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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블레이크 씨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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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각자가 누구인지 당신처럼 목소리를 높여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목소리가 두 개가 되고, 수만, 수십만, 수천 만의 함성으로 커진다면 세상은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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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니엘 블레이크 씨. 당신의 사연을 담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관람했습니다. 재밌게 보았다고 말씀 드리기 송구할 정도로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었습니다. 함께 본 이들의 감상도 다르지 않았어요. 하나같이 눈시울에 굵은 눈물방울을 매달았더군요. 당신의 사연에 깊이 감정이입을 했다는 의미이겠죠.

 

평생을 성실한 목수로 살아오셨죠. 심장병을 얻어 투병 중인 와중에도 어떻게든 일자리에 복귀하기 위해,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목공 일이 아내를 잃은 후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덜어주는 데 한몫 했을 거란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죠, 노동은 인간의 신성한 권리이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해 줄 최후의 자존심 같은 것이겠죠. 아내와의 사별과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장병, 그로 인해 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셨겠어요. 

 

삼중고를 견디게 해준 건 조만간 다시 연장을 들고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가구를 만들 수 있을 거란 희망 때문이었겠죠. 그런 이들을 도우라고 우리가 세금을 내고 정부로 하여금 마련한 게 복지제도입니다. 심장병을 치료하는 동안 일을 할 수 없으니 대신 실업급여를 받아 생계를 유지해야 되겠죠.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아차,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 영화평론가입니다. 그럴싸한 직업 같아도, 음… 미래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입니다. 한때 잡지사에 정규직으로 소속되었던 때도 있었죠. 하지만, 가는 곳마다 폐간이었고 그럴 때마다 저 역시 실업급여가 절실해 관계 기관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내가 낸 세금을 실업급여의 형태로 돌려받는 것이라고는 해도 내 노동력이 잠시간 시장에서 효력을 잃었다는 증거와 같아 마음이 썩 좋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그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정된 시간 동안 재취업 교육을 받아야 했죠, 해당 서류에 인적 사항과 기타사항을 적어내야 했어요,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재취업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해야 했죠, 이 모든 걸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니, 안 그래도 상실감이 클 이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는 건 아닌가 불만이었어요.

 

당신은 저의 경우와는 좀 달랐죠.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쉬어야 함에도 ‘노동 적합’ 판정을 받게 돼 질병 수당이 아닌 실업급여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죠. 세상에, 노동 적합이라뇨. 병원에서는 분명히 일을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관공서에서는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없이 노동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당신을 몰아붙였죠. 정 힘들면 실업급여를 신청하라고 강요했어요.

 

당신으로서는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그것마저 쉽지 않았던 건 전혀 컴퓨터를 해본 적 없는 당신이 인터넷에 접속해 관련 서류를 내려 받고 공란에 기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놈의 관료주의, 서류 한 장 프린터로 뽑아주는 호의가 뭐 그리 어렵다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거죠?

 

 

전 세계의 많은 이가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누리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걸까요. 시장경제는 우리를 이런 재앙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노동계급을 자꾸 취약하게 만들어 착취하는 구조로 만들었죠. 죽어라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은 다니엘 블레이크 씨의 경우만은 아니에요.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거죠. 독선적이고, 형식적이고, 억압적이고, 획일적이고, 무엇보다 비민주적인 관료주의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어떤 희망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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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먼 곳에 있지 않더군요. 당신이 희망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추스르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두 아이를 키우느라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싱글맘 케이티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서 도움을 주는 모습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게 바로 연대이겠죠. 결국, 중요한 건 힘든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관료주의는 되려 그들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원 밖으로 강제적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보신과 편의를 위한 것이겠죠. 저들에게 원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존재는 낙오자로 통칭할 뿐이지 개인의 인격이나 존엄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요즘 한국에서는 매주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는 100만에서, 160만, 235만 등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이(들)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인 거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이렇게 한결같지만, 집회에 나오기까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은 제각각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비리와 부조리가 이 세상을 좀먹고 약자들을 괴롭힌 것이겠죠.

 

우리는 우리 각자가 누구인지 당신처럼 목소리를 높여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목소리가 두 개가 되고, 수만, 수십만, 수천 만의 함성으로 커진다면 세상은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겠죠.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는 당신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케이티와 손잡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내게 영웅입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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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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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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