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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가 왜 한국 소설을 썼을까?

『소주 클럽』 작가 팀 피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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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초고를 쓰는 데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초고에 다시 한 달. 세 번째에 한 달. 총 석 달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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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가 쓴, 매우 "한국적인" 소설이 번역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제목도 무려 <소주 클럽>. 어쩌다 인물 한두 명이 한국인이거나, 어쩌다 한두 장면 한국이 배경으로 나오는 작품이 아니다. "한국을 통째로 캐스팅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만큼 등장인물에서부터 소재와 상황까지 모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다. 읽다 보면, 이거 정말 미국 작가가 쓴 거 맞아?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우리의 이야기여서일까? 흡인력도 엄청나 한달음에 읽힌다. 아무래도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소주 클럽』 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거제도의 한 가족. 저마다 상처 하나씩은 안고 있는 사람들, 서로 이해가 안 돼 미칠 것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오입쟁이에 알코올중독자에 거지같은 아비에 형편없는 부양자’로, 바다에만 나가면 ‘천재’가 되는 어부였지만, 이제는 늙어 물러난 뒤 친구들과 밤낮 술판만 벌리고 있다. 어머니는 요리로 사람들을 걷어 먹이지 않으면 못 견딘다. 심지어 결별을 작정한 남편의 끼니마저 그녀에겐 커다란 걱정거리다. 형은 다리 부상으로 미래가 꺾여버린 왕년의 축구선수, 여동생은 미국에서 흘러 들어온 백인 영어 강사와 결혼한 ‘성형 미인’이다. 그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웃기면서도 짠한 전쟁"이 담겼다.

 

부산에 사는 주인공 원호는 어느 날 고향 거제도로 호출을 당한다.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는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있단다. 70대 노부모가 황혼이혼을 한다고 소동이 난 것. 평생 버릇처럼 바람을 피워온 아버지지만 이번만큼은 어머니가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어 무마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아니 예전처럼 ‘다시 서로 증오하며 함께 살 수 있도록 돌려놓기’ 위해 거제도를 찾은 원호 앞에는 뜻밖의 상황이 기다린다.

 

미국인 작가가 왜 한국 이야기를 썼을까? 그는 한국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한국적 디테일이 살아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소주 클럽』 을 쓴 작가 팀 피츠에게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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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피츠의 사진 작품

 

 

마치 주인공이 나에게 소설을 불러주는 것 같은 느낌


첫 장편이 한국 이야기다. 왜 한국 이야기를 쓰게 됐나?

 

2012년 여름, 거제도를 방문했는데, 그 환경이 갑자기 소설의 거대한 세팅처럼 다가왔다. 그 세팅 위에 전후 세대와 그 자녀 세대가 어떤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 세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기준이 바뀌고 미래의 전망이 바뀌었다. 당연히 세대 사이에 알력도 있었다. 다른 그 두 세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요소는 일본에 대한 감정, 특히 독도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 일본을 향한 계속된 분노였다. 그것을 접점으로 삼으면 두 세대의 이야기는 물론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접근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 인물이 떠올랐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하지만 진실을 더 사랑하는 인물. 그의 가족과 환경이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시대를 대변하는. 그러자 그 주인공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부터는 쓰지 않기가 어려웠다.

 

작품 속에 한국인의 생활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온다. 특히 한국의 음식과 술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해가 있는 것 같다. 한국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2000년을 전후로 한국에 5년간 산 적이 있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 틈만 나면 열차를 타고 떠나 아무 역에서나 내려 걷는 식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눴다. 미국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동료 교사였던 한국인 여성을 그때 다시 만났고 결혼을 결심했다. 지금 아내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1년에 한번 정도는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에서 살 때, 그리고 한국 가족과 지내면서 한국의 술과 음식을 많이 접했고 한국 음식에 아주 흠뻑 빠졌다. 재료와 조리법이 다양하고 독특한 한국의 음식 문화는 장차 인류에게 크게 기여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집필 과정에서 한국인 아내가 도움을 줬나?


사실 아내는 내가 소설을 쓰고 있는 줄도 몰랐다.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족이 많은 디테일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장인어른은 어업과 사업에 대해 알려주었고, 한국의 할머니는 수제 막걸리 만드는 방법(비법!)을 부엌에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는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얻은 것들이다. 솔직히 『소주 클럽』을 쓸 때는 마치 주인공이 나에게 소설을 불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 내내 그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머릿속의 무선 방송"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흘러나왔다.  소설의 초고를 쓰는 데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초고에 다시 한 달. 세 번째에 한 달. 총 석 달이 걸렸다. <소주 클럽>을 쓰는 것은 거의 유체 이탈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내 평생 그렇게 빨리 집중해서 써본 적이 없다. 이따금 나는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반도 안 되는 시간에 3천 단어를 써내려갔고, 끝내고 나면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얼굴에 땀이 쏟아져내렸다. 그 경험은 정말이지 일종의 엑스터시였다.

 

거제 바다에서.jpg


제목을 『소주 클럽』으로 정한 이유는? 소주를 좋아하는지?

 

‘소주 클럽’은 시도 때도 없이 소주를 마셔대는 '아버지'와 그 주당 친구들을 가리킨다. 아버지는 바다에만 나가면 '천재'가 되는 어부였지만 이제는 늙어 물러난 뒤 친구들과 밤낮 술판만 벌리고 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소주 클럽이 황당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면서 주인공 원호를 끌어들이는 것이 이 작품의 큰 줄기 중 하나다. 그 과정을 통해서 두 세대의 갈등과 접점을 그려내고 싶었다. 일제 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개발의 시대를 보낸 아버지 세대와 그 아들 세대 사이에는 서로 절대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가로놓여 있다. 삶의 경험과 미래의 전망이 완전히 달라 서로 이해하기도 힘이 든다. 이 둘 사이에 가느다랗게 공유되는 점 하나가 일본에 대한 감정이다. 소주 클럽이 세운 황당한 계획은 "독도"와 관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주보다 막걸리를 좋아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주나 막걸리는 인공감미료 때문에 좀 아쉬움이 있다. 수제 막걸리는 정말 좋아하고 미국에서 직접 빚어 먹기도 한다. 설탕 대신 꿀을 넣는 게 나의 비법이다.

 

등장인물들이 매우 생생하게 와 닿는다. 경험이 없다면 쓰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혹시 실제 작가 주변 사람들은 아닌지?

 

전혀 아니다. 물론 일부 속성은 실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가져왔지만 모두 완전히 상상으로 창조한 인물들이다. 가령, 작품 속 '아버지'처럼 장인어른도 어부였다. 하지만 작품 속의 아버지는 ‘오입쟁이에 알코올중독자에 거지같은 아비에 형편없는 부양자’인 반면, 장인어른은 술을 전혀 못 마실 뿐만 아니라 너무도 성실한 가장이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작중인물들과 달리 내 한국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건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든든한 정서적 뒷받침을 해주기 때문에 나의 상상력이 거칠게 달릴 수 있었고, 그래서 상당히 괴팍한 인물들이 창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원호의 직업이 작가로 나온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 많다.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내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외국인인,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이야기를 쓰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쓰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한국 이야기를 제대로 쓰자면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세워야 했다. 시작하자마자 그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아무리 많은 노력을 했어도 여전히 한국인이 아니어서 부딪치는 한계가 분명하게 있었다. 나는 결코 중년의 한국 남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작가라면, 작가라는 성격이 더 중요한 인물이라면, 내가 감정 이입해서 더 진정성 있는 인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 설정하고부터 이야기가 급속히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받아 적기가 바쁠 정도였다.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가? 혹시 차후에도 한국 관련 소설을 쓸 계획이 있는지?


사실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과 시민의 저항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지금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내 소설이 변화에 관한 토론의 밑바탕을 제공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아직은 구상에 머무르고 있다.


 

 

소주 클럽팀 피츠 저/정미현 역 | 루페
『소주 클럽』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다. 그 이면에는 당연하게도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어려 있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 상황이 하나의 배경이 되고, 그 위에 수시로 한국 술과 음식이 그득한 상이 차려지고, 그 상 너머로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는 한 가족의 사연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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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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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클럽

<팀 피츠> 저/<정미현> 역12,4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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