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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의 티라노사우르스, 움베르토 에코 별세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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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난쟁이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론 거인보다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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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문학동네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장미의 이름』 중에서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우리 시대의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움베르토 에코가 지난 2월 18일 밤 향년 84세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밀라노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ㆍ철학ㆍ역사학ㆍ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였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은 사람이었다.

 

1960년대부터 활발한 이론적 저술로 서구 인문학계에서 인정받던 움베르토 에코는 48세의 나이에 쓴 『장미의 이름』으로 저명한 철학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하며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9개 국어를 구사하는 지도적인 기호학자이자 인문학자로서, 각종 언론 매체 기고를 통해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지식인으로서, 에코는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왔다. 에코의 저작은 소설과 칼럼, 논문 등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독자의 지적 욕구를 자극했다. 한국에서는 열린책들에서 모든 책을 번역 출간해, 이탈리아에도 없는 유일한 움베르토 에코 총서를 만나볼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일대기

 

1932년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피에몬테 주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54년 토리노 대학에서 중세 철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철학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논문은 『성 토마스의 미학적 문제』로, 후에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후 이탈리아 방송 협회(RAI), 밀라노 봄피아니, 토리노 대학과 밀라노 대학,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 피렌체 대학 등에서 근무하고 강의하면서 미학, 기호학, 문학, 에세이, 문화 비평 등의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특히 1975년 볼로냐대 기호학 교수로 부임, 기호학계에서는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1980년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간해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은 14세기 초반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영국인 수도사 윌리엄이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추리소설이다. 윌리엄과 주변 인물을 통해 종교재판 등 중세사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은 40여 개국에 걸쳐 총 2,0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1989년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종교의 독선과 권력이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구속하는지 생생하게 그린 이 소설로 에코는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과 이탈리아 스트레가 상을 받았다.


"우리는 난쟁이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론 거인보다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다."
- 『장미의 이름』 중

 

기호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준 두 번째 소설 『푸코의 진자』는 독자들의 찬사와 교황청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주인공인 세 명의 출판 편집자들이 입수한 암호 메시지를 푸는 과정은 기호학의 정수를 담아내면서 독자가 지적 유희에 흠뻑 빠지게 했다.

 

뒤이어 17세기 경도를 측정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자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십자군 원정과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모험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바우돌리노』 등 이후에 발간된 소설도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는 19세기 유럽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론이 어떻게 생산되고 퍼져 나가는지 그린 『프라하의 묘지』 를 출간하고 2015년까지 일곱 번째이자 최후의 소설 『창간 준비호(가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철학자라고 소개하며 자신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그저 주말 시간을 할애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와 다를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움베르토 에코의 본업은 소설가가 아닌 학자였으며, 세계 40여 개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시대의 백과사전이자 지식인계의 공룡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저/이윤기 역 | 열린책들 

고 이윤기 선생(1937~2010)의 번역으로 당시 신생 출판사였던 열린책들(1986년 창립)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서 초반 반응이 폭발적이지는 않았지만 번역자 이윤기는 인터넷도 위키피디아도 없던 시절 오직 사전과 자신이 갖고 있던 서양 문화 전반에 대한 교양, 그리고 전공이었던 신학 지식을 활용하여 이 7~8개 언어가 등장하는 책을 번역해 냈다. 이는 일본(1990)보다도 앞선 것이었고 그 뒤 이윤기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번역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이후 1년이 넘은 개정 작업 끝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책의 모티프인 금지된 책을 둘러싼 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한국 문학에도 일정한 영향을 남겼다.

 

 

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저/이윤기 역  | 열린책들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식 저작권 계약이 된 에코의 소설이다. 재기 넘치는 세 출판업자들은 세계 지배를 꿈꾸는 이들이 찾는 지구의 비밀에 관한 암호 메시지에 접한다. 피라미드의 도량형 단위에 감추어져 있는 태양계의 엄청난 비밀, 성당 기사단의 악마적 입문 의례, 중세 이래 번성해 온 온갖 비교 등 움베르코 에코 소설 특유의 방대한 지식이 녹아져 있다. 중세 이래 번성해 온 유럽의 비교(秘敎)에 관한 완벽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찬사와 신성 모독이라는 교황청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첫 번째 소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고 이윤기 선생이 번역했으며, '번역이 불가능해 보이는' 책을 번역함으로써 이윤기의 명성도 올라가게 되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 | 열린책들 

움베르토 에코의 비소설 중 가장 인기를 모은 책. 제목이 알려주듯 현대 문명에 대한 비평인 이 책은 에코의 박식한 유머의 최대치를 맛볼 수 있다는 평을 받으며 소설이 아닌데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기 형식을 지키면서 자유로운 문체로 다양한 내용의 글을 써나가며, 소설 기법, 수필 기법, 공상 과학 소설, 우화, 혼성 모방 등 여러 가지 기법을 동원한다. 현대 생활에 대한 해학적인 고찰과 문학적인 패러디와 환상적이고 황당무계한 잡문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현대 문물에 대한 에코의 기호학적인 해석이 동반된다. 그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아주 평범한 일상은 돌연 마술 환등처럼 신기롭고 흥미진진해진다. '에코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는 일기 형식의 글로 구성되어 에코 특유의 유머 감각을 쉽게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움베르토 에코 저/김운찬 역 | 열린책들

문학적 주제와 관련하여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이나 강연, 발표한 내용을 엮은 문학 이론서이다. 단테와 마르크스, 보르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 문학의 주요한 지점과 주제들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학에 대한 그의 지식과 견해, 애정과 관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미의 역사

사움베르토 에코 저/이현경 역 | 열린책들 

누구나 다 안다고 믿고 있는 '미'라는 관념이 고대의 입상에서부터 기계 시대의 미학에 이르는 동안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추적하고 책이다. 이를 통해 에코는 미란 결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회화, 조각, 건축을 비롯하여, 영화, 사진, 뉴미디어에서 가져온 넉넉하고 화려한 삽화뿐 아니라 문학과 철학, 예술가들의 자전적 증언을 원용하고 있는 텍스트들은 미에 대한 시각과 사고의 변천을 그 정수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밀로의 비너스에서부터 앤디 워홀의 메릴린까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부터 카프카의 유형지에서까지, 그리고 플라톤의 국가에서부터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들에 이르기까지, 에코는 자신의 설명을 굳건히 하기 위해 아름다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해 보려고 시도했던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을 총동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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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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