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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기리보이의 ‘찌질함’을 원한다

<기계적인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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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프로듀서 자질과 대중적인 선율을 캐치하는 감각은 진솔한 인간상을 원하는 시류와 결합하여 또 하나의 스타를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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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이’. 비와이(BewhY)가 종교적 신념, 빈지노(Beenzino)가 자기 계발의 대명사라면 기리보이를 규정짓는 키워드는 ‘찌질함’이다. ‘어설프다’, ‘허접하다’ 등의 형용사와 유의어로 통용되는 속어인 ‘찌질’은 솔직함이라는 리얼리티 유행에 편승하여 최근 국내 문화콘텐츠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기리보이는 힙합 내에서 그러한 문화를 대표한다. 특히 연애 문제에 관한 그의 찌질한 정체성은 많은 대중의 공감을 사고 있다.

 

<기계적인 앨범>이라는 명확한 콘셉트를 통해 그의 프로듀싱 역량을 엿볼 수 있다. 기계는 즉 전자음을 말하는데, 그가 이끄는 경로는 기존 트렌디한 EDM의 구성이나 최신 팝에 일렉트로니카를 접목시킨 형태의 진부한 노선은 아니다. 트랩과 테크토닉, 하우스의 교합점에서 머무르는 그는 자신의 노랫말을 중심축으로 삼고 기계음을 주변 환경으로써 주도면밀하게 이용하여 메시지를 강화하고 있다. 「말하자면 길어 / 다운」에서는 신시사이저의 극적 요소와 괴이함을 활용하고, 「ZOA」에서는 그루브를 극대화한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순간이다.

 

음반 곳곳에 숨어있는 위트는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치명적인 앨범>의 첫 트랙 「You`re a chemical」에 이은 「YOU`RE A MEDICAL」과 더불어 빈지노의 「Up all night」을 오마주한 「우주비행1」, 서사무엘의 「DO:OM」에 대응하는 「LO:OP」까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밉지 않은 그의 유희는 기리보이의 색을 더욱 짙게 드러낸다. 싱글 「B L U E」를 통해 인정받은 서사무엘의 개성과 두왑(doo-wop) 기법이 조화를 이룬 곡 「LO:OP」이 전곡을 통틀어 가장 돋보인다.

 

「아침」을 분기점으로 하는 분위기의 전환은 마치 기괴했던 새벽이 지나고 날이 밝는 듯한 스토리텔링을 연상시키며 이야기의 당위를 이어나가지만, 그 성곽은 「하루종일」 이후 네 곡(「예쁘잖아」, 「그 정도 쯤이야」, 「2000/90」, 「우결」)에 의해서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각 곡의 매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찌질한 아이덴티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캐릭터를 온전히 보여주지만 사운드의 기계적인 특성을 배격하고 있기에 앨범 전체의 흐름을 방해한다.

 

타고난 프로듀서 자질과 대중적인 선율을 캐치하는 감각은 진솔한 인간상을 원하는 시류와 결합하여 또 하나의 스타를 만들어내었다. 일명 ‘호구 스웨그’라 일컫는 그의 어눌한 발음이 거북하지 않은 것은 삶에 대한 고뇌를 오롯이 음악 안에 아로새겼기 때문일 것이다.

 


현민형(musikpeo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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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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