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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시인이야말로 자본에 민감한 존재”

『세속 도시의 시인들』 시인 인터뷰집 출간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 둘러 본 우리나라 시단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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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같은 출발선상에서 똑같은 표시 라인으로 달려나가는 게 아니에요. 글쓰기는 각자가 360도 방향으로 뛰어가는 거죠. 그 방향에서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베스트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죠.

시인은 세속에 맨주먹으로 맞서거나 혹은 그 반대로 은둔해 버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또한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공고하게 자신의 작품을 쌓아나가며, 더욱 첨예한 문학으로 나아갈 뿐 자본과 생계, 정치 등에는 등을 돌린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채널예스>에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1월까지 15명의 시인을 만나 인터뷰한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칼럼이 『세속 도시의 시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알 만한 이름의 시인도, 십수 년 동안 한 권의 시집만 낸 시인도, 등단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은 젊은 시인도 있다.


소설가 김도언은 “편협하게 알려져 있는 시단 주류의 생태를 바로 알리는 동시에 자발적인 소회를 감행하는 비주류 시인들의 목소리를 골고루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서문에 적었다. 말마따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문단과 자본, 주류와 비주류, 시인과 시 세계에 대한 노력이 눈 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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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인터뷰


처음 시인을 인터뷰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잡지에 내가 좋아하는 시,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런 류의 글도 많이 써 왔어요. 어찌어찌 하다 보니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합해져서 김도언이라는 소설가가 시에 애정이 많다는 게 외부에 알려진 모양이에요. 연재와 책을 내자는 제안은 출판사 대표님이 먼저 했어요.


제안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상당히 반가웠죠. 기분 좋게 흔쾌히 받아들이고 인터뷰를 할 만한 시인들의 리스트를 짰어요. 공교롭게 작년 딱 오늘이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날이에요. 페이스북에 보니까 1년 전 오늘 내용으로 김정환 시인을 인터뷰했다고 나오더라고요.


섭외도 다 작가님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출판사나 저 둘 다 할 수 있는데, 워낙 제가 네트워크를 다져놓았으니까. 제가 하면 훨씬 효율적이더라고요. 편하고, 설득하기도 좋고.


섭외하면서 사심도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친함의 여부는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인터뷰를 한 열다섯 분 중에는 전혀 친분이 없는 분들도 많아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평소에 시를 좋아한다는 걸 평소에도 아시니까 인터뷰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받아주셨어요.


이미 친한 문인은 친밀감 때문에 생기는 위험성은 없었나요?


친한 경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면 튕겨 나갈 수 있거든요. 뭐 그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냐는 식으로. 하지만 냉담할 정도로 진지하게 물어보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공적인 작업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스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할 때 아무리 친해도 이건 공적인 차원의 질문이고 당신은 이것에 대해서 성실하게 대답을 해야만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사정상 싣지 못하거나 인터뷰하지 못한 분도 있었나요?


시인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 작품성, 문학세계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건 그분이 얼마만큼 고유하고 독자적인 태도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고려했어요. 4, 5년 전쯤에 세속적 삶과 절연하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친 차창룡 시인이나,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로 본의 아니게 폐쇄적인 삶을 사는 최승자 시인이 개성적인 시인으로서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 인터뷰를 요청 했는데, 그분들의 상황이 맞지 않아서 못하게 됐어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문단의 선배,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분을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어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10년 전쯤 서평 전문잡지 <출판저널>에서 기자 생활을 했었어요. 서평 전문 잡지다 보니까 문학 분야의 저자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분야의 저자를 많이 만났어요. 저자들과 인터뷰하는 자세는 다른 게 없더라고요. 그분들의 지적인 작업의 흐름을 성실하게 쓸 준비를 하고,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숙지하는 작품 세계와 문제의식을 질문 속에 담아내게 되죠. 그러면 인터뷰이도 굉장히 좋아하고 이 사람이 준비를 잘 해왔다고 알게 돼요. 의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성실하게 읽었느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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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타자에 대한 몰입과 지적인 에너지가 많이 투여된 작업의 결과물이다”라고 쓰셨는데, 인터뷰 작업에서 특히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다른 인터뷰어보다 유리했던 게, 저 역시 소설을 쓰는 문단 동료이자 후배, 선배였기 때문에 소설 작업을 하면서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분들도 제가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 아는 분들도 계시니까 상호 신뢰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태이지 않았나 싶어요.


책을 읽는 내내 인터뷰를 즐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뷰한 열다섯 시인이 현재 한국 시단에서 열심히, 개성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는 시인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고 판단해요. 물론 제가 만나보지 못한 분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시인을 정하면서 나름대로 균형을 고려했어요. 시단의 주류, 큰 영향력을 가진 주류 시인이 있고, 반대로 상당히 비주류적인, 자신을 자발적으로 소외시키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은 현대 시의 담론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이끌어가는 시인도 있고요. 이야기하면서 이런 다양함이 축적되다 보니까 제 머릿속에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시단의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시단이 일종의 정원이라면 인터뷰 전에는 소나무라든가, 장미라든가, 아니면 귀퉁이 민들레라든가 눈에 먼저 띄는 것만 봤는데 인터뷰를 하니까 정원 전체가 보이는 거예요. 다양한 나무와 어떤 총체성 같은 것이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어요.


시인이 쓴 시와 시인의 이미지가 괴리되거나, 매치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나요?


매치가 안 됐다기보다, 시인의 이미지가 독자들에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계하는 시인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문태준 시인은 중요한 문학상 같은 것도 받고, 한국 정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 보니 그분이 자신의 서정적인 관계와 상당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서정적으로만 당신의 시가 읽히고 소비되는 것도 나름대로 경계를 하고. 그런 점이 상당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강화해도 얼마든지 시인으로서 유리할 텐데 본인의 위치와 항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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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자본


서문에 “물신주의의 광풍에 시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지도 관심사였다.” 라고 적으셨습니다. 독자분들도 흔히 시인은 자본에 취약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인이 실질적으로, 실존적으로 자본에 취약한 존재인 건 맞아요. 개인적으로 자본에 취약해야지만 그런 위치에서 그 시대에 대해서 당당한 발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발언은 시를 통한 발언이죠. 실제로 시인 중에는 사회생활을 영리하게 하는 분들, 계세요. 교수도 하고 책도 경제적으로 다양하게 내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죠.


제목의 세속도시에서 세속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함유하는 뜻이 자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본에 취약하든 덜 취약하든 시인은 자본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시인은 자본이 베풀고 있는 편리에 휩쓸려 사는 삶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가에 대해서 시를 통해 발언하고, 또 반대로 경제 활동을 비교적 잘해서 여유가 있는 시인들은 자본에 여유가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분열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자본에 대해서 나름의 거래를 하고 긴장 관계를 맺고 있어야지만 시적 발언을 할 수 있으니까요. 시는 소설하고는 다르게 세태나 풍속에 대해서 그대로 재현하는 장르는 아니에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시인의 공통점으로 ‘자유와 용서’를 꼽으셨습니다. 비교를 한번 해보고 싶은데, 시인과 소설가 혹은 시인과 비시인 간의 차이는 뭘까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이 시인이다, 소설가이다, 이렇게 나누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만 시와 소설이 상당히 일찍 서로의 이해관계와 문학적인 담론을 서로 가지면서 독립적으로 장르의 진화를 이루어내서 구분되는 게 있더라고요.


소설가들은 동류의식 같은 게 희박해요. 상당히 공격적이에요.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동물의 느낌? 왜냐면 소설은 자신만의 독립된 세계의 총체성을 혼자 건축하는 장르거든요. 자신이 그 세계 안에서 총체적인 생태를 구현하는 게 소설가라면 시인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세계의 어느 한 영역, 어느 한구석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요. 시인들은 자기가 파고든 세계 안에서만 안전한 존재예요. 그 울타리만 넘어가면 상당히 불안하고 위태롭죠. 그래서 시인들은 다른 쪽에 있는 시인과 연대하고 결속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영역을 보여주면서 서로 교류하는 거죠. 그래야지만 내가 더 강해지고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시인들은 술자리에서도 혈족처럼 끈적끈적해요. 술자리가 깊어져도 서로를 끝까지 챙겨주고. 소설가들은 그냥 화장실 갔다가 가버리고 이런 게 있더라고요(웃음).
 
소설가나 다른 문인을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은 있으세요?


소설가로는 17년째입니다. 소설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한 게 없어요. 한다면 세속 도시의 시인들 시즌 투, 쓰리 버전을 하고 싶어요. 작가들이 외연을 유연하게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는 소설만 쓰고 시인은 시만 써야지 인정하는 분위기고, 다른 장르를 쓰면 한눈팔지 말라고 해요. 소설가와 시인들이 독자들과 사회에 다채롭게 기여할 가능성을 오히려 막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가나 시인이 우리 사회를 관찰하는 기록 문학이나 르포르타주 같은 것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저자 그룹이 그런 글을 유연하게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쓸 수 있겠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문학적으로 우리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황현산 선생님과 신형철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두 분이 요새 가장 ‘핫’한 평론가분들이잖아요. 황현산 선생님은 가장 어른이시고. 추천사를 받으면서 부담을 느꼈어요. 책 내용이 시단의 풍요로운 생태계를 담아내는 걸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인 소외에 처해있는 비주류적 시인들의 문학 세계와 글쓰기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썼는데, 정작 추천 글은 상당히 권위 있는, 영향력을 갖춘, 상품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분한테 받은 거잖아요. 제 글쓰기 지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책을 내고 많이 팔아야지만 자본을 회수해서 또 다른 기획에 투자할 수 있기에 당연히 적극적으로 상업적인 욕망을 가져야 하니까, 그러한 장치로 추천사를 받는다면 제가 그걸 거부할 순 없죠. 개인적으로 귀하고 고마운 추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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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시인


현 문단 제도로는 문예지 기고나 신춘문예 등을 통해서 주로 등단하게 됩니다.


빛과 그늘이 상존하는 시스템인 것 같아요. 확실히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문학 엘리트주의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지만, 필요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 현대 문학의 이론과 체제가 전통을 계승한 게 아니잖아요. 서양의 문학을 이식한 이식문학사죠. 소설의 형식, 내용, 이론, 시의 형식, 다 서양 것이거든요. 조선 시대 쓰였던 가사나 시조도 있긴 하지만. 이식 문화라는 건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이식할 수밖에 없죠.


또 우리나라 문학은 처음에 계몽적인 역할을 했어요.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을 끌어올리기에는 문학이 제일 효율적이에요.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엘리트주의가 굳어지면서 문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과 유리된 고고한 지적 유희, 특정한 사람들만의 그들만의 리그로 배타적인 권위 같은 게 생겼거든요. 문학이 원래 사회적인 권위라든가 권력을 추구해선 안 되는데 엘리트주의다 보니 필요 이상의 배타적인 권위와 권력이 핵심 세력에게 주어진 거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편집 위원이나 공모전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그런 측면에서는 조금 더 문학이 유연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집 한 권 분량을 투고하면 심사해서 출간하는 기획을 하셨다고도 들었습니다.


현재 제가 하고 있는 기획은 아니지만, 권력을 확보하려고 만들어놓은 기준을 계속 충족시켜야지만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출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자의적이잖아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닌거죠.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쓰는 시인들은 억울하게 영문도 모르는 채 기회의 공평함 같은 걸 갖지 못해요 그런 의미에서 등단을 했든, 등단 했지만 시집을 못 낸 시인이든, 시집 한 권 분량이면 작품성과 시인으로서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시집 출간을 하는 거죠. 그러면 훨씬 더 동의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독립출판에서 나오는 시도 꽤 있는데, 이런 시도도 비슷하게 읽혀질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SNS로 시를 공유한다, 최근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회가 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뭘까요?


평소에 생각해왔던 걸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인간은 생존하는 방식과 실존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요. 생존은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생을 유지하는 거죠.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자기 일자리를 찾고. 실존은 내가 왜 사는지, 궁극적으로 내가 이 삶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 것,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보는 삶이거든요. 그 실존적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어. 어떻게 실존하는지는 당신도 아직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몰라. 당신이 실존하고 있는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어.’ 하고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문학작품이 실존적인 차원에서의 삶을 각성시키는 것인데, 시가 소설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자각하는 느낌을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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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원이 아닌 온리 원


SNS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세요. 온라인 상으로 만났던 분과 교류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페친(페북친구)과는 별 교류가 없어요. 말 그대로 소셜 미디어가 됐는데, 홈페이지를 운영하지 않으니 이걸 1인 미디어로 사용합니다. 가급적이면 페이스북에 쓰는 글에 공적인 성격을 입히려고 노력해요. 누가 읽든 안 읽든 제 창구를 잘 이용해서 독자들에게 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제 욕망이 실현되죠.


최근 그림도 자주 그리시더라고요.


미술치료를 배운 적도 없고 개념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저한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통이라든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에요.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되는 것 같고. 글 쓸 때와는 다른 위안이 있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둘 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잖아요. 글쓸 때와 그림을 그릴 때와 다른 점이 있나요?


글은 개념과 의미를 가져요. 아무리 난해하고 어려운 시라고 해도 나름대로 글쓴이가 집어넣은 의미나 메시지가 들어가잖아요. 또 글쓴 사람은 글에 집어넣은 메시지나 개념이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욕망하고, 독자는 메시지를 개념화하고. 상호 욕망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림은 훨씬 자유로워요. 의미나 메시지, 개념을 안 넣어도 돼요. 예를 들어 제가 기린 그림을 그렸는데 제가 의도한 대로 예쁘고 쿨하게 나오면 그냥 그게 기쁜 거예요. 또 글에서는 제가 집어넣은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그림은 상당히 나이브하고 자유로운 쾌감이 있는 거죠.


오늘 기린 모자도 굉장히 귀엽습니다.


기린 모양 스티커를 사서 직접 꿰맸어요.


좋아하는 술친구 시인은 있으세요?


어울리면 편한 친구들이 두세명 있어요. 주로 시인이죠.


작가님도 어쨌든 자본과 타협하거나 싸워야 하는 문인입니다. 주로 어떤 방식으로 자본과 대결하고 있나요?


1999년도에 신춘문예에 등단했는데 동시에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2014년까지 작가와 편집자로서의 커리어가 동시에 간 거죠. 큰 출판사에서 문학 파트 편집장까지 하고 그만뒀는데, 말하자면 직장 생활을 병행했던 게 나름대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자본에 대해서 제가 찾은 대안, 나름대로 저항하는 방법이었거든요.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해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으면 생활이 되잖아요. 그럼 제가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있는 거예요. 여기저기서 다양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데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10만 원, 20만 원을 벌기 위해 쓰고 싶지 않은 원고도 써야 돼요. 글을 팔아야 하니까.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면 정말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쓰고 싶지 않은 글은 거절하는 거죠. 저는 이게 진정한 의미로 작가로서의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디 속해있더라도 지속적인 수입이 있으면 쓰고 싶지 않은 원고를 쓰면 돈이 생긴다는 자본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후배 소설가나 시인들이 정기적인 노동과 고정적인 수입을 갖는 구조를 택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자기 문학 세계를 지키는 길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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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의도 하고 계십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문학이 기본적으로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고 늘 강조해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인 서사를 가지고 있고, 그 개인 서사는 고유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 가지 문학상이 있어서 마치 1등을 뽑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상을 주고 후보작들을 책으로 묶잖아요. 그건 상업적인 차원에서 출판사와 언론사가 벌이는 일종의 프로모션이죠.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액션이고 문학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거예요.


에곤 실레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고 앞으로 훌륭해질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훌륭함이 마음에 든다.” 글쓰기는 같은 출발 선상에서 똑같은 표시 라인으로 달려나가는 게 아니에요. 글쓰기는 각자가 360도 방향으로 뛰어가는 거죠. 그 방향에서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베스트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죠. 글 쓰는 사람이 내가 누구랑 경쟁해서 더 좋은 글, 더 인기 있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이미 씁쓸할 경쟁의 논리에 빠져들게 되고, 그럼 행복한 글을 못 쓰죠.


요새 읽은 시집, 최근에 읽은 시집 하나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손 가는 데에 가까이 두고 늘 들춰보는 시집이 이면우 시인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시집인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시예요. 그냥 당의정처럼 겉만 쓴맛을 달래주는 게 아니고 깊이가 있는 따뜻함이랄까. 독자 분들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음 출간 예정인 글이 있나요?


로고폴리스 출판사 대표님이랑 산문집을 한 권 또 하기로 했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했던 이별, 사적인 경험과 아울러서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별을 이야기하면서 만남과 사랑이 빠질 수 없겠죠. 남자의 이별과 만남을 주제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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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도시의 시인들김도언 저/이흥렬 사진 | 로고폴리스

소설가 김도언이 시단의 원로라 할 수 있는 김정환, 황인숙 시인부터 젊은 시인을 대표하는 서효인, 황인찬 시인까지 15명의 시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인터뷰집이다. 15명의 시인들은 “자신의 말과 얼굴을 또렷하고 구별되게 드러내는 시작과 자기 방식의 행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보로 한국 시단의 가장 내밀한 풍경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국 시인들의 인생을 대표”(황현산)하는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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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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