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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화가 치밀 때

분노, 그 용서치 못할 놈들에 대한 심리학자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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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여행 중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날이 생긴다면, 그날이 저물어갈 즈음 하루 동안 있었던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서로의 행복한 여행을 응원해주자.

“이번 여행에는 왜 이렇게 화나는 일이 많지”라는 생각이 들거나 “이번 여행에서는 왜 이렇게 더럽고 역겨웠던 게 기억에 많이 남지”라는 의문이 생긴다면 여행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분노, 혐오, 공포 따위의 부정 정서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여행의 불만족 요소를 경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여기서는 분노를 들여다보자.
 
분노란 우리의 생명이나 안전, 존엄성, 소유물이나 자원, 소중한 사람들 등을 모욕하거나 빼앗거나 파괴하려는 위협이 발생했을 때 우리의 원초적인 신경 회로가 우리를 전투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시킨 상태를 이른다. 분노 상태에서는 심박수와 호흡수가 증가하고, 소화기에서 산소와 혈당이 빠져나가 골격근으로 공급되어 격한 운동을 하기에 적합해지고, 불필요한 감각 정보가 차단되어 오직 적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며, 내분비 모르핀이 분비되어 얻어맞아도 별로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된다. 결론적으로 분노란 우리를 위협한 놈을 ‘잡아 족치기’에 적합한 심신의 상태를 뜻한다.
 
여행에서 나와 내 것을 위협받고 상대방의 악의를 몸소 체험하며 “이런 별것도 아닌 놈이! 넌 내 손으로 처리하겠어!”라는 판단이 드는 상황은 열이면 아홉이 사기를 당했을 때이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사기는 바가지, 가짜나 잘못된 물건 팔기, 강매, 고단수 호객, 슬쩍 끼워 팔기 등의 다양한 형태로 모든 부류의 여행자들 주변에 늘 도사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설 환전소에서 볼 수 있는 ‘반 털기’(고객 눈앞에서 지폐를 세며 고객이 안심하게 한 뒤 지폐의 반을 휙 털어 서랍에 떨구는 ‘마술’을 뜻한다. 지폐를 받은 다음 직접 세어보지 않으면 깨끗이 당할 수밖에 없을 정도. 반 털기라는 이름은 내가 붙였다)처럼 사기인지 절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세상 모든 사기의 개발지’라는 악평까지 듣는 인도의 델리처럼 특별히 여행자 대상 사기로 악명이 높은 지역도 있다. 여행자들이 이런 지역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꽤 크다. 
 


하루를 날려먹은 환율 사기
 
사기가 분노를, 분노가 불만족을 부르는 상황의 예시로 내가 첫 여행 때 겪은 어떤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소는 캄보디아 북부의 국경 마을인 스뚱뜨렝, 범죄의 종류는 환율 사기였다.
 
그때 나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여행사에서 스뚱뜨렝 국경을 거쳐 라오스 남부로 들어간 뒤 시판돈(라오스 최남단 메콩 강 유역의 크고 작은 섬들)의 돈뎃에 당도하는 승합차-보트 조인트 티켓(목적지까지 가는 직행 교통편이 없을 때 여행사에서 두 구간 이상의 표를 묶어서 파는 것)을 구매했다. 그리고 나는 이 티켓 때문에 스뚱뜨렝에서 원치 않은 하룻밤을 비싼 방값을 치르고 묵게 되었다. 원치 않았던 장소이다 보니 스뚱뜨렝의 메콩 강둑은 마냥 초라하게만 보였고, 폐지가 날리는 마을 중앙 광장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사 먹은 돼지 족발 비슷한 것 때문에 배탈이 나기까지 했으니, 이미 나는 누구에게든 화를 낼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어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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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사기를 당하는 그곳, 메콩 강이 흐르는 캄보디아의 스뚱뜨렝 ⓒBrorSoeur

 

내게 환전 사기를 친 인간은 내가 묵은 숙소의 야간조 가이드였다. 편치 않은 밤을 난 뒤 라오스로 가는 차를 타려는 내게 이 가이드는 “시판돈에 가면 환전소가 없다. 내가 현재 환율 그대로 쳐서 돈을 바꿔주겠다”며 미끼를 던졌다. 오호라, 첫 여행의 풋풋함이여! 나는 가이드북에 나온 환율의 60퍼센트 수준에 떡하니 거금을 바꾸고야 말았다! 
 
사기 당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나는 오스트리아 친구 한 명과 함께 라오스 국경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랐다. 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소 주제가 시판돈에서의 환전에까지 이르렀다. 이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니야. 시판돈에서는 모든 숙소에서 가이드북에 나온 환율대로 돈을 바꿔줘. 거기에서 온 사람들한테 얼마 전에 들은 정보야.”
 
당혹감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분노로 귀가 다 빨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숙소로 돌아가겠다는 나를 적당히 어르고 달래서 국경 너머로 쫓아 보내려 하는 승합차 운전사(물론 그 가이드와 한통속이었다)의 행태도 내 화를 북돋웠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땡볕 아래를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갔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캄보디아 국경관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 “돌아가기에는 길이 멀고 너무 덥다. 아까 그 차를 불러줄 테니 그걸 타고 국경을 넘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기가 치밀고 독이 오른 나는 웃통을 벗고 폭주 중이던 중학생 또래 남자애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스뚱뜨렝으로 돌아갔다. 내게 사기를 쳐 한몫 잡은 가이드는 벌써 이웃 마을인 끄라쩨로 달아나고 없었고, 나는 숙소 매니저와 스뚱뜨렝 경찰에게 분노를 토했다. 물론 돈을 돌려받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숙소 매니저가 돈뎃까지 가는 교통편을 공짜로 다시 알아봐주기는 했다.
 


분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렇게 여행 중 부정 정서를 경험했을 경우에는 긍정 정서를 경험한 일이 쉽게 잊히고, 나아가 머릿속에 온통 부정 정서와 관련된 사건과 부정 정서 자체만 가득 차는 상태가 되기 쉽다(내가 나한테 사기 친 인간을 잡으려고 거의 하루를 날려먹었던 것처럼 말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부정 정서의 이런 강력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 정서 경험을 오래도록 간직할 필요가 있다. 긍정심리학자들은 긍정 정서의 여운을 증폭하고 부정 정서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해주는데, 이 가운데 여행에 적용할 수 있는 기법으로는 대표적으로 ‘감사 편지 쓰기’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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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경험을 쓰다 보면 불만에 감싸여 있던 마음에 반대쪽 창이 열린다 ⓒpedrosimoes7
 

만약 여행 중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날이 생긴다면, 그날이 저물어갈 즈음 하루 동안 있었던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서로의 행복한 여행을 응원해주자. 예를 들어 나는 여행 도중 틈날 때마다 ‘이번 여행 최고의 숙소 베스트 10’ ‘이번 여행 최고의 한 끼 베스트 10’ 등을 선정하는 것을 즐기는데, 나는 이런 습관이 행복한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이런 작은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짜증과 불만 탓에 즐거운 경험이 기억 깊은 곳에 꽁꽁 숨겨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여행 중에도,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 여행의 행복과 여행에서 얻은 것을 정리하고 회상할 때도 아주 효과적인 좋은 습관이다.

 
여행자 대상 범죄는 왜 일어날까
 
한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은 단순하지가 않다. 여행의 사회적 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행자들의 행동 또한 여행자 대상 범죄를 낳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여행자가 여행지를 평가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가끔 그 반대도 당연한 일임을 깜빡하곤 한다. 현지인들도 여행자를 평가한다는 사실 말이다. 현지인을 멸시하고 현지 공동체와 문화를 능멸하는 여행자들은 여행자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를 악화시킨다(특히 원정 성매매는 외국인 여행자에 대한 평가를 한 방에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현지인들이 여행자를 보는 눈이 안 좋아지면 이는 여행자 대상 범죄로 직결되거나 현지인들이 “당해도 싸지, 저것들”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 여행자 대상 범죄가 횡행하기에 좋은 토양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쁜 여행자는 여행자 전체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고 출신 국가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직접적인 범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언제나 최소한의 규범은 지켜가며 여행을 즐기자. 이는 다른 모든 것은 둘째치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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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심리학 김명철 저 | 어크로스
심리학과 여행학을 결합하고 여기에 자신의 여행 경험을 더한 이 독특하고도 기발한 여행안내서. 역마살의 정체에서부터 자신이 어떤 여행자 스타일인지, 여행에서 경험한 부정적인 정서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행복감을 오래 지속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자로서 여행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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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명철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심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칭 ‘웃기는 심리학자’로 통하며, 도합 1년 5개월 12개국을 여행한 베테랑 여행가이기도 한 그는 스스로를 ‘경험추구 여행자’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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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철> 저13,500원(10% + 5%)

빌 브라이슨과 알랭 드 보통을 연상시키는 지적이고도 웃기는 심리학자 역마살의 정체부터 여행 동료와 싸우지 않고 돌아오는 법까지 후회 없는 여행을 위한 18가지 심리학을 전수하다 스물아홉에 첫 여행을 떠난 심리학자가 있다. 그는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르듯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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