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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아닌 직업을 만들기 위해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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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직장이 아닌 오래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면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라 해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소설가 하루키가 아니라 보호막 하나 없는 소설이라는 전장에서 소설이라는 직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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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라고 물으면 “삼성에 다니고 싶어요”,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자주 듣는다. 좋은 희망사항인데, 그것은 일을 하는 직장이지, 하는 일을 뜻하는 직업(職業)은 아니다. 얼마 전 이 코너를 통해서 이토 히로시의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를 소개한 바 있다. 세상이 변했듯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도 달라져야 할 필요가 많아졌다. 그런 맥락에서 연봉 높은 대기업, 안정적인 공기업이나 정부기관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희망이지만 평생 내 일이라고 할 만한 직업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직업’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직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세상에 내가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고 내세웠을 때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그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직업의 중요한 의미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더 기본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활동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수준이 될 때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운도 필요하다.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눈을 돌리게 되어 찾는 것은 안정적이고 남들이 부러워할 직장이라는 울타리다. 하지만 이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경쟁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공부중독 사회가 되어 버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채 공부만 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공부를 왜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  이럴 때 만일 직장이 아닌 직업이라는 시선의 방향전환을 할 수 있다면 좁은 몇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직장의 자리 차지하기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고, 삶의 방향성도 훨씬 다양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에 든든한 조언을 주는 책을 한 권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 소설가다. 그가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결정하고, 또 직업으로서 소설가가 되는 과정에 대해서 쓴 에세이인데,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쓴 글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말하자면 나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라고 밝혔다.

 

 

보이지 않는 ‘자격’,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35년간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얻고 소설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고비고비마다 했던 고민과 결단에 대해서 그리고 소설가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 실천에 대해서 그만의 ‘사유(思惟)의 사적인 프로세스’를 적었다.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지칭한 한 사람이 천재적 소설가로서 인생을 살아오게 된 과정을 돌아보는 이 책을 읽다보면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뿐 아니라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고민과 결과물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학을 다니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 하루키는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작은 재즈바를 열어서 운영을 하면서 30대를 맞이한다. 좋아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관전하다가 문득 ‘소설을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육 개월 동안 가게 영업이 끝난 한밤중에 새벽까지 써내려 간 소설을 군조문학상에 원본을 복사도 하지 않고 응모한 것이 당선이 되었다. 만일 최종후보에서 떨어졌다면 그는 소설가가 되지 않고 여전히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존의 소설가들도 새로 진입하는 사람을 막지 않는 분위기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면허로 장벽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업종간의 경쟁이 치열한 식당과 같은 업종과도 다르다. 한 마디로 링에 한 번 올라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하루키가 분명히 말하는 것은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소설을 한 두 편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가로서 먹고 사는 것,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실력, 운, 재능, 기개 등이 필요하지만 더욱이 보이지 않는 ‘자격’이 필요하고,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 

 

첫 번째 요소는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질기게 해보라는 것이다. 한 번 반짝 하는 것은 재능이 있거나, 운이 좋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어느 퀄리티 이상의 결과물을 내는 일을 해내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키는 소설가는 머리가 아주 좋거나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은 하지 못할 일이라면서, 꾸준함과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렇듯이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한 번 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져야 한다. 

 

하루키가 꼽는 두 번째 요소는 ‘오리지널리티’, 그 누구와 비교되지 않는 나만의 것이다. 말러, 비틀즈, 스트라빈스키의 예로 들면서 그가 제시한 기본적 요인은 이렇다. 먼저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 바로 ‘아 이건 00이구나’라는 것을 알만한. 두 번째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스타일을 버전업 할 수 있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해나간다. 세 번째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스타일은 일반화되어서 사람들에게 흡수되어 가치판단의 일부가 된다.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서 해나가야 하는 데 역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경과’다. 시간의 검증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피지컬(physical)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밀실 안에 갇혀 오랜 시간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다. 지쳐서는 안된다. 외톨이가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하루키는 야구로 예를 들면서 선발투수가 7회 정도까지 던지면 구원투수가 이어받지만 소설가에게는 볼펜도 대기선수도 없이 연장전이 되어도 끝까지 던져야 한다. 그걸 견뎌내며 고독한 일을 혼자 외로이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하기 위해 지속력이 몸에 배어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한데 바로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한 편으로 만든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고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고, 민첩성, 유연성도 상실된다. 하루키는 알려진 바대로 매일 러닝을 하고,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경험도 있다.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소설가라는 업을 유지하기 위한 대답이다. 어떤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마음가짐과 의지보다 앞서서 몸의 준비가 더 기본적이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자동차의 양 바퀴와 같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 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힘을 갖는다고 하루키는 말한다. 더욱이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작가로서의 능력이 조금씩 높아지고 창조력이 강고하고 안정적이 되었다’는 것을 주관적으로 느낀다고 말한다. 

 

문득 떠오른 '소설이나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고 35년이 흐른 다음, 하루키는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며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으로 자신을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았다. 치열하게 자기 인생을 만들어낸 사람의 고민과 결단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이 있지만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두 번째 정체성을 가진지 10여년이 흘렀다. 책을 내는 정신과 의사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동안 꾸준히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적다. 난 아직 하루키만큼 오래 쓰지도 않았고, 그만큼 성공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큰 공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해온 일을 돌이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짝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꾸준함과 시간의 힘을 믿는 것,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민, 체력적 방전이 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인데 나는 그 중 몇 가지나 해내고 있는지.내가 이렇게 느꼈듯이 이 책은 직장이 아닌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면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라 해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소설가 하루키가 아니라 보호막 하나 없는 소설이라는 전장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35년동안 소설이라는 마라톤을 수 십 번 완주해낸 사람이 평생의 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체득한 지혜와 치열했던 고민의 고독한 깊이가 읽는 내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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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 현대문학
작품을 발표하는 일 외에는 침묵으로 일관해왔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1979년 등단 이후 최초로, 자신의 글쓰기 현장과 이를 지탱하는 문학을 향한, 세계를 향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풀어놓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실하고도 강력한 사고의 궤적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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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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