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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글쓰기와 의술은 모두 사람에 관련된 일”

『만약은 없다』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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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서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잊지 않는 게 더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만약은 없다』 독자들과 남궁인 작가, 사회자 역할을 맡은 오은 시인의 북토크가 지난 8월 25일 저녁, 홍대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열렸다. 『만약은 없다』는 남궁인 작가가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페이스북에 쓴 글이 입소문을 타, 출간까지 이어진 책이다. 1시간여 동안 작가들의 유쾌한 말이 오간 이후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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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의사

 

북토크는 의사라는 직업과 작가라는 직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얻은 직업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은 시인은 남궁인 작가의 페이스북에 친구 추가를 신청하려다 이미 친구가 꽉 차 불가능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언제부터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남궁인 : 저는 원래 옛날부터 글을 쓰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오은 시인처럼 훌륭한 시인이 돼야겠다, 생각하고 시를 썼어요(웃음). 근데 막상 시에는 재능이 별로 없더라고요. 제 일상을 운문으로 기록하려고 노력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듣더라고요. 그러다가 의사가 됐어요. 의사로서의 경험들을 제 나름대로 운문으로 풀어 써봤는데 제가 볼 때는 재밌더라고요. 그땐 페이스북은 아니고 싸이월드였어요. 그렇게 계속 운문으로 기록해놨다가 어느 날 페이스북에 산문 형식을 빌려 써봤는데, 그게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어요. ‘아, 내가 경험한 것들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하려면 운문보다는 산문이 어울리는구나’ 깨닫고, 그 일 이후로 산문으로 전향하게 됐어요.

 

오은 :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남궁인 : 2013년도부터 3년쯤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쓰고 지인 서너 명에게 보여줬는데, 남한테 보여줄 생각으로 탈고를 시작한 건 3년쯤 됐어요.

 

오은 : 3년 습작해서 책을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시를 안 써서 다행입니다. (웃음) 제가 『만약은 없다』를 읽으면서 제일 좋았던 부분 중 하나가 리추얼을 말하는 것이었어요. 원래는 살아있던 인간이지만 이제는 시체가 된 인간을 바라보는. 그게 저한테는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 역설적으로 그 사람의 삶을 되새겨본다는 것으로 다가왔어요. 생사를 기록한다는 건 남궁인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남궁인 : 생사를 기록한다는 것도 있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전부 다 잊게 되더라고요. 아니면 술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 형식으로밖에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 절박하고 치밀했던 시절을요. 그 시절을 온전히 처음부터 다시 기록하고, 다시 기억해내고 생각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록해서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잊지 않는 게 더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오은 :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잖아요. 삶과 죽음에 대해서 글을 쓸 땐 스스로가 경건해진다거나 ‘써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남궁인 : 제 책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쉬운 내용은 별로 없어요. 직접 경험해보기 어려운 내용이에요. 근데 그것들을 며칠에 걸쳐서 기록한단 말이죠. 저는 그걸 가장 잘 표현해내기 위해 저를 다시 그 자리에 데려다 놓고, 처음부터 재생하는 것처럼 복기해서 기록해요. 애초에 그 기억 자체가 상당히 절박했던 기억인데, 그걸 처음부터 다시 기억해내는 의식을 몇 날 며칠이고 한단 말이죠.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기억해낸다는 게 상당히 힘들고 어려웠어요.

 

오은 : 똑같은 고통을 다시 체험한다는 거니까 쉽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남궁인 : 응급실은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서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고 프로답게 행동해야 하죠. 그런데 작가로서 그걸 다시 보니까, 오히려 기록하는 게 당시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오은 : 1부를 보면 죽음을 관통하는 순간이 많이 나오잖아요. 어떤 때가 제일 힘드셨나요?

 

남궁인 : 단연 죽었을 때 같아요. 죽음 이후도 아닌, 딱 죽은 순간이요. 의사라는 직업이 죽는 순간을 정하는 직업이에요. 제가 시계를 보면 사망선고를 하는 거거든요. 이 사람이 언제 죽었다고 언제 판단하느냐는 그걸 본 의사가 결정해요. 어디 나와 있는 게 없어요. 오롯이 제 두 어깨에 전부 다 달린 거예요. 보호자들도 제가 사망선고를 한순간에 비로소 죽음으로 인지해요. 사실은 30분 전에 죽은 것이었어도 제가 사망선고를 내려서야 죽음으로 인지해요. 제가 ‘언제 몇 월 몇 시 어떤 분이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면 이제 그 사람은 시체가 돼요. 그 순간이 힘들었어요.

 

남궁인 작가는 『만약은 없다』를 쓰면서 어렵고 힘들었던 점에 대해 밝힌 뒤 글 쓰는 일과 병원에서 하는 일의 공통점에 대해 말했다.

 

남궁인 : 사람에 관련된 일이라는 게 공통점일 것 같아요. 의사도 결국 사람을 치유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환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대하는 거고, 글 쓰는 것도 독자를 생각하고 쓰는 것이고, 사람에게 진지해야 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게 공통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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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서

 

오은 : 제목을 ‘만약은 없다’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남궁인 : 처음 원고에는 있었는데 나중에 뺀 단편이 있어요. 그게 ‘만약은 없다는 말’이라는 제목의 단편이에요. 어떤 할머니 한 분을 진료하는데 병원 사정과 우연, 제 선택 등이 겹쳐지다가 결국엔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에요. 책에서 화자인 제가 계속 ‘만약에 내가 ...했더라면’을 가정하는 거죠.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가 결론에 도달해요. ‘아, 만약은 없어야겠다. 이런 경우의 수 자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지점까지 환자를 봐야겠다.’ 그래서 이번 『만약은 없다』의 화자가 그런 지점을 계속 되뇌는 게 책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오은 : 저는 만약이라는 말이 주는 중의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만약’이라는 말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반면, 회한이나 자책감도 있잖아요. 두 가지 속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책 제목을 처음 듣자마자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궁인 : 그러고 보니 오은 시인의 시집에도 만약에 대해 다룬 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오은 : 최근에 나온 『유에서 유』라는 시집이에요. 만약이라는 약에 대해 쓴 시가 들어 있어요. 이 책보다 더 따끈따끈한....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웃음)

 

이어서 1부와 2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오은 : 1부는 죽음을, 2부는 삶을 다루는 부예요. 죽음이 삶을 앞선 게 궁금해요. 사실 우리는 살고 나서 죽는 것이기 때문에, 삶이 1부고 죽음이 2부여야 할 것 같은데, 마치 죽음을 거치지 않은 삶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처럼 1부가 죽음이고 2부가 삶이거든요.

 

남궁인 : 죽음에 관련된 게 현실적으로 더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애초에 이야기하려고 했던 게 죽음에 관한 것이었어요. 실제로 오은 시인의 말대로 죽음을 다 통과해야지 밝은 삶이 있는 부분으로 나아간다는 그런 것도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1부와 2부를 매치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오은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요?

 

남궁인 :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라는 단편에 나오는 가족들이 있어요. 이건 적지 않으면 미치겠다 싶었어요. 팩션이니까 문학적인 각색이 있어야 하잖아요. 환자나 보호자의 대사 같은 걸 그 시점에 서서 제가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단편의 경우, 마지막에 보호자가 하는 대사는 바로 기록한 것이라서 거의 그대로예요.

 

여보 사랑해. 어서 눈을 감고 저주받은 병을 버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사랑해 아아.......
(『만약은 없다』, 162쪽)

 

그 말을 들었던 장면이나 말이 기억이 나요. 보호자들이 손사래 치면서 뛰어오시고, 제가 호흡기를 떼고. 남편분이 정말 시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북토크가 끝난 후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이 있었다. . 이미 『만약은 없다』를 읽었고, 남궁인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 또한 북토크에 푹 빠진 듯 남궁인 작가를 향한 질문의 손짓이 계속 이어졌다.

 

글을 쓰는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서, 작가님의 입장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 읽고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성 프란치스코』를 보면 ‘글자가 너무 악마 같다. 그래서 나를 항상 괴롭힌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작가님도 처음에 글 쓸 때 힘들었던 점이나 또 지금 글 쓰는 건 어떤가에 대한 심정을 말해주면 좋겠어요.

 

남궁인 : 저는 제 글의 첫 번째 독자잖아요. 그 내용이 제가 썼음에도 되게 힘들 때가 있어요. 제가 이걸 연달아서 쓴 게 아니라 한 편 한 편 썼거든요. 나중에 한 편마다 감정을 폭발시킨 걸 한 번에 봤더니 그랬어요. 그리고 하얀 화면 있죠. 방에 문 다 닫고, 불도 끄고, 백열등이나 약한 조명만 가지고 하얀 화면을 노려보면 글이 써지더라고요. 그런 버릇이 있어요. 글자가 나아간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는데, 그 하얀 화면 자체가 악마 같아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언제까지 힘들진 모르겠어요. 지금도 힘들거든요.

 

오은 : 제가 지금 글을 16년째 썼는데, 백지는 늘 가능과 불가능이 있어요. 가능은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능은 ‘나는 뭐든 쓸 수 없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나 책이 있나요?

 

오은 : 잠깐 나갔다 올게요(웃음)

 

남궁인 : 저는 시를 좋아해서 시집을 많이 읽었어요. 이성복 시인, 김경주 시인, 기형도 시인, 이태준 시인 등. 시인들을 실제로 되게 존경하거든요. 언어를 정말 농축해서, 구조를 설명하지 않는데도 감정을 시에서 폭발시키잖아요. 시를 옛날에 많이 읽었던 게 저한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산문인데 시 같은 소설도 좋아해요. 한강 작가도 좋아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도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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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남궁인 저 | 문학동네
이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인 남궁인이 마주했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다. 마지막 순간 그의 손을 잡고 생의 길로 돌아왔거나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생하게 묘사해낸 지독한 진실 앞에서 의사 남궁인이 아니라 죽음을 마주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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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서영(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책이 좋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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