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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진화, 무지북스

도서 시장을 위한 새로운 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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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냥거릴 마음은 없지만 “책이 인테리어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제법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새로운 발견과 힌트’ 따위가 아니라 가격, 얼마나 싸게 팔 수 있느냐는 것이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내가 시험을 잘 봤던 어느 날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모처럼 외식을 했다. 아마 불고기를 잔뜩 먹었든가 그랬을 거다.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렇게 책이 많다니’ 하고 놀랐던 기억이다. 그렇게 큰 서점은 처음 봤다. 종로 2가 YMCA 맞은편에 있는 6층인가 7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서점이었다. 보고 싶은 건 전부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서가를 돌아다니며 재밌어 보이는 책을 잔뜩 골랐다. 돌아오는 내내 집에 도착하면 읽을 생각으로 설렜다. ‘종로서점’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을 한 뒤로는 어린 시절에 그랬듯 무작정 서점에 들러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닥치는 대로 책을 고르는 일이 드물어졌다. 읽고 싶으니까 읽는 책보다 읽어야 하니까 읽는 책이 목록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인간으로서 거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에 맛보았던 흥분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진 듯하여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주말을 이용해서 일본에 놀러갔을 때 잠시 그 비슷한 걸 맛보았기에 몇 자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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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이라고 아시는지. 1980년에 마흔여 개의 생활 잡화로 시작하여 현재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건을 팔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잡화점 가운데 하나다. 2016년 현재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노르웨이, 미국, 홍콩, 중국, 필리핀에 진출했고 자동차와 신선식품(야채와 육류)을 제외한 7000여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집도 판다. 잡화점답게 가격이 싼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데 대관절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석하여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무인양품 디자인』 등의 책으로 출간했다.

 

한국에도 16개의 점포가 성황리에 영업중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내가 무인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리뉴얼한 유라쿠초 매장의 전경을 뉴스에서 보았을 때다. 2015년 9월 8일자 <닛케이 트렌드 넷>의 보도는 다음과 같다. “이번 재개장의 가장 큰 테마는 ‘책과 잡화가 융합한 매장’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눈을 끄는 것은 1층에서 3층까지 매장을 달려 올라가듯이 설치된 거대한 책장이다. 한 마리 용을 형상화했다. 무인양품에서는 이전부터 일부 점포에서 서적을 취급했지만 이만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하카타 점에 이어서 두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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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아아 저걸 내 눈으로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마침 ‘서점 구경이라면 한잔하는 것만큼이나 좋아라 하는 멤버’들이 간다고 하길래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무인양품 유라쿠초 점의 책장 설계는 건축가 유닛의 ‘아틀리에 왕(Atelier Bow-Wow)’이 담당했다. 책 선정 및 진열은 “<아사히신문>이 희대의 독서가로 부르는 일본 최고의 독서 고수” 마쓰오카 세이고가 맡았는데, 종종 전설의 편집자로 거론되는 그의 책은 한국에도 『知의 편집공학』, 『독서의 신』,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지식의 편집』 등이 번역된 바 있다.

 

‘복합서점’이라는 측면에서 무지북스는 츠타야와 비교되곤 한다. 내가 둘러본 바, 츠타야와 무지북스는 꽤나 달랐다. 전자가 책을 주력으로 삼고 여행, 요리, 디자인을 전략종목으로 채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안을 관철시키기 위한 공격적 디스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다면, 후자는 각종 잡화를 주력으로 ‘사(さ)(冊: 독서의 역사에서부터 책에 관한 2,000권)’, ‘시(し)(食: 食에 관한 2,000권)’, ‘스(す)(素: 소재에 관한 2,000권)’, ‘세(せ)(生活: 생활에 관한 2,000권)’, ‘소(そ)(裝: 의복에 관한 2,000권)’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선정하여 ‘책에 둘러싸인 생활’이라는 다소 느슨하고도 여유로운 진열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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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소 느슨하고도 여유로운’이라는 컨셉(‘컨셉트’라고 해야 하지만)은 무인양품 인기비결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너무 편해서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기 때문에 ‘사람을 망치는 소파’로 불리는 ‘푹신 소파’는, 잡화라기보다는 가구에 가깝고 가구라고 하기엔 잡화처럼 보이는 그야말로 무인양품적인 느슨하고도 여유로운 컨셉의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껏 100만 개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무지북스는 서점이라기보다 잡화점에 가깝고 잡화점이라기엔 서점처럼 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설계한 듯하다.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힌트가 무인양품의 테마였지만 매장에서의 놀람과 발견이 줄어든 게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있던 차에, 새로운 힌트와 발견을 만날 수 있는 책과 융합한 매장을 만들었다’는 무인양품 측의 선언에 따라 일만 권의 책은 전체 매장의 인테리어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도서의 노골적인 인테리어화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부정적인 견해로는 정작 책은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무인양품 측에서도 책 매출은 신통치 않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고 그래서야 출판사나 작가에게 아무런 메리트가 없으니 곤란하다는 의견이 상당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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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점은 어쨌거나 책이 진열된 덕분으로 고객들이 좀 더 오래 매장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5년 12월 15일자 <일본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적으로 인해 “고객이 체재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덕분에 매출이 상승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리뉴얼 전보다 15%가량 매출이 올랐는데 “책을 구입한 고객의 구입빈도가 1.6배에 달했다”고 하니 무인양품 매장에서 책은 잡화를 구입하기 위한 가이드 혹은 레시피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아닌게 아니라 잡화를 사러 슬렁슬렁 왔다가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며 진열된 책을 꺼내드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듯했다.

 

만약 무지북스 같은 규모의 복합서점이 한국에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아무래도 반발이 클 것 같다. 일전에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리뉴얼한 이후에 가장 많이 제기됐던 불만 가운데 하나는 “책을 꺼내보기 쉬워지면서 파본 도서가 많아지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출판사가 진다”는 것이었다. “(대형 복합)서점이 책을 선별하여 진열하면 종의 다양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으리라. 비아냥거릴 마음은 없지만 “책이 인테리어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제법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새로운 발견과 힌트’ 따위가 아니라 가격, 얼마나 싸게 팔 수 있느냐는 것이니까. 대형 헌책방도 그래서 계속 늘어나는 것이겠고.

 

그렇다면 틈나는 대로 일본에 놀러 갈 때마다 구경 가는 수밖에 없으려나. 듣자 하니 시부야 역 근처에 생긴 ‘HMV&BOOKS TOKYO’가 도서와 음악을 융합시킨 도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쇼핑몰을 표방하며 사람들을 왕창 불러 모으는 중이라던데. 멤버들을 살살 꼬셔서 다음엔 여길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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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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