든 이야기예요.


경상도 사람들은 성격이 어떤 것 같아요?

 

불 같은 것 같습니다(웃음).


경상도 사람들은 짜고 맵게 먹잖아요. 전라도는 산과 들과 바다가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식 재료가 굉장히 풍부하죠. 그래서 음식 인심이 좋아요. 음식 인심이 좋으면 마음에 여유가 많거든요. 그래서 예술인들이 많이 태어나잖아요. 충청도는 심심하고 덤덤하게 먹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충청도 사람들은 순하다고 이야기하죠. 답이 나왔잖아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그 지방 사람의 성품을 이야기하듯이, 우리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우리 마음이 주어지는 거예요. 음식이 우리 마음과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수도 있는 거죠. 스님들은 음식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수행을 이룰 수가 없어요. (사찰에서) 파와 마늘을 안 먹는 것도, 익혀 먹으면 음력(陰力)이 나고 날로 먹으면 화가 난다고 해서 못 먹게 한 거예요.

 

책 제목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는 부처님께서 물으셨던 질문이기도 하다고요. 부처님께서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잖아요. 행복 하려면 건강한 몸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죠. 스님들은 영혼이 맑아야 돼요. 그러려면 맑고 건강한 음식이 토대가 되어야 하거든요. 음식이 맑고 건강 하려면 좋은 땅, 좋은 물, 좋은 공기, 좋은 햇빛이 있어야 하잖아요. 좋은 땅, 좋은 물은 나에게 좋은 음식 재료를 주는 거니까 자연의 생명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음식 속에서 느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배려하고 먹어야 된다는 거고요. 발우공양도 마찬가지예요. 음식 찌꺼기를 땅에 버리지 않음으로써 공해를 하지 말라는 거거든요. 그 땅이 너와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음식을 소홀하게 대해요.

 

그런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돼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고 음식을 어떻게 선택해서 먹어야 되는지 가르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의 꿈을 이루고 났는데 몸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러기 전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한테 음식을 어떻게 선택해서 먹어야 되는지, 왜 음식을 만들어야 되는지, 그 음식 속에서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을 알게 해줘야 해요. 그럼으로써 삶이 방식이 달라지게 만들어줘야죠. 그러면 풀 한 포기 공기 한 모금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실 수가 없죠.

 

어린이 뮤지컬 <그거 알아요? 음식은 생명!>의 제작에도 참여하셨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 교육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나요?


‘음식 수행자’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유치원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좋은 음식을 먹는 문화를 가르쳐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서 아토피 아이들, 자폐증 아이들을 음식으로 치유하게 됐어요. 정말 음식을 통해서 많은 변화가 오더라고요. 성격에도 변화가 오고, 자폐증 아이들도 (증상이) 많이 완화가 되고, 아토피는 음식만 바꿔주면 낫고는 했어요. 이걸 더 활성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한테 요리를 가르치게 됐죠. 그래서 뮤지컬도 만들게 된 거예요. ‘쌀 미(米)’에는 8이 두 개가 있잖아요. 농부의 손이 88번 가야 쌀 한 톨이 나온다는 건데, 그 내용을 각본으로 써서 뮤지컬을 만들었어요. 

 

뮤지컬을 본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학교에서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저희가 집간장만 넣고 끓인 감잣국을 만들어줬는데, 처음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먹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야채볶음밥도 안 먹는데 소고기도 안 넣고 양파도 안 넣은 국을 먹겠느냐고요. 그리고 애들이 나물도 안 먹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걸 다 먹은 거예요. 김치도 다 먹고,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나는 앞으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무조건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자연에 감사하겠습니다, 환경운동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깜짝 놀랐죠. 그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어요. 그래서 당시에 메르스 때문에 난리가 났었는데도 불구하고 스물다섯 군데의 학교와 유치원에 가서 5천 명의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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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맛으로만 음식을 먹는 것이 문제


스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셨기에 아이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걸까요?


아이들한테 이 음식이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해줘요. 얼마나 고마운 음식인지 말해주고요. 당근 하나를 가지고도 ‘이 당근을 500원 주고 사왔는데, 이건 500원짜리가 아니란다’라고 말해주죠. 당근이 자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면 아이들이 다 대답해요. 땅도 있어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하고 농부도 있어야 한다고요. 그러면 당근을 생으로 썰어서 아이들한테 하나씩 주면서 이야기하죠. ‘눈을 감고 당근을 씹으면서 이 속에 있는 햇빛도 보고 땅도 보고 물도 보고 바람도 보거라, 그리고 농부의 수고로움도 생각해 보고, 스님이 어떻게 요리를 했는지도 생각해 봐라’ 그러면 아이들이 너무 감사한 표정으로 앉아있어요. ‘자유롭고 조화롭게 먹고 나면 우리 몸이 저절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튼튼하고 지혜로워진다’고 말해주면 아이들이 다 먹죠. 자기 몸에 좋다는데 왜 안 먹겠어요(웃음).

 

사찰음식을 먹으면서 불교 철학을 접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말씀에서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아이들에게도 ‘이건 그냥 당근이 아니라 수많은 연결이 되어 있다’고 말해줘요. 당근을 뽑는 사람, 당근을 담는 박스를 만든 사람, 그 박스를 싣고 온 운전사 아저씨, 아저씨가 타는 차를 만든 사람, 그 모두의 손을 거친 거라고요. 내가 돈을 주고 샀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니고, 많은 인연이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라고 알려주는 거죠. 그러니까 각자가 행복해야지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땅도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물도 행복한 거죠. 제가 아이들한테 요리를 가르치는 것도 자연의 생명이 나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예요.

 

‘먹방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잘’ 먹는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지금 우리의 음식문화에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혀의 맛으로만 먹는다는 거죠. ‘이것이 과연 나와 나의 생명, 내 몸에 얼마만큼 좋은지’, ‘음식이 약이라고 했는데 진짜 나한테 약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리고 ‘내가 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닭이나 돼지한테 우리가 무엇을 해주고 먹느냐는 거예요. 한 스님은 이 책을 읽고 울면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자신이 왜 이걸 깨닫지 못했는가, 하고 통곡을 했대요(웃음).

 

프랑스의 르 꼬르동 블루 등 해외에서도 다수의 강연을 해오셨어요. 사찰음식을 처음 맛본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반응이) 대단합니다. ‘자연의 생명이 나와 둘이 아닌 하나이고, 자연의 재료를 쓸 때는 꿀벌이 꽃을 해치지 않고 도움을 주면서 꿀을 가지고 오듯이 해야 한다’고 하면 기립박수를 쳐요. 지금까지 서양음식이라는 것이 자연을 배려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르 꼬르동 블루도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고, 에꼴페랑디도 그렇게 키우고 있어요. 거기(에꼴페랑디)에 오랫동안 저한테 요리를 배운 프랑스 친구가 있는데, 저한테 ‘사찰음식은 어떻게 만듭니까?’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어떤 답을 들려주셨나요?


어떻게 한 마디로 이야기해줄 수 있겠냐’고 하면서도 ‘네가 한 마디로 물으니까 나도 간단하게 설명할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오늘 이 배추를 2000원 주고 샀는데 우리는 2000원짜리라고 말하지 않아, 이 배추가 내 손에 오기까지는 수많은 농부의 손길을 거쳐야 하고 배추가 자라기 위해서 모든 자연계의 생명이 함께했어, 그러니까 이걸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해야 돼’라고요.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올려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듯이, 배추를 보고 부족한 것과 장단점을 살펴서 필요한 재료를 찾고 요리라는 수행을 통해서 음식을 만든다는 거죠. 그건 배추가 자기 안의 생명을 이룬 것이고 그렇게 요리를 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 친구가 제 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고, 프랑스에 가서 그렇게 열심히 했더니 명장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고 프랑스에서 인사를 하러 왔었어요.

 

스님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고, 더 쉽게 사찰음식을 접하면 좋겠다는 의견들도 있어요. 그런데 스님께서는 사찰음식과 관련해서 어떤 사업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어요.


수행자니까요. 제가 할 일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서 입맛을 바꿔주는 일이죠. 제가 만약 어떤 분과 사업을 하게 되면, 그 분이 저한테 기대하는 바가 있잖아요. 수행자가 돼서 그 분의 기대치를 모른 체 할 수 없잖아요. 그 일에 매진해야 되죠. 그러면 돈을 벌고 노후에 편안하게 지낼 수는 있겠지만, 제가 수행자로서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잖아요. 좋은 음식문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많은 생명들이 함께 행복하고 건강하도록 이바지해야 하는데, 거기에 매진할 수는 없죠.

 

사찰음식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들었어요. 현실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인데, 사업을 시작하시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지 않나요?


사찰음식을 통해서 그 분들(투자자)한테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은 양심을 조금 팔아야 되는 일이에요. 사찰음식은 돈 버는 수단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그 부분이기도 해요. 사찰음식을 통해서 돈을 벌 수가 없어요. 정직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돈을 벌려면 음식이 고가여야 하는데,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필요하냐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장을 담가 먹고 제철음식을 먹으면 돈이 많이 들지 않잖아요. 그런 운동을 자꾸 해 나가야죠.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선재 스님 저 | 불광출판사
이 책은 선재 스님이 ‘음식 수행자’로 살면서 그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일상에서 당장 해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레시피를 담았다. 이를 통해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 음식과 생명의 가치, 곧 모든 생명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식은 곧 생명, 먹는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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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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