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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보다 신하가 먼저였던 세상

역사에 기록된 선조들의 ‘성공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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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풍미했던 2인자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맥’을 발견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왕에게 바른말 한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기록해놓은 많은 인물들이 사실 왕실과 얼마나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금광을 찾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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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조선 임금 잔혹사』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누구나 쉽게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조선의 임금들은 서릿발처럼 냉정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승하 직후에 발간된 임금의 평전이기도 하다. 세상을 떠난 뒤에 쓰였기 때문에 임금은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또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임금이 실록을 열람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관여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임금의 행적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 속에서 정작 임금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옛날 사관의 붓에 의해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에만 의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오늘날 학자와 작가들의 생각을 담은 다양한 역사 서적을 참고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신하들은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고 임금은 지나치게 비판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은 모두 26명,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순종을 포함하면 27명이다. 이 중 후세에 성군으로 인정받은 인물은 세종과 정조 정도밖에 없다. 세종과 정조의 업적과 치세는 이견의 여지가 없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종이나 정조 같은 성군에게도 엄준한 잣대를 들이대며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하면 크게 기뻐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썼다. 반면 임금을 보좌했던 신하들에 대한 평가는 놀랍도록 후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하들의 행적은 대개 직계 자손이나 친했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사대부가의 양반 중 학자나 관리가 세상을 떠나면 자식들은 아버지의 친구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벼슬이 높은 사람들을 찾아가 행장(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이나 묘갈문(무덤 앞에 세운 비석에 새겨진 죽은 사람의 행적과 인적 사항에 대한 글) 작성을 부탁했다. 생전에 교류했던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죽은 사람의 명예와 평판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식들과 제자들의 손으로 완성된 평전이다 보니 미화는 필수였다. 잘못을 저질렀거나 실수했던 내용은 굳이 싣지 않았고, 상소문을 올리는 등 절개 있는 행동을 했거나 왕에게 총애를 받았던 일은 부풀려서 기록되었다. 그것이 망자의 명예를 위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대에 쓰인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 임금과 신하를 평가하자면 임금이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공평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군약신강(君弱臣强, ‘군주의 왕권은 약하고 신하의 세력은 강하다’는 의미로, 청나라에서 조선을 비웃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당시 조선의 정세가 6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조선의 2인자들』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였다. 전제 왕조 국가였던 조선은 과연 임금을 제외하면 ‘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서슬 퍼런 충신과 ‘왕의 총기를 어지럽혔던’ 흉악한 간신, 이렇게 극단적인 두 종류의 세력밖에 없었을까? ‘왕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인물이라면 과연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며 어떻게 그 힘을 발휘했을까? 그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오늘날의 평가는 어떨까? 소수의 몇 명에게 집중된 ‘간신’의 진짜 실체는 무엇일까?

 

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전형적이었다. 자식들을 정략결혼의 장기 말로 사용하거나, 과거제도를 비웃듯 뇌물을 사용해 친인척의 급제를 성사시켜 관직을 독점하거나, 조정의 실세와 결탁하여 각종 불법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늘리며 권력을 구축했다. 즉, 금수저를 만들어줄 인맥과 그 인맥을 만들기 위한 경제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었다.

 

조선을 풍미했던 2인자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맥’을 발견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왕에게 바른말 한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기록해놓은 많은 인물들이 사실 왕실과 얼마나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금광을 찾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뜻밖의 ‘관계’를 발견할 때마다 마치 X파일을 엿본 것 같은 쾌감에 기뻐하며 탄성을 질렀다. 반대로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된 인맥이 피라미드처럼 탄탄하게 구성된 정계에서 오직 학문과 실력으로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임금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백성의 삶을 편안케 하고자 노력했던 인물들을 만날 때면 존경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진정으로 후세에 모범이 될 만한 선비와 관리’들은 오히려 윤리와 도덕, 의리와 충심이 땅에 떨어져 간신들이 조정을 장악하여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아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출현했다는 사실이었다.

 

당대 최고의, 정교하게 발달된 관료 제도를 자랑하던 조선왕조 500년 동안 1인자의 자리에 앉았던 임금은 26명이었지만 2인자의 자리를 거쳐 갔던 인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무난하고 보편적인 방법으로 2인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도 물론 있었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인물도 많았다. 역사 속에서 너무나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정작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지금 당장 참고해도 좋을 ‘처세술’에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여론을 형성하여 국익을 망쳤으면서도 후세에 욕 한마디 듣지 않은 인물들도 많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권력자에게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권력자를 동경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권력자와 아무 관계가 없을 때에는 마음 편하게 비난을 서슴지 않지만 막상 권력자와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나의 이익과 관련이 되면 그를 옹호하게 되고 나아가 그를 닮고 싶어 한다. 유혹에 쉽게 흔들리고 권력에 취해 타락하는 모습은 조선시대와 오늘날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된 선조들의 ‘성공과 실패’는 출세와 부귀영화를 원하는 우리에게 열쇠가 되어줄 수 있다. 성공을 향한 인간의 뜨거운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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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인자들조민기 저 | 책비
2014년 출간 후 역사 분야 베스트&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조선 임금 잔혹사』의 조민기 작가 신작. 이 책은 조선 역사 속에서 1인자의 자리를 노렸던 2인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욕망이 어떻게 권력이 되었고, 역사 속에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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