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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세균을 이길 수 없는가

항생제 내성 문제를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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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많은 걸 이루어왔기에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본디 생명이란 물리적, 화학적 조건의 극한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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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항생제 내성에 관한 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독자께서 ‘중이염은 그렇고 감기약에도 항생제가 들어있는데 언제까지 먹어야 하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항생제 내성이 불안하신 거죠.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지식을 조금 알아야 합니다. 조금 끔찍한 얘기로 시작합니다.


2개월 전 알렉산더는 장미 덤불에 얼굴을 긁혔는데,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그만 감염되어버렸다. 곧 얼굴 여기저기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감염으로 인해 왼쪽 눈을 도려내야 했다. 오른쪽 눈마저 같은 운명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감염이 뼈까지 파고들어가 오른팔에서도 고름이 흘러나왔고, 기침을 하면 폐에 생긴 공동에서 누런 가래가 덩어리째 올라왔다.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알마, 2016)


역사상 최초로 페니실린 치료를 받았던 43세의 경찰관 앨버트 알렉산더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 이야기는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의 세상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건강한 사람이 장미 가시에 얼굴을 긁힌 사소한 일 때문에 온몸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결국 양쪽 눈까지 도려내가며 끔찍한 고통 속에 죽었던 겁니다. 그야말로 우연에 생명을 맡기고 살았던 셈입니다. 페니실린이 실용화된 1941년 이전 인류의 평균수명은 40세 남짓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평균 수명이 25~35세였다고 하니 1,000년 동안 5~10년 늘어났네요. 항생제가 발견된 지 70년 만에 인류의 평균수명은 두 배가 되어 80세를 넘기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100세를 돌파하리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옵니다. 일등공신은 항생제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속도로 항생제 내성이 늘어난다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세상이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항생제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녀가 40세까지도 살지 못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심각하다는 게 실감이 나시나요?

 

항생제 내성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항생제를 계속 개발해도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속도를 쫓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두 명의 주연배우를 이해해야 합니다. 세균과 항생제입니다. 세균은 단세포 생물입니다. 세포 1개로 이루어진 생물이란 뜻입니다. (참고로 사람은 세포 100조개로 이루어진 다세포 생물입니다.) 아주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요. 실험실에서는 세균을 둥그런 배양접시에서 키우는데 직경 1mm의 집락 안에 세균 10억 마리가 삽니다. 지구에는 10의 30승 마리의 세균이 있다고 추정합니다. 1 뒤에 0이 30개 붙은 숫자로 우주의 별을 모두 합친 숫자의 천만 배랍니다. 세균이 이렇게 번성하는 이유는 엄청난 적응력 때문입니다.

 

세균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고, 우리 몸 속에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서만 사는 게 아닙니다. 섭씨 120도에서 살아가는 세균이 있는가 하면, 핵발전소에서 쏟아지는 방사성 오염수 속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패를 막기 위해 음식을 소금에 절이지만 사람의 몸이 저절로 둥둥 뜨는 이스라엘의 사해(死海)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광합성을 할 수 있어 햇빛만 비치면 사는 세균도 있고, 햇빛이라고는 한 점도 들지 않는 심해에서 사는 세균도 있습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적응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답은 세균의 분열속도에 있습니다. 세균 중에 분열속도가 가장 빠른 놈은 6분 20초 만에 두 마리가 됩니다. 이런 속도라면 1시간 후에 1천 마리, 2시간 후에 1백만 마리, 3시간 후에는 10억 마리가 됩니다. 유명한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은 분열속도가 20분으로 느린 편입니다. 그래도 하루면 70대손이 태어납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요? 세대가 짧으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습니다. 지구상 모든 생물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진화는 하나의 세포에서(어쩌면 그보다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수십억 년 정도) 단 한 개의 세포에서 아메바와 따개비와 떡갈나무와 흰수염고래와 인간이 만들어진 겁니다. 기적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진화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최초의 세포가 의도적으로 인간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인간이 된 겁니다. 진화의 교훈은 수없이 세포분열을 거듭할 수 있다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개의 세포가 흰수염고래가 되고, 펄펄 끓는 물 속에서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기적에 비하면 항생제를 극복하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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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imagetoday

 

두 번째 주연배우를 불러봅시다. 항생제죠. 놀랍게도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항생제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걸 찾아낸 겁니다. 페니실린도 푸른곰팡이에서 발견되었지요? 그런데 찾을 만큼 찾았기 때문에 이젠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동안에는 기존 항생제를 조금씩 변형시켜 내성균에 대처해왔지만 이 방법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처음부터 시험관 안에서 합성해내는 방법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항생제를 찾았다고 합시다. 새로운 물질을 약으로 쓰려면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유효성)와 사람에게 써도 안전한지(안전성)입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이란 걸 합니다. 임상시험을 무슨 큰 음모인양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거대자본이 학계와 정부를 좌우하기 때문에 시험 결과를 조작한다든지, 저개발국가에서 인권을 무시하고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진행한다든지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임상시험이 없다면 신약을 개발할 수 없습니다. 시험도 안 해본 걸 약이라고 먹을 수는 없잖아요. 현대를 사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거의 모든 부분에 이렇게 선의와 협잡이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임상시험이라는 게 비용도 많지 들지만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보통 몇 년씩 걸리지요. 거기에 비해 하루면 70대손이 태어나는 세균은 내성을 너무나 빨리 발달시킵니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많은 걸 이루어왔기에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본디 생명이란 물리적, 화학적 조건의 극한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면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니 항생제 내성 문제를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겸허하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명의 위대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항생제라는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소중하게 아껴 써야 합니다. 이런 기본 지식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참, 이번 글에서 세균에 대한 환상적인 사실들은 코펜하겐 대학 미생물학과에서 인터넷 교육 코스인 코세라(Corsera)에 올린 ‘세균과 만성감염’이라는 강좌에서 인용했습니다. 코펜하겐의 교수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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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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