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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달해야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빛처럼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막스 리히터의 ‘Dream 3(in the midst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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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네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물론 ‘너’지만,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누구도 자기 인생의 에필로그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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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5품에서 부처는 수보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형상을 보고서 여래를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수보리는 대답한다.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부처는 이렇게 설한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형상이 아님(非相)’을 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그러자면 먼저 ‘모든 형상(諸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형상이란 다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감지되는 것들이다. 감지될 때, 모든 형상은 좋은 느낌이나 나쁜 느낌, 혹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을 내게 준다. 그런 느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내게는 차츰 이 세계에 대한 견해가 생긴다. 견해는 나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대개는 나쁜 느낌을 피하고 좋은 느낌을 찾아가는 쪽이다. 어릴 때는 육체의 차원에만 머물지만, 사춘기가 지나고 나면 나의 자아상을 깎아내리는 것을 피하고 치켜주는 쪽을 따르는 쪽까지 확대된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모든 형상은 내게 좋거나 나쁘거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들 중 하나가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해한 모든 형상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형상이 아님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건 앞에서 말한 모든 형상의 본질을 부정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도 아닌 것들. 그건 바로 내가 살지 않는 세계다. 먼 나라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내가 없는 세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내가 죽고 난 뒤의 이 세상 말이다. 그땐 내게는 몸도 없고, 따라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상도 없을 테니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늘 가슴이 벅차오른다. 몸에 와 닿는 것들마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그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식의 판단 없이 그냥 대하는 세계란 얼마나 명징할까. 그때도 나는 이 세계가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말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 ‘네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테드 창이 쓴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물론 ‘너’지만, 너는 네 인생에 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누구도 자기 인생의 에필로그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뭔지 내가 뭘 알겠느냐마는 죽음을 경험한들 내가 그에 대해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죽고 나서 중학교 시절, 여름 캠프에서 낑낑대며 궁리하면서 자신의 묘비명을 채워나간 것과 같은 짓을 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가 말하지 못하는 인생 이야기는 결말 부분이 찢겨나간 추리소설과 같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네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엄마 루이즈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처음 읽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너와 엄마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말하지 않겠다. 대신에 너의 엄마 루이즈가 일곱 개의 손발과 일곱 개의 눈을 가진 외계인, 그래서 ‘7개의 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따온 이름 헵타포드에게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하겠다. 언어학자인 루이즈는 물리학자인 게리 도널리와 한 조가 되어 체경(looking glass)이라는 별명이 붙은 통신장치를 통해 헵타포드와 대화를 시도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건 아마존의 원주민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방법과 비슷했다.

 

나는 나 자신을 가리키고 천천히 말했다. “인간.” 그러고는 게리를 가리켰다. “인간.” 그런 다음 각 헵타포드를 가리키며 한 번씩 말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161쪽)

 

헵타포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그녀는 음향분석기로 헵타포드가 내는 소리의 패턴을 분석해서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다지 큰 진전이 없자 거기에 더해 말을 한 뒤 문자를 써서 그들에게 대형 비디오 스크린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도 자신들이 한 말을 문자로 쓰게 유도했다. 그랬더니 낯선 문자 체계가 드러났다. 그들의 글은 전혀 글 같지가 않았고 오히려 정교한 그래픽 디자인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행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나선형이나 선형적인 방식과도 거리가 멀었다. 루이즈가 간신히 알아낸 건 그들의 글은 말을 그대로 음성화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한 번에 보여주는 의미표시 문자라는 것. 말하자면 담배 그림을 빨간 원 안에 넣고 사선을 그으면 ‘금연’, ‘담배 피우면 죽는다’, ‘나가서 피우세요.’ 등의 모든 언어 정보를 다 표현할 수 있듯이.

 

수수께끼는 헵타포드가 다음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고교 시절에 다 배웠겠지만,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물리학 박사인 게리에게 한 번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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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빛이 공기에서 물속으로 들어갈 때의 경로야. 물의 굴절률은 공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빛은 이런 식으로 방향을 바꿔. 이 빛의 경로에는 흥미로운 특성이 있어. 이 경로는 이 두 지점 사이의 가장 빠른 경로라는 거지. 그냥 웃자는 얘기가 아니라 아래 점선처럼 움직였다고 치면, 이 가상의 경로는 빛의 실제 경로보다는 짧지만, 빛은 공기보다 물속에서 더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 경로보다 시간이 더 걸려. 이번에는 윗쪽 점선처럼 움직였다고 치면, 물속에 있는 부분은 줄어들지만, 전체 길이가 늘어나기 때문에 역시 실제 경로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거야. 이걸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라고 해.”(189~190쪽의 대화 재구성)

 

언어학자인 루이즈에게는 이 원리가 물리학 법칙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는 듯 게리가 설명한다. 그건 사건을 인과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데 루이즈가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빛이 왜 수면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는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답이 있다. 이건 인과관계로 보는 것이다. 빛이 수면에 도달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게리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다른 설명도 있다. 즉 빛은 자신이 도달해야만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미리 알고 모든 경로를 다 확인한 뒤에 최단 경로를 택한 것처럼 움직인다는 이야기. 여기서 루이즈는 깨달았다.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는 광선처럼, 헵타포드는 어떤 말을 할지 다 알고 있는 존재처럼 문자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여러 명의 사람들이 부처의 일생을 다룬 만다라를 그리는 것처럼, 전체 대화를 미리 다 알고 있는 헵타포드는 문장을 전체적으로 만들어갔다는 것을. 마치 ‘네 인생의 이야기’가 춤을 추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가 돌연 너의 열두 살 시절로, 또 스물다섯 살 시절로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넘어가듯이.

 

 

이야기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2015년 9월 27일 자정, 런던 웰컴 컬렉션에서 장장 여덟 시간에 걸친 곡 ‘Sleep’을 초연했다. 이 날 관객들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지켜보는 대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고 한다. BBC 라디오 3의 ‘과학과 음악’ 특집으로 방송된 이 날의 연주는 8장의 CD로 발매됐다. 8시간이라는 시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곡은 오로지 듣는 사람을 잠들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주됐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곡을 추린 ‘from Sleep’은 1장짜리로 좀더 감상용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곡은 ‘Dream 13(minus even)’이지만, ‘네 인생의 이야기’와 함께 들을 곡은 ‘Dream 3’이다. 여기에는 ‘in the midst of my life’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끔찍한 꿈이든 재미난 꿈이든, 일단 깨어난 뒤에는 꿈 속에서 안달복달하던 일이 얼마나 우스웠는가 싶다. 그게 꿈이라는 걸 알았다면 내 마음대로 다 해볼 텐데, 하늘도 날아보고 물 속에도 들어갈 볼 텐데,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담배를 한창 끊을 때는 꿈 속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괴로워할 때도 있었다. 정말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실제로 피우지도 않는데, 마음껏 피울 걸.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는 것을,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깨고 난 뒤에야 그게 꿈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으니까. 인생도 그런 것일까?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니, 영영 나는 모를 것이다. 꿈에서 깰 때와 달리 죽고 난 뒤에는 내 인생에 대해 말할 기회가 내게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루이즈가 마주한 헵타포드들은 다르다. 그들은 이미 결말까지 다 알고 있다. 루이즈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류와 헵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213쪽)

 

단 한 권의 소설집으로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던진 테드 창의 이 단편 역시 헵타포드의 방식으로 씌어졌다. 소설의 시작 지점에 이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들어 있다. 지금 나는 스포일러를 하는 게 아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다음과 같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에 떠오를 때,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230쪽)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처음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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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저/김상훈 역 | 엘리
단 한 권의 작품집으로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 단편소설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명성을 얻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출간됐다. 최 이 책은 과학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상상력과 소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철학적 사유를 선사하는 특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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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연수(소설가)

전통적 소설 문법의 자장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을 실험하고 허구와 진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대표작에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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