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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경욱 "소설,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관한 질문"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만난 작가들⑫ 소설가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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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당대,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중문화야말로, 당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심사나 욕망이 가장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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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국제작가축제(한국문학번역원 주최)>가 12번째 만난 작가는 소설가 김경욱이다. 한국판 ‘첨밀밀'이라고 이야기되는 소설 『동화처럼』에는 ‘눈물의 여왕’과 ‘침묵의 왕’이 등장한다. 작가는 무엇의 달인인지 자기소개를 부탁하니, 14년간의 지하감옥 옥살이로 칩거의 대명사가 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별칭을 붙여  ‘암굴왕 김경욱’이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학교와 집을 오가며 수업과 글쓰기에만 전념하는 소설가 김경욱을 만나보았다.

 

올 상반기에 장편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우순경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입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울 것 같은데, 작업 중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희생자들의 인생'에 초점을 맞춰 썼습니다. 당시 보도된 자료들로는 접할 수 없었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오롯이 저의 상상력에 의지해 쓸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특별히 ‘실화’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때 늘 느끼는 어려움들을 겪었지요. 저의 재능이 부족한 탓에 느끼는 어려움이랄까요? 무언가 더 다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상상력으로는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답답함이 많이 들어요. 저의 한계를 느끼면서 떠올리는 자괴감이 글을 쓸 때 어려운 점이지요. 또 한 가지, 이 소설을 연재하는 도중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어요. 이번 소설의 바탕이 되었던 사건과 겹쳐지면서, 당시에도 많은 희생자를 냈던 사회의 부조리들이 30년도 훌쩍 지난 지금 여전히 반복되는 것 같아서 힘들었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과 같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는 소설을 쓰고 나서는, 일상 생활로 복귀할 때까지 더 힘든 시간을 보내실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1년간 연재했던 작품을 장편소설로 묶은 것입니다. 이 작품과 4계절을 같이 보낸 셈이지요. 저는 글을 쓰는 동안 '일상인'이 아닌 다른 자아가 되는 것처럼 느끼곤 합니다. 특히 장편을 쓰는 정서적으로도 그 이야기의 세계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단편을 완성하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와는 정서적인 변화나 정서의 낙차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이번 소설과 같이, 비극적이고 참혹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에 있다가 일상적인 삶으로 나올 때는 훨씬 힘들죠. 시간도 더 많이 필요하고, 감정적으로도 힘이 들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개와 늑대의 구분이 어려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날이 저무는 시간을 평소에는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쓸쓸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낮이 끝나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무언가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낮이 밤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면, 일상생활에는 별 도움 안 되는 생각이지만, 소설 창작에는 꼭 필요한 여러 생각들을 펼쳐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상념들이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적과 동지가 구분되지 않아 불안하고 위태로운 시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편 가르기 문화나 혐오문화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을 고유한 특징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일원으로 범주화해서 '이쪽 사람', 아니면 '저쪽 사람'으로 편을 가르죠. 이러한 현상은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왜 점점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생각해보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느낄법한 두려움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유대는 희미해지고, 점점 과도한 경쟁 사회로 돌입할 수록,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은 상당해 지잖아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그나마 불안을 해소하는 자기방어가 되는 것이죠.

 

『장국영이 죽었다고?』,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등의 작품처럼 작가님의 소설에는 ‘대중문화 코드’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대중문화와 문학의 접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은 당대,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중문화야말로, 당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관심사나 욕망이 가장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문화에 담겨있는 당대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또 두려워하는 바를 읽어내고 문학에 담아야 하죠. 제가 20대였을 때는 음악이나 영화에 큰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커트 코베인’이나 ‘장국영’과 같은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제 소설에도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음악이나 영화보다는 책을 더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영감이나 자극을 주거나, 무언가 귀감을 주는 작가들이 제 마음 속에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거죠.

 

작가님의 작품 중에 단막극으로 TV에 올려진 작품들이 많습니다. 작가님의 텍스트를 각색된 영상으로 보는 경험은 어떠셨는지요.
 
제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작품들 모두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원작은 저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저 한 명의 시청자로서 봐요. 아무리 원작이 되는 스토리를 제가 썼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창작물이라고 생각하고, 그 작품들을 통해 신선한 재미를 느낍니다. 영상 매체는 평소에도 흥미롭게 생각하는데요. 소설과 드라마나 영화의 형식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그야말로 작가 한 사람의 목소리로만 진행이 되잖아요. 독자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가, 화자의 목소리만을 매개로 이야기를 감상하게 되는데 드라마의 경우, 연출자의 의도, 배우들의 해석이 들어간 연기, 음악 감독의 창의성 등이 다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또 다른 창의적인 에너지라는 게 있어요.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신기하죠.

 

단편과 장편을 고루 잘 쓰는 작가로 평가 받으십니다. 단편과 장편의 매력은, 작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잘 쓰는지는 몰라도 자주는 쓰죠(웃음). 단편을 쓰는 작업은 사진을 찍는 것과 같아요. 인상적인 한 장면. 한 순간을 포착하는 거죠. 그렇다면 장편을 쓰는 작업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똑같이 소설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장편과 단편은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물론 단편과 장편 중 어느 것이 더 쓰기 어렵다거나 쉽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단편 쓰기를 사진 찍는 것으로 비유했었는데, 그냥 마구잡이로 셔터를 누른다고 단편소설이 만들어 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떤 사진을 보면 이야기가 떠오르는 사진이 있잖아요. 그렇게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는 한 장면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단편은 단편의 어려움이 있고, 장편은 또 장편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편의 경우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집 지을 터부터 닦아야 하잖아요. 장편이라는 형식을 견딜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나는 것은, 작가로서도 사실 운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야깃거리를 찾아 나선다고 찾아지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저에게 찾아왔을 때,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도록 아주 귀에 쏙 들리는 초인종을 달아놓는 것, 그것뿐입니다. 또 독자로서나, 작가로서 특별히 더 선호하는 장르는 없어요. 다만 단편에서는 단편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 그리고 장편에서는 장편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담고 싶고, 독자로서는 또 그런 작품을 만나고 싶은 거죠.

 

『위험한 독서』의 ‘나’는 독서치료사입니다. 독서가 치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물론 독서는 내면의 치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야말로 인간 내면을 형식의 제약 없이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형식이지요. 독서를 하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어요. 책이야말로 책 읽는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아주 투명한 거울이죠.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치료, 힐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큰 자극을 주었던 책이 두 권 있어요. 바로 카뮈의 『이방인』.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입니다. 제가 20대 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들이었죠. 물론 두 소설은 다루는 이야기나, 등장인물의 성격이 굉장히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소설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을 정면으로 밀고 나가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소설들을 읽고 소설을 이런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도 있구나 하는 큰 깨달음, 어떤 충격을 받았었어요. 또 우리 내면에는 『이방인』의 뫼르소 같이 사회의 도덕률을 거부하는 부분이 있고, 『인간실격』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극단적으로 자학적인 부분도 있잖아요. 소설에서 이런 인물형까지도 형상화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모르는 혹은 부정해왔던 우리 자신의 일면들도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준 작품들입니다.

 

2008년에 이어, <2016 서울작가축제>에 두 번째로 참가하시게 되었습니다. 작가축제에서의 경험은 어떠셨나요?

 

'암굴왕'이라고 저를 말했듯이, 워낙 두문불출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살다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낯선 사람들과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 그런 시간 자체가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낯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합니다. 낯선 존재들과 관계를 맺는 경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어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주제는 ‘잊혀진, 잊히지 않는’입니다.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류에게는 누대에 쌓아온, ‘이곳은 나의 터전이며, 우리는 뿌리를 깊게 내린 존재이다’라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낯선 것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경험을 하다 보면, 뿌리내리기는커녕, 우리의 존재는 공기 중에 떠도는 먼지 한 점과도 같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죠. 짐작할 수도 없는 시간의 연속체 속에서 우리는 그저 떠도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인 겁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잘 잊히지 않는 듯이, 일상 자체가 그런 오고감의 연속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소한 인연들도 쉽게 '잊히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2016 서울국제작가축제 신청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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