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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그리고 피아노- 연극 <올드 위키드 송>

상반 되는 두 남자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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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슈만의 음악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느린 호흡을 유지한다.

마슈칸_안석환 스티븐_강영석5.jpg

 

 

친구가 된다는 것
 
조용한 무대 위에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조명이 서서히 켜지면 무대 중앙에 음악에 몰두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남자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다그치고 같은 부분을 반복한다. 그의 이름은 마슈칸. 오스트리아 빈의 한 대학교 음악교수이다. 마슈칸이 슈만의 노래를 다시 피아노로 치려는 순간, 무대 한 켠에서 젊은 남자가 나타나 냉소적인 어투로 말을 던진다. 마슈칸의 연주가 틀린 걸 정확히 짚어내면서, 지저분한 마슈칸의 방을 불만스럽게 돌아보면서. 젊은 남자는 미국에서 빈으로 유학 온 음악도 스티븐.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달갑지 않은 첫 만남을 갖는다.

 

냉소적이고 이성적이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스티븐은, 괴짜 같이 가벼워 보이고 유별난 마슈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분명 마슈칸이 스승이고, 나이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이지만 둘의 관계는 어딘가 뒤바뀐 느낌을 준다. 이렇듯 나이도, 성격도 국적도, 뭐 하나 같은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은 영 순탄치 않다.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이 그나마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음악이라는 공통 분모가 단 한 개뿐. 마슈칸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고 삶을 무료하게 사는 스티븐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준다. 끊임 없이 그의 재능을 칭찬하고, 그의 진짜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까칠하고 차갑던 스티븐은 진심으로 자신을 존중해 주는 마슈칸을 보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올드 위키드 송>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천천히 그려나간다. 그들이 즐겨 연주하는 슈만의 음악처럼 부드럽고 잔잔하게 느린 호흡을 유지한다. 어느 새 그 속에서 둘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진짜 친구가 된다.

 

마슈칸_안석환 스티븐_강영석6.jpg

 

 

인생이라는 것

 

연극 <올드 위키드 송>은 극작가 존 마란스의 작품으로 2015년 초연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고루 받았다. 이번 재연에서도 섬세한 심리묘사와 탄탄한 대본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등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초연에 이어 재연의 연출을 맡은 김지호 연출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더해 세련된 연출을 선보인다. 이호성, 안석환 등 베테랑 배우들과 이현욱, 강영석 신인 배우들의 호흡 역시 더할 나위 없다.

 

<올드 위키드 송>을 관통하는 정서는 아픔이다. 드러내놓고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며 반항하는 스티븐도, 마음 깊은 곳에 숨긴 상처를 잊기 위해 자신을 포장했던 마슈칸도. 둘은 모두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인물들이다.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바다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 두 사람은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태도가 서로 조금 다를 뿐 그 누구도 틀린 게 아니다. 인생에는 명확한 정답도 명확한 길도 없으니까. 그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서로가 서로를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사실 <올드 위키드 송>의 모든 메시지와 분위기를 받아들는 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슈칸과 스티븐 두 사람 사이에 깊게 오가는 교감이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온전히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기 보다 뒤에서 지켜보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머무른다. 자연스러운 의미 전달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환희와 슬픔의 결합이 아름다운 음악의 핵심이자 삶의 핵심이라 말하는 마슈칸의 대사처럼, <올드 위키드 송>은 음악과 인생에 대한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10월 23일까지 동숭 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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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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