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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의 안나처럼 씩씩한 배우 안은진

요즘 대학로 무대에서 자주 접했던 안은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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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서 진짜를 만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무대 위에서 안나를 뜨겁게 만나는 것이 <블랙메리포핀스>를 하는 동안 목표이고, 배우로서 목표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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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돌아온 창작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가 요즘 대학로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1926년 독일, 심리학자 그라첸 박사의 저택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사건. 유일한 생존자인 4명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사라진 기억으로 줄곧 고통 받습니다. 성인이 된 그들은 결국 ‘누구에 의해’가 아닌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더듬게 되는데요. 극작은 물론 작사, 작곡까지 도맡은 서윤미 연출은 이번 시즌에 내레이터를 한스에서 헤르만으로 바꿔 작품이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헤르만의 시점으로 기존과는 다른 무대가 펼쳐지자 관객 입장에서는 각 인물의 시선이 더욱 궁금해졌는데요. 기자 역시 무대 위 모든 배우들을 만날 수는 없기에 남매 중 유일한 여성, 어쩌면 가장 직접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안나를 인터뷰하기로 했습니다. 세 명의 안나 중에서 요즘 대학로 무대에서 자주 접했던 안은진 씨를 공연장 인근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안나 모두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여행도 다들 혼자 가요(웃음). (이)지수와 (송)상은 언니는 일본여행을 계획 중이고, 저는 제주도에 가려고 인터뷰 오기 전에 항공권을 예매했어요. 지금 꼭 가야겠다, 공연을 계속 하려면 한 번은 털고 와야겠다 싶어요.”

 

<블랙메리포핀스>를 보고 나면 관객 입장에서 두 가지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잘 만들었다, 그런데 힘들다. 역시나 배우들은 심리적으로 더 힘들군요.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요?


“연습실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대부분 또래라서 연습 때는 장난도 많이 치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공연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 리허설을 도는데 딱 ‘이건가?’ 하는 느낌이 든 적이 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연출님이 하루 쉬게 해주셨는데, 비도 오고 마음이 너무 이상해서 미치겠는 거예요. 무작정 한강에 가서 <블랙메리포핀스> 노래를 들으며 연출님께 ‘왜 이렇게 힘드냐’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나요.”

 

네 남매 중에서 유일한 여자입니다. 그리고 가장 직접적이고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요. 안나의 캐릭터는 어떻게 찾아갔나요?


“연출님이 안나에 대한 노트를 많이 주셨어요. 창작뮤지컬이지만 초연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틀이 명확했고요. 그 틀 안에서는 원하는 대로 가보라고 하셔서 무언가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죠. 그런데 결국 비슷한 흐름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캐스팅이 더블, 트리플일 경우 상당히 영향을 받아요. 많이 배우게 되거든요. 상은 언니는 귀엽고 발랄하고 여리면서도 강단이 있고, 지수는 청정의 순수한 매력이 있어요. 모두 소녀 같은 이미지인데 저는 좀 건강한 느낌이라 그런 부분을 살리려고 했어요. 특히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된 안나의 모습에서 차이점도 많이 생각했고요.”
 
뮤지컬 <무한동력>에서 ‘솔’, 연극 <안녕, 여름>에서는 ‘란’으로 무대 위 안은진 씨를 봤는데요. 안나가 솔이나 란보다는 여리다고 생각했는데, 작품을 접할수록 안나 역시 여리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게요, 다 강한 인물이네요. 연출님이 <가야십이지곡>을 보시고 저와 안나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안나는 처음 등장했을 때는 숨고 싶고 피하고 싶은 모습을 보이지만,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헤르만에게 있어서도 절대적이고 강한 존재고요. 헤르만이 피하는 걸 끝까지 물어보잖아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고, 진실을 마주한 이후에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다음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결말 자체가 열려 있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열린 결말을 놓고 연기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연출님은 메리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마지막까지 계획된 실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음대로 선택하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배우들은 명확하게 가고 있어요. 마지막 데크가 돌아갈 때 배우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결말을 향해 가는 거예요. 저는 씁쓸하면서 행복한 게 ‘이제 마지막으로 보겠지만 이게 맞는 것 같아.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어느 정도 치유돼서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안나예요.”

 

서윤미 연출이 극작, 작사, 작곡까지 도맡아 했는데, 다른 연출님들과 다른 점이 있던가요?


“그래서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연습할 때는 저희가 잘 모르니까 ‘내가 그냥 갈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하시며 자리를 뜨셨어요(웃음). 아무래도 창작 초연이 아니라서 처음부터 명확한 길은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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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기해온 사연 많은 캐릭터들과 달리, 안은진 씨는 무척 밝은 성격인 것 같네요(웃음).


“실제로는 분위기 메이커입니다(웃음). <안녕, 여름> 때는 재주 많은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제 개인기가 빛을 보지 못했는데, <블랙메리포핀스>에서는 다들 재밌다고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더라고요(웃음). 저는 제 이미지도 마음에 들어요. 정말 보통 사람이거든요. 예쁘다면 예쁘고, 못생겼다면 못생긴 얼굴이라 무대에서 어떤 인물이라도 만날 수 있어요.”

 

2012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앙상블로 데뷔해서 지금껏 무대에 서고 계신데, 스스로 지난 4년을 돌아본다면요?


“일단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요. 저희 학교(한예종)에 음악극창작과라는 게 생기면서 연기과 학생들과 함께 작업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 작품이 학교 밖에서도 잘 되면서 저까지 무대에 서게 된 일이 많아요. 데뷔도 그렇게 했고요. 학교에서는 공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지금껏 창작 초연 작품에 많이 참여했는데, 경험 없는 제가 쓰러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인물을 처음 만날 때도 저만의 캐릭터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법을 배웠고요. 작품마다 힘들었지만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걸 어떻게 다음 작품에서 써먹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요.”

 

롤모델이 있을 법 한데요?


“너무 많아요. 공연을 할 때마다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거든요. <안녕, 여름> 할 때는 연기 고민이 너무 많아서 (정)문성 오빠한테 말도 안 되는 질문도 많이 했어요. <블랙메리포핀스>로 넘어 와서는 (전)성우 오빠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성우 오빠가 연기를 정말 잘 하는 거예요. ‘오빠는 연기를 왜 잘 하죠? 오빠의 26살은 어땠어요?’ 계속 물어봤어요(웃음). 큰 그림의 롤모델은 세 분이 계셔요. 전미도, 김지현, 김소진 선배님. 정말 자연스럽잖아요. 그 분들의 공연을 보면 두근거리고 나도 공연계에서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사랑하는데, 직접 만났을 때는 한 마디도 못했어요. 부끄럽네요(웃음).”

 

하고 싶은 작품도 있겠죠?


“네, 있어요. 딱 만났을 때 떨리는 작품,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데,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는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 공연 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잘 돼서 제가 재연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계신가요(웃음)?”

 

<블랙메리포핀스>와 함께 올해를 마무리할 텐데, 마지막으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연습할 때도 선배들과 고민을 나누며 했던 얘기인데, 무대 위에서 진짜를 만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어요. 무대 위에서 안나를 뜨겁게 만나는 것이 <블랙메리포핀스>를 하는 동안 목표이고, 배우로서 목표이기도 해요. 사실 트리플이라 한 달에 10번 정도 공연하거든요. 그래서 매회 무척 부담되면서도 소중한 시간인데, 꼭 무대 위에서 진짜 안나를 만났으면 좋겠고, 제가 보는 대로 관객들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나갈 즈음에는 안은진 씨가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왔을까요? 지금 이렇게 힘든 건 무대 위에서 그만큼 진실되게 안나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겠죠. 스물여섯 살의 안은진 씨는 ‘서른 살에도 연기를 하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고민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 결국은 씩씩하게 무대에 서는 모습이 그녀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안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은진 씨를 비롯해 수많은 배우들의 열린 결말이 있는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내년 1월 1일까지 공연됩니다. 한 번 관람하고 나면 이른바 회전문 관객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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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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