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7화 - 열정의 분해 과정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아내가 연재중인 내 소설에 ‘다음회가 기대되네요’라는 같은 메시지를 3주째 기계적으로 달고 있다.

1.jpg

 

4. 29.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후기의 첫 단락이었다. 

 

“이 책에 담긴 일련의 원고를 언제쯤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확실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오륙 년 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소설가로서 소설을 써나가는 상황에 대해, 한자리에 정리해서 말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 그런 글을 조금씩 단편적으로 테마별로 써서 모아두었다. 즉 이건 출판사에서 의뢰를 받아 쓴 글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다.(329쪽)”

 

고작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에 불과한데, 어느새 자발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 내 모습에 37년 차 작가는 경종을 울렸다. 성실함이 최고의 재능이라는 것에는 이견을 제기할 수 없으며, 열정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것에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다.
 
나의 열정은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이미 예전에 식어버린 게 아닐까.
 
아내가 연재중인 내 소설에 ‘다음회가 기대되네요’라는 같은 메시지를 3주째 기계적으로 달고 있다.
 
때론 댓글이 식어버린 열정을 냉동시켜버리기도 한다.
 
 
4. 30.


아내가 열정이 식어버린 나를 격려하기 위해 내가 수상한 문학상 트로피 두 개를 TV 선반대에 올려 놓았다. 


“이런 걸 전면적으로 드러내면 낯뜨겁단 말이야. 누가 집에 오기라도 하면 어떡해.”


항변에 아내는 답했다. 


“힘을 내라는 의미로 꺼내 놓았어요.” 


 나는 좀 더 솔직하게 내심을 드러냈다. 


 “이런 물건보다, 독자들의 성원과 판매에 힘을 얻는다고!” 


실제로 요즘은 판매가 너무 부진하고, 연재물에 댓글이 전혀 없어 풀이 잔뜩 꺾인 상태다.  (지난회 ‘절도일기’에도 댓글이 없었다. 2주간 전혀 없다.)


그러자 아내가 “그러니까”라고 운을 띠운 뒤, 연재중인 내 소설의 대사를 인용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격려는 냉동된 열정마저 산산히 분해시킨다.
 


5. 3.

 

언제부터 소설을 쓰는 게 지루한 일이 돼버렸을까. 이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조금 말해보고자 한다. 사실, 나에게 소설을 쓰는 건 너무 빤한 일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작가는 복선이 어떻게 수습될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작가는 헤어졌던 인물들이 어디서 어찌 재회할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때론 소설을 쓰는 게 너무나 지루하다. 

 

그러나 소설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문장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하나씩 풀어내는 건 지적흥분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를 몇 년 째 매일 하는 사람에게는 속이 터지는 일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 역시) 첫 장(章, Chapter)이나 몇 페이지(심할 경우에는 책 뒤편의 소개글)만 보아도 대략의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혹은 보면 볼수록) 내가 예상한 스토리 대로 전개된다는 것을 확인만 할 뿐이다. 

 

이 경우 작가인 독자(겸 관객)이 즐거움을 얻는 대목은 바로 ‘자신이 예상한 스토리와 실제 스토리의 오차가 과연 얼마인가(5%인가 10%인가 하는 차이. 15%이상이 되면 걸작이다!)’ 하는 것과, ‘비록 예상된 스토리이지만, 그것이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는가(실은 방식까지 예상을 하게 되는데, 이 방식이 작가 겸 독자의 예상과 다를수록 독서는 흥미로워진다)’ 하는 점과, 마지막으로는 이 스토리와 전개방식이 빤한 서사를 ‘어떠한 문장과 어떠한 장면으로 구축했느냐’는 것이다. 즉, 문장과 그 문장안에 담긴 단어, 대사, 장면 안에 쓰인 색감, 미장센, 따위에 ‘그나마 흥미’를 느끼며 보게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작가에게 재미있는 소설은 지구상의 모든 책을 통틀어 찾아도 고작 17평 아파트의 서재를 채울 수 없다. 하여, 글을 쓸수록, 서재의 책이 주는 기현상이 일어난다(책을 계속 버리게 된다). 터프하게 말해, 이러한 속사정 탓에 초기의 열정을 차츰 잃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열정의 회복을 위해선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런 마음을 이미 통감한 바 있는 37년차 소설가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을 쓴다는 건 너무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중략, 이하 …) 너무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 혹은 특출나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소설 쓰는 일에는 맞지 않을거라고 나는 항상 생각합니다. …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置換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소설이라는 형태로 전환하자면 반년씩이나 걸리는 메시지나 개념도 그걸 그대로 직접 표현하면 단 사흘 만에 언어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마이크를 향해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린다면 단 10분이면 끝날지도 모릅니다.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은 물론 그런 것도 가능합니다. 듣는 사람도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그런 게 바로 머리가 좋다는 것이니까. (20~21쪽)”

 

_ㅈㅣㄱㅇㅓㅂㅇㅡㄹㅗㅅㅓㅇㅢ-ㅅㅗㅅㅓㄹㄱㅏ_-ㅈㅜㅇ-ㅎㅏㄴ-ㄱㅜㅈㅓㄹ.jpg

 

더 이상의 자세한 인용은 생략한다.
 
함께 침이 섞인 밥그릇을 쓰고, 같은 변기에 엉덩이 살을 대고 살아가는 사람이 건네는 과학적인 격려가 아니라, 일본에서 지진의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70대 노인의 자학에서 위로를 받을 줄이야. 그러니까, 나의 열정이 식은 것은 내가 천재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는 마침내 댓글이 달릴 것 같다. 비난의 댓글이. 

 

 

5.10.

 

매주 연재하는 소설의 새 에피소드가 방금 업데이트 됐다. 

 

아내가 댓글을 달기도 귀찮다며, 읽지도 않고 별 점 10점을 눌렀다. 

 

때로 비현실적인 고평점은 분해된 열정마저 원자화(原子化)시켜버린다.  

 

 

[추천 기사]

- 오직 영국을 위해 열정을 쏟은 처녀 여왕
- 우리의 노년이 안녕하기를
- 직장이 아닌 직업을 만들기 위해
- 오쿠다 히데오, 포스트 하루키 세대를 이끄는 소설가
- 미남에다 센스 있는 대표의 잡지 추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4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15,120원(10% + 5%)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 그리고 왜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내는가, 소설을 쓰기 위한 강한 마음이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로 살아온 삼십오 년의 작가론적 문단론적 문예론적 인생론적 집대성 무라카미 하루키는 21세기 소설을 발명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