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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다가서는 큐레이션

디지털 시대 출판·콘텐츠 산업의 미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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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것을 큐레이션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큐레이션은 출판업계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공통분모와 같으며,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시장 환경 속에서 희망을 제시하는 일종의 가치 저장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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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읽기를 게을리 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디언>을 구독했고, 이 외에도 <타임>, <뉴욕타임스> 등 여러 종류의 신문과 잡지를 읽었다. 또 BBC 방송까지 시청했다. 점심시간에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이브닝 스탠다드>를 읽었으며, 집에 와서는 <와이어드>, <이코노미스트>, <위크>, <타임아웃>을 탐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 계정으로는 매일 50개의 RSS 피드가 전송되었다. 또 메일함에는 각종 뉴스는 물론 기술 관련 블로그, 토론 주제, 크리켓 소식, 미디어 리뷰, 새로 출시된 기기 정보 등을 담은 뉴스레터가 가득했다. 자극적인 제목의 흥밋거리 기사가 넘쳐나는 트위터(Twitter)와 페이스북도 거의 매일 들락거렸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러보는 웹사이트도 몇 개 있었다. 지역 뉴스 및 시사 풍자 사이트 등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저 재미로 읽는 책도 있었고, 업무나 자료 조사에 필요해서 보는 책도 있었다. 하나같이 몇 백 쪽이 넘는 책들이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읽지 않은 잡지나 책이 높이 쌓여 있거나 노트북을 열었을 때 화면 아래쪽에 RSS 목록이 죽 떠 있을 때면, 사실 뭔가를 읽는다는 것이 무척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방대한 규모나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압도되어 읽을거리가 주는 유익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설령 책이나 잡지처럼 재미있고 무해한 읽을거리라 해도 말이다.

 

덜어낼수록 커지는 가치


어느 날, 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한 달 동안 딱 두 곳에서만 읽을거리를 접하기로 한 것이다(책도 두 권으로 제한했다). 하나는 <문학과 예술(Arts and Letters Daily)>이라는 사이트로 다양한 주제의 기사 가운데 세 가지 기사만 선별해 보여주는 곳이며, 다른 하나는 <쿼츠(Quartz)>라는 온라인 뉴스 및 블로그 사이트다. 이 두 곳 모두 뉴스레터에 올라오는 기사 가운데 가장 좋은 콘텐츠만을 선별해 제공한다. 이런 식으로 편집자에 의해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기사의 재미는 물론 유익성과 신뢰도까지 보장되었다. <쿼츠>는 각종 링크 외에도 다양한 뉴스를 실었으며, <문학과 예술>은 알차고 내실 있는 기사로 가득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읽을거리에 대한 큐레이션 작업이었다. 높이 쌓여 있던 책과 잡지를 모두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읽는 것에 대한 가치가 높아졌고 선택은 한결 단순해졌다. 또 <쿼츠>와 <문학과 예술> 두 사이트 모두 자체적인 콘텐츠 큐레이션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에 양질의 기사를 놓치지 않고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즉, 예전만큼 좋은 글을 많이 접하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양에 과부하가 걸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스스로 읽을 양을 쉽게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글자 더미에 파묻혀 허우적대기보다 다시금 읽기 자체를 즐기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뭔가 대단한 혁신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선별 행위 그 자체가 독자인 나에게, 그리고 나 같은 독자를 가진 두 곳의 사이트에 큰 가치를 부여했을 뿐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짜 문제


디지털 사회에서는 출판업자의 큐레이터로서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출판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 즉 ‘독자가 누구이며 내용 전개는 어떻게 되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큐레이션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자는 자신의 책장과 도서 목록을, 서점은 판매 도서와 집중 홍보 대상을 큐레이션한다. 그리고 미디어, 책과 관련된 각종 사이트나 앱은 독자에게 소개할 페이지나 토론 내용 등을 큐레이션한다. 대표적인 예로 추천도서 목록을 제공하는 오프라 북클럽(Oprah’s Book Club), 도서 큐레이션 관련 신생 업체 톱스타(Toppsta, 아동 도서를 추천해주는 온라인 사이트 - 옮긴이) 및 알렉시(Alexi, 몇몇 큐레이터가 추천 도서를 제공하는 모바일 앱)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새로 출간된 책의 표지를 텀블러(Tumblr, SNS와 블로그 중단 단계의 플랫폼)에 게재해 놓는다든가, 지역 독서클럽에서 특정 목록을 선택하는 것도 큐레이션 행위로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을 큐레이션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큐레이션은 출판업계가 직면한 모든 문제의 공통분모와 같으며,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시장 환경 속에서 희망을 제시하는 일종의 가치 저장소와 같다. 출판업계의 문제는 단순히 디지털 기술이나 세계화, 독자들의 독서 습관 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뛰어넘는 훨씬 강력한 요소가 존재한다. 바로 과잉 시장이다. 출판업계를 어렵게 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과잉 시장의 문제는 뿌리가 매우 깊으며 이미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또 그 문제가 늘 눈에 보이는 것만도 아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출판 시장의 화려한 단면이나 일일 수익, 유행 등에 사로잡혀 정작 과잉 시장의 문제는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큐레이션마이클 바스카 저/최윤영 역 | 예문아카이브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이다. 큐레이션은 이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넘어서서, 패션과 인터넷을 비롯해 금융ㆍ유통ㆍ여행ㆍ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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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마이클 바스카

경제학 연구자, 작가,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퍼블리싱 콘텐츠 기업 카넬로(Canelo)의 발행인. 옥스퍼드 브룩스 국제 센터(Oxford Brookes International Centre) 연구원으로 영국문화원 ‘미래를 이끄는 젊은 창조 기업가’로 선정됐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여하는 ‘깁스상(Gibbs Prize)’을 받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디지털 시대 콘텐츠 산업의 미래와 해법을 다룬 《콘텐츠 머신(The Content Machine)》 이 있다.

큐레이션

<마이클 바스카> 저/<최윤영> 역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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